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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슬픔에 잠겨버린 눈 내리는 마을 이야기 [127]

  • 닉행시
  • 2016.01.06 11:35 (UTC+0)
  • 조회수 12372
노래: 잔잔한 내일로부터 ost 海の涙

출처: https://youtu.be/JXvEyMh8Jmw


*


부제: 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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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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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고 봄이 오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책을 덮었다. 몇십년 전 사라져버린 마을에 대해서 나와있는 책은 거의 없었다. 그냥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는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마을의 사라짐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그 마을에 대해 기억하고선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 이상 사라진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도를 만들 때에도 그 마을을 넣지 않았다. 여행지를 짤 때에도 선택지에 그 마을은 없었다.


내가 언젠가 사람들에게 찬란했던 봄의 마을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나를 향해 사람들은 지식으로 가득 찬 검은 눈동자를 꿈뻑이며 아, 아. 그랬었나.. 하고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흘렸다. 나는 그러면 거기에서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들처럼 상황에 스며들어야했었다.


마지막 책에서까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인간들의 지식이 모여있는 책이라는 것도 갑자기 사라지는 이야기에 포함되었던 것일까. 다른 마을에 대해서는 빽빽하게 적혀있던 책들에도 그 마을의 이야기는 빠져있었다. 책의 전체 내용을 들어낸 것처럼 몇 페이지는 통째로 글이 사라져있었다.


''''왜... 아무도...''''

''''아벨님...''''


고개를 들어보니 베라가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짙은 검정색의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들여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 속의 내가 보였다. 미간 사이의 골이 깊게 패여있었다. 머리카락의 윤기는 사라져있었고 푸석거림이 느껴졌다. 도저히 순혈 귀족 늑대라고 할 수는 없는 모습이었다. 괜히 짜증이 일었다. 나라고는 할 수 없는 안정되지 않은 모습. 다시 눈동자 속의 그와 마주했을 때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아벨님, 찡그리지 마세요.''''


이마 중앙으로 따뜻한 느낌이 몰렸다. 하나의 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작은 소름이 돋았다. 베라는 내 이마에 손가락을 얹고 나를 살며시 보며 웃었다. 그 안정감있는 웃음 속에서 짜증이 사라졌다. 그녀의 손가락으로 집중된 온 신경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그녀를 따라 웃어주었다.


''''이야기 들었어요. 사람들이 아벨님께서 요즘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신다고 걱정들 하시더라고요.''''


따뜻함이 머리에서 멀어지고 베라는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내게 물었다. 그녀에게 대답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걸까. 저 조그마한 입에서 또 무슨 소리가 나올까. 결국엔 그녀도 나를 환상 속의 마을을 찾는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까.


''''아벨님께서 있으시다고 하면 그 마을은 정말 있는거예요.''''


생각치도 못한 그녀의 발언이었다. 두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잔잔한 수면같은 그녀의 눈동자에선 믿음의 욕구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래, 이런 여자였지. 괜히 이상한 생각을 잔뜩 했던 몇 초전의 내가 우스워졌다.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그녀는 특유의 밝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나를 책더미에서 꺼내어주었다. 순간 이 아이에게는 말해도 되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만히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자 그녀는 나를 똑바로 마주보며 자리에 앉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바짝 마르는 침을 삼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내가 아직 어린 늑대였을 때, 나는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마음를 갈고 닦는 것은 귀족으로서의 긍지였으며 가문을 벗어나 모험을 하는 것은 늑대의 삶을 살아가는 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다시는 발걸음을 되돌릴 수 없는 여행길이 당연했기 때문에 나는 종이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직접 지도를 그렸다.

사람들에게 물었던 찬란했던 봄의 마을, 모두가 잊었던 봄의 마을도 그 지도에서 기억해낼 수 있었다. 조금만 거닐어도 다른 꽃을 만날 수 있었던 마을. 따뜻한 태양이 대지를 내리쬐는 풍요로웠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꽃을 닮은 듯 얼굴에 미소가 항상 띄워져있었던 마을.

사실 봄의 마을도 여느 마을과 다를 것 없었다. 다만 무언가 포근했고 따뜻했다. 금빛 태양처럼 풍요로운 느낌이 들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누군가 서로를 해하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위해 공존하고 있는 마을이었다. 그래, 그 마을에는 상처가 없었고 치유가 되는 느낌이 가득했다.


''''가요, 직접 그 장소로 가보면 되는거잖아.''''


베라는 내 손을 끌어당겼다. 순간 내 손을 이끄는 그녀의 모습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겹쳐졌다. 달빛을 닮은 금발의... 빨리 가자며 달려가는 베라의 손길에 이끌려 나는 잠깐 보였던 어떤 소녀의 실루엣을 머리에서 지웠다.


''''베라, 잠시만..''''


나의 부름에 베라는 이끌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책더미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하나 찾아 그 속에서 종이를 꺼내었다. 일기장만큼 바랜 종이었다.


''''그게, 그 지도군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최근에 만들어진 지도를 꺼내며 내 지도를 살폈다. 모든 것이 거의 비슷하지만 한가지 달랐던, 빈 공간안에 써져있는 [봄의 마을]이라는 네글자만이 달랐다. 베라는 가만히 그걸 보고 있다가 다시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내 손을 이끄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를 잡은 손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린 땅을 내달렸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내달리고 있자하니 어렸을 때의 기억이 눈 앞에 펼쳐졌다. 생각없이 그저 앞만 보며 내달렸던 그 날의 기억. 여행을 했었던...나는 마음 속으로 말하던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한채 펼쳐진 흰 들판에 그대로 서 있었다. 베라도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발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여기가...''''

''''봄의 마을.''''


무언가 깨지는 느낌이 났다. 그러더니 커튼이 쳐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주변이 안개로 휩싸였다. 몇걸음 앞에 있던 베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안개로 휩싸인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상황인만큼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주변에 온통 적인 것처럼 나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하..하하''''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꼭 봄의 마을에서 들리던 웃음소리. 그 갈증에 시달릴 때 청량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메마른 감정을 해소시켜주는 시원한 웃음소리. 조금씩 가깝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경계심을 늦추고 그 곳으로 다가갔다. 조금씩 안개가 걷혔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터였던 곳에 건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조금씩 그 광경이 익숙해졌을 때 나는 그 곳이 봄의 마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형, 형은 누구야?''''


아이는 콧물을 핑-하고 한번 들이마시며 내게 물었다. 털옷을 입지 않았던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아이였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로 자세를 낮추며 물었다. 아이의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있었다.


''''여기가 봄의 마을이야?''''


아이는 고개를 크게 두어번 끄덕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엄연한 봄의 마을. 책에서나 어디에서나 사라져있었지만 봄의 마을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왜 봄의 마을에 눈이 내리냐에 대한 질문을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내게 고개를 숙이라는 시늉을 했다.


''''곧 루시님이 깨어나거든.''''


루시. 그 말에 나는 베라에게서 본 금발의 모습을 한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예전의 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던, 그래. 봄의 마을의 금빛 햇살을 닮았던...


''''지금 봄의 마을에 눈이 내리는건 루시님을 걱정하는 눈마녀님의 마음 때문이야.''''


아이는 눈마녀는 지금 저주를 받았다고 말했다. 저주를 받기 전에 눈마녀는 루시를 위해 마을을 얼렸다고 했다. 눈마녀는 루시가 마을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고 했다. 마을을 사랑하는 루시의 모습을 사랑한 눈마녀는 자신이 저주에 걸린 것을 안 이상 모든 요정을 해칠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만약 루시가 살아있다면 자신이 사랑했던 마을에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을을 얼리고 기록을 지웠다고 한다. 그걸 말하는 아이의 입가에 잠깐 슬픈 웃음이 비추었다.


''''괜찮아.''''

''''루시님이 다시 깨어나시는 날, 우리도 다시 돌아가는거야.''''


아이는 콧물을 닦으며 씨익 웃었다. 그 천진한 모습은 수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댕-하는 종소리와 함께 아이는 하늘을 보더니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잠시나마 그 곳에서 머물었던 나는 아이의 조그마한 입술이 미소를 띄고있는 이유를 알았다.


''''헤어져야 할 시간인가보다.''''


아이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리고선 발길을 돌리더니 조금씩 그를 안개가 감쌌다. 아이는 멈추고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만약 루시님이 깨어나고, 우리 마을도 깨어나면 나를 꼭 기억해 줘. 형.''''


그리고 완전히 안개가 그를 감싸 안았을 때 그의 모습도 마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온전히 빈 눈의 벌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베라의 모습이 보였다.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움직이는 그 검은 눈동자가 내 눈 앞에 보이고서야 나는 안심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 아벨님. 어디가셨었어요. 갑자기 안개가 껴서...''''


베라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렸다. 나는 그 눈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누군가가 주는 편지인 마냥 조심스럽게 눈송이를 받았다. 나는 눈송이가 나의 살과 맞닿아 녹고있음이, 그리고 스며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따뜻해지고 있구나...하고 작게 읊조렸다. 차가웠던 겨울을 지나 곧 봄이 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겨울이 오고 봄이 오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봄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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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테일즈런너 소설 부문 처음 써보는 닉행시입니다.
슬픔에 잠겨버린 눈 내리는 마을 이야기. 왜 슬픔에 잠겨야했을까?를 생각했어요.
게임을 하다보면 잠깐씩 나타나는 눈 내리는 마을이잖아요? 그냥 곰곰히 생각해보았던 것 같아요.
짧은 단편이였지만 쓰면서 쓰면서 많이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도 소설 써봐야겠어요.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D 항상 좋은 하루 되세요.


**

ㅋㅋㅋㅋㅋㅋ앗 대박.. 부족한 작품 1등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소감쓰시던데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다음 소설 때는 더 멋진 작품을 제출하도록 노력할게요! : ]
소설 쓴다고 할 때 응원해주던 맥들 고마워요. 라뷰♡
아직은 봄이 오기 전, 쌀쌀한 날씨인데 모두 감기 걸리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알아봐주는 분들도 계셔서 정말 기뻤어요.
앗, 댓글 100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도 이어서 올려볼까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소설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하루 되세요.


fin.

댓글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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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1:40 (UTC+0)
    야..너미ㅣ쳤냐...소름끼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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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1:48 (UTC+0)
    ㄷㄷ저도 소름돋았음 ㅜㅜㅜ 문예창작과가야겟다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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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1:51 (UTC+0)
    와 진짜 bgm이랑도 잘어울리고 글도 딱 내스타일이야 나 지금 마음되게 아련한데 책임지실? 이건 베스트가야한다 나 글 긴거 잘 안읽는데 너무 재밌어서 끝까지봤어 취향저격 운영자랑 손잡고 소설내자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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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1:53 (UTC+0)
    헐겁나 잘썻어 ㄷ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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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07 (UTC+0)
    행시언니 너무 잘썼어 . 이건대박나야된다 홍보해줄게 .. 라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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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12 (UTC+0)
    캡ㅂ잘썻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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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13 (UTC+0)
    옹 잘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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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14 (UTC+0)
    행시언니 너무잘썼어.. ㅠㅠㅠ 이건대박나야된다 .. ♥ 여러분눈팅하지말고 꼼꼼히읽으시고 댓글한번씩달아주세요 !! 이거베스트안가면 후회되는작품 ㅠㅠㅠㅠ 댓글만쓰려했더니 너무집중되게 써서 다읽었어 너무좋다 이건 대박나야돼 쿨럭쿨럭!!!!!!!!!!♥ 이거대박안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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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14 (UTC+0)
    헐..언니 너무 잘 썻다..대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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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19 (UTC+0)
    ..대박 소설작가하셔야될꺼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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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21 (UTC+0)
    d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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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22 (UTC+0)
    일단은굉장히잘하셧어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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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24 (UTC+0)
    헐ㄹ... 잘보고 가요 글 너무 잘 쓰쎠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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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25 (UTC+0)
    잘하셨어요..그렇지만 단 한가지 아쉬운게 눈 내리는 마을 안에서의 신비스러운 이야기인데 뭐그래도 .. 소설에 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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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26 (UTC+0)
    와 너무잘쓰셧어요 ㅜㅜㅜㅜㅜ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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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6 12:27 (UTC+0)
    좋은글써주느라 수고한 닉행시에게 댓글좋아요 한번씩해줘요 .. 너무좋은글이잖아요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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