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즈런너

OFFICIALONLINERacing스마일게이트홀딩스

창작게시판

[창작아트] [소설] [종남X종녀X한카] 바우나비 아일랜드 Love Story [10]

  • 햇달
  • 2023.09.13 13:49 (UTC+0)
  • 조회수 2868

작품 내 등장인물들은 실제 유저들과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썰체로 썰푼거고, 


누가 런게에도 올려달라는데 마땅히 올릴 데가 없어서 여따 올림.










1편


늘 그렇듯 커플 종남과 저격 매칭을 하며 이벤트 맵을 뛰던 종녀는 

어느 날, 나비 레일로드 맵에서 적팀의 한카를 만나게 되는데..............


이번 판은 이겨야 한다며 결의를 다지는 종남을 보며 실수하면 안된단 생각을 한 종녀는 

열심히 달려보지만 한카와 루트가 겹치고 말았음


졸지에 한카의 머리를 밟게 되어 실수했다며 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아무런 말없이 옆으로 길을 비켜주며 머리를 치워주는 한카의 모습에

종녀는 저 앞에서 자기가 1등을 하겠다며

같은 팀에게 머리를 대고, 밀쳐가며 뛰쳐나가는 종남의 모습이

적팀인 자신을 배려해주는 한카와 무척이나 비교 되기 시작함



그리고 결과는 커플 종남의 1등 이었지만

같은 팀을 가차없이 밀쳐버린 종남덕에

상대팀에게 2~5등을 내주게 되고 장렬하게 패배

종남은 우리팀은 대체 뭐하냐며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종녀는 한숨을 쉬며 다시 매칭을 돌리기 시작했음

 


이번 맵은 바우 스트릿 맵

우연인지 운명인지.. 전판의 한카와 또다시 마주치게 된 종녀는 어쩐지 반갑다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해서 떨리는 건지

이번엔 진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 마주친 한카 때문인지..

 

자신도 모를 두근거림을 안고 게임을 시작하게 됨.

 

그리고..

어째서인지 자신에게 스윗하던 전판과 다르게

한카는 무척이나 공격적인 플레이로 커플 종남과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고..

결국 밀려버린 종남은 물을 튀겨가며 수영을 시작,

한카는 여유롭게 선두를 달려나갔음.

 

그리하여 결과는 한카 1등, 커플인 종남은 2등

한카팀이 1 4 5 7등을 하는 바람에 또다시 패배

 

결국 종남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또다시 욕설을 하기 시작했는데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카가 조용히 한마디 했음.


“님도 잘하진 못하시던데 아까부터 팀 탓 좀 그만 하시죠."

 

종남은 그 말에 더욱 화를 내기 시작했고

한카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게임 하러 사라짐.


종녀는 왠지 아까 전의 수영하던 종남의 모습과

여유롭게 맵을 종횡하던 한카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항상 뒤에서 아이템만 날리며 종남을 도와주던 자신과는 달리

거칠게 종남과 어깨를 부딪히던 한카의 뒷모습이 아른거렸음.


그리고.. 종남과 종녀는 럼블로 옮겨감.


도저히 화가 나서 달릴 수 없다며 상대팀을 어떻게든 족쳐야겠으니

럼블로 가야겠다는 말에 종녀는 내심 한카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종남을 따라 럼블로 향했음.


삐에로의 장난인지 또다시 한카와 매칭된 종녀는

도무지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기 바빴음..


그리고 자신의 종녀가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종남이

종녀에게 화를 내려는 순간

어디서 나타난건지 한카가 종남을 후려 갈겼음..

갑작스런 린치에 놀란 종남이 벌떡 일어나 화를 냈지만

한카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쪽으로 가버림.


이번맵은 한카들의 성지답게 한카의 팀이 당당하게 승리를 거머쥐었고

3연패를 달성한 종녀는 자신만 믿으라던 종남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음

그리고 종녀는 용기내어 한카에게 귓속말을 함

 

“아깐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내 이름 기억 못하는거 아냐?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카에게 답장이 옴.


“아니에요. 그냥 저도 보기 불편해서 그런건데요.”

 

쿨하고도 심플한 답장에 종녀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함..

그리고 종녀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다시 귓속말을 보냈음.


“이벤맵 자주 하시면 저랑 친추하실래요..? 제가 같이 게임할 사람이 없어서요..”


아까와는 다르게 한카는 한참이나 답장이 없었음

역시 갑자기 그러는건 부담되겠지 싶어 종녀가 시무룩해졌을 때

 

“아, 게임 시작해서 답장이 늦었네요. 좋아요.”


하는 답장이 돌아왔음.


종녀는 곧장 한카에게 친추를 보내고, 수락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종남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함.


“잘 생각해봤는데.. 우린 게임 스타일이 잘 안맞는거 같아..

미안해.. 커플 깰게...”

 

종남에게 뭐라고 답장이 오기도 전에 이혼을 눌러버린 종녀는

[ 한카님이 로그인 했습니다. ] 라는 메시지가 뜨기 무섭게

메신저 창을 열었음.

 

“한카님! 저랑 같이 이벤트 뛰실래요!?”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한카의 답장을 기다리며

쉴 새 없이 귓이 날아오는 종남을 차단하는 종녀의 손이 가벼웠음.

 




2편

 

처음 친추를 했던 날을 기점으로 둘은 함께 매칭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한카와 함께하는 날이 늘어날 수록 종녀는 즐거웠음.

 

종남 손에 이끌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종랜 길드에 들어가

하고 싶지도 않은 종랜 맵에서는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고

오로지 종남만을 서포트하기 위해

뒤에서 템만 날리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음.

 

한카의 뒤를 쫓다보니 언제나 리타당하던 맵은

어느 새 완주가 가능할 정도가 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등수가 비등비등 할 때도 있었음.

 

아무리 템을 잘 뽑아도 지 잘난 맛에 살아서

칭찬 한번 제대로 해주지 않던 종남과는 달리

완주를 하면 ‘이제 이 맵 잘하시네요.’ 하며 드물게 보여주던 미소와

등수가 한카와 가까우면 ‘많이 크셨네요.’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다정한 손길이 좋았고,

 

친추하자마자 말을 놓자며 종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반말을 강요하던 종남과는 다르게

게임 시작 전후로 소소하게 나누던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템포로 말을 놓게 된 자연스러움이 좋았음.

 

때문에 이벤트 코인을 모아 캡슐을 돌리고 있으면

‘누나 뭐해?’ 하며 다가와

‘나 이거 없는데 누나 남으면 나 주라.’ 하면서 아이템을 갈취해가던 종남보다


말도 없이 같달을 눌러 쫓아간 공원에서

‘뭐하고 있어?’ 하며 말을 걸면 한카의 목소리 대신 울리던 알림 메시지.

무심하게 들어와있는 아이템 팩의 모습에

이게 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면

그보다 더 무심한 목소리로 ‘필요 없으니까 너 가져.’ 하던 한카가

더 좋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음.

 

그러던 어느 날,

종녀가 자신을 쫓아온다는 걸 잘 아는 한카는 그런 종녀를 위해

친추한 이후로 항상 같달과 위치를 켜두었는데,

웬일인지 한카의 같달과 위치가 모두 꺼져있는 상태였음.

 

무슨 일 있나? 기분이 안좋은가?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아도 종녀에게는 한없이 친절했던 한카이기에

종녀는 의아함을 품고 한카의 팜으로 향했음.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둘이 처음 친추한 날짜를 입력한 종녀는

한카야! 하고 부르려는 순간 팜의 숫자가 2가 아닌 3인 것을 발견함.

 

'...뭐지 다른 사람이 있었네.'

 

종녀가 팜에 오기 시작한 후부터 한카의 팜 비밀번호는

종녀가 외우기 쉬운 숫자로 바뀌어져 있었고

때문에 종녀 이외에는 출입하는 사람도 거의 없던 터였음.

대화중인가, 기다려야겠다. 싶어 팜을 나가려는 순간


“대체 그 종녀 언제까지 데리고 다닐건데?”


하는 소리가 들렸음.


결국 종녀는 나가기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잠시 멈추고

쪼그려앉아 숨죽이며 둘의 대화를 지켜봤음.

 

“왜?”

“걔 종남 길드 출신이잖아.”

“길드 나왔잖아. 뭐가 문젠데.”

“그쪽에서 니가 종녀 뺏어갔다고 이갈고 있는거 몰라?”

“신경 안써.”

“넌 그게 문제야. 니가 신경 안쓴다고 될 일이야?”

“내 일이고 내가 신경 안쓴다는데 뭐.”


'아무리 봐도 내 이야기 맞는거 같지?'


종녀는 자기 때문에 한카가 곤란한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는

미안함에 얼굴이 빨개졌음.


함께하는게 좋아서 쫓아다닌 건 맞는데,

한카가 워낙 티를 내지 않아서 그동안은 마냥 다 괜찮은 줄 알았음.

 

심지어 이야기 하는 사람은

한카를 따라서 쫓아간 금뚝방에서 몇번 마주친

한카의 친한 지인 중 한명이었는데

 

단둘이 있을 때와는 다른

금뚝과 달밤 등의 한카 주력 맵에서 보여주는

한카의 또다른 매력에 종종 따라가게 되며 알게 된 사람이었고

안그래도 맵에 유입이 없어 곤란하던 차에 잘 왔다며

무척 반겨주던 사람 중 하나였기에

뒤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더 충격이었음.

 

결국 나갈 타이밍을 놓친 종녀가

어떡하지.. 싶은 찰나에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음.

 

“넌 걔 친구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다니는거야?”

“그런거 아냐.”

 

확실하게 선을 긋는 말에 종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음.

아무리 친근하게 다가가도 한카는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이정도로 가까이 붙어지낼정도면 연인은 못되더라도

한카의 친구정도는 된거 아닐까. 싶던 나날들이 싸그리 부정당하던 순간이었음.

 

“그럼 왜?”

“.... 불쌍해서.”

 

그 말에 결국 울컥한 순간


“...종녀?”

 

한카의 목소리가 들렸음.

그 목소리에 겨우 억눌렀던 감정들이 휘몰아치면서

종녀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을 하고 벌떡 일어나 팜을 나가버렸음.

 

그제서야 비번 바꾸는 걸 까먹었다는 걸 깨달은 한카는

자신과 대화하던 지인을 놔둔 채로 급하게 종녀를 쫓아가기 시작함.


메신저를 켜서 쉴 새 없이 귓과 메시지를 보내던 한카는

단 한마디의 답장도 없는 대화창을 보다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종녀의 팜 앞에 섰음.

 

‘울고 있으면 어쩌지.’

 

뒤죽박죽 엉망이 된 머릿 속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한카는 조심스럽게 종녀 팜의 비밀번호를 입력했음.


‘내 팜엔 어차피 너 밖에 안오니까!’ 하면서

자신의 팜과 같은 비밀번호를 설정하던 종녀가 떠올랐음.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종녀는 자신의 팜에서 홀로 울고 있었음.


입장렉에 멈칫한 종녀가 팜에 들어온 것이 한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입술을 깨물고 강퇴버튼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급하게 뛰어온 한카가 종녀의 손목을 붙잡았음.

 

“놔, 나가 빨리.”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에

한카는 어쩐지 가슴이 아팠음.

 

“종녀야.”

“나가, 어차피 친구 아니라며 왜 여기까지 쫓아와?”

 

잔뜩 화가난 목소리로 가시돋힌 말을 내뱉는 종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무척이나 괴로워보였음.


그제서야 한카는 종녀를 알게 된 이후로

종녀가 자신에게는 늘 웃는 얼굴만 보여줬었다는 것을 깨달았음.


항상 자기가 하자는 거면 뭐든지 순순히 따라왔던 종녀였기에

처음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몸짓이 참 크게도 다가왔음.

 

“종녀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무슨 이야기? 난 할 말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더해 여기서!”

“종녀야...”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도 않는 종녀의 목소리에

한카는 덥썩 종녀를 끌어 안았음.

 

“놔, 안놔? 신고할거야!”

 

악을 쓰듯이 품 안에서 반항하는 종녀의 몸짓에

한카는 참 작다는 생각을 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음.

 

한참을 한카의 품 속에서 바르작 대던 종녀는 어느 새 지쳤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작게 중얼거렸음.

 

“난... 그래도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한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밀어두고서라도

적어도 열심히 쫓아가면 바로 옆은 아니더라도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오로지 그 생각으로 버텨왔던 종녀였기에

방금 전 훔쳐들었던 대화는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음.


한카는 종녀의 말에 입술을 깨물더니 내뱉듯이 대답했음.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그럼 뭔데!! 불쌍하다며, 나 불쌍해서 데리고 다니던거라며! 이것도 내 오해니?”

 

한카의 몸에 얼굴을 묻고 울던 종녀가 번쩍 고개를 들고 소리쳤음.

눈물이 맺힌 눈동자를 마주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한카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종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음.

 

“미안. 내가 말주변이 부족해서..

근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

처음엔 불쌍해서 도와준거 맞아.

종남이 큰소리 쳐도 아무말 못하고 싫은데도 끌려다니는게 보였거든.

그래서 니가 친추하자고 했을 때 받아준거야.”

 

한카의 말에 종녀가 입을 열었음.

 

“...그래서? 지금도 네 눈에는 내가 그렇게 불쌍해?”


종녀의 물음에 한카는 작게 고개를 저었음.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맞지도 않은 금뚝방 쫓아다니는 것도 불쌍했고,

예쁜말 한마디 해주지도 않은데 좋다고 웃는 것도 불쌍했어.

근데..”

“근데?”

“.... 내가 불쌍해졌어.”

“뭐?”


의미 모를 말에 종녀의 얼굴이 벙찜.

 

“넌 잘해주는 종남이 생기면 언제든지 날 떠나가 버릴테니까.”

“.....”

“넌 내게 있어 금뚝인들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정을 주게 된 사람인데 넌 아니잖아.”

“......”

“팜에서 내가 하려던 말은 네가 아니라 내가 불쌍하단 소리였어.”

“.......한카야.”

“미안.”


어느 새 한카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있었음.

덤덤히 제 생각을 말하던 한카의 목소리는 먹먹히 젖어있었음.

 

애써 아닌 척 꾸역꾸역 참아내는 한카의 얼굴은

아닌 척 하지만 양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음.

때아니게 고백아닌 고백을 받은 종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음.

 

“...좋아해.”

“...어?”

“좋아해 한카야.”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한 종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카에게 제 마음을 고백했음.

갑작스런 고백에 이번엔 되려 한카가 주춤거렸음.


“...어째서?”

“뭐가?”

“왜 니가 나같은 걸 좋아해...”

“그야.”

 

한카를 바라보던 종녀가 말을 멈추더니 누구보다 밝게 웃었음.

 

“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한카니까!”

 

 

 

3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그 뒤로는 탄탄대로였음.

여기저기 수많은 종남들에게 플러팅을 받아본 종녀는

그동안 거쳐갔던 허세에 가득한 종남들과는 다르게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에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쑥스러워 하기도 하는

한카의 반응이 신선하다못해 즐겁기까지 했음.


둘은 서로의 팜에서 밤을 새며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기도 했고,

때로는 모텔팜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기도 했음.

 

항상 자기를 눕히려고 애쓰던 종남들과는 다르게

자기의 손길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부끄러워 하는 한카의 모습은 어쩐지 묘한 정복욕 까지 일으켰음.


종녀는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행복했음.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즐거운 나날들이 이어졌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이었을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난 후 부터는 더더욱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자기와 꼭 붙어 다니던 한카였는데,

어느 날인가 부터 함께하던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함.

 

이전 같으면 대화를 걸자마자 바로바로 답장이 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수히 많은 게임 시작과 게임 종료 메시지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 한카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고

같이 게임이라도 할라 치면 바쁘다고 피하기 일쑤였음.

 

‘그래 그동안 너무 붙어 다녔지...’

 

종녀는 한카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음.

자신의 세계에는 오로지 한카 뿐이지만

한카는 아니란걸 잘 알기 때문이었음.

 

본래 한카만의 세계에 있던 한카를

자기가 억지로 자신의 세계로 끌고 온거나 다름이 없었으니

종녀는 그정도는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했음.

 

어쩐지 멀어진 기분이 들었지만

적어도 밤만은 항상 자신과 함께 했기 때문에

서운하더라도 종녀는 어찌어찌 견딜만 했음.

 

한카가 오늘은 혼자 자야겠다며 게임 시작 메시지를 띄우기 전까지는.

 

뭐라고 답장을 하기도 전에 먼저 출력된 게임시작 메시지에

종녀는 분노보다도 황당이 앞섰음.


언제나 한카 본인보다도 종녀 자신을 우선했던 한카였기에

더더욱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음.


‘결국 너도 다른 종남들과 똑같은 거니?’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종녀를 잠식해갔음.


일부러 게임 종료 메시지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타이밍에 맞추어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게임 종료 메시지가 뜨기 무섭게 떠오르는 게임 시작 메시지.


순식간에 둘의 메신저창은 게임 시작 게임 종료가 반복되어갔음.

처참할정도로 망가져버린 기분을 가지고 종녀는 애써 분노를 삭히며

메신저 창을 끄고 홀로 밤을 보냈음.

 

 

.

.

.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온기 없이 싸늘한 채로 식어버린 비어버린 옆자리에

종녀는 급히 메신저를 띄워 보지만

새벽 5시가 넘어서야 멈춘 게임 메시지에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것을 느꼈음.


일어나자마자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 종녀는 팜을 벗어나

한카의 팜으로 향했지만 그곳 또한 비어있었음.

 

“대체 어디서 자는거야?”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대기실을 열어보는 순간 종녀가 마주친 것은

한카를 노린 악의가 가득한 저격방제였음.



 

 

4편

 


갑작스런 사태에 종녀는 혼란스러웠음.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이런 방이 없었는데....'


두통에 구역감이 올라와 급히 자신의 팜으로 돌아온 종녀는

늘 꺼두었던 외치기를 확인했음.

 

그리고 동시에 눈에 선명히 박히는

한카의 이름과 함께 런게 확인하라는 악의적인 도배.

종녀는 덜덜 손을 떨며 런게를 열었음.

 

게시판에는 이미 핫플레이스라도 되는 양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글이 있었는데

자극적인 제목이 단연 눈에 띌 수 밖에 없었고

동시에 당연히 그게 한카를 저격한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음.


징그러운 빨간 병아리 계정으로 쓰여진 글의 요지는

한카가 길드원을 빼돌렸다는 지극히도 어이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임새 있게 쓰여진 조작글이었음.

 

그리고, 마지막 단락에는 믿기지 않는, 아니 믿을 수 없는

1ㄷ1 에서 진 한카가 결국 동화나라를 떠나기로 했지만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잠수타버렸다는 말도 안되는 글이 기재되어 있었음.

 

물론 빼돌렸다는 길드원이 종녀 자신이었기에 이는 더더욱 크게 다가왔음.


불행 중 다행인지 자신의 닉네임과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 되어

친한 지인들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도록 되어있었지만

아마 이 좁은 곳에서는 금새 퍼질 것이 분명했음.

 

'요 근래 왜이리 바쁜가 했더니...'

 

그동안 자신 때문에 종남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미안함과 한카에게 서운했던 날들이 사무치게 미워졌음.

 

또한 동시에 자신에게 아무런 언질 없이 사라져버린 한카에 대한 원망도 생겨났음.


복잡하고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더듬더듬 런게를 빠져나온 종녀는

그 사이 한카의 메신저에 떠있던 자리비움 표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카의 팜으로 향했지만

 

팜의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다는 메시지만 황망하게 떠올랐음.

 

“.... 어라?”


이거 맞는데, 내가 틀릴리가 없는데..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종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음.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 자물쇠는 풀릴 줄을 몰랐음.

 

가빠오는 호흡을 뒤로하고 메시지 창을 열어 한카야. 하고 메시지를 보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화거부 메시지 뿐이었음.

 

이게 지금 무슨 의미일까..

 

황망한 얼굴을 하고 메시지 창만 노려보던 찰나에,

난생 처음 보는 이름에게서 친구추가 메시지가 떠올랐음.

혹시 한카일까? 싶어서 친구수락을 하고, 급히 메시지 창을 열어 한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누나, 우리 오랜만이지?”


익숙한 말투의 메시지가 돌아왔음.

 


5편

 


빨간색 병아리에 기본초원 룩

종녀는 눈 앞이 아찔해짐과 동시에 직감적으로 느꼈음

아 종남 이구나.

 

종녀는 다른 의미로 떨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하며 겨우 메시지를 보냈음.

 

“무슨일이야?”

 

최대한 태연해 보이기 위해 노력한 메시지였지만

그게 되려 상대를 자극한 듯이 종남은 무수히 많은 ㅋ 를 날리며

종녀를 도발하기 시작했음.

 

“런게 아직 안봤어? 그럴 리가 없는데?”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말투에 종녀는 분노로 손이 부들부들 떨렸음.

하지만 여기서 화내면 지는 거라는 걸 알기에 애써 꾸역꾸역 분노를 삼켰음.

 

“목적이 뭔데?”

“거봐, 봤을 줄 알았다니까.”

“길게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본론만 말해.”

“역시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다니까~ 그럼 확실하게 말할게.”

“......”

“다시 돌아와라 누나.”

“....뭐?”

“누난 뒷템 던질 때가 제일 예뻐.”

“야.”

“누나가 어울리는 곳은 금뚝 같이 어두운 곳이 아니야, 동화나라의 본질을 꿰뚫는 종랜이지. 어때? 나와 다시 함께하는건.”

 

결국 네 목적은 그거였구나.


종녀는 입술을 깨물었음.


오로지 나 때문에 한카가...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음.

하지만 종녀는 그렇기에 자기를 위해 희생한 한카를 위해서라도

절대 저 손을 잡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음.

 

아니, 어쩌면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다못해.......

 

“싫어.”

“뭐?”

“내가 네 곁으로 돌아가면 무슨 이득이 있는데?”

“이득? 하, 누나도 이득챙기고 그런.. 다른 년들이랑 똑같은 사람이었어?”


발작버튼이 눌린 듯한 종남의 메시지에 종녀는 천천히 답장을 했음.

 

“네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거고, 아무리 내 닉네임과 사진을 가렸어도 눈치 빠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파헤치는 건 시간도 아니야. 그런데 내가 다시 너에게 돌아가? 그럼 지금 몸담은 한카 길드에서도 욕을 먹게되는데.. 나는 양쪽에게 욕만 먹고 손해만 보는거잖아.”

 

최대한 논리적이게 보이도록 답지않게 긴 메시지를 보낸 종녀는

종남의 대답이 돌아오길 기다렸음.

종녀의 생각대로 종남은 종녀의 메시지를 보고 한참을 고민하는 듯 싶었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혹시 다른 애들이랑 욕하고 있는거 아냐? 싶을 때 즈음

답장이 돌아왔음.

 

“지금이라도 돌아와준다면, 올렸던 저격글은 지워줄게.”

 

이 상황에서 내가 널 위해 할 수 있는게 있다면

고작 이런거 뿐이겠지.


종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굳게 닫힌 한카 팜의 문을 바라봤음.

 

고마웠어.

 

듣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종녀는 마치 한카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인사했음.

마치 거기 있는거 안다는 듯이.


그리고,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종남에게 한자한자 꾹꾹 감정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음.

 

"그래."


이걸로 된거야.


종녀의 답장을 받자마자 사라져버린 기본 초원의 모습에

종녀는 맥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음.

그리고 무릎을 세워 끌어안아 고개를 파묻고는 애써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삼켰음.

 



난 그동안 네게 받기만 했으니,

이번에야 말로 내가 네게 돌려줄게.

이게,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애정이니까.

 




 

6편

 



“뭐해, 일어나.”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고 홀로 울음을 삼키던 종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음.

햇빛에 가려 얼핏 보인 얼굴이 순간 한카인 줄 알았지만 또렷한 시야에 들어찬 건 종남이었음.

대화가 끝난 이후 아직 차단이 풀리지 않아 자신의 인맥을 데리고 온 듯 했음.

 

“화해도 했는데, 이제 차단 좀 풀지?”

 

친구의 입을 빌려 말을 전달하는 꼴이 퍽 우스워, 종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그리고 종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음.

 

“글부터 지워.”

“차단 먼저 풀면.”

“글 내리면 풀어줄게.”

“차단 먼저 풀면 지워준다니까.”

“야!”

“막말로, 내가 글 내리자마자 누나가 튀어버릴 수도 있는거 아냐?”

 

종남의 말에 니가 그럴 수도 있는거 아니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여기서 일을 더 키울 순 없다는 생각에 종녀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종남의 차단을 풀었음.

 

“이제 글 지워.”

“싫은데.”

“뭐?”

“내가 왜?”

“약속이랑 틀리잖아!!!”

“누난 그 말을 믿었어?”

 

그래 쟤 말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종녀는 인상을 쓰고는 더 꼴보기도 싫단 표정과 함께 다시 차단 버튼에 손을 올렸음.

 

“잠깐, 잠깐. 들어봐, 아예 안지우겠다는게 아니야.”

“....하아?”

“누나가 완전히 내게 돌아왔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그때 지워줄게.”

“미친새끼.”

“싫으면 말고, 어차피 난 손해볼 게 없거든.”

 

의기양양한 종남의 말에 종녀는 입술을 깨물었음.

 

”넌 정말 나쁜 새끼야.”

”별말씀을.” 

 

씹어뱉듯이 욕을 내뱉은 종녀의 얼굴에는 경멸이 가득했지만

종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능숙하게 종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음.

 

“어서 길탈하고 다시 우리길드로 와. 아, 이혼도 하고. 다시 만났으니 우리 결혼식도 다시 올려야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종남의 얼굴이 무척이나 역겨워 보였음.

 

'길드야 옮기면 그만인데, 이혼은 맞아 죽어도 하기 싫어...

어떻게 해야할까 머리좀 써봐 종녀야 제발.

이 상황에서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종남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종녀는 한카의 얼굴을 떠올렸음.

그리고 한카의 얼굴을 떠올린 순간 놀랍게도 머릿 속이 차분하게 진정 되어가는 것을 느꼈음.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지켜내야 해.’


종녀의 표정이 결의에 가득찼음.


“길드는 옮기는데, 이혼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하?”

“지금 이혼하려면 돈 내야하잖아. 어차피 다신 동화나라에 발도 붙이지 않기로 했다며, 이혼 할 수 있는 날짜 되면... 그때 할게.”

 

종녀의 말에 종남은 뚫어지게 종녀를 바라봤음.

 

‘제발 제발 이걸로 넘어가라.’

 

어쩐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음.


하지만 종남은 그저 종녀를 다시 되찾았다는 기쁨 때문인지

그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을 것 같았음.

 

“그래, 그렇게 해.”

 

종남의 대답에 종녀는 희미하게 웃었음.

 

“...고마워.”

“아, 뭘~ 남자가 그정돈 이해해 줘야지.”

 

이혼시킬 돈도 주지 못하는 주제에.


종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음.

아마 한카였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이혼하라며 이별통보를 사다줬겠지..

그런 세세한 것에도 종남과 한카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었음.

 

그리고 마침내 종녀는 종남의 길드에 다시 돌아갔음.

그동안 감사했다며, 또 민폐 끼쳐 많이 죄송하다는 인사를 한카 길드 게시판에 남기고

종녀는 길드탈퇴 버튼에 손을 올렸음.


종남이 쳐다보는 앞에서 한카 길드를 탈퇴한 종녀는

제 스스로 박차고 나왔던 종남의 길드에 다시 신청을 넣는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한심하다고 느껴졌음.

특히나 첫 만남에서 종남에게 지지 않고 어깨를 부딪혔던 한카가 떠오르며

자신이 더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졌음.

 

‘조금만 참자, 한카를 위해서.’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길드가입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자신을 공격하듯이 쏟아지는 길드메시지를 보며 종녀는 동요하지 않으려 애썼음.

 

“왔다, 왔어.”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다시 돌아왔대?”

“지 때문에 종남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진 아나몰라~”

“종남이 착해서 망정이지 나같으면 둘다 매장시켰어~”

 

쉴 새 없이 저격하는 메시지들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종녀는 의연한 척 최대한 뻔뻔하게 행동하기로 했음.

 

‘뻔뻔해지자. 이정도는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잖아.

한카는 나 때문에 이 보다 더 심한 일 들도 겪었는걸.’

 

이정도는 한카를 힘들게했던 자신이 받아야 할 응당한 벌이라며

종녀는 스스로를 세뇌시켰음.

 

‘그래 이건 원래부터 한카가 아닌, 모두 내가 감내 했어야 할 몫들이야.’


그제서야 모든 태엽이 올바르게 맞춰 돌아가는 거라며

종녀는 쉴 새 없이 자신을 채찍질 했음.

 

그리고 곁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종남은

깊은 생각에 빠진 종녀를 바라보며 완벽한 착각에 빠져있었음.

마치 종녀가 길드원들의 채팅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는 걸로 보였던지,

종남은 호탕하게 웃으며 길드원들을 제지했음.

 

“그만그만~

다들 나를 아껴서 하는 말인건 알지만

그래도 내가 많이 아끼는 사람이니까~

어찌되었던 다시 돌아왔다는게 중요한거 아니겠어?

다시 한번 잘들 지내보자고.”


종남의 말에 길드원들은 역시 종남이라며

저런 남친을 둔 것에 감사해야하는거라며 종녀에게 한마디씩 얹었음.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웃는 낯으로 네네... 대충 응답하던 종녀는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글을 지우고 도망쳐야겠다고 다짐했음.

 


.

.

.

 

그리고 그동안 한카의 보호속에 있어서 몰랐던 것 뿐이지

말들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생각보다도 더욱 깊게 퍼져나가고 있었던 듯 함.


한동안 한카 길드를 달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다시 종남 길드를 달고난 후부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크게 들려왔음.

 

한카 길드의 적대는 두말할 것도 없었고,

동화나라에 일절 관심 없이 지하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던 서남길드와

아슬아슬 스릴을 추구하던 하코길드

이벤트에서 간간히 보이던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


종녀는 그들을 몰랐지만 그들은 종녀를 아주 잘 안다는 듯이

종녀가 나타나면 자기들끼리 속삭이기 바빴음.


모르는 척, 못들은 척, 안들리는 척.


척척척 오로지 척만 해대다보니

양심이 없어서 그런지 뻔뻔하기까지 하다는 소리마저 나오기 시작했음.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종녀의 마음은 점차 곪아가기 시작했음.

 

그날도 역시, 종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랜길에 붙잡혀 온 종녀는

가만히 서서 의미 없이 손에 집히는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던져대고 있었음.

 

“아, 지루하다.”

 

땡볕에 서서 몇시간이나 반복적인 노동을 하다보니 삭신이 쑤셨지만

종남은 지치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뜀박질을 시작했음.

 

“....한카 보고싶다.”

 

가만히 아이템을 보고 있자니

단 둘이 맵에 서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둘 주변에 독버섯과 두더지를 잔뜩 뿌려두고

오래도록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음.

 

그 때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행복했는데....


하릴없이 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보기만 하고 있어도

즐거울 때가 있었는데.....


종녀는 상대에게 아이템 던지는 것을 멈추고는

자신이 서있는 주위로 독버섯과 두더지를 심기 시작했음.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기에

한카와 함께 달리다가 지칠 때면 홀로 서서 바닥에 아이템이나 뿌리곤 했는데

그러면 어느 샌가 다가온 한카가 옆에 서서 같이 함께해주곤 했었음.

 

괜히 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아 오래간만에 미소를 지으며 한참 독버섯을 심던 순간

패배 표시가 뜨고 황당하다는 듯한 종남의 목소리가 들려왔음.


“누나 대체 거기서 뭐해?”

“어...?”

“아이템 안뽑고 뭐하냐고!”

“아....”


자신이 공격을 멈춘 사이에 상대에게 집중 사격을 당한 종남은 결국 지고 만듯 했음.

  

“아니 여기서 버섯 농사지어? 이게 대체 다 뭐야?”


주변을 쳐다보며 경악한 듯이 소리치는 종남의 말에 종녀는 어쩐지 침울해졌음.

 

‘한카는 웃기다고 해줬는데...’

 

한카의 완주를 기다리며 한참 버섯을 심던 종녀가

혼자 뭐하고 있냐는 한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을 한가득 에워싼 독버섯에 어쩔줄 몰라하며 울상을 짓고 있으면

한카는 늘 그게 뭐냐며 웃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옆으로 넘어와

지나갈 수 있도록 독버섯을 치워주고는 했음.

 

지나간 추억에 미련을 가지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비교되는 둘의 모습은

어쩐지 종녀가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었음.

 

결국 홀로 대충 정리해서 버섯밭을 빠져나온 종녀는 잔뜩 짜증난 목소리로 소리쳤음.

 

“심심한걸 어떡해! 넌 달리기라도 하지 난 몇시간 동안이나 가만히 서서 덥다고!”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치는 모습이

종남은 어쩐지 자신에게 부리는 애교처럼 보여 작게 웃었음.

 

“아 그랬어? 미안미안 간만에 누나랑 뛰니까 재밌어서~ 그럼 팜에서 쉴까?”

“그러던가!”

 

종남의 말에 새침한 목소리로 소리친 종녀는 제 팜으로 가버렸음.

뒤에서 누나! 같이가!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머릿 속이 한카로 가득찬 종녀에게는 들릴리 만무했음.



7편

 

 

굳굳이 자고가겠다는 종남에게 

피곤하니 혼자 쉬고싶다는 핑계로 홀로 팜에 들어온 종녀는 혼자 사색에 빠졌음.


자신의 팜이었지만 곳곳에서 남아있는 한카의 흔적들은

종녀의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음.

 

내가 너무 약해서

소중한 널 지키지 못했기에.

널 잃은 건 모두 다 내 잘못인걸.

 

금방이라도 한카가 팜의 문을 열고 혼자 뭐하고 있어. 하며 모습을 드러낼 것 같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음.

싸늘하기만한 팜은 보기만해도 가슴이 시렸음.

 

심지어 한카의 팜은 종남길드로 돌아갔던 날 이후로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는데

혹시 몰래 돌아온건 아닐까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한카를 기다리며 자신을 원망하는 한카길드원들을 마주칠까 두려웠고

여전히 입력되지 않는 비밀번호를 마주해야 될것이 무서웠음.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로 견디기 힘든건

혹여라도 한카가 돌아와 마주치게 됐을 때

지친 한카의 입에서 이제 그만하자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정말 우리사이가 이렇게 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날이 올까봐.

종녀는 그게 참 죽는 것보다 아프단 생각을 했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괴로운 것은


“이런 와중에도 난 내가 무서운 것만 생각하고 내 안위만 살피는 나쁜 년이라는 거야.”

 

끝까지 홀로 모든 것을 견뎌냈던 한카와 달리

자신이 마주해야 할 모든 것들이 두려워 피하기만하는

자신이 가장 원망스러웠음.

 

갈 곳 잃은 원망이 결국 스스로를 겨누게 되었을 때,

 

“야!!!! 너 지금 뭐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음.

갑작스런 소리에 화들짝 놀란 종녀가 번뜩 고개를 들자

한카길드의 길드원 한명이 눈에 들어왔음.

일전에 한카의 팜에서 한카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던 한카의 지인이었음.

 

‘비번 걸어놨을텐데....’

 

의아함도 잠시,

고요하던 팜에 짜악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종녀의 뺨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지며 종녀는 상념에서 깨어났음.

 

“너 미쳤어!!?”

 

그리고 언제 다가온건지 자신에게 버럭 소리치는 한카 지인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잔뜩 화난 얼굴을 한 한카 지인이 종녀를 보며 소리쳤음.

 

“죽고싶어서 환장했냐!?”

 

그제서야 종녀는 자기가 바다 한복판으로 향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음.

 

“아...”

“아는 무슨, 진짜 죽으려고 작정했어?”

 

그랬구나, 내가 정말 죽고 싶었던 거구나.

단순히 한카가 사라져서 죽을만큼 아픈게 아니라,

한카가 없으니 정말 죽고 싶은 거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종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카 지인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종녀의 팔을 잡았음.

 

“일단 나와. 할 얘기 있으니까.”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혹여라도 놓칠 새라 손을 꼭 붙들고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 모습은

자신을 챙겨주던 한카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어서

종녀는 다시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음.

 

한카 지인의 손에 이끌려 근처 모래사장으로 나온 종녀는

삐딱하게 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에 절로 몸이 움츠러 들었음.

 

하지만


‘결국 이것도 내가 감당 해야 할 몫이야....’

 

아직 얼얼한 뺨을 매만져 보지도 못하고 연신 바닥만 바라보던 종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한카 지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음.

 

한참 침묵을 지키던 한카 지인은 그제서야 종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턱 짓으로 종녀의 턱을 가르킴.

 

“그건 미안하게 됐다.”

“....네?”

“때리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 상태보니까 위험한 거 같길래.”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자칫했으면 정말 죽 을 뻔 했던 상황은 맞았기에 종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음.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음.

 

“저.. 근데 제 팜 비번은 어떻게 아신거에요..?”

“한카가 전에 둘이 비번 맞췄다고 알려주던데. 한카 팜 비번은 전에 들었고.”

“아.....”

 

타인에게 듣는 한카의 이름은 퍽 오랜만이라 종녀는 어쩐지 그게 참 반가웠음.


홀로 잠드는 시간들이 늘어날 수록

어쩌면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이 꿈은 아닐까.

어쩌면 한카는 내 상상속의 인물이 아닐까.


한카와의 소중한 추억들마저

괴로움에 한낱 망상으로 치부될 뻔 했었기에

그걸 현실이라고 말해주는 한카 지인의 말은 종녀에게 있어 하나의 동앗줄 같았음.

 

‘한카는 어때요..?’

‘한카랑 연락은 되시나요?’

‘한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종녀는 묻고 싶은게 많았지만 자신을 꿰뚫어보는 시선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 채 우물거렸음.

대신 차분히 심호흡을 하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질문을 꺼냈음.

 

“그.. 할 말이 있으시다고....”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지만 명확한 질문에 한카 지인은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음.

 

“지금 제일 묻고싶은 건 그게 아닐텐데.”

“.....”

“뭐 내 알빠는 아니긴 하고, 하나만 물어보자.”

“네..?”

“대체 그 길드에는 무슨 생각으로 다시 들어간거야?”

“...아”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종녀는 말문이 막혔음.


그동안 마주쳤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기만 하지 

그 누구도 사실관계를 따져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그 첫 질문을 다른 사람도 아닌 한카의 지인이 해주다니...


할 얘기가 있다기에 이러려고 한카에게 접근했냐며

화라도 낼 줄 알았건만

자신이 그동안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동시에

이야기 해준다 한들 내 얘기를 믿어주기는 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 마저도.

 

이미 마음을 좀먹기 시작한 불신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는데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종녀의 모습에

한카의 지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음.

 

“너한테 뭐라고 하려는게 아니야. 그저...”

“...?”

“적어도 한카가 믿었던 애니까. 나도 한번 믿어보려고.”

 

종녀는 그 말에 울컥 울음이 터졌음.


와앙 소리내어 우는 목소리에 한카의 지인은 어쩔 줄 몰라하더니 이내

종녀의 등을 토닥였음.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종녀가 얼마나 홀로 마음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음.

그렇게 한카의 지인은 종녀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줬음.

 

한참을 울고 났더니 머릿 속이 개운해 진 종녀는 자리를 옮겨

아직 울음이 섞여 먹먹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음.


남에게는 처음 하는 이야기에 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막막했지만

한카의 지인은 중간에 말을 끊거나, 토를 달거나 하는 일 없이

하나부터 열끝까지 빠짐없이 들어주었음.

 

감정이 격해져 울음이 나오면 진정이 될 때까지 잠시 쉬기도 하고,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일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엉망으로 쏟아져나와도

한카의 지인은 불만 없이 한참을 함께 있었음.

 

“...래서 다시 들어가게 된거에요...”

 

종남과 자신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


한카와 종남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종남의 목적은 자신이었기에

글을 내려주는 조건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을 들여 풀어낸 종녀는 어쩐지 조금 후련해 진 기분이 들었음.


이 이야기를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한카의 지인에게 달렸지만

적어도 당사자들 외의 단 한사람이라도 들어주었으면 했었기에

종녀는 그것 만으로도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었음.

 

한참동안 종녀의 말을 들어주던 한카의 지인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종녀의 이야기가 끝이났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음.

종녀는 그런 한카의 지인을 바라보며 그저 차분히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음.

 

“... 한카가”

“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입을 연 한카의 지인은 한카의 이름이 들리기가 무섭게

반짝 생기가 돌아오는 눈빛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음.

 

‘이래나 저래나...’


서로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어쩜 이런 면들까지 똑같은지.

에휴, 뱉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한카의 지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이야기 하지말라고 신신당부 했지만, 적어도 넌 당사자니까 알아야 할 것 같다.”

“....네?”

“나중에 한카가 물어봐도 내가 말했단 소리 하지마.”

“.....그게 무슨...”

 

절대 한카에게 이야기 하지말라며 몇번이나 신신당부 한 한카의 지인은

절대 말하지 않을거라며 입술에 지익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는 종녀를 보며

피식 웃었음.

 

“걔 그런 저격글 ... 너 대신 해서 올라간거야.”

“.......네?”

“처음부터 저격글 대상은 너였다고. 한카가 아니라.”

 

그리고 이어진 말들은 종녀가 듣기에 제법 충격적인 내용들이었음.

 

“우리가 그쪽 일 하나도 모르는 줄 알았어?

다들 동화나라에서 생활한 짬밥이 몇년인데.

그쪽에 우리랑 친한 애 한명 있거든.

아, 그렇다고 스파이라고 오해하지는 마.

그냥 평소 게임 스타일이 안맞아서 같이 게임 안하는거니까

아무튼 한카도.. 네가 안좋게 나온 길드니 평소에도 신경은 쓰고 있었는데,

그 쪽에서 네 저격글 준비한단 소리에 바로 찾아가서는

느그 길마랑 싸우고 오더라.

그리고 네 저격글 대신 자기 저격글 올리기로 한거야.

그쪽에서도 너를 노리고 벌이는 일인데

아무래도 네 저격글 보다는 한카 저격글이 낫다고 판단했겠지.”

“... 말도 안돼. 어째서, 한카가 대체 왜, 저때문에..”


처음듣는 사실에 경악에 찬 얼굴을 한 종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음.


“그야...”

“.......”

“네가 그만큼 좋은가보지.”

 

 

한카 지인의 말에 종녀는 머리를 한 대 맞는 듯이 멍해졌음.


한카의 보호 아래에서 여태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단 사실을 깨닫자마자

미칠 듯한 그리움과 후회 그리고 미안함이 밀려왔음.

 

겨우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는 걸 보고 한카의 지인은

울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는데. 하며 종녀의 머리를 쓰다듬었음.

 

“당연히 우리 길드에서는 그게 무슨소리냐고

니가 왜 그렇게 까지 해야하냐고 말렸는데... 워낙 강경해야지.

같이 지내봐서 알잖아. 걔 한번 마음 먹은건 해야되는거.”

“....네...”

 

‘알아요, 아주 잘.’

 

종녀는 차마 뒷 말은 하지 못한 채 눈물만 뚝뚝 흘렸음.

 

“아무튼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도 어떻게든 방법 찾는 중이니까.

처음에는 너를 원망했었는데 한카가 그러더라

여기에 네 잘못은 없으니까 네 탓 하지 말라고..”

“흑....”

“오늘 온 것도... 원래는 다시 그 길드로 돌아갈거면 왜 나와서 이 사단을 냈는지

따지려고 온 거 였는데, 너로써는 최선이라고 생각한 결과라니까

한카 말대로 믿어보기로 했다. 너도 나름 마음 고생 심하게 한 거 같으니까.”

 

종녀는 한카 지인의 말에 울음 섞여 불분명한 발음으로

감사합니다.. 하며 감사를 표했음.


아까처럼 종녀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준 한카의 지인은

종녀의 울음이 어느정도 멈춰들자 이제 가봐야겠다며 팜의 출구로 향했음.


“저기...”

 

종녀는 '간다.' 하고 인사하며 팜의 나가기 버튼을 누르던 한카의 지인을 불러세웠음.


“?”

“혹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던 종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한참 동안이나 말을 골랐음.


그리고 마침내

 

“... 한카가... 제 생각은 하던가요?”

 

고심 끝에 수많은 질문 중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내자

팜을 나서려던 한카 지인이 멈칫 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픽 웃었음.

 


“어,



아주 많이.”

 


 

8화

 



한카의 지인이 돌아간 후,

홀로 남겨진 종녀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음.

 

처음 듣는 이야기들은 지끈지끈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지만


혼란스러운 진실들 속에서 단 하나,


'한카가 제 생각은 하던가요?'

'어, 아주 많이.'

 

마지막 짧게 나누었던 대화만은 가 슴 속 깊게 박혀왔음.


"...이대로.. 울고만 있을 순 없어." 

 

오로지 종녀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스스로를 희생 시킨 것이 종녀에 대한 한카의 사랑이라면,

적어도 그 사랑 만큼은 응당 보답해야한다고 생각했음.

 

그리고 마침내,

굳게 결심한 종녀는 홀로 밤을 지새우며 어서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렸음.

 

 


 

.

.

.

 

 

한편 종녀가 마음을 다잡을 때, 동화나라를 떠나있던 한카는

홀로 두고온 종녀가 신경쓰여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

 

다만,

혹시라도 자신이 종녀에게 더 큰 피해가 될까봐

스스로의 감정을 애써 죽이고는 자신의 오랜 지인 단 한 명만을 제외한 채

동화나라의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있었음.

 

[ 잠? ]

[ 자냐고 ]

[ 안자는거 안다. ] 

 

종녀의 팜을 나서자마자 한카에게 연락을 취한 한카의 지인은

한카가 자신의 연락에 대답이 없자 답장을 재촉했음.

 

빛을 잃은 세계.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빛을 잃은 지금

한카는 모든 색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음.

모든 것이 귀찮아 무기력 했고, 그 어떤 걸 봐도 재미가 없었음.


지루하고, 지겨운 하루가 반복되었고

그래서 지인의 연락 또한 그다지 달갑지 않았음.

 

[ 자면 후회할걸. ] 

[ 왜. ]

 

쉬지않고 울려대는 알림 소리에 짜증섞인 답장을 보내자

즉시, [ 잠깐 얘기 가능? ] 하는 메시지가 돌아옴.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귀찮아진 지금,

한카는 그 메시지 마저 무시해버리고자 했지만

이어지는 메시지는 차마 더이상 외면 할 수 없게 만들었음. 


[ 나 오늘 종녀랑 이야기하고 옴. ] 

[ 미친XX 니가 종녀를 왜만나. ] 

[ 반응 봐; ]

[ 만나서 뭐했는데 XX 설마 때린건 아니지? ]

 

메시지만 봐도 안절부절 조급한 것이 느껴졌음.


그도 그럴 것이 한카가 자신의 계획을 말했을 때,

누구보다도 크게 화를 내고 누구보다도 뜯어 말렸던 사람이었기 때문임.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죽 여 버리겠다는 걸, 

한카가 그딴 짓 하기만 해보라며 크게 화를 내 무마시켰던 기억이 있었음.


한카의 지인은 뺨을 때리긴 때렸다고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조금 고민 되었음.

그 때 말만 했을 뿐인데도 엄청나게 화를 했던 한카였기에,

사실대로 말했다간 자기가 맞아 죽 을 것만 같았음.


[ 때리긴 때렸는데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그것보다 ]

 

하지만 나중에 들키면 더 험한 꼴을 당할 것민 같았음.


[ XXXX! XX! 미쳤냐 진짜? ]

 

채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날아드는 욕설 섞인 메시지에

한카의 지인은 그냥 이대로 잠수타버릴까 싶었지만

그래도 한카 또한 현재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야하는지 알아야 했음.

 

지금까지는 한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굳이 종녀의 일을 끄집어내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니었음.

 

가장 깊게 얽힌 당사자 중 한명이니 만큼

한카 또한 현재까지 벌어진 일들에 대해 충분히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음.

 


[ 종녀 다시 종남 길드 들어갔다. ]

[ 뭐? ]

 

종녀가 맞았다는 사실에 화를 내다가

다시 이전 길드로 돌아갔단 소리에 한카는 피가 식는 것을 느꼈음.

 

'그래, 그랬구나.. 결국 넌..'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는 않을까 예상은 했지만 어쩐지 아득해지는 기분에,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간 듯, 손이 하얗게 질려갔음.

 

그 순간


[ 오해하지마, 그런거 아니니까.

그 쪽에서 네 저격글 내리는 조건으로 들어오라 그랬대. ]

[ 그렇다고 거길 제발로 걸어들어가? ]

[ 걔도 너만큼 간절했겠지. ] 

[ 하... ]

 

한카는 머리가 지끈거렸음.

거기서 빼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나 때문에 다시 거길 스스로 들어가다니.


자신이 종녀를 위해 희생한 일은 까맣게 잊은 듯이

오로지 종녀가 자신 때문에 종남의 곁으로 갔다는 사실이 가 슴 아팠음.

 

[ 그나저나 약속 결국 안지켰네. ]

[ 그러게. ]

[ 어떡할거야? ]

 

지인의 말에 한카는 흥분했던 머릿 속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음.


분명 한카와 종남이 1ㄷ1을 할 당시 내걸었던 조건은

한카가 이기면 종녀의 저격글 대신 한카의 저격글을 올리는 것.


또한 한카가 동화나라를 떠나는 대신

종남 측에서는 더이상 종녀를 건드리지 않는 것 이었고,

 

한카가 지면 마찬가지로 동화나라를 떠나 두번 다시

종녀를 찾지 않는 것이었음.

 

전적으로 한카에게 불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말렸던 그 내기를 수락했던건

오로지 종녀 때문이었음.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음.


어떻게 해서든지 종녀를 지켜주고 싶었던 한카는

그동안의 종남의 행태로보아,

종남이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았음.

 

종남은 어떻게 해서든 원하는 것은 손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었고,

얻지 못하면 상대에게 그만큼의 타격을 주어야만 만족하고는 했음.


때문에 종녀의 저격글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한카는

종남에게 먼저 자신의 저격글을 제안했음.

 

종녀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던 종남은

자신의 것에 하나의 흠이라도 적은 것이 좋지 않겠냐는 판단 하에

그 제안을 승낙했고, 거기에 덧붙여 한카가 지면 동화나라를 떠나라는

조건을 덧붙이게 됨.

 

그렇게하지 않으면 응하지 않을 것을 잘 알았기에

결국 한카는 본인에게 단 하나의 이득도 없는

철저히 종남의 이익을 위한 1ㄷ1을 하게 되었는데,

한카는 종녀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이길 자신이 있었음.

 

다만,

종남이 생각보다 더욱 치졸하고, 비열하단 것을 간과한 것이

이번 내기에서 한카의 패착이었을 뿐.


종목 자체도 종남에게 유리한 종랜으로 진행되었는데,

우습게도 종남은 자신의 홈그라운드 안에서 철저하게 짓밟혔음.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종남을 이긴 한카는

저격글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더이상 종녀에게 신경 끄라는 말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자존심이 뭉게질대로 뭉게진 종남은 순순히 수긍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득이 없는 내기 아니냐며 추할 정도로 막무가내로 우겼음.

 

원래 이런 내기가 진 사람의 이득까지 고려해주어야 하던가.

심지어 졌음에도 저격글은 그대로 올릴 수 있는 상황 아니던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카는 종녀의 저격글 만은 올라가지 않게 해주고 싶었음.

 

안그래도 지금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데

이대로 자리를 뜨면 분명 바로 저격글을 올릴 것이 불 보듯 뻔했음.

 

결국 종남의 억지를 받아들인 한카가

다시 한 번 내기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순간

종남이 한가지 제안을 했음.

 

엄연히 내기인데 종랜은 본인에게 너무 유리하니

둘다 익숙치 않은 도위로 승부를 보자는 것이었음.


방금 전도 한카가 이겼으니 딱히 종남이 유리하다고 할 건 못되지 않나 싶었지만

하나라도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면

패악질을 부리는 것을 알았기에

한카는 종남의 배려 아닌 배려를 받아들였음.

 

단, 이번 내기는

한카가 지면 동화나라를 떠나고

이기더라도 떠나라는 조건이었음.

 

대신 이기게 되면 더이상 종녀는 건들지 않겠다며,

종남은 한카에게 너도 종녀 때문에 이러는거 아니냐는 도발을 시전했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한카는

그렇게 해서라도 종남이 종녀를 건들지 못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음.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울 것이 분명한 종녀라면

자신이 없어지더라도 금방 지켜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거라 믿었음.


비록 자신에게 남은 감정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겠지만

종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본인이 그 정도는 감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음.

 

그리고 여기서 한카가 두번째로 간과한 것은

종남은 처음부터 종녀를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단 사실임.



9편



서바이벌.

게임 자체는 최후의 한 사람을 가리는 참으로 간단한 룰을 가졌지만

그 중에서도 도위라면 말이 달랐음.


서바이벌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짜 중의 진짜들만 즐긴다는 그 맵은

워낙 오랜 세월 자신들만의 성을 구축하여 온 만큼

외부인이 접근하는 것 부터가 쉽지 않은 맵이었음.


즉 종남의 말대로 한카가 익숙하지 않은 맵 중 하나가 맞았는데,

아마 그건 종남도 마찬가지 일게 분명했음.

그래서인지 종남은 즉시 1ㄷ1 전을 하는게 아닌 날짜를 다시 잡기를 원했고

한카 또한 그 점에 있어서는 동의 했음.


그나마 친창 중, 이전에 도위를 했었다는 사람이 있어

한카는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 지 못한 채 도위 연습에 몰두했음.

함께있는 시간이 줄어듬에 따라 종녀가 서운해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번 일만 마무리 되면, 앞으로 종녀를 힘들게 할 일들은 없다는 생각하나로

한카는 묵묵히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었음.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온 1ㄷ1 당일.

한카를 맞이한 건 종남이 아닌 다름아닌 동생 서남이었음.


이게 무슨 상황일까, 황당함에 말도 안나와서 고개를 삐딱하게 꺾자

서남은 그닥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음.


"님 여자?"

"?"

"하필 또 여자네."


서남은 진심으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


종남과 서남. 

동화나라를 대표하는 이 형제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견고히 다지고 있었는데,

양지에서 동화나라의 온갖 구설수를 달고 다니는 종남과는 달리

서남은 자신이 쌓아올린 성 안에서 동화나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음.


때문에 서남은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건 비단 서남이 동화나라에 관심이 없어서만은 아니었음.


서남은 자신의 형제인 종남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음.

거친 성격의 서남은 남자 중의 남자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 였는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같은 DNA를 타고 나서 그런지

종남과 서남은 둘다 여자를 좋아했음.


단지, 여자들은 지하에서 자기들끼리 치고 박 고 싸우는 서남보다

이벤트면 이벤트, 리그면 리그 등

양지에서 빛나는 종남을 더 좋아했을 뿐임.


따라서 서남은 언제나 여자를 갈아치우며 등쳐먹는 자신의 형제가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음.


여자들은 대체 저딴 놈 이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내 냄새 풀풀 나는 한가운데 보다는,

좋은 꽃향기가 나는 여자들 사이에 둘러쌓이는 게 훨씬 좋아보였기 때문임.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서남은 종남의 일에 일체 신경을 쓰지 않았음.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소에도 마주치면 데면데면

서로 연락도 잘 하지 않던 나날 속, 갑작스런 종남의 연락은

서남을 황당하게 만들었음.


가뜩이나 그 내용이 다른 것도 아닌

자기 대신 1ㄷ1 좀 뛰어 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부탁이었으니 더더욱.

이젠 하다하다 별 지랄을 다하는 구나. 싶어 모른 척 하려던 때,


"이번에 이겨주면 여자 소개 시켜줄게."


종남의 여소에 넘어갔음.


처음엔 그저 종남의 여자를 뺏어갔단 소리에

어떤 간 큰 녀석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여자가 종남 대신 선택했는지도 궁금했음.

근데 1ㄷ1 당일 나온 사람이 여자라니.

서남은 머리가 지끈거렸음.


물론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자신의 탓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이미 마주친 마당에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음.


여자한테 뺏기고도 정신을 못차리는 제 형제의 한심한 모습에

서남이 한숨만 내쉬고 있자, 한카가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음.


"둘이 사이 안좋던거 아닌가."

"뭐, 그건 맞는데."


형제임에도 닮은 구석 하나 없는 둘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동화나라의 주민이라면 다들 아는 이야기였음.


"아무리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더란 말이지?"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에 한카는 무심한 얼굴로 서남을 쳐다봤음.

시선을 느낀 서남이 픽 웃더니 고개를 좌우로 꺾었음.


"내 신조가 여자는 안때린다 였는데, 어쩔 수 없지.




그럼 시작할까?"




서남의 목소리와 함께 멀리서 일명 미트볼이라고 불리는

불공들이 날아오고 있었음.



10편



확실히 연습을 한다한들 익숙치 않은 맵을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익히기는 힘들었음.


처음엔 비등비등 한 듯 싶었지만 역시가 역시라고

특정 맵을 10여년간 전문으로 판 사람을 이기기란 쉽지 않았는데,

특히 서남의 공격은 한번 한번이 제법 묵직하고 날카로워서

피하는 것 부터가 난관이었음.


피했다 생각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드는 통에

시간이 지날 수록 한카의 얼굴에는 생채기가 늘어났음.


그리고, 다시끔 빠른속도로 다가오는 서남을 피하려는 순간

서남이 야, 하고 한카를 불렀음.


1ㄷ1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제 할 일만 하던 서남이기에 대답없이 뭐냐는 얼굴로 쳐다보자

서남은 한카를 일부러 빗맞추며 말을 걸었음.


"넌 니 일도 아니라면서 왜 이러고 있냐?"

"그게 왜 궁금한데."


이리저리 피하느라 숨이 찬 한카가 호흡을 고르며 대답했음.

그러자 서남은 공격하는 척만 하면서 질문을 이어갔음.


"그냥. 대신 1ㄷ1 하는 입장에서 궁금할 수도 있지."

"신경 끄고, 넌 그냥 니 할일만 해."

"나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 때리는 거 별로 달갑진 않거든?

웬일인지 그 자존심 높던 종남새끼가 부탁에 부탁을 하니 한번 들어준거지."

"어쩌란건지."


서남의 질문이 귀찮다는 듯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한카는

그 어떤 질문에도 정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음.

한카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한 서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마지막 질문을 꺼냄.


"그 여자애가 그정도의 가치가 있어? 니 동화나라 인생도 다 가져다 버릴만큼?"


그리고, 서남의 질문을 받은 한카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어. 겨우 내 인생 정도의 가치가 아니야. 걔는."


하고 대답했음.

여전히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단호함이 달랐음.


그 애는 겨우 나 정도의 가치가 아니야.


마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한카의 모습에

서남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음.


그러거나 말거나 아슬아슬하게 달려오는 롤러를 피하며

한카는 종녀를 떠올렸음.


지금쯤 자고 있으려나.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이라도 많이 봐둘걸.


종녀를 지키기 위한 일들이었지만,

그러기 위해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은 어쩐지 후회를 만들어냈음.

하지만, 지금 한카에게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었음.


쉴새 없이 달려오는 롤러들과 불공들을 피하던 한카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구석으로 몸을 피한 순간,

서남이 뒤따라 들어왔음.


그 모습에 한카가 짧게 혀를 차고 자리를 피하려는데 뒤에서


"앙증걸이네."


하는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음.

생각지도 못한 낯간지러운 소리에 순간 발을 헛디딘 한카는

저를 깔아뭉게기 위해 다가오는 롤러를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음.


'아, 졌구나.'


마치 주마등처럼 종녀와 함께했던 나날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 시작함.


처음 종녀에게서 귓을 받았던 날,

함께 공원에서 데이트를 했던 날,

서로의 팜에서 밤새 낚시를 하며 쏟아지는 별들을 세었던 날.

함께했던 기억들이 모두 눈부시게 빛이 났음.


'다신 볼 수 없겠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웃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려 한카는 숨을 들이켰음.

그 순간


"야, 눈 떠."


한창 사색을 하던 한카를 방해하는 목소리에 한카는 눈을 떴음.

그리고 눈 앞을 가득 메운 alive 메시지에 인상을 썼음.

.....생각해보니까 아웃을 외치는 소리를 못 들었던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에 가만히 alive 메시지만 노려보고 있자

서남이 한카의 팔을 붙잡아 일으킴.


"아, 오랜만에 재밌었네. 도위 처음이라더니 존X 잘하잖아.

이참에 나랑 도위나 뛰실?"

"싫어."

"존X 매정하긴."


태연한 목소리로 벽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무는 서남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서남은 너도 필거? 하며 한카에게 담배를 건넴.

한카는 제게 내밀어진 담배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음.


"원래 1ㄷ1 끝나고 피는 담배가 개꿀맛인데, 이걸 모르네."

"니가 대신 죽은거야?"

"엉?"

"누가봐도 내가 지는 싸움이었을텐데."

"아아, 뭐~ 그거? 왜, 고맙냐?"

"지X 하지말고. 뭐하자는 건데?"


지면 졌지, 이런식으로 배려를 받아 이기고 싶진 않았는데.

한카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음.

자신을 노려보는 한카의 얼굴에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서남은

짧아진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끄더니 어깨를 으쓱였음.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난 널 위해서 대신 죽어준 게 아니야."

"뭐?"

"네가 그랬지 우리 둘이 사이 안 좋던거 아니냐고."

"근데?"

"내가 말했지,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1ㄷ1 시작 전, 짧게 나누었던 대화였음.

서남은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음.


"거의 한 평생을 사이가 안좋은 채로 지냈는데, 그게 어디 쉽게 가겠어?

팔이 안으로 굽은 내가 해줄 수 있는건 1ㄷ1 대신 해주는 것 까지.

난 종남새끼가 열받아 뒤지는 꼴을 꼭 봐야겠거든."


이새끼도 성격 안좋다더니...

둘이 형제라는 사실이 이런 데에서 드러나고 있었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씨X 서남새끼 어딨어!?"


지하실을 가득 메운 종남의 목소리에 서남이 벽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고는

담배를 대충 밟아 껐음.


"아, 저 ♡♡♡ 또 개지랄하겠네~"


말은 그랬지만 서남의 얼굴은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한 표정이었음.


"난 간다~ 조심히 가라~"


그리고 종남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며

한카를 향해 휘적휘적 손을 흔들었음.


점차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서남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한카는

자기도 이만 돌아가야겠다 싶어 걸음을 옮기려 했음.


하지만, 몇걸음 가지 않아 야! 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서남이 자기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음.


"오늘 재밌었다~ 다음에 또 생각있으면 제대로 다시 함 뜨자~"


씩 웃으며 하는 말에 한카도 픽 웃었음.


"그래."

"아! 그리고 혹시 헤어지면 연락해라~ 잘해줄게~"

"지X"


서남의 플러팅을 가볍게 무시한 한카는 저 뒤에서

서남에게 온갖 욕설을 하며 소리치는 종남의 목소리와

그러거나 말거나 귀찮다는 듯이 대꾸하는 서남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하실을 떠났음.




11편



지하실을 빠져나온 한카의 온 몸은 상처투성이였음.

맞고, 부딪히고,

두 다리로 멀쩡히 서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 였음.


한카는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두워진 공원을 지나 곧장 종녀의 팜으로 향했음.


그리고 종녀의 팜 앞에 가만히 서서 한참을 고민했음.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테니 괜히 미련 가지지 않도록 떠나자는 감정과

그래도 마지막으로 얼굴은 보고가는게 어떻겠냐는 감정이

뒤죽박죽 얽혀있었음.


결국 주먹을 쥐고 겨우 뒤돌아 선 한카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종녀의 팜으로 걸음을 옮겼음.


이대로 그냥 떠난다면 무척이나 후회될 것 같았음.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한카는 조심스레 종녀의 팜으로 들어가

홀로 웅크려 잠든 종녀를 애틋한 눈빛으로 가만히 내려다보았음.



"그냥 갔으면 더 크게 후회할 뻔 했네."


조용히 수면 아래로 잠긴 종녀의 뺨을 쓸어보려다가

혹시라도 손에 묻은 먼지들이 종녀에게 닿을까봐

행여라도 깊게 잠든 종녀를 깨워버릴까봐

멈칫 손을 거둔 한카는 언젠가 이 팜에서 자신을 향해 소리치며

엉엉 울던 종녀를 떠올렸음.


'나 때문에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여린 너는 아마도 말없이 떠나버린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지만

너에게 좋은 추억이 되어 너를 아프게 할 바에야

차라리 나쁜 감정으로 남아 네게서 비워져야겠다는게

내 사랑이야.


한카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종녀의 얼굴을 빠짐 없이 눈에 담았음.

곱게 감긴 두 눈은 쉬이 떠지지 않아서

한카는 좀 더 편안하게 종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음.


이제 종녀의 눈동자에 내가 담기는 일은 없겠지.


말간 얼굴을 하고

오로지 저를 향해서만 보여주던 표정들을

이젠 다른 사람 곁에서 짓게 될거란 생각을 하니

가 슴 한 켠이 뻐근하게 아파왔지만

한카는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음.


"아프지말고, 나 때문에 너무 많이 울지도 말고"

착한 너는 나를 위해서 울어줄게 분명하니까.


"마음 같아선 함께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난감한 듯 한없이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내 부탁을 거절하진 못할테니.


한카는 그것이 모두 제 욕심이라고 생각했음.

하지만 더이상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두어

힘들게 만들고 싶진 않았음.


그리고,

손에 닿으면 깨어질까

쉴 새 없이 손을 뻗었다 거두었다 반복하던 한카는

종녀의 곁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날이 밝을 때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종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음.


"고마웠어, 잘지내."


한카는 팜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종녀를 눈에 담고는

그대로 종녀의 팜을 빠져나왔음.


그리고 자신의 팜으로 돌아와

둘이 함께 맞추었던 자신의 팜 비밀번호를 바꾸었음.


아마 곧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제 저격글이 올라올 테고

그 때쯤이면 이미 나는 동화나라에 없겠지.



한카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자신의 팜 안에

남은 미련을 모조리 밀어넣은 채

팜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갔음.



.

.

.



그리고 얼마 뒤 잠에서 깬 종녀는

온갖 한카를 저격한 방제들을 마주하게 됨.




12편



그리고 다시 현재,


날이 밝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종녀는 거울 앞에 서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음.


밤 새 생각을 정리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피곤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음.


그동안은 그저 적당히 종남의 비위를 맞추며

어서 빨리 글을 지우기만을 기다렸다면

이제는 아니었음.


종녀는 반드시 오늘 내로 글을 지우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면 좋을까, 고민을 하던 때

"누나, 잘잤어?" 하는 종남의 메시지를 신호로 삼아

종녀는 곧장 메신저에서 종남을 찾아 같달을 눌렀음.


"어, 누나 아침부터 여긴 웬일이야?"


길드에 재가입했던 그 날을 마지막으로 길드팜엔 일절 발을 들이지 않아서 그런지, 

종남은 길드팜에 찾아온 종녀를 무척이나 반가워 했는데,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길드팜에는 한가운데 앉아있는 종남을 제외한

몇 안되는 길드원만이 낚잠을 하고 있었음.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종녀는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음.


"잠깐 얘기좀 해."

"그럴까? 어디 다른데로 갈래?"


종남이 말을 거는게 아닌 이상

종녀가 먼저 대화 요청을 했던 적이 없었기에

종남은 반색을 하며 기꺼워했음.


"됐어, 길게 말할 내용도 아니니까. 여기서 해."


메신저로 하면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겠지만,

종녀는 이제 무작정 피하고만 싶진 않았음.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던 한카처럼, 자신도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한카가 돌아왔을 때, 그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만 같았음.

무엇보다 종남이 실시간으로 글을 내리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도 했고.


그렇다고 단 둘만 있는 곳에서 이야기 하자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종녀는 굳이 다른 장소로 옮기는 수고로움을 들이고 싶지 않았음.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대된다는 종남의 시선을 견디며

종녀는 종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했음.


"대체 글 언제 내려줄거야?"


뭔가 다른 이야기를 기대했던건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종녀를 바라보던 종남이 일순 기운빠진 얼굴을 했음.


"고작 그 이야기 때문에 이 아침부터 찾아온거야?

난 또 무슨 얘기인가 했네.."

"내가 너한테 할 말이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뭐... 곧 지워줄게~ 누나.. 이혼하면?"


싱겁다는 듯이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실망이 가득했음.

하지만 종녀는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음.


"넌 내가 만만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누나를 왜 만만하게 봐"

"그거 말고는 나랑 한 약속들을 제대로 안지킬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내가 또 흐지부지 넘어갈거라 생각한거 아냐?"

"어...."

"넌 내가 좋은게 아니라,

그냥 니 옆에서 니 시중들면서 필요할 때 맘대로 데리고 다니면서

뒷템써주는 순종적인 여자애가 필요한거잖아."

"...그런거 아냐."


이전 과는 다르게 조목조목 따지는 종녀의 목소리에

종남이 난감한 얼굴로 눈을 굴렸음.


"그런게 아니긴, 니가 날 진심으로 좋아했으면

애초에 저격글 올릴 생각도 안했겠지.

원래 내 저격글 준비하고 있었다며, 내가 언제까지 모를 줄 알았어?"

"저, 그게 누나..."

"일부러 내 이름 가리고 사진 가리고, 그러면 내가 고마워 할 줄 알았니?"

"....."

"아냐, 됐다 됐어. 이제와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지금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데

그냥 내가 해명글 쓰지 뭐, 모두 다 내 잘못이라고."

"아, 누나 왜그래!"

"그 글이 쭉 남아있는 이상 뒤에선 계속 이야기 나올건데,

어차피 니가 바라는게 그거잖아?

내 주변에 아무도 안남는거,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그렇게 만들어줄게."

"그런거 아니라고"

"그럼 글 지우던가! 니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하면 뭐해?

니 태도가 딱 그건데!"

"아 오해야, 내 말 좀 들어봐."

"오해는 무슨 오해?

너랑 풀 오해도 없고, 풀 생각도 없어. 이렇게 만든건 너니까 너 알아서 해."

"지울게, 지울게. 일단 진정 좀 해."

"내가 진정하게 생겼니? 말만 하지말고 지울거면 빨리 지워."

"런게 로그인 중이야. 기다려봐, 나 믿지?"

"니가 믿을만하게 행동해야 믿지."


단호한 종녀의 말에 종남은 궁시렁 거리면서도 런게에 접속해

자신이 빨병 계정으로 올렸던 글을 확인했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확인했던지,

댓글창은 이미 엉망이었고, 조회수도 어마어마하게 높았음.


뭔가 이대로 지우긴 좀 아쉬웠지만,

옆에서 잔뜩 화가 난채로 지켜보는 종녀 탓에

종남은 더이상 뭘 어쩌지 못하고 삭제버튼을 눌렀음.


"지웠어, 지웠어. 됐지? 확인해 봐."


마치 엄청난 일을 했다는 것처럼 뿌듯한 얼굴이었지만

종녀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음.


"백업본 따로 둔거 아냐? 맘에 안들면 또 올릴거잖아!"

"아, 그런거 없어~ 누나 나 못 믿어?"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게 너란 소리를 하려던 종녀는

자기를 보며 웃는 종남을 흘겨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음.


백업본의 유무까지는 직접 확인할 수가 없으니,

이 이상은 종남의 양심에 맡겨야만 했음.


"자, 약속 지켰으니 누나도 이제 약속 지켜."

"무슨 약속? 글은 원래부터 지우기로 했던거잖아."

"기억 안나? 이혼말이야. 원래 이혼 하고 나랑 결혼하는 조건이었잖아."

"그건 이혼 쿨 차면 해준다니까? 니가 돈 줄거 아니잖아."

"돈 줄게."

"뭐?"

"돈 준다고, 그러니까 가서 이혼하고 와."


그렇게 말하는 종남의 입은 빙글빙글 웃고 있지만 눈빛만은 단호했음.


한차례 소동이 지나가고, 이제 겨우 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작스런 종남의 말에 종녀가 "뭐?" 하며 반문했음.


"내가 약속 지켰으니까, 누나도 약속 지켜. 지금 이혼 해."


종녀는 종남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음.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하지만 돈까지 준다는 마당에

더이상 댈 모든 핑계가 사라진 종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음.


"...그래, 빨리 사와."


괜히 꿇리고 싶지 않아

애써 태연한 척 말은 했지만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음.


'이대로 사오는 사이에 도망쳐버릴까?

이름 바꾸고 길드 나가고....

하지만 한카랑 결혼 상태인 이상 바로 들킬게 뻔한데.. 어쩌지?'


안절부절 못하는 종녀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던 종남이

그럼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선물함으로 보내줄테니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야, 종남아!!!"


하는 소리와 함께 몇몇 길드원들이 우수수 들어오기 시작했음.

그리고,


"한카 길드가 길삭전 걸어왔다!!!!"



13편



종남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음.


이혼쿨이 차면 이혼하겠다는 종녀의 말에 그러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리 잘해주어도 종녀와의 관계가 이전 같지 못하다는 건

종남 스스로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이혼을 시키고 싶었음.


하지만 종녀 스스로 이별통보를 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보였기에

결국 종남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피같은 돈을 투자하기로 결심했음.

그렇다고 당장 모아둔 돈도 없고,

있다한들 종녀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돈 쓸 필요 없이 이혼이 가능한데

굳이 자기 돈을 써야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음.


때문에 종남은 요 며칠 종녀가 없을 때면 홀로 열심히 이벤트를 뛰어

힘들게 모든 재화들로 공원의 캡슐을 돌려

카드키를 모아 열심히 팔았음.


다행이도 이번 이벤트는 재화수급은 수월한 편이었으나

쥐새끼 마냥 새끼치는 잠겨진 상자의 존재로

카드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고,

그래서인지 돈벌이 또한 상상 이상으로 잘 되었음.


종남은 카드키를 팔아서 이별통보도 사주고

주례와 25 커플링까지 캐리하는 자신의 모습에 반할

종녀를 상상하며 열심히 스트릿을 뛰었음.


그리고 드디어 어제,

목표했던 금액이 달성되어 당장 이혼을 시키고 싶었지만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종녀의 말에 입 한번 떼지 못하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뒤로 했는데...



날이 밝자마자 이혼을 시키고

길드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재혼을 할 생각에

아침부터 싱글벙글 했건만...



종녀는 오로지 저격글을 내릴 생각만 하고 있질 않나,

드디어 이혼 이야기를 꺼내보나 싶어

이별통보 사러 간 김에 주례와 커플링까지 사가지고 와서

짠~ 하고 프로포즈 할 계획에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갑작스레 뛰어들어온 길드원의 말은

종남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기 충분했음.


그 날, 그러니까..

서남과 한카가 자신이 내걸었던 조건으로 1ㄷ1을 한 이후,

한카 길드측은 전후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각 외로 잠잠했고,

그래서 종남 또한 어찌되었던 좋은게 좋은거지~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봄.


한카 길드의 결속력은 종남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단단했고

잠시 몸을 담았던 종녀 스스로가 직접 느꼈던 것 보다 더욱 견고했으며

자신들의 길마가 고작 저런 새끼의 농간으로

동화나라를 떠나야 했다는 사실에 잔뜩 약이 올라 있었음.


어떻게든 자신들의 길마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뭉친 한카 길드원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입단속을 해가며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음.


그리고 드디어 오늘,

종남이 한창 종녀에게 다시 프로포즈 할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던 때,

한카 길드원들은 종남 길드의 길드원들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어


하나, 둘

서바이벌로 유인하기 시작했음.



.

.

.



길드원들 몇명은 이미 낚여서 서바이벌로 갔다는 소리와 함께

자신들은 몰래 도망쳐나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길드원의 말에

종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종남이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말했음.


"아니 다 끝난 일을 이제와서? 왜?"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헤집는 종남을 보는 순간

종녀는 대번에 한카의 얼굴이 떠올랐음.


'설마 한카가...

아냐, 아닐거야.

동화나라 소식도 모르고 있을텐데...'


애써 아닐거라며 마음을 달래는 사이


"...한카 길마, 오늘 복귀했대"


길드원의 말이 종녀의 귓 속을 파고들었음.



14편



길드원의 말에 종녀는 즉시 메신저를 확인했음.

언제 들어왔던건지 한카의 메신저에 초록불이 들어와 있었음.


"내가 왜 이걸 못봤지...."


종녀는 멍하게 한카의 이름을 쳐다보았음.

한카가 동화나라를 떠난 이후,

늘 꺼져있는 메신저 창을 볼 때마다 가 슴 한 켠이 아려와서

종녀는 한카만 하트로 이루어진 단독 그룹창에 넣어두고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채팅과 함께 접어둔 후, 애써 외면하고 있었기에

밤 사이 접속 한 한카를 눈치 채지 못한 건 당연했음.


'길드원 중 다른 사람이 대신 접속 한 건 아닐까..?'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열어본 한카의 테일즈 북은

예전과 동일했고, 변함이 없었지만


단 한가지,

자기소개창에 적혀있는 복귀 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눈에 띄었음.



언제나 종녀가 불편한 상황에 처하진 않을까,

온 신경을 기울였던 한카를 알기에,

이번에도 역시 종녀 몰래 들어와 홀로 처리하려 했던 듯 했음.


그리고, 종녀는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마자 즉시 길드팜을 나섰음.

뒤에서 '누나, 어디가!' 하며 소리치는 종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종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서바이벌 경기장으로 향했음.


한카 길드와 종남 길드가 한데 섞인 방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에,

길드가 아니었다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도 어려웠음.


"한카 길드랑 종남 길드 아닌 애들은 알아서 기어나가."


어째서인지 방장을 잡고 있는 서남이 자신들의 친구를 따라 들어온

다른 길드원들을 손수 강퇴시키며 말했음.


종남 길드를 달고 있어 아무런 제지없이 방에 들어올 수 있던 종녀는

대기 장소에 서서 쉴 새 없이 한카를 눈으로 찾았지만

워낙 한카 길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고,

사람들이 하나 같이 비슷하게 생겨 누가 누군지 쉽게 분간이 어려웠음.


종녀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겨우 고개를 들어 조급한 눈빛으로 한카를 찾던 때,


"종남아!"

"길마왔다!"


하는 소리가 들렸음.

아마 종남 또한 종녀가 길드팜을 나가자마자 곧장 따라온 듯 했음.


"그럼... 모일 사람들은 다 모인거 같으니, 시작한다."


어느 새 방은 30명 풀로 차버렸고,

주요 멤버들이 다 모인 걸 확인한 서남은 그대로 게임 시작을 눌러버렸음.




.

.

.



그리고 시작된 게임은 엉망진창 이었음.

서남이 방장을 잡을 때부터 불안하더니

맵은 도위였고, 곧 미트볼과 롤러들이 대거 출연하기 시작했음.



게임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여기저기서는 분노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에 맞추어 누군가를 때리는 소리와

탈락했다는 목소리도 자꾸 들려왔음.



종녀는 상대 길드를 어떻게든 때려 눕히겠다며 혈안이 된

양 길드원들 사이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한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음.



"한카야...."


대체 어디서 싸우고 있는건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한카의 모습에

종녀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음.


"보고싶어...."


더듬더듬 지하실 벽을 더듬어가며,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옮기던 종녀는

점차 사람들과 멀어지기 시작했음.

불 조차 제대로 켜지지 않아 어두운 지하실을 홀로 살피던 종녀는

이러다 한카를 찾기도 전에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음.


슬슬 사람들의 싸우는 소리도 멀어져서,

그만 돌아가야 하나,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거 같은데.. 싶을 찰나

종녀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말았음.





15편





".....한카야...!!"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자꾸만 눈에 밟히던 그 뒷모습에 종녀는 한카의 이름을 불렀고,

한창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던 한카는 자신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음.


"...종녀..."

"한카야!!!!!!!"


한카가 잠시 종녀에게 한 눈을 파는 사이,

상대는 한카를 가격했고,

한카는 상대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음.


"괜찮아? 미안해, 미안해."


'어떡해, 말 걸지 말걸....'


맞을 때 스친건지, 한카의 입술 끝이 찢어져 피가 나는 모습에

종녀가 한카를 부축하며 발을 동동 굴렀음.


한창 양 길드의 싸움이 과열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카도 당연히 상대 길드와 대치 중일 거라는 걸 짐작 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마음이 앞서 한카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에

종녀는 눈에 띄게 미안해했음.


아무렇지도 않게 입술의 피를 닦아내며, 종녀의 부축을 받은 한카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종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음.


혼자 시간을 보낼 때,

눈을 감아도, 눈을 뜨고 있어도,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일상 속 어느 곳에서도 잊혀지지 않던 얼굴이 지금 바로 눈 앞에 있었음.


한카가 종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누나, 거기서 뭐해?" 하는 목소리가 들렸음.

한카와 대치하고 있던 게 바로 종남이었던 듯 했음.




사실 게임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지하실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서남은

한카와 종남을 데리고 지하실의 제일 깊숙한 곳,

아무도 쉽사리 오지 못하는 곳으로 끌고 갔음.


둘 사이에 새겨진 감정의 골이 깊으니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치고박고 마음껏 하라는 의미였음.

그리고 서남의 의도대로 둘은 서로를 죽 일 기세로

덤벼들기 시작했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치고박고 하던 둘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떨어진 사이

종녀가 나타난 거였음.



종녀는 종남의 목소리에 한창 한카의 상처들을 살피던 시선을 거두고

제 앞에 걸어오는 종남에게 시선을 옮겼음.

한카가 바로 곁에 있었지만

아랑곳않고 서슴없이 걸어오는 모습에서 어쩐지 강한 분노가 느껴져

종녀는 움찔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음.

대신 자연스럽게 종녀를 자신의 뒤에 숨긴 한카가

한걸음 나서서는 삐딱하게 선 채로 종남을 쳐다봤음.



"넌 뭐야?"

"그럼 넌 뭔데."

"상관없는 사람은 좀 빠져!"

"내가 왜 상관이 없어. 니가 이 일에 날 엮었잖아."

"씨발, 누나 거기서 뭐하고 있어 대체. 빨리 이리와."


자신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않는 한카의 말에

종남은 결국 대화를 포기하고 종녀에게로 타겟을 변경했음.

한카의 뒤에 숨어 한카의 얼굴과 종남을 번갈아보던 종녀는

어쩐지 종남의 시선에 짓눌려 죽 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음.



하지만,

이제 더이상 무작정 피하기만 하진 않을거라고 다짐했던 어제를 떠올렸음.

자신이 나약해서 한카를 잃고 홀로 보내야만 했던 시간들.

종녀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던 시간들을 떠올렸음.


한카를 잃지 않으려면, 한카에게만 의지할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한카를 지켜야만 했음.

거기까지 생각이 미 친 종녀는 침을 꼴깍 삼키고

천천히 한카의 뒤에서 걸어나왔음.


"종녀야"

"..으응, 괜찮아."


갑작스런 종녀의 움직임에 설마 싶은 한카가 급히 종녀를 불렀지만

종녀는 한카와 눈을 맞추고는 살짝 웃었음.

어쩐지, 한카가 곁에 있으니 다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음.

종녀는 한카의 손을 꼭 붙잡고 한카의 곁에 서서 자신을 부르는

종남을 바라보았음.


"누나? 대체 여긴 왜온거야. 위험하게. 나랑 가자. 여긴 너무 위험해."


종남이 화가 나는 걸 애써 참는 얼굴로 웃으며 물었지만

종녀는 예전 처럼 저 얼굴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음.

이전에는 화를 낼까 무서워 무작정 비위를 맞추었지만,

혹시라도 놓칠새라 단단히 잡힌 손의 온도와

자신의 옆에서 함께 해주는 이를 생각하니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있을것만 같았음.


그리고 종녀는 드디어 처음으로 종남과 마주보며

당당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음.


"...미안, 나는 니가 싫어. 우리 이제 그만하자."


그 어떤 협상도, 협박도 없는 오로지 순수한 자신의 의사였음.


"뭐?"

"너랑 있으면 내가 너무 힘들어, 이젠 그만하고 싶어."

"누나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못 알아듣는 척 하지마. 다 이해했잖아."

"아냐, 누나. 누나, 내가 잘못들은거지?"

"너랑 있으면 난 내가 아닌 것만 같아.

항상 네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필요한거잖아 너는.

난 네 곁에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거 같은데.."

"아니야, 오해야. 내가 누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누나도 알잖아!"

"사랑? 그거 사랑 아니야 착각하지마."

"사랑 맞아!"

"사랑 아니야, 네가 하는 건 그저 소유욕이고 집착일 뿐이지."

"누나!!"

"그러니까! 내가, ...이제는 너랑 연을 끊고싶다는 말이야."


종남은 종녀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종녀를 불렀음.

다시 생각해보라며, 자신이 잘하겠다며

쉴 새 없이 잘못을 비는 종남의 모습에

종녀는 과거 종남에게 휘둘렸던 자신이 우습게만 느껴졌음.


'고작... 저게 뭐라고....'


자신의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애가

이전엔 뭐가 그리도 무서웠는지.

종녀는 어쩐지 헛웃음이 나왔음.


자신의 생각을 실컷 쏟아낸 종녀는 모처럼 후련한 기분이 되어

제 곁을 지키던 한카를 바라보았음.


그리고 한카는,

자신의 곁에 서서 주저없이 종남에게 마지막을 고하는 종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음.




처음 종남이 다가왔을 때,

자신의 뒤에 숨어있던 종녀가

혹시나 종남에게로 돌아간다고 할까봐

그렇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애써 마음을 죽이고 있었기에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당당히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종녀의 이야기는

한카에게 있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음.


그저 속 안에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남김없이 쏟아내고

자신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짓는 종녀의 모습에

어쩐지 가 슴 한켠이 찡 하고 울려와

한카가 저도 모르게 종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던 때,


"... 그 ♡♡ 때문이야?"


하는 종남의 분노 찬 목소리가 들렸음.


"뭐?"

"지금 걔 때문이냐고!!!"


단단히 맞물려 깍지낀 손은,

마치 절대 떨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처럼 보여

가뜩이나 종녀와 결혼할 생각에

커플 이펙트를 꺼두지 않아

둘이 사이에 생기는 커플 이펙트에 안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던 종남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음.


갑작스런 큰 소리에 화들짝 놀란 종녀가 당황한 눈빛으로 한카를 바라보자

한카는 괜찮다는 듯이 종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아까처럼 자신의 뒤로 숨겼음.


하지만 되려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종남은 이를 갈며 한카를 향해 손을 뻗었음.


"다 너 때문에! 너만 없었으면!!"


종남은 이미 분노로 눈이 돌아버린 듯 했음.

화난 사람 만큼 헛점이 많은 사람도 없기에

평소였다면 손쉽게 피하고 제압했을 것이 뻔했지만

지금은 챙겨야 할 사람이 있었고,

그 종남이니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한카 또한 겨우 주먹을 피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었음.


그 순간,


"거기까지 해라. 진짜 추해 죽겠네."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 한 켠에서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던 서남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음.





16편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서남은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씨근덕 거리는 종남을 무심히 바라보았음.



"넌 또 뭐야!"

"눈이 돌다 못해 이젠 지 동생도 못 알아보나."

"씨발, 꺼져 좀!"

"꺼지긴 뭘꺼져, 추태도 적당히 부려야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서남은 한카와 종남 사이에 끼어 둘을 갈라놓았음.



"너도 쟤네랑 한패였냐? 아~ 하긴 그러니까 1ㄷ1 때 그 지랄을 하셨겠지."

"한 패 같은 소리하네. 난 아무편도 아닌데?

아, 굳이 따지자면 너 엿 먹이는게 재밌긴 해."

"♡♡놈아 니가 그러고도 동생이야?"

"평소엔 아는 척도 안하더니 이럴 때만 동생 타령? 웃기지도 않네"


어느 새 싸움은 한카와 종남에서 서남과 종남으로 바뀌어버렸음.

금방이라도 한대 칠 것 같은 분위기에 한카는

자기가 끼어들어서 말려야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서남이 꺼낸 이야기에 생각을 멈추었음.



"정신 차려. 니가 언제까지나 동화나라에서

그러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뭐?"

"아이고~ 우리 형님!

지 ♡대로 행동하시다가 진짜 ♡되고 계셨던거 하나도 모르셨구나!

니가 그 때 올렸던 저격글, 그거 하나 때문에 한카 길드에서 얼마나

이 갈고 있었는지 모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요~,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던 우리 형님 ♡되셨단 소리죠.

그 쪽에서 그간 니가 부렸던 패악질이랑 날조들 싸그리 수집해놨더만. 몰랐어?"

"...뭐?"

"하긴~ 세상만사 다~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던 분이신데,

다른 길드 소식 따위 관심도 없으셨겠죠~

아마 저쪽도 얼추 싸움 끝난거 같은데, 슬슬 올라오지 않았을까?"

"뭐가 올라온다는건데!"

"한카 길드에서 니가 했던 일들 런게에 죄다 박제시켰다고 ♡♡아."

"♡♡, ♡♡♡ ♡♡"

"그러게 잘좀 살지 그랬냐~"

"♡♡♡♡♡♡!!!"



갑작스런 전개에 얼떨떨하게 서서 둘이 하는 꼴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카는 서남의 말에 런게를 열었음.



그리고 런게의 제일 위에는 서남의 말처럼,

[종남] 길드의 길드마스터 [종남] 을 박제합니다. 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빨간 병아리가 아닌, 당당히 본인의 레벨을 앞에 단,

한카 지인의 이름으로 올라와 있었음.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읽은 게시물은

이번 한카의 저격글에 대한 반박글 뿐만이 아니라

뒤에서 남모르게 했던 여미새, 길드원 빼가기 등의 일들

그리고 어떻게 찾은건지 이번 이벤트를 하며,

같은 팀에게 욕설했던 증거 사진까지 낱낱히 적혀 있었는데

댓글 수는 적었지만 조회수와 하트수는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파장이 커질 듯 했음.


종남 또한 런게를 확인했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게시물과 댓글들을 읽고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표정이 바뀌는 종남을 바라보던 한카는

제 뒤에 숨어 둘을 살펴보는 종녀에게로 시선을 옮겼음.

그리고 한카의 시선을 느낀 종녀가 한카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한카는 종녀의 손을 붙잡았음.



"나머진 쟤한테 맡기고, 우린 가자."



삐딱하게 서서 종남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서남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든든해보여서

이 뒤는 알아서 해줄 것 같았음.

종녀는 한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걸음을 옮겼음.



.

.

.




"끝났다..."



지하실을 빠져나온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웃었음.



Alive

웃기게도 최후에 남은 1인이 양 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서남이어서

길삭전의 승패는 애매모호하게 되었지만

이미 갈데까지 간 종남길드의 이미지로

런게만 봐도 동화나라의 여론은 좋지 않았고,

게임이 끝나기 무섭게 길드원들 다수 이탈.

반강제적으로 눈치보며 묶여있던 길드원들도 이탈.

사실상 종남 길드는 해체 아닌 해체라고 보아야 했음.


이제 정말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둘은 가 슴 속을 무겁게 채우던 짙은 안개가 한꺼풀 벗겨진 기분이었음.



하지만,

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한가지 더 남아있었음.

바로 둘 사이에 쌓였던 오해와 엉켜버린 이야기실을 풀어야만 했음.



종남과의 일은 끝이났지만

둘의 일은 이제 막 시작이었음.



"한카야."

"종녀야."


둘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동시에 서로를 불렀음.


"너 먼저 말해."

"아냐 너 부터 말해."


서로에게 먼저 말하라며 미루던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 앉았음.

말없이 한참을 조용히 걷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한카였음.



".. 얘기 길어질 거 같은데 내 팜으로 갈래?"



.

.

.



한카의 말에,

그렇게 하자며 한카의 팜 앞으로 따라온 종녀는

문득, 아무리 눌러도 풀리지 않던 비밀번호를 떠올렸음.



'비밀번호.. 다시 바뀌었을까.'



혹시 그 때 자기가 너무 긴장해서 잘못 입력했던건 아닐까.

종녀는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해 보았지만

여전히, 비밀번호가 맞지 않다는 메시지에 금새 시무룩해져서는

조심스럽게 한카를 불렀음.



"있잖아.. 비밀번호.. 뭘로 바꿨어?"



종녀의 물음에 그제서야 팜의 비밀번호를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은 한카는 멋쩍게 대답했음.



"음.. 0801."

"어....?"



한카의 대답에 종녀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반응하자

한카는 설핏 웃으며 대답했음.



"응,


네 생일이야."



한카의 말에 종녀는 홀린 듯이 떨리는 손으로 자기 생일을 입력했음.

확인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들어가지는 한카의 팜에

종녀는 그제야 한카의 팜에 찾아왔을 때,

다른 숫자들은 입력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음.

괜히 울컥해서, 자신을 뒤따라 들어오는 한카를 돌아본 종녀는

조용히 물었음.



"...왜 하필, 내 생일이었어?"

"응?"

"다른 숫자도 많잖아."

"음.. 그게..."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묻는 얼굴에,

한카는 괜시리 민망해져 볼을 긁적이다가

이내 나즈막한 목소리로 대답했음.




"그냥,

가기전에 너와 함께였단 증거를 하나라도 새겨놓고 싶었어."



그 말에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진 종녀는

한카를 붙잡고 엉엉 울었음.

한카는 조심스레 종녀를 끌어안고는

말없이 종녀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음.



.

.

.





"이제 좀 진정 됐어?"

"...으응."

"그럼... 우리 좀 걸을까?"



한참 뒤, 겨우 울음이 그친 종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종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카의 손을 붙잡았음.

한카의 팜은 바다를 좋아하는 종녀 덕에 항상 바다가 있는 팜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보았던 풍경에서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팜을 보고

종녀는 괜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음.



그리고 둘은 그 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들보다도

더 깊고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음.



종녀는 한카가 처했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뒤늦게 접한 소식들에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던 이야기와

그보다도 한카에게 전혀 의지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서운했던 감정들.

그리고 그 모든걸 다 넘어서 보고싶었다는 말들을 털어 놓았고,



한카는 조용하고 무뚝뚝한 자신은 종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들과

언제든 자신을 떠날 것 같다는 불안감 속에 지내왔던 날들.

갈수록 마음이 커져가는 자신과 달리

잠깐의 치기 어린 불꽃일지도 모른다는 괴로움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싶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음.



한참동안 함께 걸으며,

떨어져있던 기간동안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느꼈던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쏟아낸 둘은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게 되어서야

근처에 있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음.



언젠가 여기서 보는 바다가 제일 예쁘다며

종녀가 한카에게 알려준 그 위치였음.

옷에 모래가 묻는다며 돗자리를 깔아두었던,

그 때 그대로여서 종녀는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음.



둘은 앉아서 서로의 깍지낀 손을 꼭 잡았음.

그리고 말없이 저녁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았음.



분명, 팜에 들어왔을 때 까지만해도 해가 중천이었는데,

어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벌써 저 멀리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음.

가만히 앉아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종녀가

문득 한카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음.



갑자기 또 무얼 하려는 걸까 싶어

가만히 종녀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한카는

종녀가 서서히 바다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종녀에게로 걸음을 옮겼음.



"한카야."

"응."



저 멀리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종녀는 입을 열었음.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가장 빠른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빙빙 돌아왔던 건지도 몰라."

"그래."



둘 사이엔 

거절이 무서워서,

혼자 남겨질 것이 무서워서,

잃을 것이 두려워서,

지레 먹은 겁 때문에 놓쳐버린 시간들이 있었음.



"그치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필요했던 시간들 인 것 같아."

"...그래"



하지만 그랬기에 서로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임.



한카는 종녀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애매한 말에, 절로 긴장했음.

이 다음엔 무슨 말이 나올까,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음.


그 순간,



"...그러니까 한카야"



앞서 가던 종녀가 한카를 부르며 멈추어 섰음.

말없이 종녀의 뒷모습을 따라가던 한카 또한

제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음.



"다시 한 번 잘 부탁해!"



노을을 등지고 자신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종녀의 얼굴에

잠시 아무말이 없던 한카가 이내 나지막하게 대답했음.



"..그래, 나도."




"나야 말로 잘 부탁해."



한카의 부드러운 미소에 종녀가 화답하듯이

한달음에 달려와 그대로 끌어안았음.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허리를 강하게 감싸안는 힘에

한카는 종녀의 등을 마주 끌어안았음.

공기 하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꼭 끌어 안은 둘은

이제 두 번 다시 혼자 앓지 않기로 약속했음.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둘은 함께라면 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저물어가는 노을 아래

유한한 시간 속, 무한한 사랑을 약속했음.








외전 1편 : 종녀X한카



오늘도 즐겁게 이벤맵을 즐긴 둘은 공원에서 뽑기권으로 뽑기를 뽑고

가운데의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올라가

코코넛 워터풀에 걸터앉아 공원을 내려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음

자기 옆에 앉아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카의 옆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종녀는 한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음


"... 좋다."


홀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한카의 시선이 종녀에게로 꽂혔음.


"뭐가?"

"니가."

"...."


한카는 대답없이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종녀의 눈에는 귀까지 빨개진 한카의 얼굴이 보였음.

그 모습에 장난끼가 발동한 종녀는 한카야~ 하고 불렀음.

그리고 한카가 왜?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찰박, 하고 얼굴에 물을 뿌림



"메롱."



그리고는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혼자 내려가버림.

갑작스런 상황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얼굴에 끼얹어진 물기를 털어낸 한카는

곧장 따라내려가 종녀를 잡으러 가기 시작했음.


"잡아봐라~!!"


약올리는 종녀의 모습에 한카도 오기가 생겼는지 이리저리 도망치는

종녀를 필사적으로 잡으러 쫓아감.


"악! 따라오지마!"


그게 또 제법 무서워서 종녀는 화난거 아냐? 하고 순식간에 겁을 먹었음.

그리고 갑자기 손목에서 느껴지는 무게와 함께

"...잡았다."

하는 섬뜩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오소소 소름이 돋았음.



"잘못했어!!!! 화내지마!!!!"



한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잽싸게 도게자부터 박기 시작하는 종녀의 모습에

한카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침.



"...뭐해?"

"화난거 아냐?"

"내가 너한테 화를 왜내."



한카의 말에 종녀가 우물쭈물했음.

표정을 보니 화가난 것 같진 않은데...

자기가 지은 죄가 있으니 불안한 건 불안한 거 였음.

눈치를 보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종녀를 바라보던 한카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옆에서 올라오는 분수의 물을 휙하고 종녀에게 뿌림


"아 차가워!"

"아하하, 표정봐"

"야!!"


자기가 시작한 건 새까맣게 까먹었는지 다시 불타오른 종녀가

한카를 따라 분수의 물로 장난을 치기 시작함.

서로 너나할 것 없이 신나게 물장난을 치던 둘은

공원이 어둑하게 변해서야 장난을 멈추었음.

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젖은 모습에 서로를 보며 한참을 웃던 둘은

여름이어도 젖은 몸이어서 그런지 밤바람이 제법 싸늘하게 느껴졌음.


"아.. 춥네.."


가볍게 몸을 떠는 종녀의 모습에 허리에 묶어두었던 가디건을 걸쳐준 한카는

이제 팜으로 가자. 하며 종녀의 손을 붙잡았음.

쟤는 춥지도 않나. 생각하며 한카를 따라 걷던 종녀는 한카의 입술색이

질려있는 것을 발견함.


그제서야 본인도 추우면서 자신을 배려해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종녀는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미안해졌음.



팜으로 향하는 길.

한카의 손에 이끌려 졸졸 쫓아가던 종녀가 우뚝 멈추어섰음.

갑작스런 행동에 한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녀를 돌아보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종녀가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음.



"한카야, 우리 저기서 자고가자."






외전 2편 : 그 서남이 사랑하는 방식




"어이."



이제 막 공원에 들어선 한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음.

나무 그늘 아래 기대어 선 서남이 한카와 눈이 마주치자

기대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음.



첫 1ㄷ1 이후,

다음에 도위나 같이하자는 서남의 요청으로

친추를 한 둘은 길삭전 이후 처음 만났는데,

그래서 그런지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음.



서남의 목소에 한카가 대충 고개만 까딱하며 인사하고,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오자

서남은 자연스레 옆으로 비켜나와 입에 담배를 물었음.



"한 대?"

"됐어."



여전히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지,

가볍게 거절한 한카는 팔짱을 끼고 아까의 서남처럼

나무에 기대어 섰음.



서남은 그런 한카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깊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였음.



"종남, 결국 이름 바꾸고 세탁 할거 같더라."

"차라리 개가 똥을 끊지. 그럴 줄 알았어."



한참 뒤에 나온 서남의 말에 한카는 별로 흥미 없다는 반응을 보였음.

오히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인 듯 구는 모습에

되려 흥미가 동한 것은 서남이었음.




"신경 안쓰이나봐?"


"이미 끈 다 떨어진 ♡♡ 뭐하러.

너도 딱히 신경 쓰이는건 아니잖아."


"그건 그래."




한카의 말처럼,

형제인 서남 마저도 종남의 거취는 그닥 궁금한 문제가 아니었음.

어차피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이상

뭔 짓을 해도, 어떤 모습으로 세탁을 해도

다 알게 되어 있었기 때문임.



한참 의미없는 대화들을 주고받던 와중,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한카가 아, 하고 탄성을 냈음.




"그 땐, 도와줘서 고맙다."


"엉? 아, 그거? 뭐 별거라고."


"길드원들도 고마워하고 있어.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잘 풀리긴 힘들었을테니까."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서남이 이번 일에 많은 도움을 준게 사실이었음.

서남은 종남이 엿 먹는걸 꼭 보고싶었다고 주장했지만

고작 그거 하나 때문이라기엔 너무나도 큰 도움들이었음.



한카 길드 특성상 럼블과 금뚝 등의

협동심이 요구되는 팀전 맵에선 강했지만

자주 하지 않는 맵들은 아무리 달리기를 잘한다 한들

매 판 매 판 워낙 운을 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한카 길드를 도와준 것이 바로 서남 길드였음.



한카와 서남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한카의 지인이

서남을 찾아가 자초지종를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가타부타 할 것 없이 흔쾌히 수락한 서남은

그 날로부터 두 길드의 길삭전이 열리는 날 까지

손수 도위의 특성과 여러 기술들을 알려주었음.




"말했잖아~ 난 애초부터 그새끼 엿먹이는게 목적이었다고,

어차피 이 기회에 도위 재미들리는 사람들 생기면

상부상조 하는거 아니겠어?

정 그러면 나랑 가끔 도위나 뛰어주던가~"




답지 않게 긴 말을 늘어놓는 모습에 한카는 픽 하고 웃었음.




"그래, 필요하면 불러. 안 바쁘면 갈테니까."



간결하고도 심플한 요구에 한카는 고개를 끄덕였음.

도와준 것에 비해 이정도면 얼마든지 들어줄 용의가 있었음.

당연하다는 듯이 승낙하는 한카를 바라보던 서남은

다 타버린 담배 꽁초를 바닥에 내던졌음.



"아, 그리고."

"미안한데, 잠깐만."



그리고 서남이 입을 열려던 찰나,

한카가 말을 끊더니 메신저 창을 열었음.

메시지들을 빤히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메시지를 작성하는 얼굴엔

미미한 미소가 걸려있었음.



'아, 그 애 인가보네.'



굳이 묻지 않더라도 대화를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저 표정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했음.

그 무뚝뚝한 한카가 유일하게 웃는 이유.

이번 일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애 하나 때문에 그 고생을 해놓고도,

한카의 마음은 여전히 그 애를 향해 있는 듯 했음.



담배 하나를 더 꺼내어 문 서남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었음.




"하려던 말이 뭔데?"



한참 뒤, 겨우 대화를 끝낸 한카의 표정은

예의 그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음.




"아이고, 이제 끝났냐? 누구, 종녀?"

"어."

"왜? 너 어디갔냐고 찾아?"

"공원이라니까 이따 카드키 좀 뽑아서 보내달래."

"왜 지가 안오고?"

"산호초 안나와서 노가다 중이라 공원 올 시간도 아깝댄다."

"넌 그래서 그걸 들어줘?"

"해달라는데 해줘야지."

"하이고, 열녀 나셨네."



서남의 말에 한카는 작게 웃었음.



"그래도 뭐, 내꺼니까 내가 챙겨야지."



서남은 그런 한카를 보며 가 슴 한 구석이 저릿 한 걸 느꼈음.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사실 할 말이 있다며 약속을 잡은 건 서남이었는데,

정작 불러낸 이유는 모른 채로 의미없는 대화만 주고받은 참이었음.

한카의 물음에 서남은 됐다, 까먹었다. 하며 대답을 회피했음.



"싱겁긴."

"싱거워도 어쩌겠냐~ 너 기다리다 까먹어버린걸"

"됐다, 더 할 말 없는거면 간다."

"그래, 그래. 가라."



귀찮다는 기색으로 손을 흔들자, 카드키를 뽑기 위해

캡슐 쪽으로 향하던 한카가 문득 서남을 불렀음.



"야, 서남."

"왜."

"도와줘서 고맙다."

"뭘 새삼.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거 말고."

"?"

"그 때 저격글에 있던 증거들, 니가 찾아줬다며"

"...아."




길삭전 당일 올라왔던 저격글 속, 이벤트 내의 비매 증언들.

사실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 미리 사진을 찍어둔게 아닌 이상,

찍어 두었더라도 그 사실을 모르는 이상

찾을 수가 없던 증거들이었는데,

서남은 종남을 끌어내리기 위해선 하나의 증거도 놓쳐선 안된다며

손수 테일즈런너 갤러리를 뒤 져

종남 길드의 악행이 담겨있는 글들을 모조리 모아

한카 길드에 전달했던 거였음.

다행이도 종남 길드에게 당했던 몇몇 유저가

채팅 내용을 캡쳐하여 한탄 하듯이 올린 글들이 존재했고,

증거 사진까지 첨부된 그 글들은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되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음.




"다음에, 진짜 도위라도 같이 하자."

"어어.. 그래."

"간다."



가볍게 웃으며 인사하는 한카의 모습에 서남은 또다시 심장이 두근거렸음.

한카가 메신저를 하는 동안,

굳이 잘 사귀는 사이에 끼어들기보다

그냥 포기해야겠다며 생각을 정리한 참이었지만

이대로 놓치면 분명 후회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음.



이래나저래나 부딪혀보자 싶어 한카를 부르려는 순간




"한카야!!!!"



멀리서 종녀의 목소리가 들렸음.



"뭐야, 여긴 왜왔어, 기차맵 뛴다며"

"나 드디어 산호초 먹었어어어어!!!"



한달음에 달려와 한카에게 와락 안기며 배시시 웃는 얼굴과

그런 종녀를 바라보며 같이 웃는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음.

둘이 팔짱을 끼고 캡슐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서남은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뱉어 냈음.




'솔로는 서러워서 살겠나.

나도 애교 많은 여친을 만들던가 해야지.'



바닥에 피던 담배를 내던진 서남은 그대로 자신의 팜으로 향했음






그리고

팜에 돌아온 서남은

온 팜 안을 헤집어 둔 종남을 마주했음.




"뭐하냐?"

"넌 어디갔다 이제와?"

"알빠야?"



순식간에 동화나라에 많은 적이 생긴 종남은

자신의 팜으로 가는 길에 맞기라도 할까싶어

서남의 팜에서 신세를 지고 있던 참이었음.



자신은 남들 시선 때문에 원하는 이름이 생길 때까지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러거나말거나 하고싶은대로 하고다니는 서남을 보니

배알이 꼴 리는 듯 했음.



"야."

"뭐."

"너 내 동생 맞지?"

"뭐.. ♡같아도 일단은 맞겠지."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

"예예, 그러시겠죠."

"아 씨 좀 들어봐!"

"듣고 있잖아."

"나 이대로는 억울하서 못살겠거든?"

"지가 잘못해놓고 억울하다 난리네."

"닥치고 좀 들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아는 형들 중에 헬 뛰는 형들이 좀 있단 말야?"





종남의 말이 이어질 수록 서남의 표정이 굳어졌음.

헬맵 뛰는 형님들이면 서남도 익히 잘 아는 사람들이었음.

크게 드러내고 다니진 않지만, 헬맵의 특성상

잘못 엮이면 피곤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음.




"그래서 뭐."

"그 형님들한테 부탁해서 한카 길드...."



거기까지 들었을 때, 서남은 더 들어주기 힘들단 얼굴을 하고

그대로 종남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음.



"아, ♡♡ 미쳤냐?"



잘못 맞았는지 입 안이 찢어져 피가 흘렀음.

종남이 피 섞인 침을 뱉으며 화를 냈지만

그보다 더 화난 서남이 종남의 배를 발로 차버렸음.




"다시 말해봐, 뭐? 넌 그 꼴이 되고도 정신을 못차렸냐?"

"아, ♡♡!!!!!"

"이제 정신 좀 차려, 니가 그렇게 병신인데 그 형님들이 퍽이나 널 돕겠다."

"그만 때려 ♡♡♡아!!"




종남이 아래에서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제 할 말만 하며, 지속적으로 종남에게 폭력을 가하던 서남은

한참 뒤에서야 종남에게서 떨어져 나와 담배를 물었음.




"어디 그렇게 하기만 해봐,

이번엔 직접 내 손으로 롤러 아래에 쳐박아 줄테니까."


"미친새끼. 뭐? 너 설마 걔한테 반하기라도 했냐?"


"어. 그러니까 죽은 듯이 살아,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씨발, 니가 그런다고 걔가 널 알아주기나 할거 같애?

내 커플 뺏어간 새낀데. 너를?"



악에 받친듯이 소리지르는 모습에 서남이 웃음소리를 냈음.



"상관없어."

"뭐?"

"처음엔 그래도 가지고 싶고, 옆에 두고 싶었는데."

"근데?"

"걔 옆에서 웃는 걸 보니, 괜찮을거 같아."



어느 미 친개의 순정이었음.







번외 : 종녀와 한카의 한가로운 어느 날





"그러니까 지금 나이가 ... 나보다 어리다고?"


"뭐, ...그러네."


"...진짜? 농담 아니고?"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갈 때 즈음.


한카의 나이를 들은 종녀가 말도 안된다며 소리쳤음.


아무리봐도 저보다 훨씬 어른스러운데, 아닌가? 내가 철이 안든건가?


잔뜩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한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종녀는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방긋 웃었음.



"한카야."


한껏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에 한카가 주춤 한발짝 물러섬.


"...왜?"


"언니~ 해봐."


"....어?"


"아 빨리~ 언니, 해봐!"



갑작스런 요구에 한카가 머뭇거림.



"....언..."


"응응"



더듬더듬 입을 여는 얼굴에는 당혹스러움과 민망함이 가득했음.



"....언니.."


잔뜩 빨개진 얼굴을 하고 언니라 부르는 목소리에 종녀는 와락 한카를 끌어안았음.


품 속에서 고개를 살짝 들어 확인한 한카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홱 시선을 피해버렸음.


아, 귀여워. 귀여워!! 한카의 품속에서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종녀는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음.





.

.

.



아마, 지켜보던 소원의돌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진짜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0

  • images
    2023.09.16 09:37 (UTC+0)

    몰입감 쩌네요 대박

    • images
      2023.09.16 10:50 (UTC+0)

      햇달고증도 확실한데 스토리도 탄탄해서 주제만 보고 웃긴 건 줄 알았다가 술술 읽었어요 ㅋㅋ 진짜 재능의 수준 아니신지... 잘봤습니다!! 

    • images
      작성자 2023.09.16 11:05 (UTC+0)

      방록헤헤ㅎㅎㅎ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 images
    2023.09.20 12:44 (UTC+0)

    전에보고 댓글 달고 싶었는데 안달아져서 고치고 이제서야 다네요 ㅠ 아 진짜 너무 재밌어요!!! 한카도 한카인데 서남........................ㄹㅈㄷ순정이네요........

    • images
      작성자 2023.09.20 12:49 (UTC+0)

      헉 재밌게 보셨으면 다행 ㅎㅎ 서남 좋아하는 분들도 은근 많으시더라구요 ㅋㅋㅋ 미 친개의 순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썼는데 잘 표현됐나 모르겠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 images
    2023.09.21 02:25 (UTC+0)

    안녕하세요 소설 너무 재밌게 봤어요 보면서 진짜 몰입했네요.... 한카가 종녀 대하는 발식이랑 서남이 귀여운 여친 만들어야지하면서 한카만 쳐다보고있는게 진짜 기절할것같아요 ㅠㅠ 너무너무 잘읽었습니다 진짜 천재세요. 

    • images
      작성자 2023.09.21 02:28 (UTC+0)

      앗 ㅎㅎㅎ 보고싶은 장면 이것저것 넣어서 쓴거였는데 재밌으셨으면 다행이에요 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 images
    2023.11.11 15:11 (UTC+0)

    마스터피스

    • images
      작성자 2023.11.11 15:30 (UTC+0)

      헤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당 ㅎㅎ 

창작게시판의 글

함께하면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