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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행운을 부르는 편지






어두운 밤이 햇빛에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탓에 아직 피곤에 찌든 그가 왼쪽 눈을 비비며 잠을 깨워보았다. 어젯밤에도 연구에 열중하느라 잠을 떨치려고 쓴 커피를 많이 마신 탓도 있었다.


동화나라에 큰 위기가 찾아온 뒤에, 여러 이유로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그는 계속해서 공주를 치료하는 것과 동화나라에 있는 아티팩트를 모으는 일을 동시에 하며 지냈다. 그리고 같이 있던 치료사 하나가 떠난 뒤에 치료 일을 모두 떠맡게 된 그는 평일이라면 매일 공주의 방을 찾아가야 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새로운 한 주가 찾아와 동화나라에 남은 치료사, 엘림스 스마일을 깨운다.


시작은 몰려오는 졸음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한 커피 한 잔이다. 웬만한 쓴 커피론 택이 없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에스프레소.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에겐 설탕 한줌 따윈 넣지 않는다. 한입 마시자마자 온몸에 찾아오는 쓴맛에 겨우 정신을 차리는 그였다.


커피로 조는 것을 막은 엘림스는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챙겨 늘 가던 곳으로 걸어갔다. 동화나라의 공원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숲 속의 임시거처. 처음 이곳에 머물게 되었을 때 며칠정도만 머물 줄로만 알았던 그였으나, 공주의 증상은 생각대로 쉽게 낫지 않았다. 또한 그가 머물기 시작하면서 동화나라의 흥미로운 것이라면 모두 그의 눈에 들어오게 되어 당분간 그가 감정의 제도로 돌아가는 일은 사라졌다.


공주의 치료는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였다. 비록 동화나라의 안전은 책임 질 수 없지만 보수의 약속이 있었기에 약속을 쉽게 파기하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흘렀기에 엘림스가 단독으로 성에 와도 막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전 보다는 쉽게 치료를 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공주의 방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고 보니 엘림스 본인도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른 시간이였다. 보통사람이라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가려는데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놀라 문쪽을 바라보니, 방문을 열고 얼굴을 슬쩍 내미는 조그마한한(엘림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만 한)소녀 - 라라가 있었다. 소녀와 엘림스 둘 다 서로를 보자 놀란 기색이였다.


서로간의 침묵의 기류가 흘렀다. 이쯤되면 어색해질 것 같아 입을 연 소녀였다.




“……들어오세요.”




엘림스는 그녀의 말을 들은 뒤에야 방으로 들어왔다. 소녀는 자신의 침대 위로 올라갔고, 그는 뒤를 조용히 따르며 소녀 앞에 의자를 갖다 놓았다. 의자에 앉은 뒤에 그가 꺼내는 첫마디는 이것이였다.




“쓸데없이 부지런한 아이군.”


“네?”




갑자기 들어오는 한마디에 소녀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엘림스는 이 말 뒤에 눈을 비비며 정신을 다시 차려보고, 소녀는 그런 엘림스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오히려 그녀가 엘림스보다 멀쩡히 깨어 있는 듯 했다. 엘림스는 후- 하고 숨을을 내뱉은 뒤 소녀에게 물었다.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넌 피곤하지도 않나?”


“어제 일찍 자서 괜찮아요.”




소녀의 말에 엘림스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 하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가 그 말에 납득할 수 있었다. 동화나라에 온 뒤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져 잘 틈이 없었다. 원래 그가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도 한 몫 했고 말이다. 그녀가 일찍 일어난다 한들 제 시간에 잤다면 피곤할 일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생각보다 치료를 일찍 시작하게 된 그는 평소처럼 소녀의 이마에 손을 짚고 천천히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여전히 감정의 배열이 엉망인 채로 굳어있군.’


열심히 배열을 풀 방법을 찾고 있긴 하지만. 엘림스는 이 생각을 뒤에 덧붙였다. 다른 감정의 배열도 그 전과 다를 바는 없었다. 그런데, 유독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배열이 있었다. 호기심의 감정 같아 보였다. 이상하게 느낀 그가 소녀에게 물었다.




“여전히 상태는 그대로야. 그런데, 유독 양호한 곳이 하나 있던데. 요즘 주변에서 뭔가를 하는게 있는건가? 호기심 쪽의 배열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요즘 제가 밖에 잘 나가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창 밖으로 공원을 구경하곤 하는데, 런너분들끼리 요즘에 주고 받는 행운의 편지가 있다나봐요.”




소녀의 대답에 돌아온 그의 반응은 꽤 시큰둥했다. 그 일이랑 내가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었다. 그 반응을 얼추 예상한 그녀는 엘림스의 반응은 신경쓰지 않고 얘기를 이어나갔다.




“비록 진짜 행운을 불러올지는 모르겠지만 행운을 빌라는 느낌으로 주는 것 같잖아요? 서로 주고받으면서 응원도 해주고 말이에요…….”




엘림스는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응원도 해준다는 건 알겠는데, 네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이냐고. 그의 물음이 소녀에게도 전해진건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러워요. 저도 런너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라라의 진심을 들어본 엘림스는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길 뿐이였다. 생각하면 할 수록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그가 보기엔 런너들이 그녀를 싫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건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지? 런너들이 널 싫어한다는 행동도 딱히 보이지는 않던데.”


“겉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저를 미워하실거에요. 카인님의 정체를 숨긴 것도 있고 말이에요.”




그러고보니 그녀는 카인의 정체를 숨기고 지냈었다. 카인이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암시를 주고 동화나라를 떠났을 때, 엘림스는 대략적인 상황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때라도 이 동화나라 구석에서 도망쳐볼까 생각했지만 유효한 치료 약속과 동화나라에 머무는 이유가 따로 있었기에 쉽게 떠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최근들어 그녀 역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지금처럼 반성하는 기미가 나타나는걸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도 치료를 약속한 것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죄책감을 드러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왠지 과거의 일에 얽매여버린 자신이 보여 얼굴이 구겨졌다. 엘림스는 겨우 인상을 펴 보이며 그녀를 살살 달랬다.



“만약 내가 동화나라 주민이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이 동화나라 주민들은 떠나지 않으려 하던데. 마음씨 하난 착하다는 건 내가 보증하지.”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을거에요.”


“참나. 진짜 미워했다면 진작에 이 나라 버리고 도피했겠지. 놈에게 잡혀간 동화나라 주민들을 걱정하고 기다리는 마음에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널 믿고 있어서 인 것도 이유라고 보는데, 난.”




라라는 엘림스의 달램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점점 엘림스의 한계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안 익숙한 방법으로 달래려 하니 오히려 역효과만 난 듯 했다. 한계를 꾹 눌러참으며 엘림스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뒤늦게 자각했다.


‘역시 살살 달래는 건 성미가 안 맞군.’


그는 결국 그 본연의 성격대로 밀고 나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밀고 나간 덕에 지금까지 라라를 치료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었으니. 끝까지 이 성격대로 진행했던 탓에 카인이 천사 연기를 했다는 걸 깨닫고 믿지 않고 있던 그를 뒤늦게서야 그녀가 믿기 시작했으니까.




“네가 자꾸 그런 소릴 해대면 널 진심으로 믿어주는 녀석들을 배신하는 꼴이 되는데?”


“하, 하지만… 제가 잘못을 한 건 맞잖아요?”


“네가 잘못을 한 걸 알면서도 여기 남아있는 이유가 널 용서했다는 생각은 안드나?”




라라가 무섭게 밀고 들어오는 엘림스의 말에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당혹스렁러움에 그를 올려다 보았지만 돌아오는건 냉정한 시선이었다.




“네가 그렇게 의심하는 태도가 널 용서하는 사람을 저버리는 것 밖엔 더 되나?”


“그치만, 엘림스님도 주민분들이 저를 용서했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그때,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가 있었었다. 선물상자 하나를 들고 오는 레드삐에로였다. 상자를 들고 오는 삐에로의 표정은 내심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라라 앞에 온 상자였다. 상자를 라라 손에 쥐어주며 레드삐에로가 말했다.




“요즘 공주님도 런너들이 공원에서 서로 행운의 편지를 쓰는 걸 알고 계시죠? 런너들이 공주님께 드리는 위로와 응원이 담긴 편지라고 하시더라고요. 런너들 모두 공주님이 나으시길 바라고 있으니 몸 거건강 잘 챙겨달라 전해드리러 대신 온 거랍니다.”




그 말을 뒤로하고 혹여나 치료에 방해가 될까봐 호다닥 방문을 닫고 나가는 모습을 무심히 지켜본 엘림스가 다시 라라를 보며 말했다.




“이래도 런너들이 널 믿지 못하는 걸로 보이나?”


“알고 계셨나요……? 런너분들이 제게 편지를 써줄거라는 걸…….”


“여기로 오는 도중에 봤었지. 그들 딴엔 네가 자는 사이에 주려고 했지만 네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그제서야 라라는 엘림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라라는 놀란 표정으로 상자를 조심히 열어보았다. 수십개의 편지가 상자 속에 고이 정리되어있었다. 열린 상자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든 그녀가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네요. 저도 런너분들께 편지를……”




말이 끝맺어지지 않은 건 그녀가 말 도중 엘림스를 빤히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엘림스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라라를 보고 표정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얼굴에 훤히 의미가 써져있군. 난 아티팩트 빼고 안 받아.”


“하지만 엘림스님도 임시지만 동화나라 주민이시잖아요. 혼자 안 받읏으시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감정 에너지가 풍부한 오래된 편지 같은 건 괜찮은데, 갓 써낸 편지는 아티팩트의 가치가 없다.”




확실하게 선을 긋는 탓에 좀 더 밀어붙여보려다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행운의 편지 얘기 때문에 치료가 도중에 멈췄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 그전에 치료 마저 해야죠.”


“흠, 여기서 더 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겠군.”


“네? 오늘의 치료를 여기서 끝낸다구요?”


“오늘 예상치 못한 성과가 있었거든. 네 경과도 전보다 훨씬 좋고 말이야. 편지 쓸거면 알아서 해.”



그 말을 끝으로 가져온 짐을 챙겨 방에서 나가는 엘림스였다. 라라는 그가 말하고 갔지만 경과가 좋아졌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엘림스는 성 밖을 나서며 방금 전에 자신이 보았던 것을 회상했다. 그가 잘못 본 것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라라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볼 수 있었다. 못 볼래야 못 볼 수가 없는 것이였다.


‘웃고 있었어.’


아까 삐에로가 편지 상자를 그녀에게 준 다음이었을 때다. 상자 안에 차곡차곡 담긴 편지는 그가 봐도 런너들의 정성이 묻어나 있었다. 엘림스는 표정 내색 없이 상자 한번, 라라 쪽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때였을 것이다.


‘어?’


그녀에겐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때 엘림스의 얼굴은 당황한 것과 동시에 놀란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가 희미지만 편지 상자를 보며 웃었기 때문이였다. 그 전에는 그 희미한 웃음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웃었다는 것은 감정의 배열의 변화가 존재했다는 뜻이였다.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해아까 방 밖으로 나오기 전에 한번 더 라라의 이마를 짚기도 했다. 그가 본 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형태였고, 다시 한 번 그가 놀라게 된 이유를 뒷받침해주었다.


‘인위적으로 굳게 닫힌 배열에 새로운 형태의 배열이 자리잡고 있다.’


그걸 본 엘림스는 그 후 아까 전에 말한 것 처럼 그녀에게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준 뒤 곧장 방에서 벗어났다. 이 놀라운 사실은 기록을 해야만 했다. 임시 거처 앞에 도착한 엘림스는 마음 속의 희열을 감추지 못하며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엘림스는 문을 열려 하다 문득 이상한 느낌에 행동을 멈췄다. 전에는 없던 위화감이 있던 것이였다. 임시 거처에 있는 위화감을 느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우편함에 손을 댔다. 왠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우편함을 연 후,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자 황당해하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건.”




우편함에 들어 있는 건 어느 편지봉투 하나였다. 가감정 에너지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걸 아티팩트랍시고 보내놓을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그가 먼저 돌려보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엘림스는 그 편지를 꺼내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누가 썼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려.’, ‘~오.’ ……. 보통 사람이라면 쓰지 않을 말투였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인물 중에 딱 한 사람이 이 말투를 썼었다. 엘림스는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한가로이 소박한 거실을 채우는 소파 위에 앉아있던 갓을 쓴 하얀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엘림스는 그 남자를 보자마자 앞으로 가더니, 우편함에서 발견한 쪽지를 들이밀며 말했다.




“이거 편지 썼지, 차사님.”




차사라 불린 남자가 그의 목소리에 감고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앞에있는 오드아이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심기불편한 말투와 구겨진 얼굴에도 차사 - 하랑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럼? 주자들이 요즘 이런 종이로 소식을 전해주는게 인기라더구나. 그래서 이 몸도 한 번 써본게다. 마음에 드는가?”


“마음에 들고 자시고 새 편지는 아티팩트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잖아.”




엘림스의 이어지는 말에도 하랑은 기분나빠하는 내색 없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참 꼬인 녀석이구나. 이 몸에게 이런 편지 하나 받는거 쉬운 일이 아닌데.”


“난 아티팩트면 돼.”


“이왕 받은거 간직이라도 해 두게나. 아니면 자네도 편지를 한 번 써보는 건 어떠하나?”


“내가 왜.”




단호히 되묻는 말에 하랑은 조금 고민하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음, 자네도 동화나라에 머무는 이상 동화나라의 한 부분이 아니더냐.”


“그 말 왠지 아까 치료할 때 들은 말 같은데.”


“공주도 그런 말을 했느냐? 공주도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자네도 지금은 동화나라의 주민인게지, 뭘.”


“…….”




두 명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은 시점에서 구겨진 엘림스의 얼굴이 조금 풀린 듯 했다. 비슷한 말을 들어서 무언가 깨달은 점이라도 있던 것이었을까. 엘림스는 말없이 커피를 집어들었다. 항상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면 꼭 붙어있는 것 이었다.


말없이 한 잔, 두 잔 호록……커피를 물 마시듯 들이키다 이내 다섯 잔 째에 들어가기 전에 하랑이 그의 찻잔과 접시를 뺏었다. 거기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그가 하랑을 째려보았다. 엘림스의 시선에도 그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자네가 물 마시듯 커피를 마시니 잠이 안 오는거 아닌가.”


“……신경 꺼. 생각 정리하다보면 카페인이 부족하다고.”




엘림스의 대꾸에 하랑이 휴, 한숨을 쉬었다. 하랑은 ‘커피는 이만 멈추고 잠이라도 자보게나. 일찍 일어난 것 같은데 피곤하지도 않더냐?’ 면서 명계로 가는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엘림스는 하랑이 사라진 허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영 익숙치 않았는데, 아직 적응하려면 먼 모양이다.


엘림스는 작은 거실을 꽉 채우는 큰 소파에 몸을 맡기고 누웠다. 하랑이 앉았던 부분이 닿은 것 인지 허리쪽에서 살짝 온기가 느껴졌다. 소파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엘림스는 방금까지 있던 일을 회상해보았다.


‘하지만 엘림스님도 임시지만 동화나라 주민이시잖아요.’


‘자네도 동화나라에 머무는 이상 동화나라의 한 부분이 아니더냐. 주도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자네도 지금은 동화나라의 주민인게지, 뭘.’


마치 둘이 짠 듯이 얘기를 했다.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했다면 엘림스 성격상 들은 체도 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안면이 많았던 둘이 이런 얘기를 하니까 선뜻 무시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까 구겨진 얼굴이 조금 풀린 것도 그 이유중 하나였다. 내가 없는 사이에 둘이서 만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모르는 사이에 치료하는 걸 본 걸까. 어느 한 쪽으로 생각하려니 머리가 아파왔다.




“……쳇.”




결국 생각한걸 잊으려고 몸을 뒤척이다 눈을 감아버리는 엘림스였다.


…….


“……음?”




눈만 감는다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편히 오래 잔 것도 오랜만이었다. 하늘을 보니 벌써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시곗바늘 역시 하늘 색과 알맞게 7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깨어있을 때만 해도 아직 나오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깨어나자마자 든 생각은 아침에 보았던 라라의 감정 배열이 어떻게 되었느냐였다.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면 조금 자라나다 금방 사라졌겠지만, 정말 새로이 자라난 것이라면 그녀의 치료에서 엘림스의 아티팩트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만한성과이니까 말이다. 엘림스는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상쾌한 느낌을 이끌고 성으로 찾아갔다. 성으로 다시 찾아가 방문을 두드리니, 이번엔 아침과는 달리 문이 바로 열렸다.




“어, 다시 오셨네요?”




엘림스를 보자 나오는 소녀의 반응이었다. 엘림스는 소녀의 반응에 작게 고개만 끄덕인 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엘림스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항상 가던 방에서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였다.


방을 둘러보다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라라의 개인 책상이었다. 자세히 보니 무언가를 쓰고 있던 것인지 책상 위에 필구와 종이가 놓여져 있었다. 아까 전에 느꼈던 위화감의 주인인 모양이었다. 엘림스가 자신의 책상을 보고 있다는 걸 안 라라가 얼굴이 빨개지며 황급히 말했다.




“아앗, 아직 다 안썼는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던거냐?”




엘림스의 물음에 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말한게 설마 진짜일 줄이야. 그건 그렇고 이때까지 쓰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긴, 여기 런너와 주민들만 해도 수십명은 되는데 웬만한 시간으론 힘들 거라는걸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정말 모두 편지를 써주고 있었을 줄은.


편지란 자고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전까진 남이라도 안 보는것이다. 모르고 있었는데 편지를 받는 그때의 감정이 나올테니까. 지극히 엘림스 기준의 생각이긴 했지만 말이다. 엘림스는 할 것도 없으니 라라가 편지를 다 쓸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다 썼다~”




라라의 한마디에 멍하니 앉아있던 엘림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갔다. 라라는 자신이 쓴 편지를 곱게 접어 편지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그걸 엘림스에게 주는 것이였다. 엘림스는 편지를 보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물었다.




“왜 나한테 주는거냐.”


“엘림스님 편지에요. 쓰다가 들어오셔서 놀랐지만…….”




아무래도 그가 들어올 때 쓰고 있던 편지가 엘림스의 편지였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걸 또 당당하게 본인 앞에서 쓰고 주는 그녀의 행동도 황당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엘림스는 이젠 황당한 표정을 풀고 무표정 상태로 말했다.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는군.”


“그래도…… 엘림스님도 지금 동화나라에 계시니까 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억지로라도 편지를 손에 쥐어주었다. 엘림스는 억지로 쥐어준 탓에 결국 그 편지를 받아들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편지는 전해주었는데, 정작 그가 온 이유를 몰랐던 라라가 다시 왜 왔느냐고 물었다. 엘림스는 대답대신 요구를 했다.




“다시 네 상태 확인만 하고 돌아가려고.”




그 말에 라라는 살짝 갸우뚱 했지만 평소 치료하는 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엘림스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고 다시 한번 감정의 배열을 확인해보았다. 확인 결과는 놀라웠다.


‘ ! ’


아침에 확인했던 새로 생겨난 감정의 배열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것이었다. 오히려 그 전 보다 배열의 범위가 늘어난 듯 했다. 지금까지 변화가 없던 감정의 배열에 새 배열이 생긴다는 케이스는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은 그를 보며 라라가 왜 그러느냐며 물었다. 엘림스는 그녀의 물음에도 멍하니 있었다. 이상하게 느낀 그녀가 툭툭, 엘림스를 건드리자 그제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기엔 그의 표정이나 행동 변화가 꽤 컸다. 그 답지 않게 놀란 표정을 지었으니까 말이다. 더 묻고싶었지만 그의 성격상 절대 말해주지 않을게 분명해 라라는 질문하는 걸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엘림스는 좋은 성과도 보았으니 이제 방에서 나가려고 했으나, 그를 잠시 붙잡는 라라였다.




“뭐야.”


“가시기 전에 이거 하나만 받고 가세요.”




그녀가 또 다시 엘림스의 손에 쥐어주는 것은 한쌍의 편지와 편지 봉투였다. 이걸 왜주는거야. 표정으로 라라에게 질문하는 그에게 라라가 말했다.




“혹시 엘림스님도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요.”


“없으면?”


“없어도 가지고 계세요. 동화나라에 머무시는 동안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라며 편지와 편지봉투를 쥔 그를 방 밖으로 떠미는 라라였다. 그에게 있어선 딱히 필요없는 것들 이었지만, 나름 자신을 생각해서 준 것이기에 쉽게 버리긴 힘들었다. 결국 임시 거처로 돌아가서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해보기로 한 엘림스였다.


임시 거처로 돌아와서, 라라에게 받은 편지와 편지봉투를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본인에게 쓴 편지도 함께 꺼냈다. 편지를 받으면 일단 내용이 궁금한게 사람 심리다. 엘림스는 딱히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용이 뭔지는 궁금해 편지를 꺼내서 읽어보았다.




엘림스님, 아까 아침에 행운의 편지 얘기가 나와서 남겨봐요.

저는 엘림스님이 아침에 그 말을 해주시기 전 까지 저는 런너님들을 의심했었어요.

정말 저를 믿어주시는게 맞는지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엘림스님이 말씀하신 것 덕분에 런너님들이 저를 얼마나 믿어주시는지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런너님들께도 감사하지만, 저는 엘림스님께 많이 감사드려요.

처음 동화나라에 오시고 나서 지금까지 쭉 제 치료를 해주시기도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엘림스님께도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걸로 엘림스님께 행운이 온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아, 그리고 엘림스님도 편지 쓰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제가 준 편지로 한번 써보세요.




이런 내용이였다. 엘림스는 이렇게 정성스러운 편지는 참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이었다. 아, 받아본 적이 없었던가. 엘림스가 온 것에 놀라면서도 꿋꿋하게 편지를 쓴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올 듯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편지를 준 것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이왕 받은거 간직이라도 해 두게나. 아니면 자네도 편지를 한 번 써보는 건 어떠하나?’


분명히 하랑이 말했었지. 정작 간직하는 대상이 다른데도 같은 대상이라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엘림스는 기억을 회상한 뒤에 라라가 준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그 편지를 보며 무언갈 생각하더니, 방에서 펜을 가져와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자네가 아직 살아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싶군, 친구여.’


이것을 시작으로 엘림스는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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