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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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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
테일즈런너
이용등급:
전체이용가
등급분류일자:
2005-07-29
상호: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등급분류번호:
제GC-CC-NP-170203-009호
제작,배급업신고번호:
제 2012-0000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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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즈런너 #UCC_게시판

갬블러

[소설] [소설] Masquerade

인정할게, 그 때.
   먼지처럼 쌓이는 매일에 지쳐가고 있었다고.
   http://tr.hangame.com/community/ucc.asp?seq=4004797

                      &

사랑하는 당신께 이 무도회장의 이야기를 바칩니다.

지루하다. 엘림스 스마일은 언제나 견딜 수 없는 따분함을 느꼈다.

엘림스는 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으로 저를 성가시게 하는 런너라는 작자들이 눈에 밟혔다. 그는 불필요한 호의를 싫어했다. 달콤한 말에는 독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정말 그 어떤 이유없이 저에게 음식이며, 선물이며 가져다주는 것이 불쾌하였다. 개중에는 조금은 친해진 이들이 있었다만, 제 모든 속내를 터놓을 정도가 되지는 못했다. 친구라기보단 조수와 고용인의 관계였던 것이다.

그런 엘림스도 처음부터 이 나라가 지루하고, 성가시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티팩트를 연구하는 학자이기 이전에 그는 세기의 도박사였고, 그런 그의 눈에 동화나라는 제법 흥미로운 장소였다. 아름답기만 한 나라의 경제력. 그 중심에는 카지노의 것과 유사한 룰렛이 있다니. 그 누가 이런 정신나간 시스템을 생각했을까. 엘림스는 작게나마 자신의 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왕성의 지시를 받고 공원의 한편에 자리를 잡은 엘림스는 종종 그곳을 돌아다녔다. 이유야 간단했다. 런너들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를 도박이란 이름으로 갈취하기 위함도 있었고, 도박은 사람의 감정을 담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나라의 문물을 열심히 이용하다보면 외교관의 위치에 있는 제 평이 올라갈 터. 그런 확실한 계산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는 손해볼 것이 없었다. 왕성에서 지원받은 자금은 아직 없지만, 그렇다고 빈털터리 수준은 또 아니었으니.

"안녕! 거기 가면 친구!"

캡슐기계를 둘러보던 엘림스를 누군가 불렀다. 원숭이? 원숭이 탈인가. 아니, 무엇이 되었건 크게 관계는 없었다. 남자는 그를 원숭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훗날 런너들에게 그의 이름이 휴몽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도, 그 호칭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가면 안쪽에서 굴러가는 그의 시선이 고스란히 박히자, 휴몽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파닥대며 제 뒤에 있는 판을 가리켰다.

"이거 한 번 해보지 않을래? 네 행운을 시험하는 거야! 취업이 안 돼서 내가 창업을 했는데…. 이름하여 럭키 스티커 뽑기! 마침 이번 경품은 런너들이 좋아하는 선녀 날개라구!"

이름 엄청 촌스럽다. 그는 습관적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손가락 끝에 딱딱한 가면의 감촉이 닿았다. 스티커마냥 붙어있는 종이들. 저걸 떼어낸 후 긁어내는 형식이겠지. 당첨이 없는 고전적인 사기 수법이기도 했지만, 이 나라는 엄연히 달랐다. 확률이 극악무도할지언정 존재하지 않아서는 아니된다. 드높은 왕성의 검열 탓이었다. 그렇기에 엘림스는 자신이 신경쓸 부분이 없다고 확신하였다. 그렇기에 원숭이가 무어라 떠들어대건 귀기울여 듣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는 그저 판에 손을 뻗어, 중앙에 있는 한 장을 뜯어낼뿐이었다.

"오! 굉장한 패기야! 참가비용은…."

"후불로 하지."

"좋아! 결과는!?"

4등, 선녀의 검은 날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휴몽은 다시 목을 가다듬고서 그에게 교환권을 주었다. 운이 좋았다, 다시 하면 1등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들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졌다. 휴몽의 장사수법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하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 중 한 두명은 꼭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려 들려했다. 그렇기에 그곳으로 몰린 런너들의 시선은 엘림스에게로 자연히 꽂힐 수 밖에 없었다. 워낙에 기분나쁜 인상을 주기도 했으니, 내심 그가 패가망신하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 할 거야? 아니면 자리를 비켜줘! 다른 친구들도 해야 하거든!"

"하나만 묻는데, 여기서 1등이 나오면 어떻게 되지? 이 판은 재활용되나."

휴몽은 엘림스의 질문에 의문을 품었다. 왜 그를 묻는 건지 확실히 하고 싶었지만, 괜한 의혹을 만들 수도 있단 생각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아니! 그냥 전부 폐기해. 전부. 왜냐면 다시 섞는 걸 누가 볼 수도 있고, 상품의 수가 안 맞게 되거든. 왜?"

"좋네. 레이즈. 30회."

이번에는 확실히 돈을 지급했다. 엘림스는 금화 몇 개를 휴몽의 손에 쥐여주었다. 음식을 음미하는 양 판을 전체적으로 쓸어내리던 그는 어느 지점에서 다시 손을 빙글빙글 돌렸다. 1등. 꼬마 선녀 펫. 정확히 두 장째였다. 세 개의 판이 통째로 날아갔다. 이쯤 되니 휴몽 역시 말을 더듬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그, 아! 축하해! 1등 보상 줄게!"

"아니, 나중에 전부 지급받지. 난 너처럼 자잘한 것에 신경쓰지 않거든."

기분이 상하고 말 것도 없이, 휴몽은 이유모를 불안감이 덮쳐옴을 느꼈다. 예비 판이야 많았으니, 그는 엘림스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고민이 무색하게 엘림스는 바닥에 있던 판을 들어 다시 종이를 뜯어냈다. 2등. 선녀의 하얀 날개, 3등, 선녀의 노란 날개. ... 다시 1등. 이래서 물었었구나. 휴몽의 머릿속에 엘림스의 질문이 스쳐지나갔다.

"다음 판."

"자, 잠깐만! 잠깐만! 멈춰봐! 잠깐!"

"그거 알아? 아티팩트는 말이야. 감정이 격해질수록 더 강한 힘을 가진다고. 큭, 큭큭. 그러니까 좀 더 해야지. 이런 진수성찬이 눈 앞에 차려져 있잖아."

1등, 1등, 1등. ……. 그의 도박은 휴몽이 대성통곡을 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끝내 한동안 휴몽은 공원에 보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엘림스를 보면 눈을 피하고는 했다. 그런 식으로 나라에 있는 도박 캡슐들은 전부 뜯어냈으니, 그가 이 나라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곳에 머무르는동안 몇 개의 캡슐이 더 추가되었으나, 그에게는 찰나의 유희, 그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엘림스는 갑작스레 왕성에 찾아온 귀족을 어깨너머로 살펴보았다. 그 사람은 자신을 나비부인이라고 칭했다. 그는 걸음걸이부터 하여 언행은 하나하나가 고풍스럽고, 이지적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복식 하나하나가 그의 이름처럼 나비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구두와 크라운에는 나비의 날개가 달려있었고, 하관만을 드러낸 검은 천은 나비의 허물을 닮았다. 하지만 그렇게 덕지덕지 붙였음에도 전혀 과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자체가 한 마리의 나비의 현신같은 느낌을 주었다.

"얼마 전 동화나라에 제가 직접 만들어낸 장신구를 몇 개 보냈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현자 이든은 느릿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런너님들의 복식이 한 층 화려해졌습니다. 부인께 감히 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오나 모두가 만족하고 있더군요."

"그리 이야기해주시니 기쁠 따름이네요. 후후. 다름이 아니라,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에 국민들의 민심이 많이 흔들린다 들었습니다. 그를 달래기 위한 무도회를 열고자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삐에로들이 술렁거렸다. 무도회? 그러고보니 아직까지 동화나라에 무도회가 열린 적은 없지 않았던가. 최근 동화나라는 여론이 좋지 않았다. 공주를 대체 어떻게 대우하기에 웃지 않느냐는 뜬 소문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 무도회는 흉흉해진 민심을 바로잡기에도 좋은 연막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금전적인 문제일텐데. 황제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라라를 웃게 하기 위해'라는 좋은 구실도 있었으니. 하나 그걸로 될까. 그 많은 비용은 누가 감당한단 말인가. 아마 그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였으리라. 부인은 화려한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 제 무도회는 아주 특별하지요. 제가 배부한 초대장을 가지고 잠에 들기만 하면 됩니다."

조금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이 나라에는 당장 천사 몇 명과 감정을 이용한다는 아티팩터까지 존재하지 않던가.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없거니와, 나비 부인은 제법 오래된 우호관계에 속한 이였다. 속일 이유도 없거니와 속는다 한들 고약한 농에 그칠뿐이었다. 여자에게 화살이 돌아가든, 진정으로 꿈의 무도회가 열리든, 어찌 되었건 황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방향을 돌릴 수는 있음은 명확하였다. 이든은 특별한 손실이 없음을 깨닫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도 전하겠습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다만 몇 가지 규율이 있습니다."

엘림스는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즐거운 일이 벌어지겠다고. 그는 종이와 펜을 꺼내어 규율들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모든 관계는 초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아는 이라 한들 그곳에서는 그저 생판 남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날이 밝으면 무도회장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를 어길 시 다음날 밤까지 무도회에서 나올 수 없다.

세 번째. 얼굴을 가리고, 모두에게 존칭을 사용한다. 특유의 말버릇 같은 것이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해당 규율을 어길 시 무도회에서 추방당하며 다음 날 초대장을 회수한다. 엘림스는 부인에게 초대장을 받았다. 일곱 삐에로는 초대장을 복사하여 사방팔방으로 나눠주기에 바쁜 듯 했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했다. 그가 무도회에 들어가는 것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깊은 불면증이 있었던 엘림스는 수면제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된 잠을 청하고자 하는 본능이 솟아날 때마다 감히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는 하였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었지만, 이는 탐사였다. 아티팩트를 취하고자 띠루족의 섬에 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숙소로 돌아가 몸을 뉘였다. 이불을 덮고 있으니 불쾌하지 않은 온기가 덮쳐온다. 천천히 손가락 끝에서부터 힘이 빠져나간다. 평생을 꼿꼿하게 서있던 거목이 무너지듯 전신의 모든 힘을 잃어버린 그는 아래로 잠겨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솜과 천의 무게가 천근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는 지하세계로 빨려들어갔다.

눈을 떴다. 엘림스는 고전적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무도회장의 위에 서있었다. 자신은 약의 힘을 빌었지만 먼저 잠든 이들은 벌써부터 왈츠를 추거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등의 사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 무도회장의 누구도 소란스레 움직여 엘림스의 정신을 갉아먹던 이들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엘림스 스마일은 자신의 얼굴에 나비의 허물같은 천이 덮여있는 것을 깨달았다. 시야는 어느정도 트여있으나 타인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귀족들이란 규율에 있어서는 지나칠 정도로 까탈스러웠으니.

도박사는 주위를 주욱 둘러보았다. 그에게 있어 타인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행위 역시 도박의 연장선이었다. 최근에야 아티팩트 수집이니 어쩌니 하는 명분이 따라왔으나, 그는 그 스릴 자체를 즐기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상대를 집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운부천부에 이 무도회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의 짝을 찾아내야 했다. 상대가 유희거리가 될지, 진정으로 운명이 점지은 짝이 될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즐거운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붙였다. 하나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져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즐겁지 않았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와 생각이 겹치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의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하였다. 미안합니다. 그는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익명의 무도회였으니 이 정도는 해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란 믿음,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금방 흥미를 잃고서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겨진 그는 다른 짝을 찾으러 떠났다. 서로간의 불쾌함은 없었다.

새하얀 머리를 가진 사람. 엘림스는 직감했다. 이 사람이 게임의 시작점이자 마침표가 될 것이라고. 어떠한 근거도 명분도 없었다. 이 무도회가 비현실적이니, 저의 사고 역시 비현실적이어도 된다는 관대함이 있었으리라.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구두소리가 제법 묵직하게 울린다.

헌데, 그리 생각한 것은 엘림스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가 눈에 담아두었던 사람 역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의 눈을 볼 수는 없었으나,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주했다. 엘림스는 키가 상당히 큰 편이었기에 상대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가장 눈에 띈 건 당신이었어요."

엘림스는 들어보지 못한 말에 이질감을 느꼈으나, 그것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건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확실했다. 그는 조심스레 팔을 들어올렸다. 상대방 역시 그리 하였다. 엘림스는 그가 약하게 주먹을 쥐고 있음을 보았다. 손가락을 정성스레 하나하나 펼쳐내고서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손을 마주잡았다. 이 일련의 행위는 그 어떤 거부감도 없이, 부드러이, 물흐르듯 이어졌다.

"온지 오래 되었나 봅니다? 그리 말하는 걸 보니."

"조금 되었지요. 제일 처음으로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짝을 찾지 않았습니까. 홀로 즐기는 무도회가 무슨 즐거움이 있다고."

그는 엘림스의 말에 작게 웃었다.

"당신을 만나려고 그랬나 봅니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허울 좋은 거짓일지, 정말로 그가 저를 마음에 들어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다른 이에게 큰 무례를 저질러 먼저 온 이들은 그를 거부하였을지도 모른다. 하나 무도회장에서 자신을 제외한 타인은 모두 병풍이 아니었나. 그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암묵적인 생각이었기에, 진정으로 그렇다 한들 누구도 저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고, 알려줄 이유도 없었다.

"한 곡 추시겠습니까."

"당신의 뜻대로 해야지요."

상대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왈츠의 기본적인 동작이었다. 서로의 마주잡은 손을 우아하게 뻗어올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서로의 걸음이 꼬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기품있는 움직임을 보였다. 잠시 염려가 되었던 것인지, 발 밑을 바라보고 있던 파트너는 천천히 엘림스를 올려다보았다. 신뢰하게 된 것이었다.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당신의 백발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당신은 나보다도 더 하얀 색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리 이야기하는군요."

"완벽한 하얀 색은 더럽혀지기 쉬우니까요. 당신은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지만 더럽혀지지는 않아요. 꼭 당신처럼."

그는 말재주가 뛰어났다. 엘림스는 자신의 파트너가 하는 말과, 단어, 심지어는 숨결조차도 신선한 충격으로 느꼈다. 그들은 춤을 멈추고 테이블에 앉았다. 꼭 우리들을 위해 빚어진 장소같다고, 엘림스는 생각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서, 엘림스는 말했다.

"…꼭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요. 당신, 혹시."

"쉬이잇."

가느다란 손가락이 엘림스의 입술에 맞닿았다. 그제야 그는 무도회장의 규율을 떠올렸다. 긍정의 의미로 천천히, 그의 손을 치워냈다. 하지만 호기심만큼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저를 잘 아는 사람이 이 나라에 있던가? 그러다, 엘림스의 생각이 어느 한 지점에 다다랐다. 있었다. 잘 알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 이 모순적인 말을 증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그는 생각마저 막을 수 없다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검은 천 뒤에 가려진 저를 궁금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랍니다."

엘림스는 함구했다. 그는 이 꿈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욕을 충족하는 것을 막고, 어떠한 규율에 가두어두는 것. 그리고 그 표현들을 삼키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상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요. 하지만 어쩌겠나요. 이곳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까요. 날이 밝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만, 꿈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죠. 꿈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현실은 몇시간이 지나있고, 또 반대로 꿈에서의 몇년이 지났음에도 현실은 단 5분조차 지나지 않아있고. …그래서 이곳이 더 로맨틱한 것이지요."

"낭만주의자는 아니라 공감은 어렵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요. 예. 뭐."

파트너는 엘림스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그는 다시 웃었다.

"그렇기에 언젠가 꿈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그 날, 우리 다시 만나요. 이곳이 아닌 현실에서. 당신은 이성적인 탓에 무도회에서 짝을 찾았다면 그냥 들어오지 못해도 되는 일인데. 왜 알려주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꿈을 꿈이라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데. 좀 더 즐겨도 되지 않겠나요."

"이곳은 무의식의 영역이기에 일어났을 때 기억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죠. 하지만 만약 기억에 남아있다면 기꺼이 그래야겠지요. 당신이 누구인지, 내 생각이 맞는지. 그 정도는 명확하게 해두고 싶습니다."

"그건 말이에요."

엘림스는 그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괘종시계가 크게 울렸다. 댕. 머지않아 작은 울림만이 가쁜 호흡을 이어가고 있을 때, 다시 시계가 울린다. 댕.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였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날이 밝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나비 부인은 어느새 홀의 중앙에 서있었다. 그녀는 밤의 커튼을 걷어냈다. 새벽빛이 무도회장에 스며들었고, 그 빛을 맞은 이들 하나하나가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싶어, 엘림스는 자신의 파트너의 손을 잡고서 그늘진 곳으로 몸을 피했다.

모두가 사라지고, 오직 단 둘만이 남았을 때, 빛은 엘림스를 먼저 비추었다. 그는 꿈의 육신이 바스러짐과 동시에 천천히 깨어나는 의식을 느꼈다.

"그럼 다시 만날 날을 위해, 안녕히…."

엘림스는 눈을 떴다. 현실에서 그 기억을 되짚어보니, 마지막으로 들린 그 목소리의 주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 더 잠을 청하고, 눈을 뜨거든 그를 만나러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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