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라레의 서재

[이벤트]그냥 전장의 욕망을 보고 싶었다.

 왼쪽 눈은 이미 파내어져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째선지 이 왼쪽 눈을 도려낼 때 느낀 감각의 고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목을 조이는 차가운 쇠사슬이 너무나 갑갑하고 무거웠다. 숨을 쉬는 데에 신체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목을 감싸는 이 사슬의 감촉이 마치 나의 목을 무자비하게 눌러대는 것 같았다.

 뒤틀린 오른쪽 팔목의 감각이 뼈를 타고 내 뇌 속으로까지 전해져왔다. 팔이 뽑혀나간 듯이 팔목 아래의 감각이 전해지지 않았고, 위장이 뒤엎어져 구역질과 함께 위도 함께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고통은 이 부러진 오른쪽 팔목이 내 눈에 너무 잘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이 흉측한 팔목이 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다른 어떤 고통보다 내게 더 확실한 절망을 선사했다.

 엉덩이와 허벅지는 시야가 좁아진 지금의 나에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 내 엉덩이와 허벅지에는 선명한 채찍자국이 나있고, 그 채찍자국이 새겨진 부분의 피부는 보기 흉하게 찢겨져있을 것이다.

 무릎 아래는 엉덩이나 허벅지와는 달리 이 흐릿한 한쪽 눈으로도 확실하게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내 흐릿한 눈에 무릎 아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없었으니까.

 내 신체는 정말 보기 나쁘게 희롱당해 부서져있었다.

 “화타님.”

 오랜 침묵을 깨는 오래간만의 소리.

 누구의 목소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 말고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녀 밖에 없다.

 “길평.”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길평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오른손에는 내 다리를 자른 톱을 들고, 왼손에는 내 손목을 부순 망치를 든 길평이 내게 다가왔다.

 “길평.”

 난 길평의 이름을 다시 불러봤지만, 길평은 내 부름에 답하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나를 제대로 보고 있지도 않았다.

 이미 그럴 거라 예상은 하긴 했다.

 “전 그저 평화를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어요.”

 길평은 허공과 나 사이의 무언가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전란이 하루 빨리 없어지길 진심으로 원했어요.”

 날 바라보고 있지 않은 길평의 눈을 바라봤다. 길평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적이니까 죽여야 된다. 같은 이유로 사람을 죽고 죽이는 것에 미친 이 중원을 바꾸고 싶었어요.”

 길평은 지금 빛을 찾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고, 조조 같은 강한 군주야말로 그런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죠.”

 톱과 망치를 떨리는 손으로 쥔 채,

 “하지만 아니었어요. 조조, 그녀 또한 결국 이런 중원을 만든 동조자이자 군주. 그녀는 그저 지배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자신을 이끌어줄 강한 빛을 찾고 있었다.

 “전 이 중원을 바꾸기 위해선 일단 이 중원을 지배하는 군주들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어요.”

 하지만 길평은 나와 허공 사이의 ‘무언가’에서도 그 빛을 찾지 못했다.

 “조조를 암살하려했지만, 결국 실패하게 됐어요. 암살에 실패한 저는 역적이자 반역자로 몰리며 세상에게서 도망쳤죠.”

 길평이 나를 그 텅 빈 어두운 눈으로 바라보자,

 “그러던 그때, 저의 손을 잡아주신 게 화타님이에요.”

 나와 길평은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다.

 “화타님은 조조 같은 자들과는 달리 진정으로 평화를 생각하시는 분이에요.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시는 분이에요.”

 길평은 손에 쥔 톱과 망치를 이 어두컴컴한 방의 구석 어딘가로 던져버리곤 내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다.

 “전 그런 화타님을 사랑해요.”

 길평은 내 앞에서 두 무릎을 꿇고는 나의 왼손을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당당하고 강하고 아름다우신 화타님을 정말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요.”

 땀과 피가 얽혀있고, 지저분하게 헝클어진 내 머리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런데 어째서 화타님은 이런 저를 놔두고 떠나시려는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약해지신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지으신 거예요?”

 길평은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빠르지만 정확한 발음과 확실한 의지로 내게 질문했다.

 하지만 나는 길평에게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길평이 내 대답을 듣지 않는다는 것쯤은 내 목에 사슬이 채여지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채찍자국이 새겨지고, 오른쪽 손목이 부서지고, 왼쪽 눈이 파내지고, 무릎 아래가 잘려나갈 동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전 인정할 수 없어요, 그런 화타님의 모습.”

 길평의 왼손이 내 머리털을 강하게 휘어잡았고, 길평의 오른팔이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전 인정할 수 없다고요! 그런 화타님의 모습을!”

 길평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절 버리고 가지 마세요! 제게서 사라지지 마세요! 제 앞에서 무너지지 마세요! 제발!”

 나는 나를 희롱하고, 망가트린 뒤 이제는 또 울며 비명을 지르는 길평을 보면서도 신기하게도 어떠한 원한도 공포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길평을 동정할 뿐이었다.

 약하고 갈 곳 잃은 어린아이를.




 답돈의 양쪽 팔목은 침대의 귀퉁이와 수갑으로 이어져있었고, 목은 두꺼운 밧줄로 묶여져 조조의 손과 이어져있었다.

 “조조! 이 썩을 녀석이! 지옥에나 떨어져라!”

 답돈은 수갑과 목줄을 찬 상태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침대에서 몸을 움직이며 날뛰었다.

 하지만 조조는 오히려 답돈의 그 몸부림이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조조!”

 답돈이 소리치며 날뛰어봤지만, 그녀의 팔을 묶고 있는 수갑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그녀의 목을 옭아매고 있는 목줄을 잡고 있는 조조도 딱히 그녀를 풀어줄 생각은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조조는 채찍을 들고 답돈을 향해 내리쳤다.

 그리고 또 내리쳤다.

 다시 내리쳤다.

 답돈의 몸부림이 멎을 때까지 내리쳤다.

 여러 번의 채찍 소리가 방 안을 울린 끝에야 답돈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날뛰는 것을 그만두었고, 조조의 채찍도 그 움직임을 잠시 멈추게 되었다.

 “나는 시끄러운 녀석을 꽤 좋아한다.”

 조조가 답돈을 향해 얼굴을 좀 더 가까이하며 속삭이듯 이야기했고, 답돈은 비웃음 섞인 눈웃음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조조를 보며 입술을 더욱더 세게 깨물었다.

 “그러니 좀 더 시끄럽게 굴지 않겠나?”

 “조조!”

 답돈이 이빨을 세우며 자신에게 가까이 있던 조조의 얼굴을 물려했지만, 조조는 이미 답돈의 그 반응을 예측이라도 한 듯 가볍게 피할 뿐이었다.

 “썩을!”

 답돈이 오열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조조가 채찍으로 답돈을 내리쳤다. 답돈의 찢어진 피부 사이로 선혈이 조금씩 흘러내려 새하얀 침대를 붉게 적셨다.

 “너 때문에 나는!”

 다시 답돈이 소리치자, 조조는 다시 채찍으로 답돈을 내리쳤다.

 “나의 가족들은!”

 답돈이 울부짖자, 조조는 다시 채찍으로 답돈을 내리쳤다.

 “우리들은......!”

 답돈이 힘 빠진 소리로 울부짖자, 조조는 다시 채찍으로 답돈을 내리쳤다.

 “......!”

 답돈이 쉰 목소리로 말로 변하지 않는 정리 안 된 소리를 외치자, 조조는 다시 채찍으로 답돈을 내리쳤다.

 답돈의 목소리가 너무 쉬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조조는 다시 채찍으로 답돈을 내리쳤다.

 답돈은 입 하나 뻥긋 하지 않았지만, 조조는 상관없이 다시 채찍으로 답돈을 내리쳤다.

 이윽고 방 안에는 답돈의 고통에 떠는 신음소리와 조조의 채찍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가후.”

 채찍소리가 멈추고, 조조의 목소리가 조용히 방 안을 맴돌았다.

 “네.”

 조조의 뒤에서 가후가 조용히 다가왔다.

 “이 ‘개’랑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군.”

 그 말을 들은 가후는 조조에게 다가왔을 때처럼 조용히 조조에게서 멀어져갔다.

 가후가 살며시 열어젖힌 문틈으로 들어온 빛이 무력하게 떨고 있는 답돈과 채찍을 바닥에 내려놓고 답돈이 묶여있는 침대로 올라가는 조조의 모습을 비췄다.

 가후는 문을 닫으며 벽에 기대 무릎을 끌어안고 바닥에 앉아있는 장각을 곁눈으로 바라봤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장각은,

 “난 잘못 없어. 난 잘못 업어.”

 라며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후는 그런 장각의 모습을 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장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장각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소곤거렸다.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조조에겐 대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장각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가후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떨리는 미소를 하고 있는 장각에게서 조용히 멀어져갔다.




*근데 따지고 보면 화타를 그렇게 만든 건 조조나 유비 같은 자기 욕망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해대던 군주들 아님?

#솜씨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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