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이에오
“주신 루페온의 가호 아래……”
예배당에 사제님의 마무리 기도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맛있는 냄새가 예배당을 가득 메운다.
일명 간식 배식 시간. 간식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론 한 끼는 충분히 해결할 수준의 양이다.
기도가 끝나면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예배당을 돌며 신자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준다.
간식 주머니. 빵과 약간의 잼, 그리고 치즈가 담긴 주머니가 내 손에 톡 올려진다.
간식을 받으면 감사 인사를 하곤 예배당을 나와 레온하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천사상 분수대에 걸터 앉아 야곰야곰 간식을 먹었다. 간식을 다 먹으면 마을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 배고프면 주점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해 먹고 또 동네를 쏘다녔다.
저녁이 되어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면 로그힐로 넘어가 낚시터 근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날의 해가 뜨면 나는 어제처럼 레온하트의 예배당으로 향한다. 가서 예배를 듣고 간식을 받고, 간식을 먹고, 동네를 해가 질 때까지 쏘다니고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고.
이것이 내가 로스트아크에 들어왔다는 걸 깨닫고 난 후의 일상이다.
NPC처럼 반복되는 하루. 어찌보면 NPC보다 더 NPC처럼 사는 나의 하루.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을 놔 버릴 것 같아서 최후의 수단으로 계획한 일과였는데 다행스럽게도 그게 효과를 본 것인지 지금은 나름 이 로스트아크 게임 세상에 적응을 한 상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풀썩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하… 평소처럼 일일숙제 끝내고 주간 레이드 버스 신나게 타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는데 왜… 도대체 왜… 개발진이 힘들게 만든 레이드 직접 안 뛰고 버스 탔다고 벌 받는 건가?’
매번 반복되는 의문을 오늘도 똑같이 반복하며 잠을 청한다.
***
로스트아크에 들어와서의 첫 기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로판에서 지겹도록 보아왔던 설정에, 실제로 일어나면 안 놀랄 수 있을 것 같다고 우스갯 소리로 말하기까지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상상하던 것과 그 체감의 무게가 전혀 달랐다.
나는 허름하고도 단촐한 방에 있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처음엔 내 몸에 꼼꼼하게 감긴 붕대와 붕대 위로 약간의 피가 비친 흔적을 보고 ‘인신매매인가, 장기밀매인가’ 하는 온갖 의심에 공포로 덜덜 떨었다. 그러다 방 한쪽에 놓인 책장에 꽂힌 책을 보고 막연한 공포를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책장에는 내가 하루 종일 붙들고 살았던 로스트아크에서 언급되던 종교 ‘세이크리아’ 관련 서적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순간 극도의 설정충인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됐거나 몰카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현실의 내 외모를 보면 그럴 일은 추호도 일어날 일이 없는데다 돈이 많은 부자도 유명인도 아닌 그저 하루하루 스트레스와 돈에 허덕이는 현대인 1,2,3에 가까운 일개 가난뱅이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순간적인 패닉에 빠트릴 정도로 가장 큰 감정을 조성한 공포를 걷어내자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에 호흡을 가다듬고 정보를 더 얻기 위해 방을 둘러보았다.
‘좀 더 정보가 필요해. 확신할 수 있는 그런 정보. 세이크리아는 은근 흔하잖아?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그러다가 거울을 보게 되었다.
현실의 내 얼굴은 사라지고 그린 듯 귀엽고 앙증맞고 예쁜 외모가 보였다.
바로 로스트아크에서 내가 선택했던 스페셜리스트의 커마였다. 스타일북에서 2박 3일 동안 고르고 골라 선택해 다운받은 외모였기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외모였다.
“……”
나는 눈을 비볐다. 여전히 예쁜 외모가 거울에 있었다.
이번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거울에 있는 예쁜 미소녀 역시 뒤로 물러났다.
그제서야 확신이 들었다. 지금 내가 로스트아크 속에 들어와 있다는 확신이.
확신이 들자마자 조금 남아있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는 서둘러 직업을 확인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떠오른다.
“아 제발. 기상이. 기상이.”
예쁜 외모에 기뻐할 법도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로아는 커마 이쁜 게 전부인 게임이 아니니까.
“아… 도화가네…… 아. 루페온이시여… 이제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라는 건가요…”
직업을 확인하고 나서는 상태창을 확인한다. 다행히 대충 비슷한 단어만 말해도 바로바로 반응이 왔기에 게임 시스템에 대한 혼란은 적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왜. 다 회색이야? 장비 다 끼고 있고 악세, 팔찌, 돌 다 끼고 있는데 회색이지?”
심지어 스킬도 봉인되어 있었다.
“아니. 그럼 나 어떻게 여기서 먹고 살아?”
그 순간 인벤토리 창이 켜지며 골드와 실링이 강조되듯 반짝였다.
골드 2,158,270
실링 145,520,789
“……”
그래… 참. 고맙다…
자랑스럽게 반짝이는 인벤토리의 골드, 실링 금액을 손으로 휘휘 저어 없애고 침대로 돌아가려는데 창문이 보인다. 유리가 끼워진 창문 너머로 바깥이 보였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세상에 불을 지른 듯 불길하게 짙은 주황색이 가득 마을을 메우고 있었다.
잠시 그걸 보고 있는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짙은 검은색의 머리칼에 그만큼이나 새까만 눈동자를 지닌 남성이 쟁반에 음식과 컵을 담아왔다.
눈이 마주쳤을 때, 아니 남자를 본 그 순간 비명을 지르거나 공포로 몸이 얼어붙을 줄 알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이… 이게 빙의자 버프인가?’
오히려 혼자 있던 때에 비해 머릿속으로 어이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긴장이 풀려버렸다. 내가 방에 서 있는 걸 발견하자 무표정이었던 남자의 표정이 환해진다.
“깨어났군. 정말 다행이야…… 몸은 좀 어떤가? 괜찮은가?”
그러나 환한 미소, 따뜻한 목소리와 달리 남자의 눈썹은 슬픈 듯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가 원래 그를 그렇게 대했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침대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데 방 밖에서 인기척과 작게 소근 거리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자네가 발견해서 그런가 자네 말고 따르지를 않으니.”
“요즈족 같은데 홀로 나올 리는 없고, 일행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성국에 수소문을 해달라 요청을 하는 건 어떤가?”
“일단 제가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악마들의 출몰이 잦아지고 있는 지금 성국에 이런 일로 폐를 끼칠 순 없는 일이니까요.”
“알겠네. 그리고 여기 요청했던 식재료들…”
방문 너머에서 소곤소곤 조심스러운 대화가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추론을 하는데 갑자기 두통이 밀려온다.
예기치 못한 데다가 고통도 커서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 신음이 새어나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눈을 ** 파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스러운 두통은 식은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힐 때까지 머리를 휘젓다가 사라졌다. 두통 때문에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뒤척이다 천장을 보고 눕자 하나둘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몰래 일행을 쫓아 배를 타고 험한 바다를 가르고 도착한 이름 모를 장소.
거기서 일행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다 눈부시듯 아름다운 사람이 건넨 손길. 손을 내민 사람 뒤에는 책에서 보았던 ‘루페온 신의 종’이라는 뜻의 그림이 그려진 깃발이 가득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신의 종이라 해도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쫓아간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는 피를 뭉쳐 만든 것처럼 검붉은 돌이 가득한 곳으로 안내했고, 그 이후의 기억은 없었다.
잠깐의 암흑 뒤에 이어진 기억은 손을 내밀어준 사람과 똑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난도질 된 채 피와 내장을 쏟아내며 죽어가고 있었고, 내 온몸도 피범벅이 된 채였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들어 와 현장을 살폈다. 참혹하고 잔인한 현장에 비명을 질러야 하거나 식겁을 해야 하지만 오히려 다들 기쁜 듯 웃으며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빛나던 사람이 손을 뻗는 것을 끝으로 또 한 차례 기억이 끊겼다.
그 다음은 매서운 바닷바람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허겁지겁 아무 배에나 숨어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 앞선 장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비록 지금은 어떻게 되돌아가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내가 태어났던 곳 보다는 못했지만.
일행은 찾을 방법조차 없다는 슬픔과 절망에 휩싸여 수풀에 숨어 숨죽이고 있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황금색으로 빛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뒤에도 그 깃발이 있었다.
공포에 온몸이 얼어붙고 공포감에 가득 찬 괴성을 쏟아낸 후에 기억이 또 끊겼다.
그 뒤의 기억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보여주듯 계속해서 끊김의 연속이었다. 특히나 나를 제일 먼저 발견했던 그 황금색으로 빛나던 그 사람을 마주할 때는 끊김과 더불어 비명이 난무했고 가끔 피도 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 대신 새카만 머리칼에 새카만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왔다. 그러자 기억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기억의 주인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비록 조금씩 불안해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러다 그 황금색의 기사가 다시 나타났다.
모습이 드러난 건 아주 찰나였지만, 황금색 머리칼, 파란색 눈동자, 황금색으로 자수가 놓아진 새하얀 망토와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 그리고 휘날리는 망토에서 언 듯 보이는 그 깃발의 무늬.
그걸 끝으로 온몸이 칼에 난도질 되는 고통, 패닉에 빠진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황금색의 기사가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달려오는 것이 기억의 끝이었다.
이 기억들을 여러 번 반복해 떠올리고 나서야 대충 내가 빙의한 요즈족의 상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림레이크를 떠나는 일행들을 몰래 따라서 나왔다가 세이크리아에 잡혀 나쁜 일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이 요즈를 데려갔던 사제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패닉에 빠지는 것 같았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그 기사. 그 기사가 요즈를 처음 발견해 구해줬지만 나쁜 짓을 했던 사제와 비슷해서 패닉에 빠지니까 염색을 한 건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면서 나를… 아니 이 요즈를 구해서 돌봐주는 남자를 떠올린다. 염색한 검은색의 머리칼과 대조되는 뽀얀 피부가 눈에 남성이었다.
‘황금색으로 빛난다는 기사가 요즈의 기억에서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나서는 얼굴이 보이는 걸로 보아 확실히 좀 마음을 놓았던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얘가 서로 동일인물인 걸 잘 모르는 거 같기도 하고.’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푸흐흐. 알게 뭐야. 이제 내가 그 요즈인데. 아니 근데 세이크리아 이 ****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작게 꿍얼꿍얼거리며 속으로 세이크리아 욕을 한바가지 퍼붓는다.
그러다 또. 또 의문이 떠오른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 혼자 되묻는 여러 의문들 중 하나.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 어느 시대야. 사슬전쟁 종전 기념수가 없는 걸 보면…… 아직 사슬전쟁이 터지기 전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루테란은, 다른 에스더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
스킬도, 아이템도, 장비도, 악세도 그 모든 것이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깊은 한숨이 꾹 다문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나를 발견해 돌봐주는 남자의 염색한 머리색만큼이나 새카만 밤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었다. 달은 창문을 지나 나에게까지 그 빛을 내려주었지만 내 막막함을 달래주기엔 너무나도 미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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