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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A VIKING,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게임명 :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Assassin's Creed Valhalla)
개발 / 배급 : 유비소프트
장르: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플랫폼: 콘솔, PC (Steam)
키워드 : #바이킹 #암살자 #오픈월드 #뿌우우우


수천년에 걸쳐 쌓여온 인류의 역사는 이제 단순히 지식의 개념을 넘어, 언제든 필요에 따라 재해석되고 가공되는 주요한 콘텐츠 소재입니다. 이른바 '퓨전 사극'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재해석된 가공의 역사가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 음모론과 실제 역사를 교묘히 엮은 창작 콘텐츠가 소설의 근간이 되기도 하죠.


유비소프트의 대표 시리즈 타이틀인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그간 인류 역사의 수많은 지점들을 재해석하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곁들여 소재로 써왔습니다. 십자군 전쟁부터 르네상스, 산업 혁명기와 대항해시대에 이르기까지, 어쌔신 크리드의 세계에서, 다양한 현실 속 역사 변곡점의 이면에서는 항상 암살자들과 템플러들이 칼을 맞대왔습니다.


▲ 다양한 시대, 공간에서 활약한 암살자들


2017년부터 시작된 '신화 트릴로지'는 다소 다릅니다. '역사'라는 기록의 지점을 넘어, 유비소프트는 '신화'라는 기록과 구전 설화의 시대를 재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리진'에서는 이집트 신화를 다루었고, '오디세이'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루었죠. 그리고 지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이하 발할라)'를 막 출시했습니다.


출시 전부터,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내외적으로 다양한 이슈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고스트 리콘 브레이크포인트'부터 약 2년 간 이어진 유비소프트의 졸작행진에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 팬들의 기대감이 만연했고, 근시일 내에 최고로 기대받는 오픈월드 게임인 '사이버펑크 2077'이 출시된다는 악재까지 달고 있죠.


역대급으로 무거운 어깨를 한 채, '발할라'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제부터 오랜 시리즈의 팬이자, 게이머로서, 그리고 게임 기자로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양 어깨에 유비소프트와 팬들의 기대를 얹고 첫 발을 내디딘 발할라가 과연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인지 말입니다.


※ 본 리뷰에는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의 스포일러 및 폭력적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LIKE A VIKING



LIVE LIKE A VIKING
THINK LIKE A VIKING
FIGHT LIKE A VIKING
CONQUER LIKE A VIKING


이번 작품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발할라의 내세우는 최고의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바이킹'이라는 코드는 그간 수많은 미디어에서 줄기차게 쓰였습니다. 이는 그만큼 바이킹이라는 집단이 역사에 남긴 도끼자국이 깊은 덕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닌자'들의 인술과 몸놀림, 그리고 '기사'들의 기사도와 견고함과 같이 '바이킹'이라는 부류도 소위 '먹히는 키워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약탈과 야만, 강인함, 전투에 미친 광전사까지. 수많은 미디어 속에서 이들 바이킹은 상의를 풀어헤친 채 몰아치는 눈 속을 달렸고, 광기에 젖은 채 거대한 데인 액스와 손도끼를 휘둘러 피를 뿌렸습니다.


▲ 딱 바이킹스러운 그 느낌


워해머 판타지의 '노스카'나 '왕좌의 게임'의 자유인들, 그리고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브리쿨'과 같은 이들이 필요에 따라 바이킹의 이미지를 조율해 만들어진 집단입니다. 실제로 바이킹에게 당하던 이들에게는 악몽같은 기억이겠지만, 21세기인 지금은 너무나 써먹기 좋은 소재들이죠.


'발할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게임의 모든 부분을 '바이킹'으로 채워넣었습니다. 게임의 시대적 배경은 9세기 말, 전설적인 바이킹 군주인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잉글랜드 침략 이후이며, 역사적으로는 '이교도 대군세의 시대'로 불리는 시기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 시기엔 잉글랜드 동부의 상당한 영역이 데인족에게 점령되었고, 데인족의 관습과 법률 하에 지배되는 이 지역은 오랜 기간 '데인로(DaneLaw)'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 '데인로' 지역은, 게임 내 주 무대이기도 합니다.


▲ 오늘날 브리튼 섬 동남부에 해당하는 '데인로' 지역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바이킹스러움'을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부분을 찾기가 매우 힘들 지경이죠. 전투와 모험, 항해를 숭상하고 이를 '사가'로 남기고자 하는 데인족의 민족성과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끝나는 바이킹판 막고라인 '홀름강', 바이킹식 랩배틀인 '플라이팅', 침략용 선박인 '롱쉽'과 바이킹 특유의 공동 주택 '롱하우스'는 물론이거니와 앵글로색슨과 데인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처럼 튀어나온 도시의 모습들(롱하우스와 교회가 함께 공존하는)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수사님 라임이 장난없으시다.


얼핏 과도해 보이는 폭력성은 오히려 상당 부분 검열을 거쳐 게임으로서의 중심을 잡은 모양새입니다. 팔다리와 머리가 날아다니고, 피가 분수처럼 솟는 걸 보면 '저게 어떻게 검열된거냐?' 싶겠지만, 실제 역사 속 바이킹들은 모탈컴뱃에 모자라지 않은 잔인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 바이킹은 여자고 아이고 그냥 다 죽이는걸 선호했습니다만, 게임 내에선 일반 시민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딱 그 정도에서 타협한 거죠.


그런가하면, 일반적인 바이킹의 이미지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미디어 속 해석과 달리 잘 드러나지 않은 바이킹의 모습도 충실히 담겨 있습니다. 모조리 다 때려 부수고 불지르고 약탈하는 바이킹도 물론 존재했습니다만, 실제 역사 속 바이킹은 자신들만의 규율과 문화가 있었고, 기존의 권력 체계를 아예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상인이나 건축가와 같은 '비전투 일반인'들도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게임 내에서 살펴볼 수 있지요.


▲ 교회 첨탑과 롱하우스가 한 컷에 잡히는 역사적 광경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반대 시선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좋게 해석하자면 바이킹 그대로를 표방하는 게임입니다만, 달리 보면 바이킹만 보이는 게임입니다. 캐치프레이즈의 어느 곳에서도, 암살단의 신조인 '진실이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라던가 '우리는 빛을 섬기며 어둠 속에서 움직인다'와 같은 문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이킹을 팔고 있죠.


당연히 의문이 생깁니다. '바이킹'을 강조한 것이야 세일즈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도, '어쌔신 크리드'의 본질은 어디서 보이냐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의문은, 발할라의 '서사'를 주의깊게 보아야 풀 수 있습니다.


▲ 이 친구의 어디에 암살자가 있을까?




■ 신화도, 기원도 없는 황야에서의 서사



출시 전, 내심 발할라의 최대 약점은 이 '서사'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신화 트릴로지의 전작들인 '오리진'과 '오디세이'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강력한 서사 장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리진의 경우 '암살단의 기원'이라는 코드로 이야기를 풀어냈으며,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원전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축을 이루는 강력한 서사적 장치를 온통 때려박았습니다.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부터 뒤틀린 가족관계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비밀의 고대 결사라는 장치에 곁들여 맛깔나게 풀어냈죠.


▲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던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


하지만, 불쌍한 고아 바이킹 에이보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암살단이 뭔지도 모르는 채 성인이 되었고, 오디세이아처럼 서사의 기반이 되어줄 강력한 무언가도 없죠.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라그나로크'일 텐데, 이에 대해서는 게임 속 에이보르가 직접 말합니다. "마지막에 다 죽는 이야기야" 이걸 소재로 써먹을 수는 없겠죠.


때문에, '발할라'의 서사는 굉장히 느릿한 페이스로 진행됩니다. 초반엔 몇몇 등장 인물을 통해 '고대 결사가 둘 있는데 서로 반목하고 있다더라' 하는 정도의 정보만이 주어지며, 10시간 정도를 플레이하면 암살단과 템플러의 비교적 자세한 정보 및 대의를 알게 됩니다. 20시간을 플레이하면 템플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암살단이 왜 이를 막으려 하는지를 알게 되고, 이때부터야 '어쌔신 크리드' 다운 이야기가 시작되죠. 사실상 전작에선 프롤로그 단계에서나 다루던 주인공의 배경 서사를 작품 내에서 약 2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가며 쏟아부은 겁니다.


▲ 시리즈 최초로 '신뢰의 도약'을 모르는 주인공. 나중에 배우고 나서야 제대로 뛴다.


그리고 이 20시간은, 게이머가 '발할라'의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자,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모르는 바이킹 전사인 '에이보르'에게 동화하는 시간입니다. 이 지점을 거치며 게이머는 에이보르라는 인물의 행동과 생각에 익숙해지고, 에이보르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되죠. 그리고 이 때, 에이보르도 궁금해하던 비밀 결사들의 정체와 의도를 알게 됩니다.


'발할라'의 특징인 지역 제한 시스템은 이와 맞물려 게임의 긴장도를 유지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게임이 변주되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발할라'는 레벨 스케일링 기능이 없기 때문에 초반에 돌아다닐 수 있는 지역이 굉장히 제한되며, 유비소프트는 최신 트렌드에 반하듯 게이머의 행동 패턴을 상당 부분 억압 및 유도합니다. 오늘날 오픈월드 게임들의 트렌드가 최소한의 유도와 최대한의 자유로 방점을 두는 것과는 달리 구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서사적 제한 장치죠.


▲ 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딱히 불만을 갖지 않고 흐름을 따라갈 경우, 그만큼 서사적 만족도는 높아집니다. 초반의 떡밥이 천천히 풀리고, 의미없던 땅따먹기 전투에 의미가 생기며, 주요 퀘스트라인을 패스했다면 '여기에 이게 왜 있지?'싶을 장치들이 적절한 시점에 등장하며 빛을 보게 되죠.


전작인 '오디세이'도 비교하자면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릅니다. 전작이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중간에 어느 곳을 먼저 방문할지에 대한 자유로움 정도는 주었다면, 이번 작품은 오디세이보다는 보다 엄격한 틀 안에서 에스컬레이드되는 이야기를 통해 서사에 대한 몰입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했죠.


▲ 결사단은 콘텐츠 해금부터 꽤 느린 편


다른 시선에서 보자면, 점점 맵이 넓어져 가는 오픈월드 장르의 흐름에선 오히려 친절한 서사 시스템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광활한 땅을 게이머 앞에 던지기보다는, 좁은 지역으로 시작해 게이머의 활동 무대를 점진적으로 넓히는 형태죠. 그렇게 60~70시간 분량의 메인 콘텐츠 플로우가 만들어집니다. 초반엔 '바이킹' 그 자체에 게이머를 흠뻑 젖게끔 만들고, 슬슬 그 외의 다른 재미를 찾기 시작하는 시점에, '어쌔신 크리드'의 이야기가 들이치는 형태입니다.




■ 바이킹으로서의 나인가, 비둘기로서의 나인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 작품의 최대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어쌔신 크리드가 점점 암살자와 별 상관이 없는 시리즈가 되어간다는 우스갯소리는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만, 이번 작품에선 유독 주인공의 정체성이 심하게 충돌합니다. '바이킹스러움'과 암살단으로서의 대의를 둘 다 손에 쥐려다 보니 주인공 '에이보르'가 굉장히 애매한 인물이 되버리는 거죠.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에이보르가 각 지역에 파견되는 명목상의 이유는 그 지방의 지배자와 본인의 집단인 까마귀 클랜 사이의 동맹을 체결하고, 평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지방의 세력자들과 조율해가며 평화를 중재하는 와중 눈앞에 수도원이 보였다? 비둘기처럼 평화를 쫓던 에이보르는 뿔피리를 꺼내 롱쉽을 부르고, 친구들과 함께 수도원을 불태우고 병사들을 학살하며 원자재를 몽땅 털어버립니다. 그래야 본거지에 건물을 지을 수 있거든요.


▲ 이게 다 평화를 위한 목조르기


결국 객관적으로 볼 때, 에이보르라는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뒤로는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습격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표리부동한 인물입니다. 그걸 보면서도 그 지방의 지배자는 그저 에이보르를 칭찬하고 믿어주죠. 바이킹의 아이코닉한 속성인 약탈과 야만을 콘텐츠로 넣었으면서도, 데인로 지역의 평화 구축과 암살단으로서의 대의를 주요 플롯으로 삼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이유 때문에, 몇몇 매체는 '이유없는 폭력'이라며 본작을 혹평하기도 합니다.


이를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각 지역의 대립자들은 각자 사연이 있지만 요약하면 '적당히 나쁜 놈들'입니다. 수도원의 병사들도 저 나쁜놈의 부역자이니 때려죽여도 된다는 핑계를 만들어 둔 셈이죠. 하지만 설득력은 매우 약합니다. 정작 마을을 습격할 때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이들은 대부분 민간인들이거든요. 차라리 약탈 지역을 설정할 때 템플러의 비밀 지부라던가, 명백한 적대 세력의 근거지라는 설정을 붙였으면 감정적 공감이 더 쉬웠을 겁니다.


▲ (나의)평화를 위해 (남의)마을 불바다 만들기


'오리진'과 '오디세이'. 앞선 두 작품은 이와 같은 정체성의 충돌을 영리하게 회피했습니다. 오리진의 주인공 바예크는 개인적인 복수와 로마의 압제자들로부터 이집트 주민들을 해방한다는 대의를 지녔고, 오디세이의 주인공은 애초에 용병인데다 암살단이라는 집단이 아예 없던 시기를 다루기 때문에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운 입장입니다.


하지만 에이보르는 방어자가 아닌 침략자인 주제에 평화를 말하고, 바이킹이라 약탈은 해야겠고, 압제자에게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지켜주기 위해 나쁜놈들을 죄다 발할라로 보내주는데 알고 보니 그놈들이 그렇게 나쁜 놈들도 아닌 이상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게임플레이로서의 재미는 확실한데, 게임을 하면 할수록 '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차라리 '갓오브워'의 크레토스처럼 걸리는 족족 때려부수는 성격으로 밀어붙이던가, 수도원을 약탈하지 않고 협력하는 방법도 우회적으로 마련해두든가 했으면 아마 캐릭터성의 충돌은 좀 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과연 누구를 위한 치유일까?




■ 시리즈 최고의 '전투 연출', 시리즈 최악의 '귀찮음'



게임의 영혼과 뼈대가 되는 컨셉과 서사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실제로 움직이는 근육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발할라'의 게임 시스템은 전작들인 '오리진'과 '오디세이'를 적당히 섞은 후 새로운 시스템과 변화를 듬뿍 뿌려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레벨' 시스템의 삭제입니다. 정확히는, 레벨 업은 하지만 숫자로 표기된 레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일정 경험치를 쌓을 때마다 스킬 포인트를 둘 씩 주는 시스템이죠.


스킬 시스템은 완벽하게 달라졌습니다.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 스킬트리를 충실히 따르던 전작들과 달리 발할라는 여러 게임에서 이미 검증된 '노드' 시스템으로 노선을 바꿨습니다. 다만, 스킬 포인트가 제한되지도 않고, 언제나 초기화가 가능하기에 노드 시스템보단 훨씬 부담 없이 스킬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 검증된 '노드' 시스템을 채용


인벤토리 및 무기 시스템에서도 대격변이 일어났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아이템이 존재하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장비의 수가 대폭 줄었고, 이를 취향에 따라 업그레이드하는 형태로 바뀌었죠. 원거리 무기는 '오리진' 시절처럼 활의 종류에 따라 사용 방법이 다르며, 무기는 양 손에 각각 하나의 무기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방패 두 개를 든 정신나간 조합이라던가, 양손 도끼 두 개를 각 손에 쥐고 휘두르는 진짜배기 광전사가 될 수도 있죠. 무조건 이거다 싶은 엄청난 무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무기든 업그레이드하기에 따라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기에 수는 줄었지만 오히려 활용도의 폭은 커진 셈입니다.


▲ 누가 방패로 방어만 한다 했나


'전투'로 들어가면, 애초에 '바이킹'을 내세운 작품답게 시리즈 최고 수준의 격렬한 액션이 가능합니다. 적과 동기화되어 영화적 연출을 보여주는 '페어드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강화되어 시리즈에서 내내 약점이 되어온 '후반 전투의 단조로움'이 큰 폭으로 희석되었고, '포 아너'에서 쌓인 전투 애니메이션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들면서 폭발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전투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존 시리즈에서 귀찮음의 상징이던 궁병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붙잡아 그대로 되돌려 주는 스킬이 생기며 오히려 전투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대상이 되었으며, 적들의 종류도 전보다 꽤 늘어나 원패턴으로 흘러가는 전투가 아닌, 꾸준한 상황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 전투가 되었습니다. 비록 게임의 여러 부분에서 장단점이 혼재하지만, 전투 자체와 그 연출만큼은 전보다 확실히 진보했다는 뜻입니다.






반면, UI와 편의성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발할라'의 거의 모든 주요 전리품은 빈틈을 찾아 잠금 장치를 파쇄하거나, 열쇠를 얻어야 열 수 있는 퍼즐 형태의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과정이 처음엔 재미있지만 가면 갈수록 귀찮고 부담됩니다. 개발사의 기획 의도는 '게이머들이 자신이 똑똑하다는 생각을 하길 바랐다'이지만 너무 과하게 들어찬 퍼즐이 만족감보다는 귀찮음을 더 줍니다. 게다가 길 찾기도 전보다 한층 어려워져 이를 방해합니다.


게다가 출시 초인 지금은 지형에 낀다거나, 전리품이 들어오지 않는 버그 등이 왕왕 보이기에 퍼즐을 풀다가 끼이거나, 다 풀어놨더니 전리품이 들어오지 않는 허탈한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즐거움보단 짜증과 귀찮음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마이너스가 될 만한 부분이죠.


▲ 도대체 왜 보물은 죄다 땅 속에 있을까...




■ 과감해 보이지만, 조심스러운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매우 조심스러운 작품입니다. 번번히 이어진 AAA급 타이틀의 실패 때문인지 몰라도, 게이머들이 싫어할 만한 부분, 그리고 이상하게 볼만한 부분을 최대한 가리고, 좋아하는 부분들부터 드러내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작품이죠. 그러면서도 이 의도가 또 드러나게 될까봐 걱정하는 모양새가 슬쩍 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게이머들이라면 일단 좋아할 '바이킹'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세워 초반 흥미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서사가 부족하다는 의견에 대비해 매우 긴 시간 주인공의 서사를 빌드업했고, 성별 또한 남, 녀, 랜덤 선택이 모두 가능합니다. 기존 팬이 아닌 신규 플레이어들이 '이건 또 뭐야?'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본론으로 넘어가는 속도도 매우 느립니다. 그러면서도 올드팬들이 서운해하지 않도록 암살검을 다시 가져오고, 어느 시점에 들어서는 암살단과 템플러의 대립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죠.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이 맛'은 잘 살아있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 있습니다. 앞서 전개는 느리지만 충실하게 플레이어를 이끈다고 설명드렸지만, 다른 말로 하면 게임 초반부는 영 루즈하고 재미도 떨어집니다. 20시간이 지날때쯤 슬슬 재미가 붙는데, 20시간이면 웬만한 게임은 엔딩을 보고도 남을 시간이죠. 결국 재미곡선이 순항 궤도에 오르기 전에 떨어져나갈 위험도 없지 않은 셈입니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만큼이나 콘텐츠와 시스템의 구조, 등장 인물의 구성 등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에이보르의 존재적 애매함을 제외하면 '얘는 도대체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튀는 인물도 없고, '도대체 이건 왜 만든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시스템도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하나의 게임을 지탱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 느긋하게 즐겨도 2주는 거뜬할 분량


캐치프레이즈를 'LIKE A VIKING'이라는 패기 넘치는 문구로 정했음에도, 게임에서는 리스크를 철저히 배제하고 어떻게든 중박을 치고자 하는 의도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의도대로, 겉으로 보이는 만큼의 과감함을 보여주진 못했고, 이 때문에 서사적 충돌점까지 생겨버렸지만 어쨌거나 '발할라'는 충분히 중박을 칠 게임성을 확보했습니다.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라는 명예에 닿기는 요원하지만, 신화 트릴로지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작품이자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정식 타이틀로는 충분한 수준의 작품이란 뜻이죠.


최종적인 평을 내리자면, '사이버펑크 2077'의 무게에 짓눌려 살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같은 날 출시됐더라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작품. 재밌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배신은 하지 않는 작품이 지금 발할라를 평하기 적합한 문장이 아닐까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먼저 본인이 '바이킹'을 좋아하는지부터 생각해 보시면 쉽습니다. LIKE A VIKING. 그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팬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고, 주인공의 불안한 서사 때문에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어쨌거나 게임 플레이 자체의 재미, 그리고 '바이킹뽕'을 충족시킬 게임으로서는 수작의 반열에 놓을 만한 작품이니 말이죠.






#어쌔신_크리드_발할라 #Assassins_Creed_Valh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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