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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개발사, 역사를 이야기하다



왜 한국사를 다룬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까. 해외의 역사 게임들이 선전할 때 마다 항상 나오는 말이다. 한때 임진록 등 한국사를 메인으로 한 고전 게임들이 있었고 흥행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왜 요즘은 많지 않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해관계나 대중성, 고증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엮여있으리란 것만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넘어갈 정도로 가벼운 일이 아니다. 역사라는 건 매력적이면서 강력한 문화 콘텐츠다. 여러 국가가 자신들의 역사적 콘텐츠를 영화나 드라마, 만화, 게임, 소설 등을 통해 수없이 어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장 중국과 일본의 수십 년에 걸친 시도로 서양 게이머들에게 사무라이, 삼국지, 기모노, 치파오 등은 이미 신비로운 단계를 넘어 동양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 몇 년 사이에 인디 개발사를 주축으로 국내에서도 역사를 게임으로 옮기는 시도가 있다는 점이다. 'MazM:페치카'와 '웬즈데이', '히든 스토리 VR' 그리고 '한국사RPG - 난세의 영웅'이 대표적. 웬즈데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출시된 게임이다.


이중 'MazM:페치카'와 '웬즈데이', '히든 스토리 VR'는 2019년 발표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기능성 게임콘텐츠 개발기업에 대한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페치카와 히든 스토리는 독립운동을, 웬즈데이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 게임이 메인으로 내세운 한국의 근현대사는 민감하고 어려운 소재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는 아직도 남아있을 만큼 현시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일제 수탈로 고통받았던 이들,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아직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시대와 여전히 이어져 있는 '역사'인 것.


그런만큼 근현대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대로 고증된 근현대사는 여러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할 '이야기'다. 지속적인 노출은 익숙함을 가져오고, 익숙함은 그만큼 자연스러운 관심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게임은 직접 플레이하면서 상황에 좀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기에 그 어떤 콘텐츠보다도 더 강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세 게임은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보여준다. 히든 스토리 VR은 VR이라는 콘텐츠를 사용, 그 어떤 게임보다 효과적으로 역사적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으며, 페치카와 웬즈데이는 스토리 텔링형 방식을 통해 역사를 '전달'한다.


히든 스토리 VR VR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비빔블에서 개발한 히든 스토리 VR은 직접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분석할 수 있는 시네마형 역사콘텐츠로, 가상현실을 통해 역사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게임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육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콘텐츠인 것.


게임은 미래의 역사기록 복원가의 입장에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구의 기록을 복원하며 그 공간에서 있었던 사건과 실제 같은 환경을 체험하고 퍼즐요소 및 에러요소를 풀어가는 형태로 진행된다.


글과 이미지로만 접하던 역사적 사건을 그 당시에 있었던 주변 환경과 인물, 소품, 사용된 의거 도구 등을 활용하여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좀 더 현장감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기록 복원 중 생겨난 오류를 퍼즐 형태로 풀어가거나 공간 안에서 힌트를 찾아 해결하는 방 탈출 형태를 접목하여 하나하나의 힌트와 요소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 것이 특징.


플레이 중 힌트가 발생하는 오브젝트를 발견하면 특정 포인트에서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방식이며, 최종적으로 인물을 찾게 되면 역사의 한 장면을 복원해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 윤봉길 스테이지의 경우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을 찾는 미션과 더불어 수통 폭탄을 투척하는 장면을 재구성하며 진행된다.


히든 스토리 VR은 대한민국임시정부 3.1운동 기념사업회 민간자문위원의 자문을 받아 제작되었다. 2019년 10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으며, 11월 백범 김구 토크 콘서트에서 재전시된 바 있다.


 



MazM: 페치카 게임으로 마주하는 항일 독립운동사



맺음의 세 번째 스토리텔링 게임인 '페치카'는 연해주 독립 운동사와 독립 운동가 최재형을 다루고 있다. 게임을 통해 잊고 있던 역사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역사인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소재로 한 것.


게임의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인 표트르이며, 그를 통해 실제 역사에 기반한 픽션 이야기가 진행된다. 표트르 외에도 가상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실존 인물들과 이야기하고, 싸우고, 협력하며 게임의 중심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개발사는 실제 역사의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석하기 위해 역사 전문가 그룹인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역사를 다룸에 가장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배경과 콘텐츠의 정확한 고증 및 검증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확인 과정을 거친 역사적 사건은 게임 속 기능인 '잡학사전'으로 등장한다. 19~20세기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 러시아혁명, 러시아 내전, 한일병합조약, 3.1운동 등과 같은 내용을 비롯하여 많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다.


페치카는 7월 30일에 출시되었으며, iOS와 안드로이드 모두 플레이할 수 있다. 한국어와 함께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지원하며 추후 닌텐도 스위치 버전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웬즈데이 역사를 게임으로 재해석하다



겜브릿지가 개발 중인 '웬즈데이'는 3D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적을 얻게 된 순이 할머니를 통해 위안부 피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웬즈데이의 주요 시스템은 타임리프 추리로, 플레이어는 주인공 순이가 되어 1992년과 1945년을 오가며 친구들을 구해내기 위해 일본군의 전쟁범죄와 관련된 단서들을 수집, 추리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사트긴 섬의 주요 공간과 연합군 포로, 독립 운동가 등 다양한 인물 간의 대화 속에 사건 해결의 힌트가 숨겨져 있고, 이를 찾아내는 것이 게임의 주 콘텐츠. 과거에서 일본군이 은폐하려는 진실들이 밝혀지면서 1992년 현재도 점점 변화한다.


웬즈데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가 역사적 사실을 학습하고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현실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군 731부대의 민간인 생체 실험, 난징대학살, 카이로 회담 등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부터 위안부 피해자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게임 속에 담았다.


고증 작업은 피해자들의 증언집을 많이 참고해 진행되었다. 증언 녹취록과 다큐멘터리 필름, 연구 자료 등등 정부에서 만든 자료들도 확인하면서, 위안소의 위치라던가 피해자분들의 나이와 특징 등에 대한 기록도 찾아보았다고.


개발사 겜브릿지는 단순히 웬즈데이가 '위안부 게임이다'라고 평가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역사를 바탕으로 재해석하는 게임이 되고 싶다는 것. 웬즈데이는 올해 11월 스팀을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 경험한 것은 잊지 않는다



투캉프로젝트에서 개발한 '난세의 영웅'은 본격적으로 한국사를 다룬 학습용 인디 게임이다. 게임인재단에서 운영하는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에 첫 번째로 합류한 게임이기도 하다. 위 세 가지 게임과는 다르게 근현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


2017년 모바일 게임으로 한차례 출시되어 높은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게임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개발자들이 다시 재제작했다. 타임머신을 개발한 3명의 공대생이 실수로 과거에 도착하며 만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통해 한국사를 이야기한다. 각 장마다 시대가 나뉘어 있으며, 구석기시대부터 광복 이후까지를 다루고 있다.


RPG인 만큼 게임 퀘스트, 적과의 전투 역시 준비되어 있다. 또한 스토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것도 포인트. 재미있는 점은 시험을 위해 한국사를 공부해야 할 경우를 대비,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은 붉은 색 글씨로 표시되는 등 그야말로 '놀면서 공부하기'를 경험할 수 있다.


난세의 영웅을 개발한 투캉프로젝트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사를 알리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경험한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은 현재 구글 플레이를 통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역사를 다룬 게임이 가장 넘기 힘든 벽이 무엇일까. '흥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특정 국가의 역사를 특정 국가의 게이머뿐 아니라 타 국가의 게이머들에게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후 플레이할 정도로 흥미롭게, 매력적이게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그저 '흥미'롭게만 느껴지지 않게 역사적 사실 자체는 묵직하고 정확하게 다루는 것 또한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영화로도 출시된 '반교: 디텐션'은 게임이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대만의 2·28 사건으로 시작된 계엄령과 백색테러 시대를 배경으로 한 반교는 실제 역사와 공포라는 게임 요소가 잘 어우러져 대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게임은 영화로 제작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11bit studio의 '디스 워 오브 마인' 역시 마찬가지. 1992년부터 1996년에 있었던 보스니아 내전을 다루고 있는 디스 워 오브 마인은 폴란드에서 총리가 직접 '학생 추천 목록'에 추가하기까지 한 유명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직접적으로 전쟁을 다루고 있으나 억지로 유저에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전쟁 한 가운데에 갇힌 민간인의 시점에서 플레이하며 유저는 자연히 전쟁의 공포를 선연하게 느끼게 된다.


잘 만든 게임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이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무작정 화려한 그래픽, 방대한 볼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얼마나 완성도 있게, 얼마나 몰입감 있게, 얼마나 흥미롭게 '말하고자'하는 바를 표현했는가가 중요하다. 이는 역사를 게임의 소재로 가져올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사실만을 나열하는 건 게임이 아니라 단지 교육용 자료에 그칠 뿐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게임의 요소를 넣어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위에서 소개한 게임들처럼 다양한 역사 소재 게임에 대한 시도가 있어 왔다. 단지 설명하는 것이 아닌 '게임'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인디 개발사들이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등을 밀어줄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지속적인 게이머들의 관심과 피드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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