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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송

[리뷰&공략] 속아서 시작했다. 충격에 휩싸였다. 웃으며 나왔다. 네버송. [2]

  • STOVE194003
  • 2020.07.02 10:19 (UTC+0)
  • 조회수 150

※ 본 리뷰는 초반부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모든 것의 시작은 게임 소개 이미지의 이 한 줄이었다.






어릴 적 누구나 있을 법한 감성적인 기억과 아름다운 배경과 스토리.
주인공 피트와 여자친구 렌의 기묘한 모험 이야기. 메인 캐릭터가 들고 있는 못 박힌 빠따와 혼수상태라는 말에 조금 더 주목했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마우스 휠을 굴리는 손가락은 인내심이 많지 않았다. 유저 평가의 마지막 줄을 보곤 이제는 기억조차 흐릿해진 첫사랑의 추억에 미소지으며 이 힐링 게임은 팍팍한 삶에 달콤한 차 한 잔처럼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겠구나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 필요하시다면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쎄한 느낌이 들었다. 힐링 게임 첫 대사 치고는 섬뜩하지 않은가. 고아인 남자 주인공. 그 아이의 회색 세계를 바꿔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아이. 우정 이상으로 깊어보이는 둘 사이를 갈라놓은 괴한. 납치된 여자친구. 흔한 클리셰다. 하지만 납치된 여자친구를 보면서 혼수 상태에 빠진 남자주인공은 흔하지 않다. 대체 어떤 성장 드라마를 그리려고 처음부터 이런 과격한 설정을 넣었을까 고민했다. 여기서 그만두고 돌아갔어야 했다.


안녕…. 나야…. 오프닝이 끝난 직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음산한 느낌의 건물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힐링은 이런게 아닌데. 창 너머 칼 든 창백한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따라온다. 아무리 달려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떨어지고 떨어져도 계속 같은 자리. 반쯤 찢어진 기괴한 포스터 속 SMILE이 신경을 긁는다. 하염없이 울리는 전화기에서는 똑같은 말만 반복된다.


노이로제에 걸리기 직전이 되어서야 각 문 위의 S와 M이 눈에 들어왔다. 남은건 I E가 함께 적힌 문과 L이 적힌 문. 머리 속으로 Smile 글자를 써보지만 스펠링이 완성되지 않는다. 육성으로 짜증을 터트리고 잠시 바람을 쐬고 나서야 답을 떠올렸다.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데, 딱 그 꼴이다.



- 솔직히 헷갈리지 않나. 나만 모르는건가.....




우리의 노래를 기억해 피트. 오랜 시간 헤멘 끝에 도착한 마을은 밝았다. 돌이켜보면 우중충한 느낌이었지만 당시에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이 뇌내 자동 재생될 정도로 희망이 가득했다. 줄넘기를 하는 귀여운 아이에게 말을 걸었더니, 이게 왠걸 무려 목소리 더빙까지 되어있다. 갓겜이 분명하다. 하지만 하는 말이 심상치 않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줄넘기를 하며 아빠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건물 안 벽에 적힌 음계를 치자 빠따가 나온다. 휘두르는 맛이 찰지다. 납치된 여자친구를 찾는데 맨 손이면 안되지. 


하지만 이어 들어간 지하 동굴을 돌면서 멘탈이 터져나갔다. 힐링 게임이라 생각하는 가슴과 결코 힐링이 아니라는 머리가 싸운다. 지네가 좋아한다는 냄새인 모래, 쓰레기, 거미 알을 공 모양으로 부푼(!) 친구에게 묻혀 굴릴 때 까지만 해도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냄새에 반응한 거대 지네가 아들아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구나!를 외치며 자기 자식을 한 입에 삼키는걸 목격하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속았다. 이 게임은 힐링 게임이 아니었다.






내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군요.
드디어 깨달았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의 마음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세상에 어떤 힐링 게임이 친구를 쓰레기 위에 굴리고 어머니가 아들을 잡아먹는단 말인가. 나는 토크쇼 진행자 머레이였다. 아집에 사로잡혀 혼자 판단하고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래서 총에 맞은거다. 솔직히 억울하긴 하다. 누구나 있을 법한 감성적인 기억이라니. 고담씨티에서도 이 정도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거다. 아니, 아캄 수용소에도 드물거다.


하지만 속았다는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빠따를 휘두르는 맛은 너무 찰졌다. 비슷한 장르(?)인 워킹데드나 데드라이징에 비해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빠따가 몬스터에 쨕쨕 감길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그래 이게 힐링이지 다른게 힐링이냐. 적당한 난이도의 퍼즐은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아 지적 자신감과 쾌감을 느끼기에 적당하다. 마치 롤에서 "비슷한 실력의 두 팀이 만나 비등하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내가 캐리해서 아슬아슬하게 이겼을 때"의 카타르시스다. 이미 맛을 알아버려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서야 네버송이 제대로 보였다. 네버송의 정체성은 '관찰'과 '추리'에 있다. 플랫포머 장르의 주 요소인 조작과 점프의 비중은 낮추고 그 자리에 관찰과 추리로 퍼즐을 풀며 진행한다. 오리 시리즈나 할로우나이츠 같은 탐험형 플랫포머와는 다른 느낌이다. 탐험보다는 퍼즐이 메인이기 때문에 게임 디자인도 그만큼 타이트하다. 위 두 게임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샐 곳이 많은 느슨한 선형 구조를 가졌다면, 네버송은 림보처럼 정해진 퍼즐과 스토리대로만 진행되는 빡빡한 선형 구조다.




- 순한 맛 림보? 정도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가 답답하다거나 맵이 작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오브젝트와 이벤트를 더 촘촘하게 배치, 플레이어가 화면 전체를 관찰하도록 유도해 맵 하나 하나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타 플랫포머 게임이라면 흘깃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까지 활용해 실제 크기 대비 경험적인 맵의 크기를 확장시켰다. 플레이 내내 혹시 내가 뭔가 놓치고 지나간건 아닐까 매의 눈으로 맵을 관찰하며 아주 작은 요소라도 직접 보고 확인하게 만든다.


여기서 네버송의 디자인이 빛을 발한다. 게임 진행에 필수적이지 않은 치장 아이템을 신경써서 보지 않으면 지나칠만한 곳에 배치했다. 일부 아이템은 높은 수준의 컨트롤과 칼 같은 타이밍을 요구해 플랫포머 본연의 재미도 챙겼다. 이는 전체적인 플레이 타임을 늘리는 효과 뿐 아니라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플레이에 색다른 경험을 얹었다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면은 네버송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플레이어는 시작부터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모든 요소를 즐기며 엔딩까지 밀도 높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깨고 나면, 그러니까 화면 속 오브젝트와 이벤트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두 알고 나면 재미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다른 플랫포머가 엔딩 이후에도 2회차, 3회차를 즐기며 각기 다른 선택과 컨셉으로 공략의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네버송은 그 부분에 있어서 선택지가 제한된다.


물론 이는 스토리 기반 퍼즐 어드벤처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기에 흠은 아니다. 같은 스타일인 림보도 평단과 유저의 호평을 받았다. 림보처럼 한 번의 엔딩이라도 밀도 높은 플레이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2회차 3회차보다 더 의미있는 1회차가 된다. 네버송 역시 마찬가지다. 다회차 플레이에 적합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한 번에 여러 번 만큼의 재미를 준다.



- 뭐 하나 그냥 지나칠 만한게 없다.



종이로 만든 듯한 그래픽은 깔끔하지만 깊은 맛이 있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거나 기괴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더라도 불쾌하지 않다. 게임 특성상 시인성이 중요한 만큼 모든 구성요소를 한 눈에 알아보고 구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몽환적이고 어설픈 표현은 캐릭터의 움직임이 과하고 어색하더라도 괜찮아 보이게, 오히려 개성처럼 보이게 만든다. 귀여운 그래픽에 징그러운 캐릭터와 잔인한 이야기. 잔혹동화라는 말이 딱이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바뀌는 배경과 음악은 분위기를 살리면서 몰입도도 높인다. 제목에 노래(song)이 들어갔고, 주 진행이 피아노 음악을 찾아가는 내용인 만큼 음악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분위기를 살리는 BGM과 효과음, 잔잔하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는 한 순간이지만 정말 힐링 게임인가 싶을 정도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아주 밀당의 고수다.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힐링 게임은 맞다. 물론 주인공이 겪은 기억 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 길게 돌아온 끝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 게임은 힐링 게임이 맞다. 찰진 빠따와 아기자기한 그래픽, 푸는 맛이 있는, 그리고 결국은 풀어내는 퍼즐. 적당한 난이도. 마음을 달래주는 잔잔한 사운드까지. 엔딩까지 플레이타임은 약 4~5시간. 호젓한 주말을 보내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치열한 경쟁 게임이나 칼 같은 컨트롤을 요구하는 게임에 지쳤다면 하루쯤 푹 쉬면서 이야기에 몸을 맡겨도 좋다.









P.S. 이 이미지를 조금 더 빨리 봤으면 힐링 게임이 아닌 배신감은 안느꼈을거다. 하지만 재미있었으니 괜찮다.

 

댓글 2

  • images
    2020.07.03 03:21 (UTC+0)

    하지만 속았다는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빠따를 휘두르는 맛은 너무 찰졌다. 

    ㅋㅋㅋㅋㅋㅋ아 여기서 웃고 갑니다

  • images
    2020.07.06 08:31 (UTC+0)

    음악에서 이미 속았다는 느낌 깡!!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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