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참고서] 11. '인디게임' 단어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3]
내가 아는 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디게임이 정의되는 방향은 크게 2가지가 있다.
1. 기획사나 게임 회사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제작하여 독립성을 강조한 게임.
2.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독특한 디자인을 강조한 게임.
명확한 정의는 1번에 해당한다 생각하며, 2번은 투자자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게임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생긴 후천적인 특징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몇 개 인디게임이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 인디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어나고
-> 생존을 위해 검증된 시스템을 사용하는 개발자들이 많아지면서
-> 스스로의 힘으로 제작하여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독특한 디자인을 강조하지는 않은 게임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두고 인디게임이라 불러야 될지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중성을 좇는 인디게임' 이라는 말이 모순적이라 느끼고 있긴 하다.
내가 개발자보다 유저 시점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유저가 인디게임 행사에 방문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소규모, 1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 / 관람' 해보고 싶어서일까?
기존의 인기 게임과는 다른, 새로운 면을 가진 게임이 뭐가 있을지 '관람 / 플레이' 해보고 싶어서일까?
그동안의 현장 방문 경험과, 커뮤니티 유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 후자라고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다.
유저의 관심은 인디게임의 규모나 재정 상황이나 독립 여부가 아닌, 그런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결과물'에 있다.
유저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오랜 시간동안 가지각색의 게임들을 플레이 해온 베테랑들임을 잊어선 안된다.
자리에 앉아 직접 시연을 거치지 않아도,
대부분은 멀리서 잠깐 구경하는 것만으로 어떤 장르의 게임인지 / 과거 자신이 즐긴 게임과 시스템이 유사한지 간파할 수 있다.
(여기서, 간파의 정확도가 어느정도로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첫인상'으로서 오랫동안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좋은 예시로 2023년에 출시된 '데이브 더 다이버'를 들 수 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대기업 넥슨 산하의 직원과 자본으로 제작된 게임이지만,
[아이돌을 좋아하는 (못생긴) 안경 오타쿠 남성이 해양을 누빈다] 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접근하여 유저들로부터 인디게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길 수 있었다.
즉, 이런 것이다.
"우리 게임은 인디게임이에요!" 라고 소리쳐도,
결과물에서 새로움이나 다름이 느껴지지 않으면 '인디'란 말은 유저들에게 홍보 효과로서의 힘이 크게 반감하게 된다.
'인디'라는 말이 광고 / 마케팅 문구로서 힘을 가지려면 겉만 보고 지나가는 단계에서 '기존과 다름이 느껴지는 게임'이라는 첫 인상을 유저에게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과 다름이 느껴지는 게임'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
간단하다.
매주 게임 웹진에서 공개되고 있는 인기 / 매출 순위 100위 안에 들어가는 게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하나 하나 키워드를 짚어낸 뒤
-> 해당 키워드가 없거나, 반대의 시점으로 해석해 개발하면 그게 '다름'이 될 수 있다.
전례가 없을 정도의 아이디어만이 다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신작 게임이 무수히 나오는 현대에서도 고전 게임을 찾는 유저들이 있듯, 기존 트렌드에서 익숙하지 않은 감성만 넣어도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유저로 하여금 '인디게임 같은' 첫인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겉만 보는 것만으로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으면서 + 대중적이지 않은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몇 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식적이지 않은 컨셉]
- 비둘기가 랩을 하며 리듬 배틀을 한다. (Headbangers: Rhythm Royale)
- 도시를 활보하는 무법자 사슴 (Deeeer Simulator)
- 골프채로 골프공을 안치는 골프게임 (What the Golf?)
- 체스말이 샷건을 들고 홀로 싸운다? (Shotgun King: The Final Checkmate)
- 동물이 인간을 키우는 마을 (Before the Night)
[알록달록한 색상 조합이 아님]
- 신문사의 편집장이 되어 기사를 작성한다. [단색 / 흑백] (편집장)
- 젊은 사무라이의 여행 [흑백] (Trek to Yomi)
- 진정한 텍스트 어드벤처 [아스키 코드] (Stone Story RPG)
[주요 등장인물, 혹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인간형의 모습이 아님 or 예쁘고 / 잘생기지 않음]
- 실험실에서 깨어난 괴물로 모든 것을 죽인다. (Carrion)
- 여우 가족의 생존 여행 (Endling - Extinction is Forever)
- 아버지를 찾아 고향으로 향하는 샐리의 여정 (Sally's Law)
[사회적으로 각광 받을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님]
- 거미를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한다! (Kill it With Fire)
- 도둑질을 하자! (Theif Simulator)
- 교도소를 탈출해라! (Prison architect)
그 외에도 블랙 코미디, 인간형의 모습을 훼손 / 절단, 등의 키워드들이 있을 것이다.
인디게임 개발사는 기본적으로 외부의 자금 지원없이 독립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인 만큼,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성공한 과거 게임들의 시스템을 모방하여 유저의 유입 및 수익을 낼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려는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만든 게임 역시 행사 등에서 '인디게임'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인디'의 이름을 걸고 있는 이상 - 들어가는 비용 대비 홍보의 효율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령, 행사에 참가했을 경우 가장 중요한 목적은 -> 짧은 시간 동안 선보이는 자신의 게임을 방문자(유저)에게 각인(기억)시키는 것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이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다름,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내 경험상, 평소 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던 컨셉의 게임이 행사에서 1~2번 소개되는 것만으로 꽤 오랜 시간동안 기억에 남게 되는 반면,
오랫동안 즐긴 경험이 있던 '로그라이크 / 플랫포머 / 퍼즐' 등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게임은 3~4번 이상 중복해서 봐야
"아~ 그런 게임도 최근에 출시 준비하고 있었지" 라는 느낌으로 기억하게 된다.
이는 게임이 정식 출시 되었을때 바로 플레이 하고 싶어 구입하거나, 주변 이들에게 정보를 공유할 생각의 들고 말고 차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사전 공개 영상 / 시연으로 통한 첫인상 단계의 이야기며
- 인기 작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저들이 게임을 진행하는데 문제 없도록 실행 환경 안정, 완성도 관련 정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디게임이 첫인상 단계에서 유저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인디'의 이름을 걸고 보여주는 첫인상(힘)의 중요성을 이 글을 통해 어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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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가 생각하는 인디게임의 정의는 1인개발이나 소규모 개발사, 자본의 부재 이런게 동반되야한다기 보다 사업성이나 수익성 같은거에 구애받지않고 독창성 있는 진짜 개발자가 생각한 대로 만드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그냥 돈이나 기술, 시간 중 하나 이상이 모자라서 AAA급 아닌 좀 아쉬운 그래픽 = 인디 라고도 생각했는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독특한 디자인을 강조한 게임' 이 정의가 잘 와닿고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