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s&Guides] [플라워즈~가을 편] 엇갈리는 사랑의 행방들이 만들어 내는 합주곡 [6]
플라워즈 (Flowers) 시리즈는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성 앙그레 컴 기숙 여학교'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을 보낸 10명의 등장인물들 각자의 서사를 계절 별로 나누어 즐길 수 있는 '연작 시리즈'의 백합물 게임 (Girl's Love Game) 이다.
동성애를 다룬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더욱이 나는 동성애 작품 플레이를 선호하지 않는 유저 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워즈' 시리즈만큼은 계속해서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플라워즈의 가을 편 플레이를 마친 지금, 이쯤에서 간단히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편의 차이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를 이루는 '플라워즈' 시리즈의 첫 이야기인 '봄 편'에서는 '시라하네 스오우', '하나비시 릿카', '코우사카 마유리' 이 세 명의 인물이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봄 편'에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청순가련한 미인형 소녀 '시라하네 스오우'가 되어서, 낯선 '성 앙그레 컴 학원'에 적응하며 다양한 인물들과 조우하며 그들과의 친분을 쌓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학교나 그렇듯,
이곳 성 앙그레 컴 학원에도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학교 괴담이 있다.
봄 편은 성 앙그레 컴의 일곱 개의 괴담 중 '블러디 메리'와 '진실의 여신'이라는 괴담의 실체를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봄 편의 메인 스토리는 괴담의 실체를 추적하는 한편, 전혀 다른 성향의 세 명의 여학생 스오우, 릿카, 마유리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그들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들을 잔잔한 서사 속에서 풀어나간다.
그러나 봄 편의 경우,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을 아우르는 전체 서사의 도입부이기도 하고, 봄 편의 주인공인 스오우가 답답하리만큼 내성적인 성격이라 작품 전반전적으로 스토리에 대한 흥미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플라워즈 시리즈에 대한 호불호는 '봄 편' 플레이를 모두 다 마친 후,
'여름 편' 플레이를 시작할 생각이 드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크게 갈릴 것이라 본다.
봄 편의 전개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이미 봄 편을 구입하신 분들이라면 반드시 꼭, 봄 편의 트루 엔딩을 보셨으면 한다.
봄 편의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엔딩은 예상 못 한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며, 여름 편에 대한 기대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후 여름 편은 시라하네 스오우의 같은 반 급우인 '야에가키 에리카'와 그 반에 전학 온 전학생 '타카사키 치도리'의 스토리가 메인이 되며, 봄 편의 히로인들은 여름 편의 조연으로서, 여름 편 스토리 진행을 돕는 감초 역할을 한다.
잔잔하지만 다소 느릿느릿하게 전개되던 봄 편과는 달리 여름 편은 플레이하는 내내 온 세상이 여름 임을 느끼게 만들어 줄 만큼, 시원한 느낌의 작품이었다.
붙임성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마음을 열고 신뢰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는 에리카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건강한 소녀이다.
플레이어는 '에리카'의 시점에서 플레이를 진행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기숙사 룸메이트가 된 치도리와 많은 부분에서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내지만, 서로 너무나 다르게 보였던 두 소녀는 서서히 그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씩 배려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름 편에서는 성 앙그레 컴 학원의 일곱 개의 괴담 중 '초록 옷의 후크맨'이라는 괴담의 진실을 파헤친다.
플라워즈 시리즈는 매 작품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매 작화가 미려하지만, 여름 편의 아트들은 특히나 감탄이 나올 만큼 예쁜 데다가 스토리의 전개도 '여름'다운 시원시원함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가을.
이번 가을 편에서는 성 앙그레 컴 학원의 2학년이자 , 성 앙그레 컴 학원의 학생회장인 '야츠시로 유즈리하'와 부회장인 '코미카도 네리네'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은발의 야츠시로 유즈리하 그리고 금발의 코미카도 네리네.
유즈리하와 어린 시절부터 쭉 단짝이었다는 설정으로 플레이어는 회장인 은발의 유즈리하가 되어서, 가을 편을 플레이하게 된다.
추가로 주목할 부분은 이번 가을 편에는 사사키 가의 쌍둥이 자매인 '이치고'와 '링고'도 주연급 캐릭터로서, 작품의 엔딩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천생 여자 같은 느낌의 네리네와는 달리 유즈리하는 큰 키와 중성적인 외모로 인해 여학생들만이 있는 이곳 성 앙그레 컴 학원생들의 관심과 애정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기인이자, 유명 인사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그 누구보다 달달한 것을 좋아하고, 귀여움과 여성스러운 것들을 애정 한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다.
지금의 '야츠시로 유즈리하'의 이미지는 '공주님을 지키는 용감한 기사'와 같은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거짓되고 꾸며진 모습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그래서 자신을 그리고 너무나 소중한 단짝인 네리네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유즈리하는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 온 동성의 단짝 네리네 좋아한다.
네리네를 향한 유즈리하의 마음은 우정 그 이상의 감정.
차마 상대에게 고백할 수 없는 마음을 간직한 유즈리하의 심적 고통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런 유즈리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안아 주겠다고 나서는 또 다른 소녀.
가을 편은 캐릭터 각자의 엇갈리는 마음의 행방들이 제 자리는 혹은 이탈한 그 자리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으며, 싹을 틔워 나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특히 이번 가을 편은 선택지를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서,
유즈리하 시점이 아닌, 쌍둥이 시점에서 유즈리하를 바라보는 감정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가을 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가을 편에서는 일곱 개의 괴담 중 '기숙사의 셰이프시프터', '배회하는 웬디고', '종루의 루가루' 관련 괴담의 진실을 밝혀 나간다.
참고로 '괴담의 진실'을 추적한다는 부분 때문에 '공포' 요소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된다.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를 하자면,
플라워즈 시리즈에는 '공포' 요소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플라워즈 시리즈는 대체로 스토리가 느리게 흘러간다는 특징이 있다.
좋게 표현하면 느긋하게 표현하고, 날카롭게 표현하자면 전개 속도가 느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뭔가'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추천드리기 어렵다.
예컨대 '본격적인 추리'나 '본격적인 로맨스'를 기대하시는 분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엔, 플라워즈 시리즈의 이야기들은 느긋하고 느리게 유유자적한 속도로 서두르지도 내달리지도 않고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이 때문에 스피디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빠른 전개나 기승전결이 뚜렷한 극적인 서사를 즐기시는 분들에겐 추천해 드리지 않는다.
나는 동성애 요소를 선호하지 않고 스토리 측면에서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극적인 서사를 선호하기에, 플라워즈 시리즈는 사실 내 취향의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와 같은 작품 속을 흔들며, 조용하지만 점점 더 커다랗게 퍼져나가는 파문의 행방들이 궁금하여 이 작품의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이 작품을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로잡혔다.
'시라하네 스오우'라는 캐릭터와 함께 맞이했던 충격적이면서도 아련했던 봄 편 트루 엔딩.
그때부터 나는 플라워즈 시리즈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여름 편과 가을 편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스오우는 여전히 존재감을 뽐내며 여름을 거치고 가을을 지나오면서, 한 층 더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계속해서 찾고 있다.
진실을, 답을,
이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단 한 사람을.
플라워즈 시리즈는 정말이지 신기하다.
봄, 여름, 가을 모두 작품 내에 극적인 장면이라고는 딱히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서히 작품 속에 물들 듯 빠져들게 만들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게 만든다.
봄의 끝에서 시라하네 스오우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과 마주해야 했고,
여름의 끝에서 시라하네 스오우는 절실하게 진실을 추적했다.
가을의 끝에서 시라하네 스오우는 진실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또 하나의 거대한 비밀 속에 자신이 도달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봄을 지나 여름, 여름을 지나 가을,
플라워즈 시리즈도 어느덧 이 모든 이야기의 종점이 될 '겨울 편'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겨울 편은 다시 봄 편의 주인공인 스오우가 주인공이 되어,
봄 편에서 마무리 짓지 못했던 그래서 아프고도 괴로워했던 두 번의 계절을 지나 겨울의 중심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에 도달하게 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플라워즈 시리즈는 느리다.
그 특유의 느린 진행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재미없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 느린 템포에 맞춰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성 앙그레 컴의 또 다른 학원생이 된 기분으로 그녀들의 생활에 함께 하다 보면,
이 느긋한 감성에 푹 빠져,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녀들의 모습들을 보며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게 될 것이다.
플라워즈 시리즈는 글자 그대로 '비주얼 노벨'인 작품이다.
단순히 '소설적 요소에 비주얼적인 요소인 아트'가 더해져 있다는 뜻에서의 '비주얼 노벨'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것과 같은 섬세하면서도 감성적인 묘사와 지문들 그리고 독백은 그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빠른 전개와 짧은 볼륨의 플레이 스타일에 익숙해져 버린 유저에겐 한 호흡, 한 호흡이 길고 지루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
이 작품은 비교적 적은 볼륨 내에서 한 편의 이야기가 뚝딱 끊나 버리는 짧은 분량의 가벼운 서사로 구성된 비주얼 노벨 플레이를 즐기시는 분들보다는 '평소 소설과 같이 전체적인 호흡이 긴 글을 읽는 것을 즐기시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린다.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그려진 아트들과 감성적인 BGM 그리고 잔잔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으로 가득한 서사로 구성되어 있는 플라워즈 시리즈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비주얼 노벨' 특유의 매력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플라워즈 가을 편은
- 일본어 풀 보이스 더빙이며,
- 느긋하게 즐긴다면 20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 빠르게 플레이해 나간다 하더라도 최소 15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한다.
- 엔딩은 4개의 최종 엔딩과 4개의 베드 엔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 45장의 일러스트 (Vartiation 포함 총 78장의 일러스트)를 감상할 수 있다.
작품 내에서 '동성애'는 주요한 코드이지만,
'동성애' 자체를 선정적이거나 농밀한 장면을 연출이나 장면을 구현하는 요소로 사용하지 않고,
인생에도 사랑에도 아직은 너무나 서툴기만 한 앳된 소녀들이 동성을 좋아하는 자신의 감정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들과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며, 차츰 진실한 마음의 방향을 깨달아 가는 모습들을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그려낸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서사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해 드린다.
나는 여전히 동성애 장르를 좋아하지도 선호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이 작품을 애정 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동성애'를 다룬 GL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플라워즈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이 작품만의 감성과 고요하면서도 잔잔한 서사에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봄을 지나 여름, 여름을 지나 가을.
그리고 이제 나는 그녀들이 만들어 나갈 겨울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한적하고 외진 곳에 위치한 비밀스러운 여학교, 성 앙그레 컴 학원.
그리고 그 성 앙그레 컴 학원과 관련된 일곱 개의 불가사의.
이제 마지막 일곱 번째 불가사의와 관련된 이야기만이 남아 있다.
풀어야 할 수수께끼도 하나,
숨겨진 비밀도, 밝혀야 할 진실도 하나.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도 단 한 명.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될 그 마지막 이야기를 고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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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잘 읽었습니다
늦었지만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넘버원아크님!
9월로 접어들면서 날이 조금 시원해진 느낌입니다.
시원하고 건강한, 언제나 좋은 일들만 가득한 9월 보내세요. 🙂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