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 그녀가 바라던 것]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그녀,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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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Guides] [루시 ~ 그녀가 바라던 것]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그녀, 루시 [2]



루시 ~ 그녀가 바라던 것은 2016년에 출시된 2D 비주얼 노벨 작품으로 인간 형태의 안드로이드가 일상 및 사회 전반에서 각종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2050년,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으로 우연히 폐기 직전의 '소녀 모습의 안드로이드'를 줍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남성의 연령대에 있어서 차이가 있긴 하나,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대중화된 사회에서 우연히 버려져 있던 여체형 안드로이드를 줍게 되고, 

이후 남자 주인공과 안드로이드가 함께 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루시'는 1990년대 중후반 ~ 2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국내에 한때 클램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었던, 일본의 유명 만화 창작 그룹인 '클램프'의 작품 '쵸비츠'를 떠올리게 만든다.



'쵸비츠'가 휴머노이드 쵸비츠와 주인공 남자와의 이야기에서 점차 세계관을 넓혀 간다면, '루시'는 철저하게 남자 주인공과 안드로이드 루시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된다.


부친의 영향으로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선호하고, 

자동화된 사회보다는 사람의 노력을 더 중요시 여기며, 


안드로이드와 같은 기기들을 철저히 배척해 오던 주인공이 한없이 천진난만하며, 무한의 긍정 에너지를 가진 루시와 함께 하게 되면서, 


'인간과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와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애니메이션 '이브의 시간'을 떠올리게도 했다.



논리적으로 사고한다면, 

기계가 아무리 인간과 닮은 모습을 하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며, 인간과 같이 행동한다 하더라도 그 기기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은 기계 부품 덩어리이며, 그것의 사고 또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정말로 그게 다일까?


이 작품의 플레이를 마칠 때쯤엔, 

'존재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소년과 루시의 만남은 '폐기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계 중심의 사회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그가 누군가가 버려 놓은 (필시 근처 연구소에서 내다 버린 것이 확실해 보이는) 소녀 모습의 안드로이드를 주워온 것은 순전히 순간의 변덕이었다.


기계 따위엔 관심도 없고, 신경쓰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 형태가 '사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에, 

사람의 모습을 한 그것이 산산이 분해되는 모습이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하더라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니 그건 정말로 순간의 변덕이 맞다.

인간형 안드로이드 같은 거 없이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다.

오히려 안드로이드를 하나 집에 들임으로 인해, 배터리 충전 등의 이유로 전기세만 더 나가게 생겼다.


그러니까,

그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안드로이드를 수리라도 한 번 맡겨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또한 변덕이다.


수리비가 너무 많이 나오거나, 수리 불능이라고 하면 그때는 다시 폐기장에 가져다 놓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안드로이드 같은 거 딱히 필요하지도 않았다.


 


'루시 발렌타인 PIM-001'


그것이 소년이 가져온 안드로이드의 이름과 모델명이었다.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어찌 소년이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으로 수리비를 지불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게 소년은 안드로이드 '루시'와 함께 하는 일상을 시작하게 된다.


아침의 졸린 잠을 깨워 주고, 갓 지은 따끈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고, 집을 나설 때면 늘 배웅을 해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항상 변함없는 환한 미소로 자신을 맞아 준다.


그렇게 루시는 소년의 일상과 삶 속에 스며 들었다.

마치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에 옷이 젖듯, 루시의 존재는 소녀를 적시고 소년의 생활과 매일이 되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사서 하는 귀찮은 로봇.

쓸데없이 해맑고, 말도 많다.

필요 이상으로 긍정적이다.


이래서 로봇이란...

자신을 향한 악의에도 분노하거나, 속상해할지도 모르는 바보 로봇.


 


분명 저 얼빠진 로봇이 표현하는 모든 감정들은 정밀하게 프로그래밍된 코드에 의한 결괏값일뿐이다.


그것이 사실일진대,

왜 그렇게 행복한 듯이 웃는 건데.

내 한 마디가 뭐라고 그렇게 기쁜 듯이 웃는 건데.


 


로봇이면서, 기계면서, 

진짜 인간의 감정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왜 우는 건데.

왜 그렇게 정말로 슬프다는 듯이, 슬픔이 뭔지 안다는 듯이 우는 건데. 


너를 구성하고 있는 것,

너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너를 사고하게 만드는 것,

네가 느낀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 모든 것은 너를 개발한 이의 의지와 기술의 산물일 뿐이잖아.


넌, 

너는 그냥 '기계'잖아.


그뿐이잖아.

그런데 너는...

너는 왜...






  • '루시 ~ 그녀가 바라는 것'은 소년이 루시를 발견하게 되는 10월 12일을 시작으로 10월 31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 플레이 타임은 대략 11시간 정도이며, 2개의 엔딩이 있다.


  • 트루 엔딩을 본 이후에는 에필로그라 할 수 있는 사이드 스토리가 해금되며, 이 사이드 스토리를 보고 나면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사이드 스토리가 하나 더 해금된다.


  • 게임 내 15개의 업적을 모두 클리어하면, 제작 후일담이 해금된다.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처럼 우리의 생활 전반에 함께 하는 일상이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미래이다.


하지만 정말로 인간의 모습을 한 기기들이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세계가 도래했을 때, 사람들은...


우리 인간들은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는 그들 또는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누군가에게 '그것'은 그저 '그것'일뿐이고, 기계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고, 고장이 나면 고칠 것이고, 구형 모델이 되거나 필요가 없어지면 '폐기'할 것이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그것'에게, '생명의 존엄성' 같은 불필요한 의미 부여는 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한편, 

누군가에는 '그것'은 말벗이 되어줄 수도 있고,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고, 가족이 되어줄 수도 있다.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보다 나은 '그들'이 인간 이상이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자, 너무 극단적인 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매 순간 쉴 새 없이 박동하는 심장을 가진 '진짜 인간'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여 무참하게 인간을 살해하는 잔혹한 살인마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며,

기계 부품으로 이뤄진 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과 같이 웃고 울며, 

나를 보살피고, 나의 일상을 함께 하고,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 둘 중 어느 쪽을 더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있어서 '의미를 가지는 존재들'.

그들이 '그 어떠한 의미'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무언가가 내게 어떠한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그 무엇과 함께한 나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 말하겠다.

그 무엇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생긴 나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 답하겠다.

그 무엇과 함께하는 기억 속에서 내 안에 남겨진 '추억'이라 회답하겠다.


그러니 무언가가 내게 있어 '어떠한 의미가 된다'는 것에 있어서,

그 무언가가 '인간이냐, 아니냐'는 좀 더 부차적인 부분이다.


그 의미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이 될 수도 있고, 식물이 될 수도 있고, 무생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혹은 무언가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순간,

이미 그 순간부터 '의미'들은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누군가 혹은 무엇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

함께 하는 그 모든 시간이 의미가 되고, 존재가 되니까.


그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내게 '나름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순간,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내게 있어서 의미가 된 존재'의 가치를 평가할 수도 폄하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은 그의 기준이지, 나의 기준이 아니다.

애초에 '의미 있는 존재의 가치'를 그 누가 무슨 잣대로 평가한단 말인가.



'루시 ~ 그녀가 바라던 것'

이 작품이 '미연시'나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로 분류되고 있음이 매우 안타깝다.


이 작품은 단순히 '남성향 게임'이나 '남성들을 위한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정의해 버리기엔 안타까울 정도로, 안정적이면서도 흡입력 있는 스토리 구성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연애 시뮬레이션'이나 '미연시' 태그를 달고 있지만, 작품 내에는 '연애'나 '로맨스' 요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나는 이 작품이 '남성향 미연시'가 아니라,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뛰어난 서사의 비주얼 노벨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인간 소년인 주인공이 로봇인 루시를 바라보면서, 

과연 루시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 것이 옳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들이 좋았고,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루시가 끝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이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루시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이 고민 하나 만으로도 루시가 얼마나 '인간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작품을 플레이하는 동안 점점 더 작품의 스토리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 작품은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이야기들을 끝내려고 하는 거지?

나는 이 작품이 어떤 식으로 끝나길 바라고 있는 거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두고서, 어떤 엔딩을 희망하고 있는 거지?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김춘수 님'의 '꽃'이란 시가 떠올랐다.



시간과 기억을 공유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상실'을 경험했을 때에,

잃어버린 또는 떠나버린 무언가와 유사한 존재를 다시 대면하게 된다고 하여, 

상실감을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에 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은 '외형'이나 그 '외형을 구성'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다가와 '꽃'이 되었던 존재와 함께 한 모든 시간과 기억과 추억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순백의 그녀, '루시'를 만나보세요.

당신의 가슴에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일깨워 줄 단 한 명의 소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루시 ~ 그녀가 바라던 것"



Repl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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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리뷰다..

로봇은 죽으면..

뭘남기죠..?

'루시 ~ 그녀가 바라던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명작이었습니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은 모든 것은 고귀하고 소중하지만,

루시는 생물학적으로 '생명체'로 간주할 수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간 기억이나 추억 그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존재'이고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정말로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한 번 더 루시의 스토리를 떠올려 봐도 그저 감동 그 자체입니다. 😭👍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달빛이 머무는 장소님.

9월로 접어들면서 날이 조금 시원해진 느낌입니다.

시원하고 건강한, 언제나 좋은 일들만 가득한 9월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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