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S 봄편 번역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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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 봄편 번역 후기 [22]

안녕하세요. FLOWERS 봄, 가을, 겨울편 번역, 전편 총검수 등을 맡은 게임 번역팀 Myskrpatch의 DDss라고 합니다.


Myskrpatch 팀에 FLOWERS 번역 제의가 온 건 대략 작년 2022년 7월 일이었고,

이래저래 해서 실제로 시작한 건 2022년 9월 8일,

봄편 번역이 완성된 건 2022년 9월 29일,

경과 기간 21일 정도.


실제 출시일이 2023년 3월 14일이 된 거에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긴 한데 노코멘트.

번역, 그래픽, 빌드 권한 등은 Myskrpatch 팀에 일임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제약 없이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 관련해서는 저작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하여 작업이 불가능했습니다. 유감.

게임은 숲 속에 고립된 미션스쿨을 배경으로 찍는 백합물.

근데 이 미션스쿨이 묘하게 군대를 연상시키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기숙사, 전우조, 전우애를 긍정하는 풍조, 외출 불가, 인터넷 없음, 옷은 교복만 입어야 함,

아침 7시에 안 먹으면 굶음, 당연히 점심 저녁도 제때 안 먹으면 굶음,

식사 밑준비 직접 함(요리는 그나마 전문 조리사가 함), 농사함, 제설함

등등... 돈 주고 입대하는 것 같은 이상한 학교.


이 게임 잡고서 맨 처음 느낀 건 나치의 게이 가스를 뿌리기라도 한 건가 싶을 만큼 당연한 것처럼

동성한테 설레고 그런단 점. 그냥 장르의 암묵적 합의일 테니 그러려니.

동성애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건 아닌데 크게 깊지는 않은 편.


---

또 특징으로 추리 파트가 존재하는데,

봄편 추리는 빈말로라도 그... 칭찬은 못 하겠는데요. 추리라 하기엔 하자가 많습니다.


특히 첫 번째 추리는 주인공만 아는 지식으로 풀이하는 (풀이 과정 중에 단서로 제시도 안 됨) 부조리 추리이기 때문에 더하고요.

추리는 그냥 곁가지 요소로 여기고 플레이하는 게 이롭습니다.

아무래도 봄편은 실험적 요소가 강해서 백합과 추리의 밸런스 간에서 이래저래 흔들린 감이 있는데, 이런 점은 여름편부터 안정됩니다. 자잘한 디테일도 훨씬 좋아지고요.


---

게임 또다른 특징으로는 인용이 많단 게 있습니다.


이게 시리즈가 뒤로 갈수록 인용이 많아지는데, 당연히 이런 것도 작업 과정 중에 다 팩트체크를 해 봤습니다.

인용구는 기본적으로 원작의 국내 역본 등을 기준으로 하되, 일부는 작중 문맥의 편의에 따라 어느 정도 손을 봤고,

작품별로 한두 개 정도 왜곡에 가까운 이상한 인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여기선 봄편에 인용된 것만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직접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소설

닻을 올리고(錨を上げて / Anchors Aweigh) - 1945년 영화. 쥐처럼 행동하면 치즈밖에 못 얻을 것이고, 늑대처럼 행동하면 문제없을 것이다 鼠の気持ちではチーズしか得られない。大きい獲物を得ようとするなら狼の気持ちになれ。

빨간머리 앤 -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 - 영화

쇼생크 탈출 - 영화

소공녀 - 소설

글래디에이터 - 영화, 또한 글래디에이터 샌들이란 게 있는데 작중에선 이거랑 착각

폭풍의 언덕 -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소설

나니아 연대기 - 소설, 영화

반지의 제왕 - 소설, 영화

가몬을 살피다・일본의 디자인 - 家紋を探る―遊び心と和のデザイン이라는 서적

유다 복음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생애(マグダラのマリアの生涯) - Life Of St Mary Magdalen? / The Life of Saint Mary Magdalene and of Her Sister Saint Martha? / 원본 불명

공공의 적(民衆の敵 / The Public Enemy) - 1931년 미국 영화. 한국 영화 공공의 적 아님

지상의 밤(ナイト・オン・ザ・プラネット / Night on Earth) - 1991년 영화

미녀 삼총사(チャーリーズ・エンジェル / Charlie's Angels) - 미국 드라마

모두가 왕의 부하들(オール・ザ・キングスメン / All The King's Men) - 1949년 구작이 모두가 왕의 부하들, 2007년 리메이크판이 올 더 킹즈 맨 -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

다크 시티 - 1998년 영화

미저리 - 소설, 영화

하이 눈(真昼の決闘 / High Noon) - 1952년 영화. 게리 쿠퍼

블랙 스완 - 2010년 영화, 발레 소재

크리스마스 캐럴 - 소설, 영화. 영화가 여럿 있음

여윈 개구리 하이쿠 - 일본 하이쿠. 고바야시 잇사

유배 행성(辺境の惑星) - 소설. 어슐러 K. 르 귄

은하철도의 밤 - 소설. 미야자와 겐지

주문이 많은 요리점 - 소설. 미야자와 겐지

눈물 흘린 빨강 오니(泣いた赤鬼) - 일본 동화

곤기츠네(ごんぎつね) / 아기여우 곤 - 일본 동화. 니이미 난키치

피아니스트의 전설(海の上のピアニスト / The Legend of 1900 / La leggenda del pianista sull'oceano) - 1998년 이탈리아 영화. 재미있는 이야기와 내 이야길 귀담아 들어 줄 친구만 있다면 인생은 그런대로 견딜 만 하다.

베스트 키드 - 미국 영화 시리즈

노스트로모 - 소설. 조지프 콘래드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 - 실화, 하지만 작중에 언급된 건 각색된 괴담 쪽 내용이라 실화와 차이 있음

커다란 순무(おおきなかぶ / The Gigantic Turnip) - 러시아 동화

카지노 - 1995년 영화. 내 말 잘 들어 봐. 여기 카지노에서 일하는 방법엔 세 가지가 있어. 옳은 방식, 틀린 방식, 그리고 에이스의 방식. 이해하겠나?

갱부 - 소설. 나츠메 소세키

귀 없는 호이치(耳なし芳一) - 일본 설화

십자포화(十字砲火 / Crossfire) - 1947년 영화. 배우 로버트 영

스타워즈 - 영화. 데스스타

시티 라이트(街の灯 / City Lights) - 1931년 영화. 희극왕 = 찰리 채플린

졸업 - 1967년 영화

앨리 맥빌(アリー・マイ・ラブ / アリー my Love, Ally McBeal) - 미국 드라마


베이브 루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오 거룩한 밤(O holy night, さやかに星はきらめき)

아즈사2호 - 카류도의 엔카. 실제 열차로도 있음

토타 풀크라 에스 Tota pulchra es - 성가

푸른 잎의 노래(青葉の歌) - 일본 합창곡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 - 영어 관용구

블러디 메리 괴담


그리고 봄편의 왜곡급 인용은,


――父と子と聖霊の名において、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食前のお祈りで吐かれる言葉と同じだと、私は思う。

이 성호경이랑 똑같구나 싶었다.

長らくキリスト教では“女性”という性はないものとして扱われていた。

기독교에선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이란 성이 존재하지 않는 성으로 취급되었다.

父と子。この中に“女性”は含まれないとして。

성부와 성자. 이 안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이겁니다.

이 짤이 연상되네요.

성부는 딱히 성별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데 기묘한 서술이 나옵니다. 그리고 성호경을 어째선지 식전기도라고 콕 집어서 썼고요.

플라워즈를 하다 보면 알 수 있는 건데, 라이터 분이 그냥 별 생각 없이 이렇게 쓴 것 같습니다.

아마 이 당시에 그리스도교에 큰 흥미가 없던 듯해요. 일본 창작물에서 흔히 있는 오류인 성당과 교회를 오인하는 게 봄편에도 나오거든요.

이 부분에 관해선 제가 식전기도란 부분 말곤 딱히 손을 대지 않았는데, 주인공의 견해에 대한 인용구로 나온 거기 때문입니다.


---

라이터 문장에 관해선 음...

이쪽도 분해하고 해석하는 입장으로선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몇 가지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첫 번째로 ~へ를 만능 연결어로 쓰는 점.

간단히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원문 説明する私へ、小首を傾げ尋ねる彼女へ言った。

직역 설명하는 나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그녀에게 말했다.

번역 내 설명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그 애. 난 말을 이었다.


가을편의 내용인데, 일본어로 읽어도 한국어로 직역해도 괴상한 문장입니다. へ를 무작정 연발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예시처럼 극단적인 건 흔치 않지만, 아무튼 へ로 문장을 억지로 잇는 건 줄기차게 나옵니다. 물론 이런 거 다 말이 되게 조정했습니다.

봄편은 이런 게 비교적 덜하지만 여름편, 가을편, 겨울편으로 갈수록 이런 스타일이 고착됩니다.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두 번째로 문장 한 줄을 끝맺지 않고 릴레이시키는 점.


 女子の裸が恥ずかしいと言えず、

 여자 알몸을 보기 쑥스럽다곤 차마 말할 수 없어서,

 「……バレエの授業が上手くいかなくて、反省してたんです」

 「……발레 수업을 못 따라가서 반성한 거야」

 と言った。

 그렇게 말했다.


이런 식의 구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옵니다. "그렇게 말했다"가 아마 플라워즈 안에서 가장 많은 문장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 릴레이는 당연히 크게 문제될 건 아닙니다.

가끔 가다 릴레이 5줄 넘게 하면서 문맥이 안 이어지는 게 나와서 문제죠. 물론 이런 건 조정했습니다.


세 번째로 비유 표현은 엄청 길게 쓰는데 정작 주어는 빼놓는 경우가 많아서 불균형이 있단 점.

이거는 좀 예시를 들어 설명하기가 힘든데, 비유로 지저분해지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주어 같은 건 쏙쏙 빠져서 아리송한 문장도 종종 등판합니다. 심하면 두 캐릭터가 각자 행하는 두 가지 모션이 한 문장에 들어 있는데 둘 다 주어가 빠져 있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이거와 통하는 요소로 반복되는 미사여구가 참 많습니다. 이건 봄편에선 아마 크게 느끼기 힘들 거고, 가을편 등에 가 보면 느껴집니다.


네 번째로 지문에 대사를 자꾸 집어넣는 점.

이거 자체만이라면 물론 어느 정도까진 괜찮습니다. 문제는 가끔 지문만으로 대화를 진행시키기도 하며,

이게 세 번째, 두 번째, 첫 번째 버릇이랑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대혼란을 일으킨단 겁니다. (물론 이 점은 다른 버릇들도 마찬가지지만요)

독해력을 발휘한다면 파악이야 물론 가능하지만 한 눈에 읽히는 건 아니므로 어지러분 부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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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자체에 관해선 손본 부분으로 몇 가지 설명할 부분이 있는데,


1. 일부 기능 추가

빌드 권한이 팀 쪽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문자 출력도 안 되고 백로그에도 안 뜨는 타입의 대사"


"성우 캐스트 코멘트" 등을 이렇게 출력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2. 캐릭터 말투 설정


스오우 말투 : 기본적으로 동급생한테는 반말이지만 존대가 튀어나올 때 있음. 웬만해선 반말로 통일.

연상한테는 상당히 깍듯하게.


달리아 말투 : 공석(일대다)에서는 존대. 사석(일대일)에서는 반말이 되는 타입.

상황 봐 가면서 판단. 존대는 깍듯한 존대가 아닌 조금 편안? 하대하는 투.

링고 말투 : わたしとして = 개인적, ですです = 그죠그죠

가장 골치 아픈 캐릭터. 봄편에선 반존대형 캐릭터였다가 그 뒤를 기점으로 존댓말 캐릭터로 변형됨. 이에 대해선 게임 내에서 별다른 설명도 없음.

봄편에서의 말투는 존대로 통일.

동급생한테 말할 때는 격의 없는 존대, 연상에게는 예의 바르게.


이치고 말투 : わたし的 = 갠적


유즈리하 말투 : 살짝 쿨한 남자 느낌. 남들 다 구어체로 말할 때 유일하게 문어체식 대사가 눈에 띄는 편으로.

'~한테', '난' 등을 안 쓰고 '~에게', '나는' 등을 쓰는 식.

연상에게는 '입니다'체로 존대.

* 가을편 지문에선 이걸 반대로 뒤집어 구어체식으로 서술. 이유는 안알랴줌.


그 외 캐릭터는 크게 어려운 사항이 없으므로 따로 정하지 않음.


3. 작중 설정

네리네 아버지가 신부라는 언급은 부제로 표기.

엄연히 가톨릭 신부이기 때문에 결혼이 불가능.

게임 발매 후 시간이 지나서 출간된 아트북 설정에서도 부제로 표기되어 있음.


---

이러저러 해서 봄편이 출시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참 바쁜 시간을 보내는구나 싶네요.

위에선 불평불만을 참 길게 쓴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문제가 산재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냥 작업자로서의 푸념이죠. 문제가 있는 건 조정해 놨고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백합겜이라 여기시면 되겠습니다.


한패도 하고 일도 하고 일도 하고 개인번역 하고 한패도 하고 개인번역 하고 일도 하고 일도 하고 일도 맡을 예정이고 맡을 예정이고 한패하고 싶은 것도 있고


작년부터 총합해서 풀프라이스 게임 2~3개 이상 분량을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더럽게 피곤합니다.

그럼 이제 일하러 갑니다.


포스트 22
알림이 해제되었습니다.


잘봤어요

여러가지로 많이 생각하고 번역하시는구나 번역 맡아주고 후기도 정성껏 써주셔서 감사해요

일러 이뿌다


번역과 말투도 게임 여러개 해보면서 느낀게 상당부분 중요하더라구요




후기보니 인용된 내용들이 어질어질하네요 ㅋㅋㅋ


백합물이라 들어서 취향상 당장은 손이 안가지만 잘했소 번역가양반! 칭찬하오! 이후에도 계속 끊임없이 건강보단 작업을 우선해주셔서 스토브 인디에 족적을 남겨주길 바라오! 그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오!!!!! 뿅

재밌겠네용. 출시되었다는 소리를 들들어설치하러 왔습니다! 감사하게 플레이 하갰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후기도 재밌네여 ㅋㅋㅋㅋㅋ


감사한 마음으로 게임하겠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이라는건 삼위 일체 론 을 뜻하는 것일텐데...

거기다가 아들 자 라는 한자도 원래는 모든 자식을 뜻하는 단어 로 도 쓰일 텐데요 


그 부분은 작가가 어중간한 지식으로 괜한 언급을 했다고 밖에 볼수 없네요

그런 괜한 논란만 일으킬수 있는 부분 까지 수정하셨다니 고생하셨네요

전문적으로 번역하시는 분들은 확실히 여러가지로 신경쓰시는군요

플레이타임은 대략 어느 정도 나오나요?

평균적으로 모든 선택지, 엔딩을 보는 데에 15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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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ss9294계절별로 각각 기준이죠? 생각보다 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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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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