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패킹 (Unpacking), 짐을 정리하며 느끼게 되는 작은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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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패킹 (Unpacking), 짐을 정리하며 느끼게 되는 작은 힐링 [1]



MS 게임 패스를 결제했으니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심산으로 관심은 있었지만 평소 관심은 있었지만, 아직 구매 전인 작품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플레이해 보고 있는 중이다.


'The Artful Escape' 다음으로 플레이한 작품은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언패킹 (Unpacking)'이다.


언패킹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짐을 풀고, 그 짐들을 정리하는 것이 게임의 주된 목표이다.



1997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2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 속 주인공인 그녀가 살았고 머물렀던 장소들의 짐을 풀고 정리하면서, 그녀의 삶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보게 되는 이 작품은 플레이 타임은 4~5시간 정도로 짧은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3,000건이 넘는 스팀 유저 평가에서 '매우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잘 만들어진 힐링 게임이다.




'언패킹'은 앨범 주인의 이름을 적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앨범이란 사진을 보관하는 용도이고, 앨범에 보관되는 사진 속에는 저마다의 추억이 어려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다르게 표현하자면 언패킹은 누군가의 추억을 되짚어보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패킹은 유저가 직접 정리 정돈한 방의 사진들을 추억의 일부로 앨범 속에 담고, 앨범 내 다시 보기 기능을 이용하여 이전 플레이에서 자신이 직접 방을 정리해 나가는 모습을 리플레이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소녀의 방으로 보이는 1997년을 시작으로 2004년, 2007년, 2010년, 2012년, 2013년, 2015년, 2018년 이렇게 특정한 총 여덟 해 동안 그녀가 거주하고 있었던 공간들에 쌓여 있는 박스들을 열고, 그 안의 짐들을 적절한 장소에 보기 좋게 정리해 나가면 된다.



몇몇 특정 물건들은 '반드시 지정된 위치'에 있어야지만 레벨 클리어가 가능하지만, 이 몇몇 특정 물건들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들은 자유롭게 유저의 취향대로 정리하고 배치하면 된다.



그저 집을 정리해 나가는 것일 뿐인데도 그 집의 모습만 보고서도 이 집의 혹은 이 방의 주인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언패킹은 그 어떤 대사도 지문도 퀘스트도 없이 플레이가 진행되는 작품이다.


하나의 레벨을 클리어할 때마다 일기장에 새로운 사진이 붙여지고 그에 대한 한 줄 감상 등이 덧붙여지긴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물건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의 그녀는 대략 몇 살쯤이고,

지금 그녀와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녀의 취미는 무엇인지,

그녀는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의 신발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동거인이 있다면 그는 또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처음에는 그저 이삿짐센터의 직원이라도 된 것 마냥 짐을 풀어서 정리하기 바빴는데 그래서 정리와 정돈 그 이외의 것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에만 집중을 했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되었다.

1997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단 한 해도 빠짐없이 그녀의 곁을 지킨 그녀의 오래된 애착 인형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목에 둘러져 있던 붉은색 리본도 사라지고, 배에는 커다랗게 덧댄 자국이 생길 정도로 낡아져 버렸지만, 이 작고 귀여운 핑크 돼지 인형은 단순히 낡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긴긴 세월의 흔적을 그녀와 함께 나누었고, 고스란히 그 작은 몸 안에 품어왔다.


그래, 객관적으로 보면 이건 그저 낡디낡은 꾸질꾸질한 오래된 돼지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인형과 함께한 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저 단순히 낡아빠지기만 한 오래된 인형이 아니다.

이악 소녀가 되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까지의 긴긴 시간을 지켜봐 준 친구이자, 추억 그 자체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작은 인형에게서 나는 포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생각해 봤다.

내게도 이렇게 긴긴 시간의 흔적이나 기억을 담고 있는 무엇이 있던가?


몇 번의 이사를 진행하는 동안 불필요한 것들을 거의 다 내버려 버렸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그런 내게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30년은 족히 되어가는 손때 묻은 책들.

어린 나이에 헌책방에 발품을 팔면서 한 권, 한 권 소중히 사 모았던 책들.

그 책들만큼은 어쩐지 아까워서 몇 번의 이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보관해 오고 있다.


언패킹은 시간의 흔적들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니, 그런 거창한 목적의식 같은 건 없어도 사실 상관없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짐을 풀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기대하게 된다.

이다음번에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떤 곳이고,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



바쁘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우리는 이토록 모든 것이 바쁘기만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언패킹은 그러한 바쁜 시간들 속에서 한숨 돌릴 틈을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그저 쌓여 있는 짐들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한결 개운하게 정리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이 작품의 플레이를 모두 끝내고 나면,

어쩌면 현실의 내 집 또한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을 골라내어 새롭게 정리 & 정돈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손길이 닿은 모든 물건에는 나의 기억들이 머문다.

오래 함께하고 많이 만진 물건일수록 더 많은 기억들이 머문다.


그것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시간의 흔적들이다.

그리고 그것의 다른 이름은 '추억'이다.


언패킹...

당신의 유년 시절 또는 삶의 어느 한 자락을 돌아보게 만드는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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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이 해제되었습니다.

정리하는게 전부인데 그점이 묘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게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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