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풀 이스케이프 (The Artful Escape), 진정한 자신을 깨달아 가는 SF 몽환 판타지 [1]
'내가 바라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나의 모습'이 늘 일치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어째서인지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내게 기대를 거는 내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나의 모습'이 어긋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약간의 타협이나 절충이 가능한 문제라면 좋을 텐데, 때로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나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내게 거는 기대 속의 내 모습'이 정반대의 경우여서, 긴 시간 방황과 고민을 반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The Artful Escape'는 바로 꼭 이런 상황 '내가 바라는 나'와 주변의 기대감이 만들어 낸 나의 모습과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고뇌하는 평범한 십 대 소년 '프렌시스 벤데티'의 이야기를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우주여행을 통해서 풀어나가는 독특하면서도 신비한 이야기의 작품이다.
MS 게임 패스를 결제했는데, 곧 게임 패스 목록에서 삭제되는 게임 중에 'The Artful Escape'가 있었다.
이 작품이 출시되던 당시부터 눈찜을 해 두었던 작품이기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게임 플레이를 시작했다.
대략 4~5시간 분량의 플레이 타임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굉장히 독특했다.
눈이 즐거웠다.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음악과 환상의 나라처럼 구현되어 있는 다양한 우주 행성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여러 외계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조작을 중시하는 게임적 요소보다는 '감상에 초점을 둔 내러티브'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겐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을 더 크게 안겨준 작품이다.
2021년 9월 10일 그러니까 대략 1년 전 이맘때쯤에 출시된 이 작품은 인디 게임치고는 꽤 훌륭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800건이 넘는 스팀 평가와 함께 유저들로부터 '매우 긍정적'이라는 호평을 받아낸 작품이다.
'The Artful Escape'은 사이드 스크롤러 방식으로 진행되는 워킹 시뮬레이션류에 가까운 2D 어드벤처 게임으로 게임의 진행 방식은 굉장히 쉬운 난이도의 플랫폼 게임 + 간단한 리듬 게임이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나면 더욱 의아하게 느껴질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10대 소년과 우주와 외계인이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조합일까?
하고.
그런데 이 뜬금없는 조합이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어느새 그 세계를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이키델릭한 세계라니...
17세 소년 프렌시스 벤데티는 기타 연주에 열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다.
하지만 그가 신나게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싶은 음악은 '락' 계열인데, 부모님을 포함한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프렌시스가 '포크송'을 연주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프렌시스가 나고 자란 이 마을은 포크송의 대부 '존슨 벤데티'가 나고 자란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벤데티가 기타 연주에 대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프렌시스에게서 '존슨 벤데티'를 떠올렸다.
어쩌면 다시 한번 더 그 멋진 연주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존슨 벤데티와 피가 이어져 있는 프렌시스를 통해서.
하지만 프렌시스는 그런 주변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포크송을 연주하지만 자신은 삼촌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포크송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무너트리거나 망치고 싶지 않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언제나 힘을 내왔지만, 자신을 '프렌시스 벤데티'가 아니라 포크송의 대부 '존슨 벤데티'의 조카로만 바라봐 주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프렌시스는 점점 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만 간다.
자신이 무슨 수를 써도 결코 자신은 삼촌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평생 동안 '존슨 벤데티의 조카'라는 꼬리표는 프렌시스를 따라다니며 프렌시스를 괴롭힐 것이다.
사람들의 앞에서는 '포크송'을 좋아하는 아이인 척을 연기하지만 프렌시스의 방에는 온갖 공상과학 도서와 포스터 피규어로 가득하고, 그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는 음악은 락이다.
하지만 이 열정을 분출시킬 수 있는 곳은 없다.
아무에게도 내어 보일 수 없다.
그래, 10대 소년이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이런 고민을 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포크송 대부의 재림'을 기대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포크송 같은 건 연주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은 할 수 없다.
17세 소년에겐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자신에게서 '프렌시스'가 아니라 '존슨 벤데티'만을 그리워하고 쫓고 있는 그들에서, 포크송은 연주하고 싶지 않다는 말 같은 건 결코 할 수 없다.
그렇게 프렌시스의 고민이 깊어져만 가던 그날 밤,
프렌시스의 공식적인 첫 데뷔 무대를 앞둔 하루 앞둔 바로 그날 밤,
소년 프렌시스는 하늘에서 우주선을 타고 내려온 한 명의 외계인과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라이트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밝힌 남자는 프렌시스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곧 전 우주로 방송될 자신의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를 맡아달라고 말한다.
부탁도 회유도 아닌 '결정'
남자는 프렌시스의 뜻 같은 것은 묻지도 않고 프렌시스를 데리고 우주로 향한다.
우주?
뜬금없이 미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우주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싶겠지만,
불가능하다고만 생각됐던 그 모든 일들이 이후부터 놀랍도록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과 함께 화면을 채워 나가며, 스토리를 진행시켜 나간다.
하지만 우주 무대에 오르는 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특별 채용으로 우주로 오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연주 실력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렌시스는 은하계 여기저기를 차원 이동하며 다양한 행성들을 방문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여러 신비한 생명체들과 조우하며 원 없이 그가 좋아하는 락 연주를 하게 된다.
처음 만나는 자유...
처음에는 분명 '납치'에 가까운 끌려옴이었지만, 이 신비한 여행을 통해서 프렌시스는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게 된다.
여행은 소년을 성장시킨다.
프렌시스 역시 이 신비롭고도 기묘한 여행을 통해서 성장함과 동시에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포크송의 대부이자 자신의 삼촌이기도 한 '위대한 존슨 벤데티'의 영광에 가려져 있는 '제2의 존슨 벤데티'가 아니라, '벤데티'가의 이름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해 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과 진심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깨닫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내면의 용기를 찾아내게 되는 프렌시스 벤테티.
프렌시스 벤데티와 함께하는 이 하룻밤 동안의 기묘한 여행은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냐면...
그건... 이 작품을 직접 플레이하실 분들을 위한 자그마한 행복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아름다운 작화와 멋진 효과 그리고 신비롭고도 멋진 BGM들의 하모니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마치 영화 '제 5원소'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디바 플라바바라구나가 있는 행성 '플로스턴'을 떠올리게 만드는 다양한 외계 생명체들로 가득한 다채로운 외계 행성들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의 한복판으로 나를 데려가 주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래, 이 작품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니 '이상한 우주의 프렌시스'라는 제목이 어울릴 만큼 이상하면서도 신비한 세계로 가득하다.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The Artful Escape'의 세계는 좋았다.
완벽하게 좋았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SF 세계관이라니,
다양한 색채감과 감성으로 가득한 The Artful Escape의 우주는 이 작품만의 매력을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시간제한도 없고, 게임 오버도 없다.
점프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지만 '점프 스트레스'가 없는 작품이다.
실패하면 바로 직전 위치에서 바로 이어서 진행이 가능하며, 점프에 실패했다고 하여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Game Over' 메세지와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중간중간 보스 배틀전 느낌의 '리듬 게임' 구간이 존재하지만, '배틀'이라기보다는 '합주'의 개념이기 때문에 몇 번이나 실패해도 친절하게 다시 한번 더 연주해야 하는 음을 알려 준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편안한 작품이다.
컨트롤을 잘 못한다는 스트레스도 없고, 시간에 쫓기며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
게임 플레이 중 심심찮게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구간들이 나타나지만,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무방하다.
선형적 구조의 스토리이기 때문에 선택지로 인한 분기는 없으며, 엔딩 또한 하나이다.
그러니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은 공략에 대한 걱정도, 컨트롤에 대한 부담도 모두 내려놓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완벽하게 편안하고 즐거운 이 환상적이고도 신비한 세계를.
* 하지만 반대로 게임을 조작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으시는 유저분들의 경우, 그다지 많은 조작이 필요하지 않는 이 작품의 다소 정적인 플레이 방식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길고 긴 인생이란 길 위에서 내가 하고자 원하고 바라는 것과 내게 바라는 주변의 기대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고민하고 갈등하게 되는 것 또한 아마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감내해야만 하는 시련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고민은 깊어진다.
선택 이후에 펼쳐질 불명확한 미래가 두렵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The Artful Escape'는 프렌시스 벤데티를 통해 얘기한다.
확신도 자신감도 모두 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이 평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일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그 어떤 파도와 풍랑도 꺾을 수 없다고.
그렇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깨달음의 연속이기도 하다.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것들을 깨닫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깨닫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고, 하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깨달음의 과정,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다.
천상병 시인님께서는 '귀천'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고 싶다 하였다.
나는 이 세상 소풍 끝내는 그 언젠가의 날에,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며 '즐거웠다.'고 회고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다운 나로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들을 찾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발견과 깨달음 속에서 즐거움과 환희를 느끼며, 내 생의 남아 있는 인생이란 소풍 길을 그렇게 즐거이, 즐거이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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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찐' 힐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