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웅전 라이징 (Eiyuden Chronicle: Rising)
백영웅전 라이징 (Eiyuden Chronicle: Rising)

[자유주제] 백영웅전을 기다리며, 되짚는 한국 올드 게이머의 20세기 JRPG 라이프 스토리 3부(완결)


1999년 12월에 발행된 컴퓨터 게임 잡지 V챔프의 12월호는 잡지 커버에 ‘파이널 판타지 8(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 VIII)’이 대문짝만하게 실리면서, 파이널 판타지 8의 PC 이식 소식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1998년에 전작인 ‘파이널 판타지 7(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 VII)’이 PC용으로 이식됐고, 그로부터 1년 후인 1999년에 파이널 판타지 8까지 PC판이 나왔는데 둘 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수입해 정식 발매됐다.

 

한글화되지 않고 영문판이 그대로 수입됐지만, PC용으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 당시 한국 게임 시장에서 화제를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송년특대호 부록이라고 해서 게임 2개를 증정했는데, 사실 이것도 메인은 CD 2장의 대용량인 호주산 RTS 게 ‘KKND 2 크로스화이어(KKND2 Krossfire)’였고. ‘환상수호전’은 어떻게 봐도 송년특대호 기획에 맞추려고 자투리로 끼워준 게임 같은 느낌을 줬다.

 

근데 내게 있어선 환상수호전은 결코 자투리가 아니었다.

 

환상수호전(幻想水滸伝)은 1995년에 코나미에서 만든 JRPG 게임으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1)이 발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창기 때, 변변한 RPG 게임 하나 없던 그 시절에 혜성처럼 등장해 히트를 치면서, PS1의 멱살을 잡고 하드캐리한 명작이다.

 

90년대 중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사이, 당시 PS1을 가진 친구가 몇 명 없었는데. 이 게임을 구해서 플레이하는 게 가장 부러웠었다.

 

게임 잡지에 관련 정보가 실린 걸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쏙 들어서 관심을 가졌고. 동네 친구들이 직접 플레이하는 걸, 친구네 집에 놀러가 구경하면서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이게 바로 차세대 JRPG 게임이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었다.

 

하지만 PS1용으로 나온 JRPG 게임이었기에, 그저 보기만 할 수 있을 뿐. 내가 직접 플레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꿈에 그리던 그 게임이 게임 잡지 부록으로 증정됐고 내 컴퓨터로 구동을 해서 플레이할 수 있다니. 20세기의 끝, 세기말에 맞이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환상수호전 PC판은 한국에서 SKC가 유통을 맡았고 정식으로 수입되어 완전 한글화됐다.

 

PS1판은 일본에서 1995년에 발매했는데, Windows 95판은 1998년에 발매를 했고. 한국 발매판은 당연한 일이지만 PS1판이 아니라 PS1판의 Windows 95 이식판을 수입한 것이다.

 


Windows 95판은 게임 전체 화면의 해상도가 640x480이지만…, 이게 온전히 하나의 화면이 그만한 사이즈로 나오는 게 아니고. 실제 게임 메인 화면은 320x240의 작은 창으로 출력되고. 전체 화면의 남은 여백은 게임 인터페이스를 윈도우 기반으로 재구성해서 나누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게임을 실행하는데 요구되는 컴퓨터 사양이 낮은 편에 속했다. 90년대 후반에 나온 윈도우용 게임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저사양 게임이라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지 못해 최신 게임을 거의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윈도우에 맞춘 게임 인터페이스가 지금 다시 플레이해도 쾌적한데. 게임 화면이 작은 건 어떻게 커버를 할 수 없어서, 관련 스크린샷과 함께 본격적으로 게임을 소개하기에 앞서 PSP판으로 넘어갔다.

 


PSP판은 2006년에 1탄, 2탄을 하나로 묶은 합본으로 ‘한상수호전(幻想水滸伝 1&2)’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2021년에 개인 블로그 유저가 만든 한글패치가 공개된 바 있다.

 


환상수호전의 줄거리를 짤막하게 요약하자면, 제국 황제를 모시는 장군의 아들인 주인공이, 운명의 장난으로 제국을 배신하고 해방군의 리더가 되어 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는 민중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전쟁물의 클리셰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꽤나 통속적이라서. 줄거리만 부분만 봐서는 새로운 느낌은 없었다.

 

허나, 정통 JRPG 게임으로서 캐릭터 서사에 집중해 드라마를 이끌어내는 메인 스토리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JRPG는 캐릭터 서사에 집중한 스토리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고. 그게 곧 서양식 RPG 게임과 차별화된 요소다.

 

만약 서양식 RPG 게임이었다면, 해방군이 되어 제국을 무너트린다! 라는 퀘스트 달성을 위해,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해방군 캐릭터를 만들고. 어떤 방법으로 제국을 무너트리냐에 대한, 수단과 방법의 자유를 주되,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개별적으로 가진 스토리는 부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JRPG는 반대로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의 서사를 풀어내면서 게임을 진행한다.

 

본작으로 풀어서 말하자면, 제국 장군의 아들인 주인공이 해방군의 리더가 되어 제국과 싸우는 과정에서, 친구, 동료, 가족 등을 잃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자신의 믿음과 선택을 끝까지 관철시켜 나가는 장대한 이야기를 통해 재미를 주는 거다.

 

흔히 명작으로 손꼽히는 JRPG 게임들이 스토리가 좋다는 수식어가 붙는 게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그치만 사실, 본작은 스토리만 좋은 게임이 아니었다.

 

스토리만 좋은 선에서 그쳤다면 단순히 스토리 좋은 게임으로만 기억되었을 테지만, 스토리 뿐만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자체도 재미있고, 그게 그 당시 어떤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본작만의 고유한 개성이 되어 게임 자체의 매력이 넘쳐 흐르다 못해 대폭발했다!

 


기존의 JRPG 게임은, 모험을 하든, 싸움을 하든. 항상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걸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본작도 돌아다니긴 많이 돌아다니지만 그 이전에 본거지부터 구하고 시작한다.

 

게임 타이틀이 ‘환상수호전’인 만큼,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을 게임 컨셉으로 삼고 있어서, 수호지의 영웅들이 ‘양산박’을 거점으로 삼은 것처럼, 본작도 주인공 일행의 거점을 마련한다.

 


거점을 마련하고 동료를 모으는 게 본작이 가진 게임 플레이의 핵심적인 요소다.

 


처음 거점을 마련한 직후에는, 동료의 이름이 새겨지는 석판의 빈자리가 많고. 거점 안이 텅텅 비어 있으며, 전투에 참가 가능한 멤버도 몇 명 안돼서 진짜 썰렁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여기서부터가 본작이 가진 진짜 재미의 스타트 라인이다.

 

수호전을 컨셉으로 삼고 있기에 게임 플레이 내에서 얻을 수 있는 동료의 수는 무려 108명!

 

앞서 말했듯 환상수호전의 메인 컨텐츠는 동료를 얻는 것이라서, 동료를 얻음으로써 온갖 기능이 다 지원되고. 동료를 얻는 전후 과정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게임 전체 스토리를 이루고 있다.

 


여관 주인을 동료로 얻으면 거점에 여관이 생기고, 

 


목욕탕 장인을 동료로 얻으면 거점에 목욕탕이 지어지며, 

 


지리학자를 동료로 얻으면 필드에서 미니 맵이 표시되며, 

 


음악가를 동료로 얻으면 거점에서 OST 재생을 이용할 수 있다.

 

그 밖에 도구점, 무기점, 문장 가게(마법 사용에 필요) 같은 기본 상점과 무기를 강화시켜주는 대장간, 아이템을 맡기거나 되찾을 수 있는 창고, 주사위 도박, 카드 짝 맞추기 등의 미니 게임, 사운드 변경, 윈도우창 변경 등등.

기존의 게임에서 마을에 방문해야 이용할 수 있는 상점이나, 게임 옵션을 통해 지원하는 보조 기능들이 본작에서는 동료를 얻으면 거점 내에 생기는 것이다.

 


동료의 수가 늘어나면 거점의 레벨도 상승해 규모가 커지고, 이동할 수 있는 장소도 늘어나며 거점 안 곳곳에 동료들이 상주하고 있다.

 

맨 처음에 방문했을 때는 안개 낀 호수 위에 괴물 튀어나오는 버려진 성이, 108 동료들이 북적거리는, 호수 위에 뜬 천연의 수호 요새로 바뀌는 것이다!

 


초반부에는 석판에 새겨진 동료의 이름이 빈자리가 가득했는데 나중에 가면 그 자리가 꽉 채워지고, 또 처음에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동료가 몇 명 없었는데. 후반부에 가면 전투 참가 인원이 수십 명으로 늘어나서 누구를 골라서 파티에 편성해 데리고 다닐지 고민이 될 정도가 된다.

 

동료의 수는 또 부대 전투에서 동원할 수 있는 아군 병력의 수로 치환되는데, 

 

 

해방군의 첫 번째 부대 전투에서는 병력의 수가 그때 진행한 플레이 구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동료를 전부 다 얻어도 최대 6000여 명 밖에 안 되지만….


 

108명의 동료를 모두 모아서 세력을 최대한 키워서 제국과의 마지막 결전을 치르는 최종 전투에 돌입하면,



 처음의 3배나 되는, 18000여 명의 병력이 되어 제국군의 군세와 박빙을 이룬다!

 

이건 단순히 부대 전투에 동원되는 병력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만 의미를 둔 게 아니다. 

 

처음에 한 줌 먼지도 되지 않던 해방군의 군세가, 주인공의 활약과 그 행적을 통해 세력을 넓혀나가 마침내 제국과 나라의 운명을 건 정면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되는 빌드 업의 끝이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의 설계가 잘 되어 있다는 걸 방증한다.

 

게임 스토리 뿐만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의 재미도 충분히 고려해서 혼신을 다해 만든 것이다.

 


최종전 승리 후, 정예 멤버로 파티를 구성해 제국의 수도에 돌입. 최종 보스인 제국 황제를 격파하고. 이어지는 108 동료들의 후일담과 대사 한 마디 나오지 않지만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진 엔딩 장면까지. 마지막까지 폼을 유지하면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잘 끝냈다.

 

멀티 엔딩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지만, 이게 최종전 돌입 전까지 108명의 동료를 전부 다 모았느냐, 모으지 못했냐에 따라서 진 엔딩과 노멀 엔딩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라서, 사실 다회차 요소는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플레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몇 번이나 재플레이를 했는지 모른다.

 

내 게임 라이프에서 도스 시절에 이만큼 재플레이를 많이 한 JRPG 게임은 KSK의 퍼스트 퀸 4가 유일했는데, 윈도우 시절에는 환상수호전이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환상수호전 시리즈는 계속 이어져 나왔고. 본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환상수호전 2(幻想水滸伝 2)’도 우여곡절 끝에 컴퓨터로 플레이를 해보고 완전 신세계를 경험했지만, 2000년 이후의 일이라서 20세기가 지난, 21세기의 일이 되었다.

 

그래서, 내게 있어 20세기 JRPG의 불꽃을 마지막을 불태운 건 환상수호전 1이었다.

 

‘JRPG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게 바로 JRPG다!’라고 확실한 답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JRPG의 문법에 충실하면서 그 표준을 제시한 게임이었기에 20세기 게임 라이프. 아니, 나 개인의 40년 인생사에 기록으로 남길 만한 게임이 됐다.

 

그런 게임의 정신적 후계작이 나온다고 하니, 어찌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있겠나.

 


환상수호전 1 클리어 후에 나오는 엔딩 스텝롤에 보면 다이렉터 ‘무라야마 요시타카, 디자이너 카와노 준코’의 이름이 올라왔는데. 팀 토끼씨 소속으로 되어 있고,

 


백영웅전 킥스타터 모집 당시 게시글을 보면 주요 스탭에 무라야마 요시타카와 카와노 준코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환상수호전 1 개발 당시 ‘팀 우사기상(토끼씨)’ 소속으로 적혀 있는데. 백영웅전을 만든 개발사인 ‘래빗 앤 베어 스튜디오’에서 ‘래빗’이 환상수호전 1의 팀 토끼씨를 지칭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환상수호전 개발 스텝이 독립해서 게임 스튜디오를 차리고, 킥스타터로 후원금 모집에 성공해 게임 개발에 착수하여 현재 게임 출시를 1년 앞두고 있는 게 백영웅전의 현재 근황이다.

 

게임 출시까지,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데. 좋아하는 게임의 출시를 기다리는 것 자체도 또 게임 라이프의 각별한 맛이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 한 가지 희소식을 듣게 됐으니….

 

   

백영웅전: 라이징(Eiyuden Chroncle Rising)의 발매 소식이었다!

 

백영웅전: 라이징은 백영웅전의 프리퀄로 횡 스크롤 액션을 기본으로 해서 마을 건설 요소를 도입한 액션 RPG 장르의 JRPG 게임이라고 한다.

 

이미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한참 됐고, 5월 11일에 정식 출시된다고 해서 이 글이 올라간 5월 10일 기준으로, 바로 내일 나온다. 내일! 하룻밤만 더 자면 구입해서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단 말이다.

 

백영웅전을 기다리며, 20세기 JRPG 라이프를 되짚었으니. 이제 21세기인 지금 현재. 백영웅전: 라이징으로 달린다!

 

내 게임 라이프에서 JRPG는 멈추지 않는다.

 

3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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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컨텐츠는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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