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s&Guides] 올클리어 후 리뷰 (스포약간) [3]
※ 이 글에는 게임 플레이에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 수준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주관적인 기준일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잘 만든 게임입니다.
텍스트와 스토리 위주의 미소녀게임은 굉장히 오랜만인데(한 10년만?),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밌게 즐겼습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캐릭터들의 개성과 그걸 받쳐주는 예쁜 일러스트, 탄탄한 공통시나리오 단계입니다.
게임 시작부터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채 자기 외에 인간이 없는 수인계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고
그 배경 그대로 수인이라는 이질적인 존재와 함께 차원, 시간, 공간 개념이 얽혀있는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SF와 판타지가 얽혀있는 배경 속에서, 일단 어떻게든 게이머를 이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서 몰입을 시켜야 그 위에 무언가를 얹어볼 수 있을텐데 그 점을 아주 부드럽게 연착륙 시킵니다.
학생들이 교수에게서 시험지를 훔쳐내서 성적을 내는 게 아주 당연한 것 같은
아주 황당한 설정들을 뻔뻔하게 들이밀고 와서는
진지한 장면과 태클 걸고 싶어지는 웃음유도 장면들을 버무려서 내어놓으니
'아 그렇지 여기는 역시 인간의 상식과는 달라', '이렇게까지 막나가면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식으로
게이머에게 이 세계가 납득은 되지 않더라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게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히로인 3인의 개인 시나리오를 얹어서 마무리.
아주 잘 만들어진 케이크 베이스 위에 평타 정도의 데코레이션이 어우러져서
결과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케이크가 나왔다고 봅니다.
권장 진행 순서는 나모 -> 키위 -> 사니.
제가 이렇게 진행했는데 딱 적절했다 생각하고, 오히려 이 순서가 아니라면 힘이 빠진다고 봅니다.
사니가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사니부터 진행할까 생각했었는데 그랬었으면 나모와 키위의 시나리오는 그 무게면에서 사니 시나리오와 비교되면서 평가가 더 박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게임 내에서 '당신이 하겠다면 우리가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니를 마지막으로 진행하길 권장한다' 라는 어필을 강하게 하는 쪽이 맞지 않나 싶네요. 지금처럼 아주 자유롭게 어떠한 안내문도 없이 고르는 경우 보다는 사니를 끝으로 유도하는 편이 나아보입니다.
아쉬운 점도 좀 짚어볼까요.
학부 연구생 시스템은 통째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걸로 획득하는 포인트들은 전부 메인시나리오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전부 서브캐릭터들의 시나리오를 개방하는 데에 사용되는데,
서브캐릭터가 너무 많고 시나리오는 너무 짧습니다.
마치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모든 아이스크림을 조그마한 티스푼으로 한번씩만 퍼서 전부 같은 그릇 하나에 때려 넣은 느낌.
너무 소량이라 무슨 맛인지 알 수도 없고, 다른 서브캐릭터들의 시나리오, 메인시나리오와 동시에 진행하는 식으로 짜여진 구조라 그 맛이 온전히 나기도 어렵습니다.
서브캐릭터들의 수를 6~9명 정도로 확 줄이고, 서브시나리오의 분량을 캐릭터별 5~6편으로 늘리고, 메인캐릭터 수준은 아니더라도 서브캐릭터들에게도 표정 그림을 좀 더 할당하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학생들을 고용해서 일과 휴식을 반복시키면서 포인트를 모으는 과정 역시, 그저 플레이타임을 붙잡고 늘어지는 요소 이상의 것이 아니어서 더욱 아쉽습니다.
메인캐릭터들은 위에 적은 나모 -> 키위 -> 사니 순서대로
시나리오에 차원/시간/공간 개념이 적게(덜 복잡하게)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데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너무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지만 사니 시나리오는 사니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는 별개로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좋진 않았습니다.
너무 어려운 내용을 다뤘어요.
이 소재와 '미래의 누군가가 어떻게든 해줄거야' 전개는 그리 좋은 궁합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시나리오 자체의 딱 떨어지는 완성도만을 놓고 보자면 나모가 베스트.
하지만 반대로 이 쪽은 좀 깊은 부분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알고 난 뒤에 돌아보면 무난하고 밋밋.
저는 시크릿플러스로 게임을 플레이했는데
남녀간의 사랑을 게임의 메인에 두고서 성적인 소재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위화감이라 생각하기에 저는 이 부분은 시크릿플러스 쪽이 맞다고 봅니다.
노멀판이 이 부분이 어떻게 묘사되고 넘어가는지를 모르기에 궁금하긴 하네요.
이 장면들의 퀄리티에 대해서 평가가 좀 갈리는 거 같은데, 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납득이 갔기 때문에 이 정도면 준수하다고 봐요.
BGM 준수했구요. 제법 다양한 수의 곡이 게임 분위기에 맞춰서 잘 나와줬어요.
백그라운드 CG를 다양하게 쓴 점 역시 고평가합니다. 여기에서 자원을 아끼려고 지나치게 배경을 돌려쓰거나 하지 않고 게임 내 짧은 장면 정도에서만 쓰일 거 같은 배경도 다양하게 신경써서 넣어 준 점이 좋았어요.
칭찬할 거 하나만 더.
전체적으로 성우분들 연기가 좋고
특히 사니 역할 분의 다양한 톤의 연기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게임을 진행해 나가면서 사니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참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연달아서 비주얼노벨 작품들을 더 손대진 않을 예정이라 다음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테일즈샵이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메이커라는 좋은 기억을 안고 게임을 마칩니다.
사니양 연구실을 구매하기까지는 내가 이 게임을 재밌게 즐길 수 있을지 제법 고민을 했었는데
적어도 테일즈샵의 다른 작품이 이 정도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면 구매를 망설일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미소녀가 나오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에 거부감이 없다면,
애초에 이 장르를 즐기고 싶고 그 중에 어떤 게임을 해볼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수인(퍼리)이 나오고 뭐고를 떠나 높은 우선순위로 추천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재밌게 잘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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