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네 칼은 왜 휘어있니? 절단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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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읽을거리) 네 칼은 왜 휘어있니? 절단의 과학 [25]





칼로 무언가를 자를 때, 그냥 눌러 자르는 것보다 밀거나 당기면서 자르면 훨씬 잘 잘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으시죠?
이건 단지 느낌이 아닙니다. 실제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감각입니다.


▷ 누름 vs. 밀기/당기기 — 절단력의 차이

칼날을 단순히 아래로 누르면, 물체는 ‘압축력’을 받아 찢어지거나 끊어집니다. 이는 강한 힘이 필요하고, 깔끔하게 잘리지 않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칼을 밀거나 당기면, 압축력에 전단력(shear force)이 더해져 절단 효율이 급격히 향상됩니다.
이 전단력은 물체를 옆으로 비트는 힘으로, 섬유질이나 조직 같은 결이 있는 구조에 특히 효과적입니다.

또한, 미시적 관점에서 칼날은 완전히 매끄럽지 않고, 미세한 톱니나 돌기 구조가 존재합니다.
이 돌기들이 ‘밀기/당기기’ 동작 중 물체의 결을 톱질하듯 끊어내는 역할을 하게 되죠.



케이크를 누르듯 자르면 단면에 케이크가 뭉치는 듯 한 절단면을 보여주지만, 칼을 길게 밀거나 당겨 자르면 깔끔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케이크나 말랑한 재료를 자를 때도, 칼을 길게 움직이며 자르면 단면이 부드럽고 깔끔하게 잘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케이크 커팅칼이 다른 칼과 다르게 유독 긴 것도, 길게 움직이며 자르라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 이렇게 칼이 움직이는 거리가 길어지면 실수로 다른 부위(손)를 쉽게 자를 위험도 커지니 항상 주의하세요.


▷ 곡률이 주는 전단력 — 초보자도 쉽게 자르게 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흔히 쓰는 식칼은 약간씩 휘어 있을까요?

날의 곡률은, 사용자가 위에서 아래로 단순히 눌러 자르더라도, 자연스럽게 (칼 또는 음식물이 밀리며) “밀거나 당기는 효과”를 유도합니다.
덕분에 초보자도 별다른 기술 없이도 자연스러운 전단력을 가해, 절단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죠. = 잘 잘립니다.

낫으로 대표되는, 곡률을 가진 농기구들 > 이걸 기반으로 한 무기들은 모두,
초보자도 “쉽게 전단력을 유도” 하기 위한 지혜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낫과 식칼의 은은한 곡률은, 초보자들도 쉽게 전단력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결과물 입니다.


▷ 잠깐, 중식도는 곧은데?


반면 중식도(중화권의 큰 식칼)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합니다.

이 칼은 도끼처럼, 칼날이 재료에 틈을 만들고, 그 두꺼운 본체가 그 틈을 벌려가며 잘라냅니다.
그래서 날이 약간 무뎌져도 절단력은 여전히 유지됩니다. ‘압축력’ 중심의 절단 방식이기 때문이죠. (더 정확히는 관성 중심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이 때문에 중식도는 무겁게 설계되어 있고, 다소 힘으로 눌러 자르는 느낌에 가까운 사용법이 많습니다.

중식도 특유의 “탕탕탕” 도마 때리는 소리도, 이런 다른 접근법에서 탄생한 중식도 만의 개성이죠 ㅎㅎㅎ

물론 중식도도 날카롭게 연마하여, 무를 얇게 도려내는 고수들도 있고,
탕탕탕 소리를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것”으로 보면서 조용히 칼질하시는 고수분들도 넘쳐나니, 성급한 일반화에는 주의!


중식도도 용도에 따라 다양하지만, 일반 식칼에 비해 2배에서 3배로 두꺼운 두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칼날에 곡률을 줘서, 일반 식칼의 장점을 도입한 칼도 있죠.



▷ 무기의 곡률 — 기병의 등장과 곡도


고대 전장의 주력은 대부분 보병이 중심이었습니다.

스파르타, 아테네, 그리고 로마의 중장 보병까지, 이런 보병들은 주로 글라디우스(Gladius) 같은 짧은 직검(straight sword)을 사용했죠.

당시 검은 주 무기라기보다는, 창과 방패를 보조하는 보조 무기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기에 창으로 교전하기에는 가까워졌을 때만 꺼내 사용하는 보조 수단이었습니다.


여기에 직검이 선택된 이유는 명확합니다.
대량 생산이 쉽고, 집단 전투에서의 수납과 사용이 간편하며, 직선 찌르기와 견제에 유리했기 때문이죠.
기술적으로도 직검은 다양한 면에서 “편하고 안정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로마 보병의 표준무장. 찌르기 중심의 근거리 ‘직도’ 글라디우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중앙아시아와 몽골 등, 기병 중심의 사회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 검은 대부분 곡도(curved sword)였습니다.

기병은 말 위에서 빠르게 돌진하며 상대를 베야 합니다.
이때 직검으로는 검이 충격을 흡수하며 에너지가 그대로 손에 전달되거나, 베는 힘이 분산되기 쉬웠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전단력이 아닌 압축력에 의존한 공격이 되기 쉬웠죠.
(그래서 기병창이라는 “운동량을 한 점에 모은 무기” 또한 하나의 분화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곡도는 검이 대상과 접촉하며 자연스럽게 '밀거나 당기는' 궤적을 형성합니다.
그 결과, 말 그대로 지나가며 “스치듯이 베는 것만으로도” 전단력이 발생하고, 매우 효과적인 절단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곡도를 치켜든 대표적 경기병단 ‘후사르’


이런 곡도는 유럽에서도 보병에서 기병으로 주류가 넘어가며 자연스럽게 전파되기 시작했죠.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샤벨(Szabla) → 프랑스·영국 등에서는 샤브르(Sabre) → 영어식으로는 세이버(Saber) 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기병도’를 뜻하는 단어들입니다.

모 창작물에서는 어째서인지 기사 클래스의 이름으로 나오지만, 정확히는 “기병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정작 무기조차 기병도가 아니다 ㄷㄷㄷ


아시아권은 애초부터 "베기 중심"의 도 문화로, 보병도 도를 사용하며 발전했기에 곧은 직도가 드물긴 했습니다.



현대에서도 곡도의 전단력 효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정글도(Machete-마체테), 특히 네팔식 곡도 ‘쿠크리(Kukri)’가 유명합니다.

곡률이 큰 정글도는 정글의 질긴 덩굴이나 나뭇가지를 자를 때, 단순히 내리치기만 해도 곡선 칼날 또는 가지가 밀리며, 자연스럽게 전단력이 작용해 물체를 절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질긴 정글의 식물들의 섬유질을 절단할 때는, 압축력만으로는 효과적이지 못하기에, 유독 과장된 것 같은 곡률이 발전하게 된 것이죠.


한편 단검(dagger)처럼 날이 짧은 무기는 충분히 밀거나 당기는 동작이 어렵기 때문에, 곡률이 거의 없거나 끝에만 곡률을 주는 식으로, 
찌르기 중심의 설계로 진화한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의 발톱같은 만곡형 나이프(카람빗)도 있지만, 실전보다는 격투 시범, 수집, 장식용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작물에서 단검이나 포켓 나이프를 크게 휘두르는 연출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단검의 특징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연출이긴 합니다. 오히려 상대의 아마추어함을 들어낼 생각이라면 정확한 연출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적인 무기 운용을 고려한다면, 단검은 찌르기에 특화된 무기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죠.

단검을 아예 휘두르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단검으로는 잘 베이지도 않고, 베이더라도 매우 얕은 상처만 남겨질 뿐이죠.




그냥 강하게 내리치면, 휘어진 칼날을 타고 미끄러지며 “전단력이 극대화 되는 정글도 특징”


▷ 검도에서 수없이 연습하는 ‘베기’ — 왜 곡선을 그릴까?


검도를 처음 접한 초보자들은 칼을 그저 세게 내리치면 잘릴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눌러치기만 해선, 칼날이 대상에 걸리거나, 도중에 멈춰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게 유명한 명검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래서 검도에서는 ‘호(弧)’를 그리는 궤적, 즉 곡선을 따라 내려치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이는 단순한 멋이나 형식 때문이 아니라, 검의 궤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밀기’와 ‘당기기’ 동작이 포함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직선 운동이 아닌 곡선 운동을 통해 전단력을 극대화하고, 제대로 베이도록 만드는 것이죠.

실제로 검도 수련에서는 베기의 깊이와 궤적을 조절해,
칼이 너무 얕게 스치지도 않고, 너무 깊게 박히지도 않게 하는 균형을 익히는 데 집중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볏단 베기’에서는 칼이 이상적인 호를 그리지 못하면 베기가 중단되거나,
너무 당기다보면 칼이 미끌어져 벤 흔적이 직진이 아닌 위나 아래로 휘어진 결과도 볼 수 있습니다.




짚단 배기 — 칼이 충분히 밀리지 않으면 멈추고, 너무 밀리면 끝까지 베지 못하거나 이상한 궤적이 생겨 버립니다.


▷ 번외편: 가장 날카로운 칼날, 단분자 커터 ― 흑요석


오늘날에는 나노 공정과 첨단 소재를 통해 절삭력을 극대화한 다양한 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칼날은 자연이 만든 재료, 바로 흑요석(Obsidian)입니다.

흑요석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천연 유리로, 특정 방식으로 쪼개면 거의 단분자 단위에 가까운 극단적으로 얇은 수준의 날카로운 날을 형성됩니다.
이런 날은 수십 나노미터의 두께를 가져, 현대의 면도날은 물론, 수술용 메스보다도 더 날카로운 절삭을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수술에서는 정말 사용하기도 했고요.
유리 기반이라 염증반응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ㄷㄷㄷ



(왼쪽) 흑요석 칼날과 (오른쪽) 현대 금속 매스의 전자 현미경 비교 사진


물론 내구성이 너무 약해(손으로도 부서지는 수준)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이처럼 자연물조차 절단력 극대화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죠.



그러니까 아즈텍의 흑요석 무기는 구시대의 상징이 아닌,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의 날카로움에 비견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이라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 칼이 휘어있는 건, 단지 멋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게임 속에서 우리가 자주 보는 휘어진 검들, 예를 들면 일본도나 조선 환도의 곡선, 중동풍 커브드 블레이드, 또는 사벨 같은 무기들…

이 곡률은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실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축적된 전투의 논리,
그리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절단력 향상의 구조적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미적 관점에서 이상하게 휘어 놓은 검들도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베는 목적”의 검은 자연스럽게 진화과정에서 곡률을 얻게 되는 것이죠.




검의 최종 진화는 "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본도에 비해 짧지만 곡률은 더 큰 조선 환도


그런데 게임(특히 3D)에서 이런 휘어진 칼이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는 것도 아시나요? ㅋㅋㅋㅋㅋ

직선형 무기는 3D 모델링, 텍스처, 리깅(뼈대 작업), 그리고 애니메이션 제작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휘어진 무기는 검의 궤적이나 충돌 판정 계산이 복잡해지고, 회전 궤도 애니메이션도 까다로워지죠.
특히 예전 게임 엔진에서는 베는 방향과 모션 싱크가 중요한데, 곡도는 거리에 따라 충돌 범위나 피격 이펙트가 어긋나는 문제가 더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아예 “기피 대상” 이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최근 게임에 등장하는 일본도와 같은 검들도, 모델링만 곡선으로 두고 실제 내부에서 충돌 처리 할 때는 “직검과 똑같이” 처리를 하는 경우도 흔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사정이란 참… ㅋㅋㅋㅋ



솔칼6에 등장하는 황성경은 과거 박도가 아닌 직도를 들고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스샷은 소피티아)
최신 버전에서도 휘어진 칼에 담기는 이펙트는 “직선”으로 표현되는 타협을 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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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딱 맞는 스티커네요 ㅋㅋㅋ

휜게 생각보다 더 중요하군요

휘면 휠수록 좋은데, 그러면 그만큼 다루기나 숙련도가 올라가서, 적당히 휘는게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ㅎㅎㅎ


정성추 누르고갑니다.

중간에 후사르를 보고 왜 퉁퉁퉁사후르가 생각이 나는지 원참....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 같은 효과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문"에 이어서 "곡선류" 취급주의 메모해놔야겠군요ㅋㅋㅋㅋ 

저런 곡선류 나이프가 찌르기 위주라서 총상에 비하면 일견 타격이 없을 거 같지만 

실상 찌르고 다시 빼면 본의아닌 전국장기자랑이 될 수 있어서 치명상이라고 하던거를 본 거 같습니다. 

전국장기자랑이라니 ㅋㅋㅋㅋ 너무 완벽한 비유를 하는 단어라서 웃프네요 ㅋㅋㅋㅋ

의사들도, 저런 찔리거나 관통된 경우, 괜히 물체를 빼지 말고 그냥 찔린 채로 병원을 방문하라고 조언할 정도니 또 틀린 말도 아니네요!





게임에서 곡도는 보기 어려웠던게 어른들의 사정... 사실 직도보단 곡도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칼 이미지에 더 잘 맞죠 

게임에서 곡도는 분명 본 것 같은데, 찾아보면 정말 찾기 힘들죠 ㅋㅋㅋ

MMORPG에 스킨 뿐인 곡도는 그나마 찾을 수 있지만, 격겜이나 FPS 같이 디테일한 충돌이나 히트박스가 구현되는 게임에서는 더욱 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몬헌의 태도 정도가 떠오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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