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잘 모르시는 분도, 워낙 쉽게 접할 수 있다보니 뜻을 아는 단어가 있습니다.
“かわいい(카와이, 可愛い - 귀엽다.)”
그런데, 일본어를 조금 더 공부하다보면, 이 카와이라는 단어의 다른 용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かわいそう (카와이소, 可哀相 - 불쌍하다.)” 구조만 보자면, 「かわい」(귀엽다) + 「そう」(~해 보이다) = 귀여워 보인다. 로 해석하는게 맞을 것 같은데,
어째선가 불쌍해 보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일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일본인들도 종종 꺼내는 의문입니다.
일본 야후(지식인)에서도 이런 질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카와이소 와 카와이는 관계가 있나요?”
4천명 이상이 검색해 본, 일본인들에게도 호기심 이라는 거죠. 내용은 아래에서 설명할 예정이니 굳이 읽으려 노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어원: ‘카와이’의 기원은 ‘가엾다(가여운 감정)’
의외로 두 단어의 어원은 같습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고어 “かわゆし (kawayushi)”가 그 어원입니다.
아래 일본어 고어 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 카와유시: ‘형용사’ 의미와 활용
① 부끄럽다, 기분 나쁘다.
② 보기 힘들다. 불쌍해서 눈을 마추지기 힘들다.
③ 귀엽다, 사랑스럽다, ◆ ‘카호하유시’ 로 변함
언어의 역사 : 무로마치 시대부터 ③번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대에 ‘카와이’의 어원이 되었다.
즉, かわいい는 원래 “불쌍해 보인다”는 것이 원래 뜻 입니다. 단순히 동음이의어 일까요? 아니면 어쩌다 “귀엽다.”는 뜻도 포함하게 된 걸까요?
‘불쌍하다 → 불쌍하니 지켜주고 싶다. →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 작고 연약함 → 귀여움’
위와 같은 연결성을 가지게 됩니다. 즉, 일본의 かわいい는 한국의 귀여움과는 다르게,
“불쌍하고 보호욕이 자극되는 연약한 대상에게 떠오르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라는 것이죠.
사전적 정의로는 귀엽다(cute), 불쌍하다(pitiful)는 엄연히 다른 정서가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어의 카와이는, 어원상 둘은 공통된 정서(약함, 연약함, 보호욕을 자극하는 상태)를 공유합니다.
동음이의어(같은 발음에 다른 뜻을 가진 단어)라기보다는, 같은 정서적 뿌리를 둔 ‘감정의 연결점’을 가진 단어라는 것이죠.
더불어서 문맥이나 상황, 대상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뜻이 구분되기에, 이것이 굳이 새로운 단어로 나눠지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난민을 보고 귀엽다고 말하거나, 장난감을 보고 불쌍하다고 말할 일은 없으니까요 ㅎㅎㅎ

목소리의 형태에서 등장하는 (이름) 카와이 미키. 귀엽다는 의미의 카와이와, 불쌍하다는 의미의 카와이를 동시에 함축한 캐릭터 입니다.
양쪽의 의미를 동시에 내제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가 있습니다.
‘목소리의 형태’에서 주인공이 위선적인 캐릭터를 비판하면서 “自分がかわいいだけなんだよ - 네 자신이 귀여울 뿐이야” 라고 말합니다.
뭔가 말이 이상하죠? 공식 번역에서는 ‘넌 자기 생각밖에 안 하잖아.’라고 번역된 문장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카와이(귀여워) 와는 뜻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 자신이 불쌍할 뿐이다 (자기 연민만 강하게 느낀다 - 소위 피해자 코스프레한다): 상대방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거나, 동정을 얻으려 하는 행동을 비판할 때 쓰입니다. "네가 하는 행동은 다 네가 불쌍해서 그러는 척하는 것일 뿐이야" 와 같은 뉘앙스입니다.
이런 불쌍함이나 연민에 뿌리를 둔 단어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일본적인 ‘카와이’ 인 것이죠.
지뢰계(地雷系)나 멘하라계(メンヘラ系)에서 사용되는 ‘카와이(かわいい)’를 조금 깊이 들어가 보면,
여기서도 일본 특유의 ‘카와이’의 본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주로 의상 패션쪽에만 집중하다보니, 그저 귀엽다 정도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지뢰계나 멘하라계는 단지 의상 뿐만이 아니라, 자해 흔적, 눈물, 상처, 붕대, 피, 의존증 등의 “불쌍함이나 위태로운” 포인트를 동반하고 있죠.
이런 불쌍함이나 위태로운 포인트를 보고서 나서도 “귀엽다”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실제 호기심으로 지뢰계와 연애를 해 본 한국 사람들은, 저 특유의 위태로움과 집찹에 치를 떠는 연애 후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반면 ‘귀여움’과 ‘불쌍함’의 의미를 동시에 내제하는 일본의 ‘카와이’라면, 저런 불쌍함이나 정서적 불안 같은 요소 또한 “지켜주고 싶은 카와이”가 되는 것이죠.
병약계 (근골계) 미소녀라는 걸 만들어낸 일본이니… (아이마스 시로사와 히로)
한국에서의 병약은 기본적으로 슬픔의 소재일 뿐입니다. 관대하게 '동정표'로 해석되긴 해도, 아픈 걸 귀엽다고 말하지는 않죠.
그리고 일본에 이러한 ‘카와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하는 경우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 약간 혐오스러운 사진 및 벌레 사진 주의 ↓
바닥에 내쳐지고, 남자 배우들에게 자비없이 밟히고,
벌레를 먹게 만들며
본격 레슬링도 시키며 (여기 있는건 HKT48 > 아이즈원 > 르세라핌으로 옮겨온 미야와키 사쿠라)
아저씨 엉덩이 냄새로 한번 맡게 해주며,
밀가루도 한번 뒤집어쓰고…
씻어야 하니 물에도 좀 던져주고…

▷ 불쌍하니 귀엽다?
한국의 관점에서는 정말 선 넘는, 바로 이 “가학적인 콘텐츠”가 탄생하게 된 비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참 선넘은 가학적인 장면에 불과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감정의 뿌리에서 이런 가학적 장면을 다시 보면,
예능 프로그램 속 아이돌이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은 단순한 희롱이라기보다는, 시청자에게 ‘보호본능’ = 카와이 감성을 자극하려는 장인 것입니다.
즉, 출연자가 괴로워하거나 놀라는 모습,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을 통해 "카와이"라는 감정을 유도하는 것이죠.
저런 어려운 시련을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 통과하는 아이돌은 “かわいげがない (카와이게가 나이 - 귀염성 없다.)” 라는 평을 받죠.
한국어로 번역하면 귀엽지 않다 정도로 해석되겠지만, 일본어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보호해주고 싶거나 모성 본능을 자극하지 않는다.” 라는 관점으로,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게 되죠. 불쌍하지 않으니 귀엽지도 않다 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을 할 때는 귀여움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이 안 간다.” 라는 말로 많이 번역합니다.
요즘은 이러한 콘텐츠가 비판을 받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보니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일본 예능 및 미디어에서는 ‘약자의 불쌍함’을 ‘카와이’의 연출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같은 이유에서, 일본의 아이돌을 미성숙, 부족함, 실수나 어리숙함을 “보호해주고 싶은 카와이”를 응원한다는 일본 아이돌의 개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좋게 “성장형” 아이돌이라고 좋게 포장하지만, 정작 성장하면 카와이가 사라져서 은퇴하는 엔딩을 맞이하죠.
물론 이 어원 하나만 가지고, 일본에 나오는 가학적 콘텐츠나 아이돌 문화를 모두 정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문화는 복잡한 배경과 다양한 원인이 복잡적으로 작용해서 형성이 되고, 이 카와이의 어원은 그 다양한 문화 형성 요소의 하나로 보는 관점이 더 맞겠네요.
▷ 결국…
일본의 ‘카와이(かわいい)’는 단순히 귀여움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불쌍함, 연약함,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감정이 어우러진, 매우 일본적인 정서의 결정체죠.
이 감정의 뿌리를 이해하고 나면, 일본의 카와이 문화 - 지뢰계, 멘헤라, 병약계, 예능의 과장된 연출, 그리고 아이돌 그 자체까지 -
그저 특이하거나 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언어’로 읽히게 됩니다.
불쌍하니 귀엽다? 이 어색한 문장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일본 문화 속 ‘카와이’의 진짜 얼굴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더 넓어질 것입니다.

혹시나 해서 이 문장을 꼭 적어야 겠네요.
문화는 우열이 아닙니다. 문화는 어디까지나 장르입니다.
우리의 관점이나 기괴해보이거나 혹은 열등해 보이더라도, 존중 받아 마땅한 다양성입니다.
일본 방송에서 저러는게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군요
일본 특유의 갈라파고스 방송에 대해서는 정말 해석이 많다보니, 이건 그 많은 원인 중의 '하나' 정도로만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미디어에서는 주로 일본의 위계적이고 노년층 시청자가 많은게 원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요소이기도 하죠!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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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시군요.
아이돌 17살이 나이가 많은편이라니...
저 인터뷰는 여러모로 전설이죠...
저 아저씨의 나이야 말로 아이돌을 추종하기에는 너무 많은 편이 아니라거나 ㅋㅋㅋㅋ
아마도 미숙함을 소비하는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 정도로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긴합니다 ㅠㅠ
일본 예능 무시무시하군요 ㅎㄷㄷ
저런 가혹한 방송 포맷 때문에, 일본 아이돌을 "극한직업"이라 부르더라고요 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저도 위에 내용을 읽으면서 성장형 아이돌을 생각했었는데...
우리나라는 완성형 아이돌인 반면, 일본은 성장형 아이돌이라 하더군요.
아이돌도 팬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나.
말이 좋아서 아이돌이지, 상당 수가 지하 아이돌, 또는 로컬 아이돌이 많은 거 같더군요.
악수회 등을 통해서 앨범을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보컬이나 댄스 교육을 하고.
차츰 성장해 나가긴 하겠지만. 예쁘다, 카와이, cute 가 전부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네요.
'성장형 아이돌'은.... 한국의 완성형 아이돌과 대조나 경쟁을 위해 무리하게 만들어낸 단어라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ㅋㅋㅋ
그래서 다 성장한 아이돌은 어디 있는데? (졸업...) 한국 아이돌도 완성형이라고 말하지만 팬과 함께 계속 성장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이제는 점차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고 있기도 하고요. 미숙함을 소비하는 아이돌 문화를 그냥 보기 좋게 포장한 것 뿐이라는 관점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일본 아이돌이 K-pop 아이돌과 버튜버에 매몰되는 게, 단어가 사리지는 것 보다 더 빠를 것 같기도 하고요.
정말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네요. 더불어 제 의도까지 정확하게 파악한 문장을 남겨주셨네요!
번역은 어디까지나, 유사한 단어를 가져온 것 뿐이라서, "예쁘다, 카와이, Cute가 전부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네요." <- 이게 정답입니다.
진짜 단어를 알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권에서 살아보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더라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