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층이 나눠진 B-52 칵테일

B-52 칵테일은 베이스에 깔루아 (커피 리큐어), 중간에는 베일리스 (아이리시 크림 리큐어), 상단에는 그랑 마니에(오렌지 리큐어)를 층층이 쌓는 칵테일입니다.

한국에서는 최상단에 바카디 151(현재 단종돼 론디아즈 151)을 올리고 불을 붙이는, Flaming B-52로 더 많이 알려진 칵테일이죠.

당도와 알코올 농도의 큰 차이를 이용하고 있기에  선명하게 층이 갈리는 “예쁜 칵테일”로써 유명합니다.

네, ‘프렌치커넥션’은 이 B-52와 같이, 예쁘게 층이 나뉘어 잘 섞이지 않는 그런 게임입니다.

■ B-52 처럼 섞일 수 없는 히로인

B-52의 가장 위를 장식하는 그랑 마르니에는 오렌지를 재료로 만든 도수가 40도로 높은 술입니다.

오렌지 향기가 워낙 강해서, 한 잔만 따라 놓아도 온 집안을 오렌지 향으로 뒤덮을 정도죠. 서아라는 딱 이런 그랑 마르니에와 같습니다.

존재감만으로도 주변의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밝은 색감으로 이목을 모으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40도의 강한 도수로, 사람들을 순식간에 취하게 만들죠.

주인공이 아라를 만나는 모든 순간, 아라의 페이스에 취해버려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이끌려 다니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미각을 지배하는 고유한 오렌지 향으로,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가장 주도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재회 씬에서부터 아주 오렌지처럼 상큼합니다!

반면 아라의 쌍둥이 동생인 서아린은, B-52 바닥에 깔리는 깔루아와 같습니다.

커피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리큐르인 깔루아는, 그 특유의 깊고 진한 커피 향과 더불어, 바닐라와 캐러멜을 더해 그 특유의 달콤하면서 쌉쌀한 맛을 내줍니다.

삼수를 하면서 인생의 쌉쌀함을 맛본, 어둡고 내성적인 아린은, 캐릭터 컬러부터 깔루아 특유의 짙고 어두운 색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쌉쌀함은 다른 칵테일의 재료로 사용되었을 때, 다른 재료들의 향취와 맛을 끌어올려 주는 아주 인기 있는 리큐르죠.

주인공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를 위로해 주며 챙겨주는 모습은, 마치 깔루아가 다른 재료들과 시너지를 일으켜 감칠맛을 끌어올려 주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깔루아가 들어간 칵테일들은 한결같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특징이 있는데, 아라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부드러운 아린의 모습과도 겹쳐 보이네요.

초크에 약간은 지뢰계로 보이는 스타일. 어둡지만, 그 속에 품고 있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은, 더없이 짙고 깊은 깔루아와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랑 마르니에와 깔루아 사이에 끼어 있는 베일리스는 초콜릿을 기본으로 한 크리미한 리큐르입니다.

양쪽 주류에 독특한 개성에 모두 걸쳐 있고, 환기하고, 조율하고 섞여 들어가는 베일리스 같은 점장님입니다.

크림과 초콜릿 향이 너무나 절묘한 이 술은, 재밌게도 “어른들의 초콜릿 우유”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스러우면서도 부드럽게, 그리고 위험하면서도 달콤한 복잡 미묘한 초콜릿 풍미는,

아직 싱글이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다가갔다간 큰일 날 것 같은 점장님과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무려 캐릭터 색상도 베일리스에서 따온 게 아닐까 하는 베이지색!

베일리스처럼 양쪽 쌍둥이에 걸쳐서, 그들을 조율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시는 점장님! 그런데 점장님 루트가 왜 없어?

■ B-52의 맛과 닮은 스토리

층이 나뉘어져 있는 칵테일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가장 아래층(깔루아)부터 마셔집니다. 

잔을 기울이면 밀도 차이로 인해, 가벼운 위층이, 무거운 아래 층 위에 “떠버려서” 아래층이 먼저 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프렌치커넥션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흐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위층에는 아리(그랑 마르니에)가 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아린(깔루아)과의 관계성이 깊어지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점장님(베일리스)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리(그랑 마르니에)가 등장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이 모든 맛이 뒤섞이는 B-52 특유의 맛은, 각 캐릭터의 개성이 얽히고설키며 프렌치커넥션 게임 특유의 재미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층이 나눠진 칵테일들의 경우는 “의외로 별로 맛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주얼에 신경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주로 재료들의 조화가 좋지 못하거든요.

대표적으로 레인보우 칵테일이라 불리는 ‘푸스 카페(Pousse Café)’가 비주얼에 몰두해서 맛의 조화가 별로 없는 걸로 유명하죠.

하지만 B-52는 보는 맛뿐만이 아니라, “먹는 맛도 좋은 칵테일”로 인기 있습니다.

아주 맛있다구요!

아주 개성 확실한 캐릭터들이 서로 엮이고 갈등하며 펼쳐지는 프렌치커넥션 특유의 재미!

그런데 아쉽게도 말이죠. B-52은 샷 글라스에 만들어서 한 번에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술입니다.

정말 다양한 맛이 한잔에 술잔에 담겨있는 것 치고는, 그 술잔의 크기나 양이 작습니다.

프렌치커넥션은 초반에 정말 다양하고 알찬 에피소드들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며 진행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밀려 들어온 그랑 마르니에의 강한 알코올에 모든 게 씻겨 내려가듯, 순식간에 절정과 결말이 찾아와 엔딩으로 직행해 버립니다.

기승전결에 있어서, ‘기~승’에 할당된 분량에 비해서, ‘전~결’에 할당된 분량이 너무나 짧다고 느껴집니다.

플레이 타임이 3시간 30분에서 3시간 동안 기~승의 전개를 하다가, 단 30분 만에 전~결로 마무리되는 느낌이었죠.

저는 조금 빠르게 플레이하는 편이라, 평균적인 플레이 타임은 5~6시간으로 보시면 거의 맞을 겁니다.

마지막을 장식한 강한 알코올의 향취와 더불어 달짝지근한 뒷맛이 입에 감돌게 되죠. 이걸 씻어내고 싶어집니다.

네, 이 빠른 엔딩에 대한 아쉬움은 더 많은 칵테일(에프터 스토리)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 냅니다.

절정~결말 부분의 순식간에 비워져 버리는 분량은 다음 잔(에프터 스토리)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 냅니다.

■ B-52처럼 결국은 섞이지 못한 스토리, 시스템, 그리고 칵테일

이 게임이 프렌치커넥션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된 이유

프렌치커넥션이라는 제목은 칵테일 이름에서 따왔고, 칵테일을 만드는 미니게임도 있습니다.

바에서 일하면서 칵테일을 만들고, 게임 내에서는 플레이어에게 상당히 진지한 칵테일 강의까지 해 줍니다.

하지만 칵테일에 대한 정보나 가르침과, 이 게임의 스토리와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칵테일은 칵테일대로, 스토리는 그냥 스토리대로, 캐릭터는 그저 그들의 어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칵테일에 대한 강의나, 칵테일을 만드는 미니게임조차도, 게임의 스토리나 진행에 어떠한 단서가 되지도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넣지 말라는 진을 넣어도, 도수 높은 걸 달라고 했을 때 무알콜을 칵테일을 건네줘도, 탄산 있는 걸 달라고 했을 때 탄산 없는 것을 주더라도,

스토리는 똑같이 진행되어 버립니다. 극히 일부의 경우는 대사가 바뀌는 걸 보긴 했는데, 이 범위가 너무 느슨하고 넓게 잡혀 있는 듯합니다.

여친이 걱정되어서 5도짜리 술을 줘도, 스토리에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즉, 세 층으로 분리되어 있는 B-52와 같이, 스토리와 시스템과 칵테일은 섞이지 않고 층이 나누어진 채 분리되어 있습니다.

당장에 이 리뷰는 계속해서 B-52라는 칵테일에, 게임과 캐릭터를, 스토리를 비유하고 은유하고 있습니다.

칵테일이 소재로 사용된다면, 최소한 이 정도로 칵테일이라는 매체에 의미 부여가 필요합니다.

제목이 ‘프렌치커넥션’이여야만 하는, 또는 어떠한 종류의 ‘칵테일’이여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냥 PC방 심야 알바로 바꾼다고 해도, 내용이나 감정의 전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건 정말 아쉽습니다.

결국 이 게임에서의 칵테일은 취중 진담을 끌어내는 술 이상으로는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여기에도 칵테일이 아닌 깡 보드카를 마시고 있고...

예를 들자면 제목으로 사용된 ‘프렌치커넥션’이라는 칵테일.

이 술은 부드럽지만 알코올 도수가 상당히 높아, “조용하지만 강한 한방이 있는 칵테일”로 유명합니다.

즉, 아린의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때는 과감한 한방에 비유하는 표현으로 “프랜치커넥션”에 비유하거나,

만나는 사람조차 발랄하게 만들어 주는 서아라는, 마시기만 해도 텐션이 올라가는 “블루 하와이”에 닮았다고 말하는 등,

칵테일을 활용한 비유나 표현만 들어갔어도 충분했을 겁니다.

졸음 없이 항상 하이텐션인 점장님은 예거밤?

아니면 칵테일 제작 미니게임을 잘 살려서, 스토리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었다면?

지금과 같이, 각각의 내용물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은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발할라 - 바텐더 시뮬레이터, 커피 토크, 테번 토크, 후카 헤이즈 같은 본격 서빙-토크 게임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올바른 음료”나 “선호하는 음료”에 대한 반응 정도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조금은 설명이 부족해, 초반에는 살짝 당황하게 했던 칵테일 만들기 미니 게임

이외에도 게임 리소스가 너무 무거운 것도 들고 싶지만, 이건 피드백 부분에 넣었으니 넘어가도록 할게요.

🍸 칵테일의 미학은 조화에서 나옵니다.

프렌치커넥션은 정말 개성 넘치고 맛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칵테일입니다.

다만 그 강렬한 개성들이 서로 섞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감만 뽐내고 있는 것이 문제죠.

분명, 각각의 재료들은 정말 훌륭했지만, 그것이 조화와 시너지를 뽐내지는 못했습니다.

칵테일이라는 것은 한 종류의 음료가 아닌, 두 종류 이상의 음료가 들어가 

그 음료들이 섞이며 일으키는 시너지에 의해 완성되는 예술입니다.

즉, 프렌치커넥션에서는 그 “조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습니다.

이야... H씬 이후에 CG에 등장하는, 붉게 달아오른 키스 자국은 좀 개쩐다고 꼭 말하고 싶네요 ㅋㅋㅋ

다른 게임들에도 도입이 시급합니다!

궁금하면 플레이해 보세요! ㅋㅋㅋㅋ

엑스트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제공되는 다양한 칵테일 정보! 정작 본편에서는 딱히 큰 역할이 없습니다.

B-52는 한 번에 마시는 칵테일입니다.

조금만 급하게 마셔도 층층이 쌓인 각 재료가 입안에서 섞이기 전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죠.

그리고 그 강렬한 한 잔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집니다.

‘프렌치커넥션’도 그랬습니다. 캐릭터들의 매력이 넘쳤고, 개성이 뚜렷했지만, 그 모든 것이 섞이기 전에 이야기는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 잔 더 있을까?’ 하고 말이죠.

여러분도 맛있는 B-52 한잔혀~

이건 리뷰와 관계 없이, 왼쪽에 벽지 패러디가 재미있어 올리는 이미지 입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