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Localization] 번역가를 소개합니다 - UNICORD 님 (Myskrpatch) [3]
Q: 간단한 자기소개와 번역 경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언제부터 번역을 시작하셨고, 어떤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셨나요?
A: 안녕하세요. 게임 번역팀 Myskrpatch에서 PM/번역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UNICORD라고 합니다.
FLOWERS 여름편 후기에서 잠깐 인사드린 적이 있었죠?
주요 업무는 번역입니다만, 그 외에도 전반적인 글의 매끄러움과 맞춤법 등을 체크하는 검수자(Editor/Proofreader)의 업무도 동시에 맡고 있습니다.또한 저희 팀은 한국 외에도 일본 게임사와 퍼블리셔, 이외에도 영어권·스페인어권 패치 번역자와도 종종 협업하고 있는 관계로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및 일정 조율이 불가피합니다. PM으로서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군대를 들어가기 직전인 2018년 즈음부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주로 게임 번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제 첫 번역 입문은 게임이 아니라 철학 서적이었답니다.학부 시절에 교수님과 함께 대규모 철학서 번역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마는, 해당 프로젝트가 제 첫 번역 경험이었던 것이죠.그때가 학부 1학년 2학기였으려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번역을 내놓았을 텐데, 많은 분들의 너른 이해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이후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혼자서 프로그래밍과 이미지 편집, 자막 제작 등을 독학하여 한글패치를 작업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네요.이때 즈음해서 현 Myskrpatch 멤버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패팀 소속 이후의 활동은 나무위키 Myskrpatch 문서에서 소개하고 있으므로(?) 해당 문서로 갈음하겠습니다.
Q: 지금까지 진행한 번역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특별한 도전 과제가 있었던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A: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몸을 고되게 하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자료 찾느라 발품을 좀 팔아야 하는 게임이죠.
그 자료를 찾아냈을 때 느끼는,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것 같은 희열이 있다고나 할까요.
한패팀 시절에서는 〈사쿠라의 시〉가 대표적이었네요. 미야자와 겐지 같은 일본문학부터 유미주의 같은 미술사조, 스피노자 등을 다루고 있기에 해당 서적들을 읽으면서 번역했습니다.
더불어 현재는 속편인 〈사쿠라의 각〉을 번역중입니다만, 하이데거와 불교철학을 가볍게 다루고 있어서 해당 분야 권위자인 신상희 선생님과 김형효 선생님의 서적을 조금 읽었습니다.
스토브와 함께한 뒤로는 FLOWERS와 유즈소프트의 작품 번역을 진행하였습니다만, 이중 어려운 작업이라 하면 역시 FLOWERS네요.
일단 인용의 양이 많습니다! 작가님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지 제법 많은 양의 영화 대사가 인용되어 있더라고요.
헤밍웨이 같은 문학도 상당히 많았고요.FLOWERS 발매 당시 동시발매한 설정집에 대사의 출처와 음식들이 실려 있었는데, 다행히 구할 수 있었던 덕에 정확한 원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일본의 번역 문화상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와는 꽤 다른 부분이 많아서, 원문(대체로 영어)을 중심으로 참고자료의 폭을 넓게 잡았습니다. 이를테면 번역 후기에서 언급한 〈굿 윌 헌팅〉의 대사 부분.결국 일본 사람들은 '원어 대사와는 다른 자막'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것이니까요. 작품에 인용된 이상, 인용된 전후의 의미와도 아귀를 맞추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 나름의 고민거리라면 고민거리고, 또 의역의 중요성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죠.
Q: 번역 작업을 할 때 어떤 철학을 가지고 계신가요? 번역 작업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번역 철학. 부담스럽네요.
철학이랄 것까진 없지만, 조금 길고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쭉 넘기셔도 상관 없지만 따라와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어언 5-6년 전일까요. 이희재 님의 『번역의 탄생』(교양인, 2009)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번역 실무서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만, 요는 "원문의 맛을 살린다"에 너무 과도하게 얽매이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책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이래저래 다양합니다마는, 저 문장 자체는 모든 번역자들이 한 번씩 맞닥뜨리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원문의 맛을 살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원문의 맛이라는 말부터 대단히 모호합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번역자의 고민이 시작되죠.
이 문장에선 원문의 주어를 살릴까? 죽일까?
이건 한국어로 옮기면 부자연스러운데, 체언과 용언 용법을 바꿀까?
이 문장은 의미화가 까다로운데, 어설프게 돌려 말하기보단 직역을 할까?
이 음식 이름은 현지화를 할까?
번역을 하는 동안 이런 고민들을 늘 맞닥뜨리게 됩니다.
누군가는 여기서 원문 구조에 충실한 번역을 합니다. 누군가는 과감하게 현지화를 하고, 문장을 바꾸죠.저는 필요에 따라 전자와 후자를 나눠 사용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후자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번역가 분들께서 이렇게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번역문을 읽는 사람은 한국인 유저입니다.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천차만별일 테죠. 게임을 하며 일본 '여름축제夏祭り'의 그 후텁지근함과 번잡함, '빙수かき氷'의 아삭아삭하고 찌르르한 느낌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여름? 캐O비안 베이……? O빙……? 과 같은 느낌만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제법 간극이 있죠.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 특성상 '시각 이미지'가 그 상상력의 간극을 보완해 주지만, 이건 또 제가 떠올리며 번역한, 저 자신이 실제로 느낀 일본 현지의 '여름축제'와도 또 괴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원문의 맛'을 살리기 위해 직역을 하면 될까요? 다만 모든 번역은 본질적으로 의역이며(의미意의 풀이訳), 역사적으로 직역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었으나 비판 역시 많은 방법론이었죠. 예시로, 19세기 후반 일본의 소설가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는 직역으로 유명한 번역가이기도 했습니다만, 자신의 필력으로는 주코프스키(러시아의 시인)를 따라할 수 없으니, 오히려 투르게네프(러시아의 소설가)의 글 속 콤마나 마침표 하나하나까지 재현해서 '실패하지 않는 번역'을 하겠다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적어도 시메이에게 직역이란 '고점은 낮지만 저점이 높은', '안전한' 번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하나 더. 게임을 하는 모든 유저가 그런 개념적 부분을 공유한다면 "원문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걸까요?
이것도 조금 이상합니다. 만약 모든 유저가 그렇다고 가정하더라도, 유저마다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경험과 삶의 궤적은 다르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여름축제에서 부모님과 헤어져서 무서운 경험을 했을 수 있고, 누군가는 여름축제 가판대에서 1등상을 탄 좋은 기억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여름축제' 장면의 번역이 주는 '맛' 역시 모두가 다르지 않을까요? 마치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명작', '인생영화'라며 크게 감동하지만 누군가는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것처럼요.
결과적으로, 제가 전하려 시도했던 '원문의 맛'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맛'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제가 전할 수 있는 건 원문의 '맛' 그 자체라기보단, 단지 '제'가 원문을 맛보고 떠올린 '감촉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 손맛을 재현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엄마 손맛에는 다다르지 못하지만, 엄마 손맛을 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엄마 손맛과 닮은 듯 다른 나의 '손맛'을 만들어내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요.이를테면 같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번역하더라도, 각 번역자의 문체는 다릅니다. 그리고 (대놓고 분탕을 치려는 게 아닌 한) 그 중 어느 것이 틀렸거나 옳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것이 그 번역자의 경험 속에서 느낀 캐릭터의 어투일 테니까요.
딱히 결론 내릴 건 없습니다만, 어떠신가요?
"번역은 반역이다"란 말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저런 말과 논쟁들이 생겨나는 것 자체가 이러한 '번역' 자체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다만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와의 사투는 번역가가 번역이란 행동을 하면서 늘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점이란 건 분명합니다.
(참고자료: 오선민, 「번역은 어떻게 주체를 생산하는가」, 『문화예술』 2007년 봄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36-55쪽.)
혹시나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번역가의 과제」(Die Aufgabe des Übersetzers, 1921. / 국내 역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92. 등 다수 역본 존재)라는 글을 추천드립니다. 번역이란 행위에 대한 재미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Q: 앞으로 번역가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어떤 분야에서 더 성장하고 싶으신지 이야기해주세요.
A: 스토브 여러분들의 노고로 비주얼노벨 현지화를 한국에서도 유감없이 하는 시대가 왔지 싶네요.
조금 아부성 멘트? 같지만 진심으로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막 이 장르에 관심을 가질 때만 해도 한국 유통은 그림의 떡 같은 시대였거든요. 게임은 CD 넣어서 설치하는 것이었고, ESD 플랫폼조차 제대로 없었으며,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일본 대중문화에 그리 관용적이지 않은 사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강남에 일본풍 일러스트 국산 게임들이 광고를 하는 시대지만, 그때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죠.일본도 일본대로 폐쇄적이었던 시대라, 일본 게임사 측에 해외 진출을 타진해도 "우리가 왜?"란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 게임사들부터가 해외 판촉을 목표로 중국어권, 영어권 진출을 도모하는 시대죠. 한국어권 유저는, 숫자 면에서 비교적 적긴 하지만 게임에 대한 관심도는 지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들을 어필해서, 저희 팀에서 선제적으로 한국어 지원을 제의한 게임이 몇몇 있답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반응이었고요.이런 면에서 보자면 느슨한 한패 동호회로 시작한 Myskrpatch도 점점 기업화가 되어가는 느낌도 드는데... 아무튼.
그렇다 보니 목표라 해 봤자 더 많은 게임을 소개하고 싶다, 정도일까요. 이 게임도 꽤 좋은데, 소개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 이 게임 참 좋아하는데 소개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물론 이 사이에는 통과해야 할 어른의 사정과 난관들이 많죠. 그러다 보니 소개할 기회를 주시는 매 게임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싶네요. 네. 저 나름의 소박한 희망사항입니다.
Unicord 님이 참여했던 게임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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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기대 중!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여름편!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지난날의 열정이 느껴지네요. 철학 서적 번역을 하셨었다니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