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Localization] 번역가를 소개합니다 - 황현진 님 (올드 월드, 나흘벅 시리즈 등) [2]
Q: 간단한 자기소개와 번역 경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언제부터 번역을 시작하셨고, 어떤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셨나요?
A: 안녕하세요! 스토브 인디 소속 번역가 황현진이라고 합니다. 번역을 시작한 지로는 올해로 7년이 되었어요.
현재는 영어-한국어 번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일본어-한국어도 종종 했었네요.
익명으로 개인 단위의 번역을 자주 했었는데, 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번역했습니다!
게임은 좋아했지만 프로그래밍 쪽으론 문외한이라 가끔 고마운 분들께서 열어 주시는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게 다였네요.
스토브 인디에 들어와서 원 없이 게임을 번역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께 항상 정말 감사드려요.
대표 캐릭터랄 것은 딱히 없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 사진을 살포시 가져와 보았습니다.
유명한 인디 게임이죠? 'OMORI'의 등장인물 '오브리'입니다. 아주 귀여운 여자아이예요.
몇 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생각도 하지 못한 타이밍에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기뻤던지요.
Q: 지금까지 진행한 번역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특별한 도전 과제가 있었던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A: 기억에 남는 게임들이 정말 많은데 제가 투 머치 토커 기질이 있어서… 최대한 자제하면서 두 가지 정도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나흘벅의 던전 마스터 Nahuelbeuk's Dungeon Master'입니다.
제가 스토브 인디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번역했던 게임이 이 게임의 원작 되는 '던전 오브 나흘벅: 더 아뮬렛 오브 카오스'이에요.
난생 처음 해 보는 정식 번역이었던 만큼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해서 이리저리 실수도 많이 했고, 엉성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그게 언제 생각해도 참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좋은 인연으로 '나흘벅'의 후속작을 번역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타이쿤 장르인 데다가 그사이 짬도 좀 쌓였으니, 이번엔 정말 제대로 해 보자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원작에서 만났던 캐릭터들을 또 보니 반갑기도 했고 여러모로 애정을 많이 담았습니다. 정말 '즐겁게' 번역한 게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던전의 평판이 올라가면서 바뀌는 다양한 명칭들을 번역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레벨 시스템 같은 건데 막 개장한 던전에는 '구린 던전'이라는 이름이 붙고 던전 상태가 좀 좋아지면 '훌륭한 던전'이 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레벨이라는 게 직관적이지가 않아요. 유명한 게임 및 서브컬처 밈을 아무렇게나 가져다 쓰는데(AYBABTU의 패러디 등)
아는 거 보면 반갑고, 모르는 거 보면 레퍼런스 찾으면서 한국어로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는 과정이 참 즐거웠네요.
지금 다시 보면 고치고 싶은 것들도 조금 있지만 열심히 했으니까 심심하시면 읽어 봐 주세요!
평판에 마우스를 올려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과 비교해 보셔도 재미있겠고요.
▶ 첫번째 번역이었던 던전 오브 나흘벅: 더 아뮬렛 오브 카오스 바로가기!
▶ 황현진님이 즐겁게 했던 그 게임! 나흘벅의 던전 마스터 바로가기!
두 번째는 '올드 월드 Old World'입니다.
이 게임은 참…. 힘들었죠! 위에서 소개해 드린 게임이 즐거웠던 프로젝트였다면 이건 어려웠던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네요.
아, 싫었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도전 정신이 들기도 했고 모르는 내용이 워낙 많이 나오다 보니
조사 과정에서 알아 가는 재미가 쏠쏠했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때문에 참 애먹었던 게임입니다.
흔한 역사도 아니고 고대사를 다루다 보니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뭔가 찾아내도 국내 자료가 아니다 보니
번역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어요. 이건 저뿐만이 아니라 함께 번역해 주셨던 동료 번역가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무엇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는 게임은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잖아요?
이 번역에 플레이어들이 만족할 수 있을까 고민도 엄청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게 충분한 세계사 지식이 없었던 점이 참 아쉬워요.
그랬으니까 관련 전공 지인을 동원하고, 강의도 막 찾아보고, 논문도 뒤져 보고… 자료 조사에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던 번역이었어요.
텍스트 분량이 엄청났던 만큼 장기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는데 마침내 끝냈을 때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드렸던지요.
회의마다 몇 시간씩이나 투자해 주신 팀원분들, 아낌없이 각종 기술적, 사무적 지원을 해 주신 담당자님들,
개인적으로 도와주셨던 지인분들, 그리고 진솔한 리뷰를 남겨 주시고 번역을 평가해 주신 플레이어분들…
고마운 분들이 아주 많은 프로젝트입니다. 역시 힘든 기억이 머리에 오래 남나 봐요. 저도 테스트 플레이하면서 경험했고,
많은 플레이어분께서 지적해 주시는 버그가 있는 게임인데 얼른 수정되어 '흥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길어질까 주요한 프로젝트 두 가지로 줄였습니다만 이곳에서 번역한 모든 게임이 기억에 남습니다!
19금 딱지 붙은 게임들 번역도 재밌어서 이리저리 하고 싶은 말이 참 많고요. 기회가 된다면 언젠간 이야기해 보고 싶네요.
▶ 어려웠지만... 도전 정신을 일깨운 번역, 올드 월드 바로가기!
Q: 번역 작업을 할 때 어떤 철학을 가지고 계신가요? 번역 작업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번역을 몇 년 동안 해 보면서 번역 철학이 참 많이 바뀌었네요.
아마추어 번역을 미성년자 때 시작했는데 그때는 저, 완전 '원작 지상주의'가 심했어요.
무조건 직역! 의역은 원작을 모욕하는 거다! 이런 딱딱한 생각으로 살았는데, 다양한 사람의 번역을 접하고 또 대학에 들어가
전공으로도 번역을 배우면서… 의역의 소중함을 알았어요.
번역은 외국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는 거죠? 한국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이고요.
그런데 원작을 지킨답시고 한국어에서 쓰지도 않는 표현을 그대로 옮겨서 읽기도 힘든 문장을 만든다면 그걸 번역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그건 아무래도 해석에 가깝잖아요. 하하… 당연한 이야기죠.
아무튼 이런 의식의 흐름을 몇 년이나 느끼다가 자리 잡은 제 번역 철학은, '한국어 같은 문장을 만들자'입니다.
번역문보다도 일상적인 한국어를 읽는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을 쓰고 싶어요.
관련된 고집 하나가 있다면 대명사나 남용을 꺼린다는 점이겠네요. 우리 일상에서 아무도 '그도 그렇게 생각한대' 같은 말 안 하잖아요?
아무리 번역 투가 우리 생활에 많이 녹아들었다고 해도 대명사를 남발하는 사람 찾기는 힘듭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대화문에서는 최대한 사용을 피하고 싶네요. 읽었을 때 바로 자연스러운 우리 억양으로 들릴 법한 문장을 쓰고 싶으니까요.
하하… 말은 거창하지만, 저도 아직 풋내기라서 수련이 한참 더 필요합니다.
한국어도 영어도 열심히 공부해서, 플레이어 여러분이 정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지금보다도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는 그날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헉, 그리고 생각난 김에 하나 더 적자면 저는 '초월 번역'이라는 말을 경계해요.
유명한 모 연애 소설 번역본처럼 원문보다 훨씬 아름다운 문장을 번역가가 써 내기도 하는 법이고, 그런 건 '초월 번역'이라며 박수를 받을 수 있죠.
번역가로서도 그런 칭찬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정말 달콤한 말이니까 '초월 번역'에 욕심을 내 버리는 번역가는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번역이 아닌 창작을 하게 되고 결국 원작을 훼손하게 되어요.
우리는 어떤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과 매체를 우리말로 이어 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사람들을 A라는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징검다리가 가는 길 재밌으라고 빙빙 꼬인 경로로 안내하다가 B라는 곳에 도착해 버리면…
영락없는 오역이 탄생하는 거죠. 이건 우리 번역을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께도 엄청 실례예요.
욕심 내지 말고 '최대한 전달하겠다'는 마음에 충실하면 좋은 번역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원작을 뛰어넘는 번역은 나오기 힘드니까 '초월'이니 뭐니에 붙인 욕심은 접어 두자고요.
Q: 앞으로 번역가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어떤 분야에서 더 성장하고 싶으신지 이야기해주세요.
A: 목표는 위에서 얼렁뚱땅 말해 버렸네요! 저는 번역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건 추호도 없습니다.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아주 한국어 같은, 읽기 편한 번역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사람들이 번역 투에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편한 길을 택하고 싶지는 않네요!
혹자는 이런 성향을 의역이 심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어요. 저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게임이라는 정말 좋아하는 분야를 번역할 수 있게 된 만큼, 앞으로도 경험을 쌓으면서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멋지게 줄을 타 보고 싶네요.
물론 오역 없이요 ^_^… 한국의 게이머들이 전 세계의 더 많은 게임을 접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좋은 게임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주저리주저리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_ _)
황현진 님이 직접 참여하신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세요!
크로니콘 | 요귀도: 백귀야행 | 올드 월드 | 우린 X됐어! | 위스퍼 (준비 중) |
번역가 소개 모아보기 👇
To enter a comment Log In Please
나흘벅 시리즈 덕분에 재밌게 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