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Localization] 번역가를 소개합니다 - 겐쥐킹 님 (던전 디펜더스: 어웨이큰드, 로그 글리치 울트라 등) [3]
Q: 간단한 자기소개와 번역 경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언제부터 번역을 시작하셨고, 어떤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셨나요?
A: 안녕하세요, 탈주한 대학원생 겐쥐킹입니다. 아마추어 번역을 시작한 것은 국내 대학 학사, 석사 과정 시절 원서를 읽을 때부터 입니다.
수업 참여를 위해 각종 원서를 읽어야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끼리 품앗이 번역을 시작하였고, 고교 시절 통·번역 기술을 가르쳐 준 은사의 영향으로 번역을 다소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어쩌다 보니 항상 가장 많은 양의 번역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2년여 전 기나긴 코로나의 여파 끝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외 대학 박사 과정 대학원생의 신분에서 탈주하고 나서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다가, 내가 가진 재능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버무려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이에 게임 번역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한지는 2년차이며, 지금까지 스토브 한글화 팀과의 협업 및 커뮤니티 번역 프로젝트를 통하여 총 6편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습니다.
Q: 지금까지 진행한 번역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특별한 도전 과제가 있었던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A: 지금까지 번역에 참여한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발더스 게이트 3 유저 한글화: 팀 왈도 소속으로, 발더스 게이트 3의 정식 한글화 발표 전까지 유저들 사이에서 1년여간 나돌았던 유저 한글화 버전의 번역가로 참여한 것이 저의 첫 게임 번역 경험이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였고(앞서 해보기 판의 총 단어수가 30만 단어를 넘었습니다), 발을 담근 번역가도 많았던 프로젝트였는데 저의 경우 앞서 해보기 버전의 오브젝트, 각종 스킬, 캐릭터 생성 화면, 아이템 설명 등에 대한 번역을 도맡았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라리안 스튜디오 측에 여러 번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한글화에 관하여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사이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공식 한글화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접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결국 공중분해되었고, 팀 왈도에서 공유하던 유저 한글화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긴 했지만, 게임 번역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인생 첫 프로젝트였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소위 ‘커뮤니티 번역’, 즉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번역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 후크 앤 루프 - 플러피 랜드 어드벤처: 발더스 게이트 3 유저 한글화에 참여한 이후 게임 번역 프리랜서로서 활동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역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전공을 하던 탈주한 대학원생으로서 일감을 따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게임 번역에 대한 생각을 버릴 때쯤 스토브 한글화 팀과 연이 닿게 되었는데, 이후 스토브 한글화 팀과 진행한 첫 프로젝트가 후크 앤 루프였습니다. 분량이 적긴 했지만 혼자서 모든 텍스트를 도맡아서 번역과 LQA를 진행했고, 이후 상업적으로 발매까지 이어진, 나름 제 인생에서 돈 받고 진행한 첫 번역 결과물이라 뜻깊었습니다.(대학원생 시절, 돈은 아니지만 동료 대학원생에게 밥 한 그릇 얻어먹고 대신 번역해 준 영어 원서 번역물을 제외하면 말이죠) 다만 개발사 사정으로 LQA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보스 파이트 안내 튜토리얼 문구가 오역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 아직도 가슴이 아픈 작품이기도 합니다. (팁: 최종 스테이지의 보스 파이트에서는 물탱크에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해야 클리어 가능합니다)
• 로그 글리치 울트라: 첫 번역은 후크 앤 루프였지만, 개발사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나름의 진지한 번역 결과물을 세상에 처음 내놓은 작품은 로그 글리치 울트라입니다. 해당 게임의 경우 실력 있고 열정 있는 개발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 하에서 현지화가 진행되었으며, 번역부터 LQA까지 현지화하는 모든 과정이 꽤나 즐거웠습니다. 요새도 한 번씩 켜서 게임을 돌리는데, 레트로한 감성의 플랫포머와 하데스 이후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로그라이트 장르가 잘 버무려진, 정말 괜찮은 게임입니다. 로그라이트의 장르 특성상 취향이 맞을 경우 플레이 타임도 굉장히 길어지는 게임이니,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꼭 한번 즐겨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던전 디펜더스 어웨이큰드: 인생 처음으로 맡은 단독 중형 프로젝트였습니다. 모든 번역과 LQA를 혼자서 맡아 진행하였으며, 단어 수도 적지 않아서 번역 정산 시에 살림에도 꽤나 보탬이 될 거라는 기대에 부푼 채로 프로젝트에 임했습니다. 허나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번역은 단순히 내가 번역을 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선 번역 시트를 받았는데, 모든 행이 맥락없이 ABC 순으로 정렬되어 있었고, 아이템 이름과 아이템 설명, 스킬 이름과 스킬 설명 등이 한참 떨어져 있어 행 하나를 번역할때마다 인게임 어디서 나오는지 기억해 뒀다가 확인하며 번역하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한 시네마틱 안에 들어갈 하나의 문장이 쪼개져서 번역 시트 어딘가에 드래곤볼처럼 흩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보통은 여러 행으로 나뉘어 있어도 하나의 문장이라면 번역 시트에서 바로 위아래로 붙어 있어서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또한 ‘번역하지 말아야 할’ 각종 후원자 닉네임, 킥스타터 닉네임이 아이템 이름과 섞여 있는 채로 번역용 시트를 받았기 때문에 번역 시트만 보고는 절대 제대로 번역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LQA 과정의 효율화에 대해 크게 고민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LQA 과정에서 개발사와의 핑퐁이 너무 잦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구간을 적게는 두세 번, 많게는 수십 번을 넘게 테스트해 본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나름 납득할 수 있는 최종 결과물이 나왔지만, 처음 번역 시트를 받아들었을 때의 막막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게임 현지화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현지화 작업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다행히도 제 기준에서는 꽤나 재미있고 잘 만든 게임이라 작업이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생 시절의 트라우마가 한 번씩 올라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외에도 Simulakros, Research Story 등의 현지화 작업에 관여하였으나 두 작품 모두 개발 일정 때문에 아직 출시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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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번역 작업을 할 때 어떤 철학을 가지고 계신가요? 번역 작업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제가 게임 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게임의 메커니즘이 정확하게 현지화된 상태로 유저분들께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스킬 설명, 게임 튜토리얼, 메뉴의 글귀, 아이템 설명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몇몇 장르에서는 사실 해당 항목들이 유저 입장에서 느끼는 게임 경험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개발자의 의도가 한국어로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자 하는 편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로 인한 간극 해소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한때 영어 문법 강사로 활동했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에는 있지만 한국어에는 없는 요소’, 또한 그 반대로 ‘한국어에는 있지만 영어에는 없는 요소’에 주목하여 현지화된 결과물이 단순 ‘해석’이 아닌 ‘번역’이 되게끔 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쉬운 예를 들자면 영어에서는 대명사의 사용이 정말 빈번하고 자연스럽지만, 단순히 한글로 해당 글귀들을 옮기게 되면 굉장히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 ‘저것’, ‘그’, ‘그녀’ 등의 영어에서는 매우 흔한 대명사의 경우 한국어 구어체에서는 몇몇 상황에서 사용할 경우 심지어 어색해지기까지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어색함이 전혀 없이 마치 한국 개발자들이 만든 것이라 느껴질 만한 현지화 결과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번역가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어떤 분야에서 더 성장하고 싶으신지 이야기해주세요.
A: 저에게 있어서 게임이란 세상 사람 모두가 즐거워졌으면 하는 개발자의 염원이 담긴 평화의 상징이자,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기도 합니다. 게임 개발의 문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인디 게임이 출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게임은 각 개발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산물이며,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많은 개발자들이 만든 각자의 세계, 놀이 방식, 그리고 이야기가 더 많은 청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끔 이어주는 것이 게임 번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발자들의 염원과 상상력을 한 명에게라도 더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런 번역가로 남을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도 족합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보자면, 많은 게임 관련 번역가들 중에서도 나름의 실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재능과 관심사의 결합’으로서 제 나름대로 생각이 닿은 이 번역업이 저의 본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바빠졌으면 합니다.아직 경험이 일천한 초보 번역가임에도 제게 일감을 주시는 스토브 관계자 여러분께도, 또한 현지화 결과물을 즐겨주시는 유저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여러 훌륭한 게임을 한국의 게이머 분들에게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번역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분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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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앤 루프 | 로그 글리치 울트라 | 던전 디펜더스: 어웨이큰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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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왈도에서 활동하셨었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발게3 경력자셨군요! 덕분에 갓겜을 한글로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