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s&Guides] 인디콘텐츠_《올드 월드》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 이야기 - 후편 [6]
👉 전편 링크👈
전편에 이어서 나머지 국가와 그 지도자들도 알아봅시다
이번에는 히타이트나 쿠시 같은 생소한 나라도 있지만 그리스, 로마 같은 정말 유명한 나라도 있기에 분량에서는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싶네요
~ 그리스 ~
기원전 3000년 경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 기원전 17세기 발칸 반도 본토의 미케네 문명
이후 기원전 12세기 도리아인들이 침입한 뒤 맞이한 암흑시대까지, 고대 그리스도 깊게 들어가면 역사가 꽤 깊습니다
(이 암흑시대 때 여러 문명이 붕괴되고 예술, 문화, 문자 모조리 퇴보해서 기록조차 찾기가 힘들다고)
게임에서 다루는 부분은 암흑시대가 끝난 뒤, 고졸기를 넘어 기원전 500년 경부터 시작된 고전기 이후로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고대 그리스하면 떠올리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와 투닥투닥하는 그때가 맞습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왕국을 제국으로 만든 세계사에서 손에 꼽히는 정복 군주 알렉산드로스 3세까지
여기서 현대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는 서로 다른 나라인데 왜 엮이나요?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비교적 최근에 해결된 터라 크게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어요
핵심만 말하면 현대의 마케도니아(現 북마케도니아)와 마케도니아 왕국은 관련이 전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 펠라와 주요 항구 도시였던 테살로니카가 속한 중마케도니아는 현재도 그리스 땅이고 그리스의 역사가 맞아요
1991년,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구 유고 연방에서 독립을 하면서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정했을 뿐
이들은 그리스계가 아닌 슬라브계 국가이고 북마케도니아 지역은 마케도니아 왕국 시기에는 마케도니아라 부르지도 않았세
그런데도 명칭을 넘어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까지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니 그리스의 뚜껑이 단단히 열리죠
'야 너네는 전혀 관계도 없는 것들이 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쓰고 너네 역사인 척을 해?'
라며 둘 사이에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이 벌어졌고 오랜 다툼 끝에 2019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명칭이 바뀝니다
또한 프레스파 협정을 통해 '너네가 쓰는 마케도니아랑 마케도니아 왕국은 전혀 상관없음 땅.땅.땅' 찍고 역사 부분도 해결을 했습니다
그리스의 고유 병종인 장갑 보병과 장창 보병대는 각각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주력 보병이었습니다
역사 기반 게임 좀 친다는 사람들한텐 호플리테스가 더 귀에 익죠
이들은 커다란 원형 방패로 자신과 옆의 전우를 보호하며 역수로 쥔 창으로 콕콕 찌르는 그리스식 팔랑크스라는 밀집대형으로 싸웠습니다
방패로 가리지 못하는 부분인 머리와 다리는 투구와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해서 보호했다고 합니다
단, 이 시기 그리스는 상비군이 있던 것이 아닌지라 전쟁이 나면 폴리스의 시민들이 그때그때 나가서 싸웠기에 장비는 사비로 맞춰야 했고
따라서 각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비싼 청동 흉갑이 아닌 천으로 된 리넨 갑옷을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중장보병은 영화 300에서처럼 망토만 걸친 빤스맨이 절대 아니었다-
여기서 NG입니다
장창 보병대 아이콘에 우리가 로마 군단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판갑 '로리카 세그멘타타'를 입혀 놓았는데
로마 장비인 건 둘째치고 '사리사'라는 4~6m에 육박하는 장창을 양손에 쥔 채 싸우려고 방패도, 갑옷도 경량화를 했는데 판갑이라뇨
정상화가 필요해
여튼 알렉산드로스 3세의 선대인 필리포스 2세 때부터 편제되기 시작한 페제타이로이들은 시민병이 아닌 상비군이었기에
방어적인 그리스식 팔랑크스가 아닌 비교적 경무장을 하고 장창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나아가는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를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주요 전술이었던 망치와 모루에서 모루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서아시아 정복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면 적을 타격하는 망치는 누구죠?라고 하면 '왕의 친구'라는 의미의 헤타이로이라는 기병대였습니다
이들 역시 필리포스 2세가 창설한 부대로 주로 왕과 가까운 귀족들로 이루어진 정예 기병대였다고 합니다
-16x16, 총 256명으로 이루어진 방진-
가문에 있는 아르게아스는 마케도니아 왕국 초대부터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4세까지의 왕조입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이게 또 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뒤에 지도자에서 나올 프톨레마이오스도 해당되는 내용이니까 압축을 하면
아시다시피 알렉산드로스 3세는 정복 활동 중에 바빌론에서 젊은 나이로 급사를 하죠
이때 알렉산드로스 4세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상태, 즉 명확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제국에 불안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각 정복지에 보내진 최측근 장군들이 '이거 그냥 내가 해먹으면 되는 거 아냐?'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
이들을 고대 그리스어로 계승자, 후계자란 의미의 '디아도코이'라 부릅니다
이들은 서로 암살도 하고 처형도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연합을 해서 싸우기도 하고
이렇게 4차례에 걸친 디아도코이 전쟁 끝에 크게 3개의 왕국이 남게 됩니다
서아시아의 패권을 잃고 태초마을로 돌아가 버린 마케도니아 왕국의 안티고노스 왕조
제국의 땅 중 서아시아 대부분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
이집트에 기반을 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자세한 지도는 전편의 이집트 파트에서)
이렇게 계승자 왕조의 최후의 승자 둘이 각각 가문과 지도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지도자로 넘어가서 사실 이전에 거의 다 얘기를 했어요
1. '필리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제25대 바실레우스로 재위 기간은 BC 359년 ~ BC 336년입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버지이며 군제개혁과 그리스 통일을 통해 제국의 초석을 다져 놓은 인물입니다
2.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초대 파라오로 재위 기간은 BC 305년 ~ BC 285년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첫 번째 원정부터 저기 동방 끝의 박트리아 원정까지 함께한 인물로
소마토필라케스(Somatophylakes)라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7명의 호위 중 1인이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이집트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는데
거기서 그리스로 이송 중이던 알렉산드로스 3세의 시신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탈취하는 일을 벌입니다. 정치적인 목적이었겠지요
이를 계기로 당시 제국의 섭정이었던 페르디카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사이에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발발합니다
결과는 나일강을 도하하지 못하고 계속 삽질을 하던 페르디카스가 부하인 셀레우코스 1세에게 살해당하며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페르디카스는 제국 통합파이기도 했기에 그의 사후 제국의 분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는 다른 지도자들과 다르게 고유 건물에 추가로 '세라피스 신전'이 있는데
간단하게 얘기하면 지배층이 된 그리스인과 원주민인 이집트인이 숭배하는 신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종교의 화합을 위해 새로 만들어낸 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3. '레오니다스 1세'는 스파르타의 제17대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489년 ~ BC 480년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해 300인의 스파르타 전사와 함께한 테르모필레 전투로 너무 유명하죠
4.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며 아테네 제국의 초대 지도자입니다
페리클레스는 개혁을 통해 민주정의 시대를 열고 아테네를 번영시킨 인물입니다
5. '알렉산드로스 3세'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제26대 바실레우스이자,
이집트 아르게아스 왕조의 초대 파라오이자, 페르시아 아르게아스 왕조의 초대 샤한샤입니다. 아이고 길어라
지금까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거의 알렉산드로스의 얘기였어서 따로 또 얘기할 만한 건 없네요
탁월한 지휘 능력으로 무패신화를 써가며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동서를 아우르는 헬레니즘 제국을 세운 위대한 정복 군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만 했는데도 워낙 유명한 시대이다 보니 엄청 잡아 먹었네요
나머지는 속성으로 갑시다
~ 히타이트 ~
히타이트는 기원전 1600년 경부터 기원전 1180년 경까지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 일대에 있었던 나라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진짜 딱 철기맨들이라는 것 하나만 배우죠
그래서 저도 그려려고요. 나 너무 많은 일이 잇엇어 힘들다진짜
일러스트 뒤에 기둥 2개에 무언가 뭉뚱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히타이트의 유적 중 하나인 스핑크스 게이트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히타이트의 고유 병종은 둘 다 전차병으로 이는 철기와 함께 강력한 전차로 유명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 삼인전차병은 말 그대로 전투원을 한 명 더 태워서 3인으로 운용한 전차입니다
원래 다른 나라에서는 운전병 1명, 전투원 1명의 2인으로 구성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하네요
가문의 쿠사라, 네나사, 잘푸와, 하투샤는 히타이트에 있던 도시들입니다
그 중 하투샤는 히타이트의 수도이고요
-날 속인 거니?, 수필룰리우마 1세의 석상-
1. '하투실리 1세'는 히타이트 고왕국 시기의 제2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1650년 경 ~ BC 162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투실리 1세는 저 위에 가문으로 나왔던 잘푸와를 비롯한 여러 소왕국을 정복하고 하투샤를 수도로 삼은 왕이라고 합니다
2. '수필룰리우마 1세'는 히타이트 신왕국 시기의 제6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1350년 경 ~ BC 1322년이라고 합니다
위에 나왔던 지도만큼 주변 일대를 정복한 왕입니다
3. '한틸리 1세'는 히타이트 고왕국 시기의 제4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1590년 경 ~ BC 156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선대인 무르실리 1세의 처남으로 사위인 지단타와 함께 그를 시해하고 왕이 된 인물입니다
참고로 이 지단타는 한틸리1세 다음으로 왕이 되는 지단타 1세입니다
4. '푸두헤파'는 히타이트 신왕국 시기의 제11대 왕인 하투실리 3세의 아내입니다
푸두헤파는 고대 근동 시기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여성 중 한 명으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남편과 함께 국가의 일을 결정하고 판결, 외교 등의 국정을 보았다고 합니다
5. '무르실리 2세'는 히타이트 신왕국 시기의 제8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1321년 ~ BC 1295년이라고 합니다
무르실리 2세는 수필룰리우마 1세의 아들로 재위 기간을 보면 띠용? 7대는? 어캐함? 이럴 수가 있는데
아버지 수필룰리우마 1세를 비롯한 형 아르누완다 2세 등 여러 형제들이 이 시기에 돌았던 전염병으로 일찍이 사망한 것이 배경입니다
이렇듯 나라 안으로는 전염병이 돌고 어린 왕이 즉위를 하니까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반란들을 진압하며 물려받은 제국을 안정시키고 아버지 이상으로 잘 다르셨다고 합니다
~ 쿠시 ~
쿠시 왕국은 아프리카 누비아 지역에 기원전 780년 경부터 기원후 350년 경까지 있었던 나라입니다
전편에서 쿠시가 이집트를 정복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었는데 내내 지배했던 것은 아니고 그 기간은 꽤 짧습니다
쿠시의 고유 병종인 메자이 궁병과 베쟈 궁병에 관해서
베쟈족은 이집트 남부와 수단 북부의 반유목, 반농반목 민족이라고 합니다
메자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 고대 이집트의 치안 조직이지만, 본래는 누비아 인근의 특정 유목민을 부르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누비아 피라미드(쿠시 피라미드), 용도는 역시 무덤-
1. '아마니레나스'는 정확한 재위 기간은 알 수 없지만, 쿠시-로마 전쟁이 있던 기원전 25년 ~ 기원전 21년 당시의 여왕이었다고 합니다
일러스트의 애꾸눈은 고증으로 남자 못지 않게 강하고 활을 굉장히 잘 쏘는 여걸이었다고 합니다
2. '아마니토레'는 아들인 나타카마니와 함께 쿠시 왕국을 공동 통치한 여왕으로 이 게임에서는 최초의 기원후 사람입니다(1세기 경)
3. '피이'는 쿠시 왕국 나파타 왕조의 제3대 왕이자, 이집트 제25왕조의 초대 파라오입니다
피이는 아버지 때부터 영향력을 넓혔던 상이집트 지역을 장악한 뒤 파라오를 자처하며 제25왕조를 세웠습니다
재위 기간은 BC 744년 ~ BC 714년이라고 합니다
4. '알라라'는 쿠시 왕국 나파타 왕조의 초대 왕입니다
5. '샤나크다케테'는 기원전 170년 경 쿠시 왕국 메로에 왕조 때의 여왕입니다
~ 페르시아 ~
페르시아는 나아아아중에 아케메네스 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사산조가 등장하면서 조금 복잡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신인 메디아는 기원전 678년 경부터 기원전 550년까지 존재했던 왕국이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존재했던 제국이며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기원후 224년부터 기원후 651년까지 존재했던 제국입니다
-메디아 왕국의 최대 영토, 전편 바빌로니아 파트에 등장한 엘람도 보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 시기의 최대 영토-
-사산 왕조 페르시아 호스로 2세 시기의 최대 영토-
페르시아의 고유 병종은 팔톤 기병과 철갑 궁기병으로 기병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팔톤은 투창 용도로도 쓰인 단창으로 페르시아 기병의 주무장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 서아시아 지방에서 두루 쓰인 철갑기병은 그리스어로 '카타프락토이'라고 부르며 말까지 철갑을 입힌 중기병입니다
-정확히는 사산조 바로 이전에 존재했던 파르티아 제국의 카탁프락토이-
1. '키루스 2세'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초대 샤한샤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550년 ~ 기원전 530년입니다
보통 키루스 대제라고 불리며 소아시아와 중동을 정복하며 페르시아 제국을 연 인물입니다
2. '다리우스 1세'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제3대 샤햔샤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522년 ~ 기원전 486년입니다
역시 보통 다리우스 대제라고 불리며 위의 지도에 보이는 영토를 정복한 군주이며
다들 세계사 시간에 배웠을 그것, '왕의 길'을 건설한 인물입니다
왕의 길은 아나톨리아 반도 서쪽 끝의 사르디스부터 제국의 수도인 이란의 수사까지 이어지는 2.699km 길이의 도로입니다
3. '샤푸르 1세'는 사산 제국의 제2대 샤한샤로 재위 기간은 기원후 240년 ~ 기원후 270년입니다
샤푸르 1세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부흥을 위해 활발한 정복 활동을 하였으며, 로마 제국과도 여러 차례 전쟁을 합니다
260년 에데사 전투에서는 로마 제국의 황제인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사로잡는데 이는 로마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4. '스타테이라'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샤한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아내입니다
스타테이라는 시어머니인 파리사티스와 궁정 내 권력의 경쟁자였습니다
둘은 여러 차례 충돌하였고 결국 파리사티스는 스타테이라를 독살합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는 사주를 받아 암살을 시행한 하인 기기스는 처형하고 어머니 파리사티스는 바빌론으로 추방했다고 합니다
5. '키악사레스'는 메디아의 제3대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625년 ~ 기원전 585년입니다
키악사레스는 군제개혁을 통해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고 신바빌로니아와 연합하여 신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켰다고 합니다
~ 로마 ~
"로마 인빅타(ROMA INVICTA)"
길고 길었던 여정 끝에 마지막으로 로마가 등장했네요
기원전 753년에 세워진 로마 왕국을 시작으로 로마 공화국을 거쳐 기원전 27년에 시작된 제정 체제의 로마 제국까지
이후는 아시다시피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이 되었기 때문에 멸망 시기가 서로 다릅니다
-다키아를 정복한 트라야누스 황제가 서거했을 때 로마 제국의 영토-
로마의 고유 병종은 하스타티와 군단병으로 공화정과 제정 시기의 주력 보병입니다
하스타티는 게임의 초상화로는 창을 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말 초기 하스타티의 모습입니다
라틴어로 창을 의미하는 하스타에서 유래한 하스타티(창병)는 기원전 4세기 경까지는 이름 그대로 창병이었습니다
이후 카밀루스의 군제개혁을 통해 한손검인 글라디우스와 사각 방패 스쿠툼을 든 흔히 우리가 아는 로마군의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밑에 지도자로도 등장할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을 통해 등장한 군단병...
어째서 판갑을 그리스 장창 보병대한테 팔아먹고 꼬질꼬질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갈!
-돌려줘요-
로마는 파비우스, 클라우디우스, 발레리우스, 율리우스가 가문으로 등장하는데
귀족 공화정 시기가 길었던 만큼 왕조나 기반이 된 도시가 아닌 전부 실제 로마의 전통 귀족 가문입니다
게임에 4개밖에 넣을 수 없어 탈락한 가문 중 들어보셨을 만한 가문으로는 코르넬리우스, 유니우스 등도 있습니다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상-
1. '로물루스'는 로마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753년 ~ BC 716년입니다
레무스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으며 두 형제를 늑대가 젖을 먹여 키운 로마 건국 신화가 아주 유명하죠
2. 스키피오, 본명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의 집정관입니다
집정관이 되기 이전부터 히스파니아 원정을 통해 군공을 쌓던 스키피오는 집정관이 된 후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아프리카 원정을 떠납니다
원정 중 우티카 전투, 바그라다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마지막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바르카를 물리치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종결시킵니다
스키피오는 이때의 공적으로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 정복자)'라는 아그노멘(이명)을 받았습니다
3.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집정관으로 군제개혁을 통해 게르만족의 침략을 물리치며 제3의 건국자라 불렸습니다
마리우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 귀족 출신이 아닌 지방 평민 출신이었지만 집정관을 7번이나 역임한 인물이었습니다
(귀족들의 작명은 이름+성씨+'가족성')
4. 술라, 본명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마리우스와 동시대의 집정관으로 2차례의 군사정변을 통해 독재관이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독재관의 원래 임기는 6개월이었지만 공화정의 비상사태라는 구실로 임기를 무기한으로 하며 독재를 했습니다
술라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펠릭스(행운아)라는 아그노멘을 붙입니다
5.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영어로는 시저. 지금까지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정말 요약을 하자면 갈리아 원정, 공화정 말기의 최고 권력자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정말 뛰어난 군인이자 정치가였고
자신의 전쟁 경험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를 저술하기도 한 문장가였습니다
단, 아쉽게도 저 두 책을 제외한 카이사르의 글들은 아우구스투스가 모조리 폐기해 버렸다고 합니다
6. 아우구스투스, 본명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재위 기간은 BC 27년 ~ AD 14년입니다
카이사르는 아우구스투스의 어머니인 아티아의 외삼촌이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외종조부였습니다
카이사르는 어린 아우구스투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유학도 보내주고 평생을 함께할 친구이자 오른팔을 소개해 주는 등 많은 지원을 해줍니다
(그 친구가 바로 석고상으로 유명한 아그리파.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부족했던 군사적인 면을 채워줍니다)
카이사르가 갑작스럽게 암살당한 뒤 발표된 유언장에는 아우구스투스를 양자로 삼고 후계자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에 자신이 후계자가 될 거라 굳게 믿고 있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굉장히 실망하고 아우구스투스와 대립하게 됩니다
이후 레피두스까지 낀 삼두정치가 이루어지다가 레피두스가 먼저 실각하고 안토니우스에게 큰 타격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안토니우스가 아르메니아 정복을 기념하는 개선식에서 자신과 클레오파트라 7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에게 정복한 땅을 나눠주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카이사리온이 진정한 후계자라는 폭탄 선언을 해버린 것입니다
이 내용에 로마 시민들은 경악을 했으며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놓치지 않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여론전을 펼쳤으며
결정적으로 "내가 죽거든 로마가 아닌 알렉산드리아에 묻어 달라"라는 안토니우스의 유서의 내용을 공개하며 결정타를 날립니다
이에 기원전 32년 원로원은 안토니우스를 로마의 적으로 지정하고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전쟁을 선포하면서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내전이 발발합니다
기원전 31년에 있었던 악티움 해전의 영향으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가 죽으면서 기원전 30년에 내전이 종식되었고
최고 권력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내전의 뒷처리를 하다가 기원전 27년 모든 걸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에게 양도하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원로원은 카이사르와 정반대의 행보에 놀라며 '존엄한 자'라는 의미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아그노멘을 붙여주고 로마는 제정 체제로 돌입합니다
(혼동 방지를 위해 쭉 아우구스투스라 적었지만 원래 이전까지는 옥타비아누스라 불렸습니다)
7. 로마 제국 역사에서 '아그리피나'는 대 아그리피나, 소 아그리파나 두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 네로의 어머니인 아우구스타(황후) 소 아그리피나입니다
소 아그리피나는 야망이 어마어마한 인물로 자신의 오빠인 칼리굴라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걸려 반역죄로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2년 뒤 칼리굴라가 정말로 암살을 당하면서 소 아그리피나는 로마로 복귀를 합니다
복귀 후 아들 네로와 조용히 지내던 중 클라우디우스 1세의 황후 메살리나가 불륜과 반역죄로 처형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 1세의 새로운 황후로 소 아그리피나가 추천이 되는데 이 둘은 삼촌과 조카 사이였습니다
왕족의 근친혼이 패시브였던 고대에도 이건 좀;이라는 의견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결혼이 이루어지기는 합니다
이때부터 조용히 지내던 소 아그리피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황후가 된 소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 1세의 친자인 브리타니쿠스가 아닌 자기 아들 네로를 황제로 세울 계획을 짭니다
로마 제국은 부자 상속이었기 때문에 네로를 클라우디우스 1세의 양자로 입적시키기 위해 공작을 펼칩니다
우선 클라우디우스 1세의 딸인 옥타비아를 네로와 결혼시키기 위해 옥타비아의 약혼자를 모함해 파혼시키고 원로원 의석까지 뺏어 버립니다
그 뒤 옥타비아와 결혼하며 클라우디우스 1세의 사위가 된 네로를 클라우디우스 1세의 양자로 들이는 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밖에도 명성이 높았던 철학자 세네카를 네로의 스승이자 후견인으로 삼고
근위대장인 섹스투스 아프라니우스 브루스를 네로에게 붙여주는 등 궁정 내 고위 인사들도 자기 사람으로 포섭을 합니다
네로가 클라우디우스 1세의 양자가 된 지 4년 후인 54년
클라우디우스 1세가 갑작스럽게 독살을 당합니다. 이 독살의 배후에는 소 아그리피나가 있다는 설이 아주 유력합니다
황제가 서거한 뒤, 소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측근들과 발빠르게 움직여 황제의 유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에 앉힙니다
이후에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네로와의 갈등 이야기도 있지만 다 풀면 너어어무 길어지니 생략!
-메살리나로 분장한 샬롯 볼터, 한스 마카르트-
역사가 되게 딱딱하고 지루한 부분도 많지만 찾아보면 되게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여기서 생략한 이야기만 해도 카이사르 이야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의 관계, 아우구스투스의 말년
그리고 메인 주제에서 파생되는 폭군 네로 이야기, 비치 황후(meretrix augusta) 발레리아 메살리나 이야기
(필터가 발동하네요 원문은 스피어걸)
별명만 들었는데 벌써 궁금해
자세한 내용은 글이나 영상을 찾아보면 나올 텐데 진짜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소 아그리피나와 폭군 네로 이야기는 벌거벗은 세계사 영상으로 아주 재밌게 나와있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왕실의 흑막 DLC를 제외한 올드 월드에서 나오는 국가와 지도자들을 간략하게 알아보았구요
정말 긴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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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봤던 로마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때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쟁사에 대한 관심도 그때에 생겼고 문명 같은 게임도 그때에 흥미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로마와 카르타고와의 일전이 참 기억에 남네요.
그때 누비아 기병을 용병으로 쓰던 카르타고가 배신 당하고 패배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카르타고가 이주민 국가라 용병 의존도가 높았던 게 한계점인 건 알았는데 배신까지 당했었군요
저는 문명 같은 4X보다는 토탈워 같이 전쟁 위주로 굴리는 게임에 빠졌었는데 실제로 이 콘텐츠를 작성하면서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ㅋㅋㅋ
날 속인 거니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특이하게 생긴 석상이죠 ㅋㅋㅋ
문명도 그렇지만 역사를 기반으로 만든 게임들은 이렇게 역사를 알고 들어가면 게임의 몰입도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소위 컨셉플레이 하기 아주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