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현실의 괴리] 31. 내구도의 괴리 [1]
- 사람은 죽어도 옷은 찢어지지 않는다.
- 옷이 찢어진다면 개발자가 설정한 부분만 찢어진다.
- 옷이 없어지더라도 중요 부위가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된다.
게임을 즐기는 것은 사람이다.
이는 인간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캐릭터의 죽음보다
노출이 사회적 논란을 만들 여지가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피가 흐르는 것보다는 중요 부위가 노출되는 것이 더 위험한 표현이었으니까.
그러다보니, 게임 내에 등장하는 옷은 현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디자인 되는게 일반적이었다.
전체 이용가 게임 정도가 되면 옷은 캐릭터와 혼연일체,
장비하고 있는 옷을 전부 벗어도 옷이 남아있는 기적을 볼 수 있다.
이는 몬스터도 예외는 아니다.
캐릭터는 어떤 장비를 착용할지 플레이어가 컨트롤 할 수 있지만, 몬스터는 그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몬스터가 입고 있는 옷은 물론이고,
무기나 방패 같은 장비까지 고정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설정은 새로운 괴리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총기류는 소모품(총알)의 개수만큼 공격하는 것이 가능한 장비이지 않은가?
때문에 플레이어는 장기간 전투를 위해 최대한 많은 소모품을 준비하는 습관이 생긴다.
하지만 몬스터는 재정비는 커녕, 장비가 고정되어 있기에 - 내구도 / 소모품이라는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도 몬스터의 검은 녹슬지 않고, 투척 무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기획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는 수단을 여러개 준비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소모전'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플레이어의 무기는 몇 번 사용하면 금새 파괴된다. 하지만 몬스터가 무기를 들면 몇 번을 공격해도 파괴지지 않는다.
검이 녹슬지 않는다?
무제한으로 공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몬스터를 쓰러트려 무기를 빼앗으면 나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게임 유저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 쯤은 해본 적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무기를 든 순간 거짓말처럼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느끼는 허탈감이란..!
[(실험) -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
1. 내구도가 파괴 직전인 나무 몽둥이(공격력 4)를 하나 준비한다.
2. 보코블린(몬스터)가 잠자고 있는 틈을 타, 그의 무기를 훔친다. 그리고 깨운다.
3. [1]의 나무 몽둥이를 보코블린 앞에 두어, 그가 무기를 집도록 유도한다.
4. 내구도가 최대치인 왕가의 방패(방어력 55)로 보코블린의 공격을 가드한다.
-> 전투가 시작한지 3~5분이 지나자, 왕가의 방패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 이후,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나무 몽둥이를 주웠더니 / 내구도가 파괴 직전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 몬스터가 사용하는 장비는 내구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새로 등장한 몬스터를 쓰러트렸을때 획득할 수 있는 장비의 내구도가 최대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거라 추측해볼 수 있다.)
이전부터 액션 게임의 기본은 "적극적으로 피하고, 반격한다" 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소모전이 선택지가 되기는 커녕 /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이어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쉽기에 (집중력 저하, 실수 발생 등) 더욱 요구되는 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임 내 내구도에 대한 설정들이 이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장비 노후화'에 대한 개념 또한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보관 상태를 신경 쓸 일도 없고, 그만큼 한 번 제작한 장비의 가치는 높아진다.
현실에서 말하는 '중고 판매'란 개념이 없는 것이다.
선정성이 높은 게임에 이르면, 캐릭터의 체력이 회복되는 것만으로
찢겨진 옷이 자동으로 수선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게임 내 장비의 가치는 높은 편에 속한다.
한 번 만든 장비를 파괴하는 과정도 독특하기 그지없다.
일부 캐주얼 게임에서는 전투로도 장비품의 내구도를 깎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 바닥에 벗어던짐으로서 자동 소멸을 기도하거나, 유저 인터페이스에 준비되어 있는 '간이 쓰레기통'을 이용해 파괴시킬 수 있다.
제작 / 사용 기한 / 처분까지의 공정에 게임만의 편의성이 붙으면서 현실의 시스템과 큰 차이가 생긴 것이다.
(그 때문인진 모르겠으나, 플레이어 진영에서 볼 수 있는 상점 / 대장간을 몬스터 진영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있는 게임의 사례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장비 제작에 따른 거래가 필요치 않으니까)
만약 소모전으로 게임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전법이 AI(몬스터) 상대로도 통했더라면,
RPG에서 안정적인 전투를 담당하는 힐러나 탱커 직업의 입지가 더욱 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더욱 안전한 공격 회피법을 찾아 회피에 집중
-> 적을 약화시켜 게임 공략 난이도가 급감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즉, 적 장비의 내구도 무한 설정은 게임 디자인 상 필요한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불공평해 보이지만,
이 상황을 지혜와 경험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게임 속 플레이어란 존재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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