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 속도 제로에서 시작하는 느린 이제라 병사 생활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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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 속도 제로에서 시작하는 느린 이제라 병사 생활 [1화] [1]



“속도”

어떠한 물체의 위치 변화를 뜻하는 변위를 변화가 일어난 시간 간격을 나눈 값.

 

그리고 “특정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먼저 행동하는 것”

이것이 초절정급 20년 이상의 게임, "에픽세븐"속의 속도 정의다.

속도가 다른 캐릭터보다 빠르면 턴을 먼저 잡고, 다음 턴은 더 빨리 잡는다. 이것이 법칙, 물리, 그리고 상식.

예시로 속도 150 캐릭터가 있고 속도 300 캐릭터가 있으면, 속도 300 캐릭터는 속도 150 캐릭터보다 대략 2배 빨라진다.

이렇듯, 턴제 게임에서 턴을 많이 쓸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보다 유리하다는 뜻이고 그만큼 이 게임에서의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

속도에 따라 게임의 방향성이 바뀌고, 플레이 할 수 있는 덱 타입이 많아진다.

 

그런데 에픽세븐을 20년이나 게임을 한 이 플레이어는 아직도 속도 8을 넘긴 장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 X발... 또 깡생이냐?”

 

“큭큭큭, 진짜 ** 웃기네. 전생에 나라 팔아먹었냐? 어떻게 아직도 속도 8을 못 넘겨?”

 

“야, 이 녀석 속도 7짜리 장비도 없어.”

 

처음에 숨넘어갈 듯 웃던 남성은 속도 7이라는 말에 거짓말처럼 정색했다.

 

“... 정말이야?”

 

“그래... 우리 아약이 놀리지... 푸, 푸후훕...”

 

“으하하아하하하핰! 속도 7도 없다고? 진짜 넌 전설이다 아약아.”

 

눈마저 초승달처럼 휘어서 웃고 놀리던 남성들은 짙은 그림자가 진 친구의 얼굴에 웃음을 멈추고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스마게에 물어봤냐? 솔직히 아약이 운이 이렇게 쓰레기 일리가 없잖아. 이 정도면 버그 같은데?”

 

“이미 문의를 몇 번이나 보냈대. 16년 전부터 계속 보냈단다. 지금은 스마게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는지 문의답변도 안 해준대.”

 

“뭐? 블랙리스트? 설마... 그런데 그러면 버그가 아닌가 보네? 아약아, 넌 진짜 전생에 나라 5개는 팔았나 보다.”

 

“아약이 다른 토벌에 눈도 안 돌리고 와이번 발톱 손질만 지금 20년째인데 속도 7도 나오지 않는 거 보면 물국아, 너 말이 맞는 것 같다.”

 

“...니야...”

 

아약이 나지막이 말했다.

 

“응? 너 뭐라고 했냐?”

 

“아니라고...”

 

“뭐가 아닌데?”

 

친구가 반문했다.

 

“내 최고 속도는 5다 이 X 발 롬들아!”

 

크게 소리 지른 아약은 재빨리 핸드폰을 챙기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남성들은 어벙한 얼굴을 한 채로 서로 쳐다봤다.

 

“진짜 매국노였나 본대?”

 

물국이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서둘러 집에 도착한 아약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켰다.

20년 동안 늘 그랬듯, 투위치를 열었다.

일. 에픽세븐. 투위치.

이것이 아약의 일상이었다.

 

“아! 중국 형님들 35만 원 미션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러면 속도 25를 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시 시청자 수 35만 명.

팔로워 수 940만

도저히 3개월 전에 새로 나타난 신입 스트리머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다.

 

“현재 ‘느릿느릿한 대리강화 대장장이 서비스’의 남은 자리는 두 자리만 남았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할 수 구독해주시고, 서비스에 등록하고 싶으신 분들은 팬카페 가입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특별 세일로 5만 원 밖에 안 하니 일요일까지 꼭 가입해주세요!”

 

신나게 소리치는 이 ‘신입’ 스트리머는 ‘느릿느릿하게’

이곳에서 채팅을 치기 위해서는 게임을 한 넘어 ‘구독’을 해야 하고 구독은 한 달에 7천 원이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 사람의 팬카페를 가입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8만 원을 내야하고, 서비스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15만 원을 내야 한다. 심지어 돈을 더 낸다면 느릿느릿하게는 조금 더 빨리 계정을 접속하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화신이었다.

 

이렇게 창렬한 스트리머를 35만 명이 보는 이유, 그것은 바로 그의 강화는 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

설령 게임을 한 신화에 나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갑자기 현실에 튀어나온다 하더라도 이 느릿느릿하게 에게는 상대가 안 되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내면서까지 느릿느릿하게 에게 계정을 맡기고 돈을 주는 이유!

그것은 바로, 그에게 3만 개의 발톱을 가져간다면, 99.9%로 무조건 속도 22 이상의 장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고작 23만 7천 원만 낸다면 본인의 계정에 속도 22짜리 아이템이 들어온다?

이건 대가리가 깨진 에픽세븐 유저로서는 참을 수가 없는 개혜자 서비스였다.

신비 패키지 2번만 참으면 속도 22 이상 아이템이 오는데 어떻게 참음!

 

그러나...

아약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느릿느릿에게는 한가지 신념이 있었다.

 

‘만약에 제가 와이번 발톱 3만 개 이상으로 속도 22 이상 장비를 만들지 못할 경우 100만 원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 공약을 걸고 스트리밍을 시작한 느릿느릿하게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딱 두 번... 아약의 계정을 두 번 만졌을 때 빼고는 말이다.

아약은 느릿느릿하게가 팬카페에서 개인적으로 보냈던 메시지를 아직도 머릿속 깊숙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약님, 죄송하지만... 아약님의 계정을 맡는 것은 이번까지만 하겠습니다. 신청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시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만 원은 3개월 후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문제가 아니라 아약님의 계정이 문제라는 것… 본인도 인정하시죠?’

 

이 메시지와 함께 아약은 투위치에서 구독이 강제로 환불/취소당했고, 팬카페에서도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한 반 차단 상태가 되었다.

 

3만개 한번, 5만 개 한번, 총 8만 개의 발톱을 깎아버린 느릿느릿하게는 놀랍게도 아약의 계정에서 속도 6 붙은 장비를 한 개도 못 만들고 백기를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차단한 건데!’

 

“우효! 뚝배기 속도 세트에 공치방속인데 재련후... 속도 26! 수고하셨습니다! 아쉽게도 마지막에 속도 2밖에 안 붙었네요. 그래도 중국 형님들, 미션 성공입니다! 축하합니다, 깜냥냥님!”

 

- 이 사람 스마게 직원아님? 어케 이렇게 잘 뜸?

- 느릿느릿하게 그는 착한 명예 중국인. 멋진. 남자.

- 이것은 신♥♥♥ 사랑에 빠진. 속도의 자연☞↑

- 엄청나게 대단한 모습!!! 그는 표한다!

- wwwwwwww 정말 천재냐고!

- OMG HE IS GOD OF SPEED!!! ****

- 개버그네... 비틱 **

- 실리미르마 기사단에 들어와 주세요 느릿느릿하게 오빠!

 

 

아약은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바라봤다.

 

장비... 분류... 속도 부옵션...

 

장비칸에는 39개의 장비가 보였다.

 

모든 장비의 속도는 5.

 

그런데 이 장비들의 외형이 다른 장비들과 사뭇 다르게 생겼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장비들은 전부 악몽 미궁에서 나온 것. 초기부터 속도 5가 붙어 있는 장비다. 그러니 사실상 아약의 최고속도는, 스마일게이트, 에픽세븐이 강화하라고 준 장비의 초기옵...

 

그렇다. 아약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속도 부옵션에 속도가 뜬 적이 없던 것이다.

심지어 예전에 존재했던 ‘변환석’은 여러 가지 문제 이유로 사라지고 모든 장비의 변환 수치가 원상복구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장비 중 최고 속도는 ‘5’. 그뿐이었다.

 

20년동안 무려 2천만 원을 박았던 아약...

3개월 동안 월정액 4만 5천 원만 썼던 느릿느릿하게...

 

그러나 세상은 무심하다. 느릿느릿하게에게는 속도 30부터 속도 22까지 총 26개의 장비가 있으며 21부터 18은 100개 이상이 존재했다.

그야말로 저주받은 손을 지닌 아약.

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와 깜냥냥님 정말 운이 좋으신 대요? 또 속도 24템입니다! 벌써 5번째인데 발톱은 아직 4만 개밖에 안 썼죠! 아직도 2만 개 남았는데 과연 나머지...”

 

아약의 귀에 더는 느릿느릿하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환희였다.

20년 만에 드디어 속도 장비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마침내 속도 240을 넘길 수 있다는 희망.

비록 만만치 않은 값을 치렀으나, 지금까지 게임에 돈을 질렀던 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느릿느릿하게는 기어코 두 번이나 실패를 하였고, 또다시 한번 절망감을 주었다.

 

아약은 본인은 이렇게 절망하고, 슬퍼하는 동안 남들은 속도 장비를 먹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속도가 15밖에 안된다고 장비를 추출해버려?

9강에서 속도가 한번 밖에 안 붙었다고 버려? 그것도 3이나 붙었는데?

속도 4에서 속도 1 올랐다고 다른 장비의 경험치로 만들어?

반지 최고 속도가 11이라고 커뮤니티에서 울어?

 

“미친거야?”

 

부조리 하다.

20년이나, 인생의 2/3를 쏟아 받친 이 게임.

20년이나 기다리고 버텼으나 끝내 저버린 이 게임.

본래 믿음이 가장 강한 자가 배신하면 제일 무서운 법.

 

아약의 눈이 뒤로 돌아갔다.

 

“전송! 전송! 전송! 전송!”

 

어두운 방안에서 이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추출해버려! 그냥 다 판매하고 다 같이 죽자! 그래! 내가 왜 고통받아야 해? 내가 왜 짜증 나야 해? 난 이러려고 이 게임을 한 게 아니야!”

 

광기 어린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 쓰레기 게임은 나가 죽어! 20년이나 했는데 로드(Lord) 등급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엠페러도 못 가고! 그래 니도 죽고 나도 죽자! 다 죽어! 에픽세븐, 너도 진짜 독하다... 20년 동안 어떻게... 그냥 때려치워! 다 주우욱자아아아!”

 

쾅쾅쾅!

 

“저기요! 혼자 사십니까? 이 새벽에 뭔 난리입니까? 조용히 하세요!”

 

“조... 죄송합니다...”

 

아약의 집은 방음이 되지 않았다.

달빛이 빛나는 새벽의 광기는 금방 옆집 사람에 의해 진압 되었으나, 아약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영웅 선택 -> 전송

영웅 선택 -> 전송

영웅 장비 해제

영웅 장비 해제

장비 선택 -> 추출

장비 선택 -> 판매

 

20년 동안 서비스한 게임인 만큼, 그동안 출시한 5성 영웅들은 무려 1,000명이 넘었고, 새로운 칭호 장비, 뱃지, 두 번째 전용 장비 등, 장비 칸이 총 12개에 2개의 아티팩트까지 있었으나, 아약은 정성스럽게 하나씩 해제하며 그의 계정에서 소멸시켰다.

 

이 작업은 5시간이나 걸렸고 결국 아침 해가 서서히 세상을 비출 무렵에 끝이 났다.

장비는 전부 사라졌고 아티팩트들도 증발했다. 전용장비, 추가 능력 강화석, 월정액 계정 강화 장비 등등도 모두 부서진 데이터 쪼가리로 변했다.

 

아약의 계정에 남은 것은 오로지 3명의 영웅뿐...

 

첫번째 영웅이자 전직, 초월 전직, 신화 전직을 통해 변해버린 첫 번째 7성 영웅 ‘신의 검 황제 라스’

두 번째 영웅이자 전투 데이터 습득, 치료 데이터 습득, 그리고 신의 심장을 획득한 두 번째 7성 영웅 ‘초월자 영환의 메르세데스’

세 번째 영웅이자 모종의 이유로 흑인으로 변하고 여성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세 번째 7성 영웅 ‘여명의 신 아딘’

 

그들은 에픽세븐에서 전송을 못 하도록 막아둔 상태였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손가락을 부들부들 떠는 아약은 그제야 핸드폰을 내려두고 심호흡을 했다. 모아뒀던 재료도 일부러 쓰레기 장비를 만드느라 다 사용하였고, 운이 너무 없어 20년 동안 장비 강화를 많이 못 한 아약은 319.2억 골드도 온갖 쓰레기 장비를 강화하고 버리는 방식으로 없애버렸다.

 

더는 계정을 망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로비 화면에서 성스러운 빛을 내뿜으며 반짝이는 검을 들고 있는 라스랑 몇 번이나 일러스트와 도트가 수정되고 검열되어 전신이 검은 옷으로 가려져

초롱초롱한 눈 밖에 안 보이는 메르세데스, 그리고 흑인이 되고는 설정상 신이 되어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추는 아딘, 이 세 명의 영웅을 본 순간, 사그라졌던 아약의 분노가 다시금 불타올랐다.

 

“황라스! 너만이라도 무조건 없애버릴 거야!”

 

신의 검 황제 라스, 황라스는 3번의 전직을 통해 기본속도가 131 되었다. 에픽세븐 기준 최고로 빠른 기본 속도를 가진 황라스는 속/탬/눕 등등 모든 종류의 덱에 쓰였으며 얼어붙은 삼지창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 어떤 유명한 랭커는 속도를 334까지 돌파 하였다.

 

하지만 아약의 장비 기준으로는 황라스 속도를 300은커녕 233을 겨우 달성한 수준이었고 남들이 꿀 빨 때 아약은 손가락만 빨았다.

실레나 벤률 198.2%! 방덱 출석률 99.8%를 자랑하는 황라스를 쓰지도 못한 것이다.

 

아약은 곧바로 전송하기 버튼과 뒤로 가기 버튼을 연달아서 ** 듯이 눌렀다. 컴퓨터 코딩의 ‘ㅋ’ 자도 모르는 아약의 유일한 방법은 버그를 일으켜서 황라스를 팔아버리는 것, 그뿐이었다.

 

사실… 그게 되겠는가? 20년이나 장수한 모바일 게임이자,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게임이 고작 팔기 창과 뒤로 가기를 연달아 눌러서 시스템적으로 전송할 수 없는 캐릭터를 전송하게 하는 버그를 일으킨다니?

 

이건 마치 어린아이가 컴퓨터 모니터가 안 보인다고 무작정 모니터를 때리면서 고쳐지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고장이 나서 멈춘 시계도 하루에 2번은 맞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멋도 모르는 아이가 전자기계를 때리다가 기계 속의 전선을 건드려서 고친 것처럼,

아약이 수백 번 전송하기 칸과 뒤로 가기 칸을 누른 결과, 황라스가 떡 하니 전송하기 칸에 생겼다. 역시 게임이 20년이나 돼서 그런지 버그가 많긴 많았다...

 

아약은 제멋대로 흔들리는 손가락을 살포시 눌러 황라스를 전송하기 창 안으로 넣었다.

아약이 전송하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 머리에 짧은 주마등이 스쳤다.

루엘이 죽으며 분노하는 라스...

7번째 세계에 눈을 뜨며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아이테르를 만나는 라스...

결국, 마신에게서 메르세데스를 구하는 라스...

에피소드 29까지 진행하며 여명의 신 아딘을 섬기는 황제가 된 라스...

추억도 많았고, 즐거웠던 적도 많았다.

무려 20년의 세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정도의 시간이다.

 

방 안이 침묵으로 잠겼다.

어두운 방 안에 있는 아약의 눈가에서 애증의 감정이 흘러내렸다.

 

“사랑했다... 에픽세븐…”

 

아약이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내뱉은 목소리였다.

 

 

 

 

‘추르르르륵...’

 

아약은 손목에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추르르르륵...’

 

차가운 기운은 점차 손목에서 팔을 타고 겨드랑이로 향했다. 찝찝한 느낌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아약의 눈은 번쩍 떠졌다.

아직 혼란스러운 그의 눈에는 한쪽 팔 전체가 괴이한 초록색 점액질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얼굴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비쳤다.

 

“으악! X발 뭐야!”

 

벌떡 일어난 아약은 팔을 좌우로 흔들며 초록색 괴생명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실패.

놀랍게도 초록색 괴생명체는 온몸이 흔들리는 와중에, 오히려 아약의 겨드랑이 쪽으로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악한 아약은 비교적 멀쩡한? 다른 손으로 이 괴생명체를 밀어내려고 했다. 크나큰 실수였다.

어릴 때 끈적거리는 수액이라던가 어떤 액체를 가지고 놀았던 사람은 알 것이다. 다른 손으로 그것을 만진다면, 그 손마저 더럽혀진다는 것을...

 

초록색 괴생명체는 아약의 남은 손까지 몸속으로 빨아들이고 아약은 수갑에 채워진 범죄자처럼 두 손이 묶였다. 단지 두 손을 묶고 있는 게 수갑이 아니라 살아있고 끈적거리는 점액이었지만...

 

“어?”

 

다소 멍청한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온 아약은 잠시 생각이 멈췄다.

그 와중에도 초록색 괴생명체는 열심히 아약의 팔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올라가는지, 만약에 이 생명체가 다른 사람의 팔을 올라가고 있었다면, 아약은 응원까지 해줄 정도로 괴생명체는 포기하지 않으며 차근차근 올라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아약은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약이 달려간 그곳은 커다란 나무 앞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는 최대한 힘을 발휘해서 나무를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뻐어억!

 

그러나 초록색 괴생명체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느릿한 속도와 다르게 순식간에 몸을 피했다. 그리고 그 덕에 아약의 두 손은 두꺼운 나무껍질 사이에 박히며 손가락이 휘면 안 되는 방향으로 휘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전까지와는 다른 비명이 숲 속을 울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또다시 초록색 점액은 천천히 아약의 겨드랑이를 향해, 아니 머리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눈물을 참으며 아약은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두 팔을 휘둘렀다.

목표는 팔을 휘감은 초록색 점액!

 

이번에야말로 무조건 맞춘다는 생각으로 나무에 두 팔을 부딪쳤다. 이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 국가대표 배구 선수가 허공에 뜬 공을 두 손으로 리시브하는 자세였으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이 아약의 화려한 몸부림을 보았으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너에게는 재능이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배구 감독이 30대 중반의 배불뚝이 아저씨인 아약을 볼 이유도 없었다. 팔은 바람을 거스르며 나무 중심에 정확히 부딪쳤고, 나무는 쿵! 소리를 내며 바르르 떨었다.

 

뻐어어억!!!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초록색 괴생명체는 엄청난 반응속도로, 나무에 맞기 직전에 아약의 팔에서 떨어졌다. 그 때문에 아약의 팔은 나무와 수직충돌을 하는 꼴이 되었고, 뼈에 금이 갔다.

 

털썩...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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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3만개면 22짜리를 만들어 준다구요!? 

줄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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