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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7팬픽 - 인간적이라는 의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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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3 18:23 (UT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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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https://m-page.onstove.com/epicseven/kr/view/8908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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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https://m-page.onstove.com/epicseven/kr/view/8923398
4.
“누구냐! 놔라!”
어둠 속으로 끌려온 에르발렌은 손을 뿌리치며 저항했지만 그때마다 손은 다시 그를 붙잡았다. 그런데 잡아당기는 힘이 생각보다 약했다.
“조용히 해요. 이러다가 들키겠어요!”
이곳은 좁은 공간인지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가냘픈 목소리는 소녀의 것이었다. 목소리에 담긴 다급한 감정에 에르발렌은 저항을 멈추었다. 혹시 불량배와 한패였다면 숨겨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를 스쳤다.
두 사람이 숨은 어두운 방에 정적이 흘렀다. 얇은 문 너머로 가끔 발소리와 불량배의 것으로 보이는 욕지거리가 들려온다. 문 밑에 있는 틈으로 약간의 빛이 들어왔다.
이 빛과 두 사람의 숨소리, 손 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에르발렌이 느끼는 감각의 전부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나가도 괜찮아요.”
열린 문으로 빛이 쏟아졌다. 에르발렌은 눈을 찌르는 빛에 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눈이 빛에 적응하자 그는 손을 내렸고, 자신을 숨겨준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창백하게 빛나는 피부 위로 갈색 머리카락이 구불거리며 내려왔다.
비슷한 나이에 키는 자신보다 살짝 작았다. 작은 얼굴은 귀엽다는 감상이 먼저 들었고,
여러 번 기워 입은 흔적이 보이는 헤진 옷에 목에는 빛 바랜 금속 메달을 끈으로 매단 목걸이를 매고 있었다.
“고마워. 네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당했을 거야.”
불안한 사람처럼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소녀는 에르발렌의 말에 그제서야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녀가 말없이 다가온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실례할게요.”
갑자기 두 손을 들어 에르발렌의 얼굴을 만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에르발렌은 손을 뿌리친 다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놓아라!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
화끈거림이 얼굴 전체로 퍼져나갔다. 상대방이 화를 내자 소녀는 당황한 사람처럼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죄송해요.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사람을 더듬어서 확인하는 습관이 있어요.”
소녀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부터 소녀의 시선이 조금씩 엇나가 있던 이유였다. 구해준 사람에게 더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니야. 괜찮다.”
그리고 어떻게 도울 수 있었는지 물어보자 소녀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불량배들과 싸우는 것을 엿들었다고 말했다. 방금도 이쪽으로 오는 소리가 들리자 숨을 만한 빈 집에 들어간 다음 지나갈 때 잡아당긴 것이었다.
“귀족 자제이신 것 같은데. 이 거리에 오신 건 처음이시죠? 골목에는 불량배가 자주 돌아다니니까 조심하세요.”
소녀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에르발렌은 자신이 골목의 지리를 잘 모른다는 것을 기억했다. 고민은 잠깐이면 충분했다.
“잠깐!”
부르는 소리를 듣고 소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이 거리에 처음 와서 잘 모른다. 그래서 안내를 부탁할 수 있을까? 사례는 충분히 하겠어.”
소녀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이윽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허락해줄 수 있나요?”
“...알겠다. 그리고 나는 그쪽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
에르발렌은 소녀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걸 허락했다. 그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자 어쩔 수 없었다.
손이 얼굴을 더듬어 내려간다. 이마에서부터 눈가, 코 입까지, 소녀의 손은 에르발렌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꼼꼼이 훑어내려갔다. 그리고 가끔 거의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기도 했다.
남의 손이 자신을 더듬는 감각에 에르발렌은 묘한 느낌이 들다가도 어느새 소녀의 얼굴이 눈 앞에 있으면 그런 게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얼굴이 뜨거워졌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눈이 얼마나 안 보이는지 물어보자 소녀는 세상이 전부 뿌옇게 보인다고 답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물어보자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녀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시인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새하얀 설원과, 장엄한 왕도의 대성당은 물론, 골목을 빠져나오면 보이는 거리의 활기찬 모습마저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짙은 안개에 뒤덮인 채 살아가는 것과 작은 새장 속에 갇혀 살아가는 것, 둘 중에 어느 게 더 괴로울까.
마침내 소녀의 손길에서 벗어나자, 에르발렌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소녀가 말했다.
“먼저 정체를 가릴만한 것을 구해야겠어요. 이 옷은 분명 사람들의 시선을 끌 거예요. 물론 불량배들의 시선도요. 저쪽으로 좀 가면 제가 아는 가게가 나오는데 거기서 정체를 감출만한 것을 좀 얻어볼게요.”
먼저 앞서가던 에르발렌은 허전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보자 소녀는 방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시 돌아가자 에르발렌의 앞에 불쑥 손이 내밀어졌다.
“잡아 주셔야죠. 전 앞이 잘 보이지 않잖아요.”
에르발렌은 소녀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뻔뻔하게도 소녀는 에르발렌에게 어서 잡으라고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내게 편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었나?
어두운 공간에 단 둘이 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마주잡은 소녀의 손은 살짝 차가웠다.
큰 길로 가면서 에르발렌은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지?”
“네?”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아…마야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라브레다.”
에르발렌은 잠깐 고민하고 답했다.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알려주기에는 위험했다.
“여기는 어떤 일로 오게 되었나요?”
“레펀도스 왕도를 구경하다 길을 잃었어. 그리고 우연히 만난 불량배들에게 쫓기게 되었어.”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야가 극장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아로 거리를 떠돌던 그녀를 키워준 사람이 극장가에서 가장 큰 극장의 배우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는 계속 마야가 극장에 오지 못하게 막았다.
“앞도 잘 못 보는 제가 창피한 걸까요?”
“그건 아닐거야. 다른 이유가 있겠지.”
무시당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에르발렌은 마야를 위로해 주었다.
에르발렌은 마야의 말에 따라 복잡하게 얽힌 골목길을 헤쳐 나갔다.
방향을 정하는 마야의 지시는 막힘이 없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길을 잘 아느냐는 말에 전부 외웠다는 대답을 들은 에르발렌은 내심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미로같은 골목을 빠져나온 둘은 허름한 옷가게 앞에 도착했다.
마야는 에르발렌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다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름한 망토를 가지고 나왔다.
에르발렌은 받은 망토를 살펴보았다. 허름한 망토에는 코를 찡그릴 정도로 퀴퀴하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다른 것은 없냐고 말했지만 이렇게 낡은 걸 입어야 의심을 피한다는 마야의 말에 억지로 망토를 두를 수 밖에 없었다.
마야의 말이 맞았다. 극장가로 향하는 동안 에르발렌은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을 느꼈다.
고작 망토 하나를 걸쳤을 뿐인데 그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거리에는 그와 비슷한 옅은 금발을 가진 사람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물론 보라색 눈동자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과연 누가 알까?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거리를 순찰하는 경비병들이 떠들면서 에르발렌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에르발렌은 몰래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요즘따라 불량배들이 극성인데. 아는 게 있어?"
"술집에서 대장님과 술을 마시다가 들은 말인데. 한 녀석이 근처에 있는 불량배들을 하나로 모았대. 짜증나는 녀셕이야."
"빨리 잡혔으면 좋겠군."
저들은 방금 레펀도스의 왕자를 지나쳤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웃음이 바깥으로 새어나왔는지 마야가 물어본다.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그냥. 참, 극장가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앞에 분수대가 보이나요?”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분수가 있는 광장에 도착해.”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되요.”
두 사람은 별 일 없이 극장가에 도착했다.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웅장한 건물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모습을 보자 슈니엘이 극장가에 대해 말하면서 그렇게 눈을 반짝이던 것도 이해가 갔다.
미야의 지인이 일한다는 가장 큰 극장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돈을 내겠다. 그래도 안되는가?”
“안 돼, 돌아가.”
극장의 앞을 지키는 문지기가 입구를 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단원이에요! 페트에게 직접 물어봐요!”
문지기는 그게 무슨 말이냐.라는 눈빛으로 마야를 쳐다보았다. 애초에 마야의 말대로 할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안 돼. 너희가 입고있는 낡아빠진 옷을 봐 이 지긋지긋한 꼬맹이들아.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돌아가.”
둘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문전박대를 당한 마야는 분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죠. 저 생각없는 자식은 우리를 들여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괜찮아. 내게 다 생각이 있어.”
문지기는 극장 앞에 서서 자세를 잡고 들어오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실수해서는 안된다. 그는 몇번이고 속으로 다짐했다. 전날에 극장주가 단단히 당부했던 대로 오늘은 기대작 ‘최초의 용기사’가 최초로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날이었다.
연극 ‘최초의 용기사’가 초연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자 극장주는 자신의 극장을 연극의 주 무대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뒤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로비가 오고 가고, 금화가 비처럼 흩뿌려진 뒤에야 겨우 그 자격을 얻어냈다.
그래, 이번 공연만 무사히 마치면 이곳은 레펀도스 최고의 극장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극장의 문지기고. 문지기는 속으로 으쓱거렸다. 그리고 방금 내쫓았던 거지 꼬맹이들을 떠올렸다. 맹인 여자애가 한 말이 조금 걸렸다. 생각해 보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이번 공연을 위해서, 용으로 변신할 수 있는 배우를 구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인가?
다행히 문지기가 직접 떠올릴 필요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문지기의 머리속이 하얗게 되었다. 손님으로 이루어진 줄 앞에 방금 쫓겨났던 꼬맹이 둘이 있었다.
“잠깐, 너희는 그 거지...”
냄새나는 망토를 걸치고 있던 남자애는 귀족이나 입을만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평생 일해도 구하지 못할 만큼 비싼 옷이었다.
“그렇게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는 대신 들어갈 수 있게 비켜주면 좋겠군. 바깥이 꽤 추워서 말이지.”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지기를 향해 에르발렌이 말했다.
그러고는 문지기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옆에 서 있던 마야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정신을 차린 문지기에 의해 가로막혔다.
“잠깐. 너는 들어갈 수 없다.”
그러자 에르발렌은 팔로 마야의 허리를 감싼 다음 끌어당겼다.
품 속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문지기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지가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는다 해도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저 소년의 행동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인 자의 것이었다.
“아닙니다. 좋은 공연 되십시오.”
뒤에 서 있는 손님들의 웅성거림이 더 커지기 전에 문지기는 둘을 들여보내는 것을 택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하자 에르발렌은 마야를 놓아주었다.
“들어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저기…”
마야가 주변에는 들리지 않게 말했다.
“평소에 귀족들이 다 이런가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풀기 힘든 오해를 만들어버린 에르발렌이었다.
&
이 바닥에서 보통 덩치라고 불리는 불량배는 바닥에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까 에르발렌을 얕보고 도발했다가 크게 당한 장본인이었다.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낮에는 웬 세상물정 모르던 귀족 꼬맹이에게 당하고 지금은…
“내가 얕보이라고 했냐?”
“아…아니요.”
슬쩍 눈을 돌리자 바닥에는 이미 반주검이 된 부하들이 있었다. 전부 꼬맹이에게 당한 애들이었다. 겨우 고개를 들자 두목이 그곳에는 있었다.
“그럼 왜 다친 개처럼 깨깽거리며 돌아와. 어?”
벽에 매달린 횃불 하나가 어두운 방을 간신히 밝히고 있었다. 불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 진 그림자는 두목의 얼굴을 인간이 아닌 악마처럼 바꾸어 놓았다.
“그래, 어떤 놈인지 말이나 들어보자”
덩치가 한 설명을 듣는 동안 두목의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바뀌었다. 설명을 크게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마지막에 ‘보라색 눈동자’까지 듣자 억센 손아귀가 덩치의 어깨를 붙잡았다.
“혹시 브로치를 가지고 있었어?”
“네…네.”
끝까지 몰린 덩치는 두목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자모양 브로치야?”
“그…그게.”
“대답해!”
“네…네. 맞아요.”
턱. 다시 덩치의 어깨에 손이 놓인다. 반사적으로 덩치는 눈을 세게 감았다. 벌벌 떨면서 덩치가 다시 눈을 뜨자.
두목이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팠지? 미안하다. 안 그래도 싸우느라 많이 다쳤을 건데.”
두목은 덩치를 직접 일으켜 세워 주었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는 덩치가 쓰러진 부하 둘을 데리고 나갈 수 있게 허락했다. 덩치가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부하가 방으로 들어왔다.
“네게 맡길 일이 하나 있다. 주위에 있는 애들 있지? 전부 불러모아.”
두목은 이제 소름끼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찾을 사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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