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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7 팬픽 : 퀸&잭 3


이전화 링크.

https://m-page.onstove.com/epicseven/kr/view/8241806



(원래는 밈에 따른 타로컨셉이었습니다. 황제버전 잔영의 비올레토는 일러레의 사정상 나오지 않습니다 삐빅.)



P.

산기슭에 한 오두막이 있다.
외관부터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이 오두막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도 않은 채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때는 늦은 밤, 어둠을 뚫고 오두막 앞에 사람들이 한 명씩 모이기 시작한다.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것인지 그들은 두건을 쓰거나 가면을 사용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오두막에 도착한 사람들은 문을 두드린 다음 문지기에게 품 속에서 꺼낸 증표를 보여주거나 비밀스러운 문구를 속삭여 자격을 증명했다.
문이 열리자 똑같이 어둠에 잠긴 음산한 공간이 드러난다. 등불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온 빛이 공간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었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중앙에 놓인 탁자에 앉았다.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가운데 상석에 앉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형제들이여. 전부 모인 것 같군요.”
그가 말하기 시작한 주제는 이곳에 모이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바깥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주제였다.

“크래들 중령, 아처 대위…결사의 많은 동료들이 대의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희생은 없을 것입니다. 위치헤이븐과 콘스텔라가 우리의 거사에 맞춰 군사를 보내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제 릴리아스의 폭정은 끝을 맺을 것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박수를 쳤다. 기쁨을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박수 소리가 그치자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상석에 앉은 남자의 손짓에 발언권을 얻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그렇다면 비올레토 해리슨 경의 회유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은 릴리아스의 밑으로 들어갔지만 그 이전에 비올레토는 퍼랜드의 전쟁영웅이었다.
다른 사람이 발언권을 얻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에게는 이미 기회를 주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주어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거지요. 그럼 응당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언권을 얻지도 않은 채 무턱대고 말한 것은 분명 예의가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은연중에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탁자 앞에 앉은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말하기 시작했다. 비올레토를 끝까지 회유해야 한다는 쪽과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그때, 상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숙해 달라는 뜻으로 양 손을 들자 오두막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는 모두를 둘러본 다음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가까운 시일 내로 우리는 승리하고 여왕과 그의 개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자. 동지들 모두 외칩시다. 퍼랜드에 자유를.”

남자의 말 한 마디에 비올레토를 끝까지 회유해야 한다는 의견은 불씨처럼 사그라들었다. 오두막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따라 외쳤다.

“퍼랜드에 자유를!”


5.




“누님?”

늦은 밤. 술이 가지고 온 취기에 온 세상의 경계선이 모두 녹아 없어지는 밤.
릴리아스가 한 손으로 턱을 살며시 감싼다. 달아오른 분위기. 코 끝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숨결.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손길에 저항할 수 없다.

“힘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이렇게.”

누님이 몸을 앞으로 내민다. 동시에 세상이 점점 흰 빛의 알갱이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비올레토의 의식은 어둠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단어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비올레토는 몸을 일으켰다.
눈을 떠보니 익숙한 곳이다. 자신의 방이었다. 창문을 가린 커튼 뒤에서 비치는 빛을 보니 시각은 해가 뜬 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았다.
비올레토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붙잡았다. 혹시나 하고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릴리아스가 몸을 앞으로 내민 이후로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실례를 저지른 것이 아닐까?
마침 이 질문에 답을 줄 사람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갈게.”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그의 상관인 릴리아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쪽 팔에는 먹을 것을 담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릴리아스는 비올레토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오더니 가장자리에 쟁반을 내려놓은 다음 그 옆에 살며시 앉았다.

“어제 그렇게나 무리하더니만, 몸은 괜찮니?”

릴리아스의 모습이 어젯밤과 겹쳐 보인다.
몸의 굴곡을 드러내는 보라색 드레스. 잡아먹힐 것 같은 황금빛 시선.
그리고 부드럽지만, 그 무엇보다 자기를 억세게 붙잡던 손길까지.
비올레토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예. 괜찮습니다.”

“다행이구나. 그러면 충분히 몸을 돌보고 괜찮아지면 그때 나오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릴리아스는 등을 돌려 떠나갔다.

“누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팔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릴리아스가 뒤를 돌아본다.
비올레토는 서둘러 팔을 내밀었던 팔을 거두어 들었다.

“누님. 제가 어제 실례를 저지른 것이 있다면 사과를...”

“걱정하지 말거라. 아무 일도 없었단다.”

릴리아스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니, 평소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네가 한 말 중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일이 걱정돼서 말하는 거라면. 이미 네 일은 전부 네 부관에게 맡겨 놓았다. 그를 어디서 주워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쓸만하더구나.”

누님이 다시 떠나려고 한다. 비올레토가 릴리아스를 다시 불렀을 때, 릴리아스는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왜 제게… 이렇게 잘 대해주시는 건가요.”

“잊었니?”

릴리아스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말했잖니. 모든 것을 보상해 주겠다고.”

이 말을 마지막으로 릴리아스는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을 나갔다.

방을 나온 릴리아스는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비올레토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사실 주변 전세가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각 도시에 심어 놓은 그림자에게 군대의 움직임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속속들이 도착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제부터 이 질문의 답을 구하는 것이 릴리아스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한 남자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릴리아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남자는 평범한 귀족이 입을 만한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장식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허름한 편도 아니었다. 딱 적당하다. 봐도 아무런 인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탓에 지나치면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그런 사람이었다.
릴리아스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는 것은 주변에 들을 귀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화가 끝날 때까지는 이 복도에 사람이 올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릴리아스는 그림자에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원래 여왕에게 어울릴만한 위엄있는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림자는 짧게 인사한 다음 자기가 찾아온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해 보았지만 비올레토 경과 결사 간의 연결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은 그들의 일방적인 접촉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사. 퍼랜드의 옛 의원파와 군의 잔당들이 모여 만든 비밀단체였다. 그들은 테러나 요인 암살, 공작 등으로 릴리아스를 귀찮게 만들었다.

“일방적인 접촉이라?”

“그렇습니다. 몰래 그의 자리에 편지를 두고 가는 방법을 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왜 비올레토에게 접근한 걸까.”

“아마 결사 안에 헤리슨 가문과 친했던 사람이 몇 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올레토 경과 접선하려던 자도 전 헤리슨 경과 친분이 있는 자였습니다. 한때 같은 곳에서 근무했었지요. 아마 비올레토 경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큰 기반이 되어줄 거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럴 만 하지.”

비록 지금은 ‘여왕의 충견’이라 불리고 있지만 그 이전에 비올레토는 민중들에게 전쟁 영웅이자 퍼랜드의 수호자였다.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억지로 세운 허울뿐인 위치였지만. 결사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감시를 해제할까요?”

“아니, 그대로 유지하도록. 그나저나, 위치헤이븐과 콘스텔라에서 보인 움직임의 목적은 파악되었나?”

“아직 파악 중입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저희 퍼랜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좋아. 혹시 그 움직임이 결사와 연관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좀 더 정확한 소식이 알려지면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이것 말고도 그림자는 따로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한 말씀만 더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봐.”

“최근 들어 비올레토 경과 너무 친밀하게 지내시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말씀 올립니다. 혹시나 심경에 변화가 생기신 것은 아니신지…”

“그림자는.”

어느새 릴리아스의 목소리는 변해 있었다.

“그림자답게 행동했으면 좋겠구나. 불필요한 말은 삼가도록 하거라.”

“죄송합니다.”

“이만 가 보거라.”

남자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릴리아스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생각했다. 그림자는 그녀가 가주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부터 곁에서 도와준 자였다. 능력은 좋았지만 가끔 이렇게 주군의 개인사에 참견하려고 하는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릴리아스는 생각했다. 그래도 자신이 비올레토에게 잘 대해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죽하면 그림자가 언급할 정도였다.
릴리아스는 창 밖에 펼쳐진 정원의 풍경을 내려다 보았다.

왜지?
단순하고 명확한 질문이다. 하지만 릴리아스는 이 질문에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비올레토를 손에 넣었다. 그가 의지할 만한 것들은 전부 없애고 망가트렸다.
이것 하나를 위해 그녀가 지금까지 들인 노력에 비하면 가주가 되거나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일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수족이라서? 아니다. 이것은 충분한 답이 되어주지 못했다.
릴리아스가 답을 구해야 할 질문은 어느새 두 개로 늘어나 있었다.

다음 날 오전이 되었다.
집무실에 앉아있는 릴리아스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릴리아스는 여전히 두 질문 모두 답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그녀의 신경은 지금 예민해져 있었다.
두 도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들의 목적을 쉽게 노출하지 않았다. 분명 속셈이 있을 터였지만 릴리아스는 그 이유를 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질문은…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비올레토가 안으로 들어왔다.

“누님. 위치헤이븐과 콘스텔라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목격된다고 하는 것이 사실입니까?”

비올레토의 말 한 마디에 릴리아스의 관심이 그 쪽으로 쏠렸다. 방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불편함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를 호기심이 대신했다.

“그 말은 누구한테 들었지?”

퍼랜드 수뇌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정보였다. 분명 자신은 비올레토에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부관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래?”

오호라…
릴리아스는 비올레토의 부관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가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유능함이 퍼랜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야 할 것이었다.

“그럼 일정을 취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올레토가 말하는 것은 오늘 예정된 요새 방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릴리아스는 퍼랜드의 외곽을 방어하는 요새에 차례차례 방문해 상태를 점검하고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군사 행동이 예상되는 이 시국에 비올레토의 의견은 타당했다. 순식간에 적군의 병사들이 들이닥친다면 병력이 얼마 없는 작은 요새는 큰 위험에 빠질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릴리아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진행한다.”

“누님!”

“여기서 물러난다면 나는 고작 움직이지도 않은 적들이 두려워서 꼬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게 되겠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일어나서도 안 되고”

“하지만 누가 누님을 노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보내거나, 아니면 다른 날로 미루는 것이…”

“그래서 네가 있는 게 아니겠느냐. 나의 검. 비올레토.”

릴리아스는 여유로운 자세로 다리를 꼬고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비올레토가 할 말을 찾는 사이 릴리아스는 틈을 노려 밀고 들어갔다.

“더이상의 이견은 받지 않겠어. 정 원한다면 친위대 중에서 쓸만한 자들을 추려 호위 인원에 넣으려무나. 요새로 출발하는 시각은 정오로 잡겠다.”

비올레토는 더이상의 반론을 내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비올레토가 방을 나가고 다시 혼자가 된 릴리아스는 생각했다. 그의 말이 맞다. 그녀의 의심은 최근에 보인 두 도시의 움직임과 결사 간에는 연관점이 있다고 속삭였다.
어떤 쥐새끼가 일을 꾸미는지 몰라도 릴리아스는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릴리아스는 줄을 잡아당겨 시종을 불렀다.

"비올레토의 부관에게 지금 바로 내 집무실로 오라고 전하도록."

시종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방을 나갔다.
기다리는 동안 릴리아스는 비올레토의 부관을 어떻게 시험해야 할지 생각했다.


6

“주변 경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지?”

“우선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경계조를 보내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망루에는 항상 병사들을 배치해 유사시 본대에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습니다.”

릴리아스는 장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점검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병사들의 훈련 상태도 양호하고 경계도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릴리아스는 뒤를 돌아 보았다. 그곳에는 비올레토와 호위를 목적으로 따라온 친위대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릴리아스는 망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교가 재빠르게 말했다.

“원하신다면 망루의 감시 체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보여드려도 되겠습니까?”

“좋다. 안내하도록.”

장교의 안내를 받아 망루 위에 올라가자 넓은 풍경이 릴리아스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에 있으면 모든 풍경이 보입니다. 저 끝에 있는 게 위치헤이븐, 저기 보이는 도시가 콘스텔라입니다.”

장교의 설명을 들으면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살펴보니 확 트인 하늘 밑으로 지형이 지평선까지 막힘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끝에는 다른 도시의 일부분까지 보일 정도였다.
전부 자신이 손에 넣게 될 땅이었다.
장교의 설명을 들으면서, 릴리아스는 잠깐 감상에 잠겼다.
얼마 남지 않았다. 눈물이 많았던 소녀가 가주가 되었고, 여왕이 되었다.
남은 것은 여왕이 된 소녀가 시도니아를 통일하는 것 뿐이었다.
그때. 릴리아스의 시야 한구석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거대한 먼지구름이었다.

“장교. 저것이 보이는가?”

릴리아스가 가리킨 방향을 보던 장교의 눈이 커졌다.

“다른 도시의 병사들입니다. 방향을 보니 콘스텔라인 것 같군요. 이 요새로 오고 있습니다.”

장교가 이상상황을 확인한 동시에 아래에서 장교를 부르는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님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왕님. 빠르게 다녀와 상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장교는 인사를 마치고 망루에서 내려갔다. 아래에서 병사들이 소란스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릴리아스는 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 보았다.
하나…둘…셋…
숫자가 백을 넘기 이전에 비올레토가 망루 위로 올라왔다.

“방금 내려간 장교에게 콘스텔라 군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래. 어찌보면 네 말대로 되었구나.”

비올레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먼지구름을 향해 있었다.
이전보다는 확실히 커진 모습이었다. 정체를 알기 어려운 몇백이 넘는 병사들이 전속력으로 이곳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이백…이백일…
릴리아스는 위화감을 느꼈다. 릴리아스의 손이 허리춤에 매단 검집을 향해 움직였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미리 생각해 두신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원군 요청을 보낸 다음 여기서 병사가 올 때까지 수비하실 겁니까. 아니면 잠깐 후퇴하는 방법을 쓰실 겁니까?”

“안타깝게도 네가 말한 방법은 둘 다 쓰기 어렵겠구나.”

비올레토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수비적으로 행동해오던 콘스텔라가 갑자기 움직였다는 것은 자신들이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거겠지. 그럼 원군을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위치헤이븐이 길목을 막고 있겠지. 퍼랜드의 두 권력자가 자리를 비운 상황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이 요새는…”

…삼백. 시간이 끝났다. 릴리아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런 좋지 않은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다음에 나온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비올레토. 검을 뽑거라.”

“무슨 일입니까.”

릴리아스는 말을 멈추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여전히 요새는 조용했다. 마치 누가 억지로 침묵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당연히 들려와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상황은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방금 망루를 내려간 장교가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병사들이 대신 우리에게 보고하러 올라오지도 않아. 게다가 주변에 있는 요새에 원군을 청하는 신호탄도 없다. 적침을 목격했을 요새의 병사들이 지금까지 대처를 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이겠느냐.”

비올레토의 입에서 가장 믿기 힘든 말이 나왔다.

“…배신입니까.”

릴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작게는 이 요새의 일부. 크게는 전체가 돌아섰다 봐도 되겠지. 힘든 전투가 되겠구나.”


앞장선 친위대 병사가 조심스럽게 망루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연 병사는 주위를 둘러본 다음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뒤에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다른 친위대 병사들과 비올레토, 그리고 릴리아스가 차례대로 망루에서 나왔다.
요새의 수비대들은 릴리아스와 비올레토를 비롯한 병사들이 요새 내부를 돌아다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망루의 문은 요새의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돌로 이루어진 통로의 벽에는 가끔 바깥을 살펴볼 수 있게 만든 작은 틈이 나 있었다. 그들은 우선 이 요새를 빠져나가는 길을 찾아 움직였다.
가끔 요새의 병사들과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병사들은 도망치거나 릴리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병사들은 전부 친위대가 쓰러뜨렸다. 릴리아스나 비올레토가 나설 틈도 없었다.

이동하던 도중에 그들은 모퉁이로 이어지는 근처에서 장교와 요새의 병사 몇 명이 **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릴리아스를 망루로 안내해 준 그 장교였다. 그의 몸에는 단 하나로도 생명에 치명적이었을 상처가 몸에 몇 개나 있었고. 죽어서도 쥐고 있는 검에는 반항한 흔적이 엿보였다.
릴리아스는 잠깐 그의 시체 앞에 멈춰 예를 표했다.

“이 장교는 요새의 다른 병사들처럼 배신하는 대신 퍼랜드를 위해 목숨을 바쳤구나.”

“장교의 희생이 가치가 있길 바래야겠군요.”

릴리아스는 비올레토를 보고 말했다.
“이 장교의 희생이 지니는 가치는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겠지. 그럼 계속해서 요새를 빠져나갈 길을 찾아보자꾸나.”

계속해서 통로를 돌아다니다가 앞을 막은 문을 열자 여러 사람이 모여 앉을만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요새의 병사들이 진형을 갖춘 채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릴리아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수십이 넘는 병사들이 방금 자신들이 지나온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완벽한 포위였다. 빠져나갈 틈은 보이지 않았다.
친위대와 요새의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요새의 한 병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러자 비올레토의 검이 단숨에 병사의 급소를 꿰뚫었다.
목숨이 아까워진 건지 동료의 죽음은 본 병사들은 섣불리 덤비지 않았다.
양측이 대치한 채로 계속 시간이 흘러갔다.
대치상태가 계속되자 비올레토는 릴리아스에게 속삭였다.

“누님.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먼저 탈출하십시오. 저희가 모두 목숨을 버리고 달려든다면 누님 한 명 쯤은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릴리아스는 작게 웃었다. 아무리 비올레토가 죽음을 각오했다지만. 릴리아스는 비올레토가 죽게 놔둘 수 없었다.

“하지만 거절하겠어.”

“누님.”

“너는 내 가장 소중한 신하야. 그런 너를 어떻게 버리고 혼자 살아남겠어?”

릴리아스는 아직 답을 얻지 못한 다른 한 질문의 실마리를 알 것만 같았다.

그때, 릴리아스를 가로막은 병사들이 옆으로 비키섰다.
그 뒤에서 갑옷을 입은 사람들의 무리가 나타났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들어 릴리아스를 쳐다보았다. 꽤나 연륜이 있는 모습에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이 ‘결사’인가 보구나.”

가면 뒤에서 늙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릴리아스도 몇 번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였다.

“정답이다. 릴리아스. 당신의 독재에서 퍼랜드를 구해내려는 뜻있는 자들이 모인 곳이지. 이제 곧 있으면 콘스텔라의 병사들이 와서 당신과 비올레토 경의 신병을 인수해 갈 것이네. 함정에 빠진 기분은 어떠한가?”

릴리아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생각보다 별 거 없군. 시시할 정도야.”

릴리아스는 그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분노한 쪽은 비올레토였다.

“다른 도시의 힘을 빌리면 그들에게 빚을 지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은 퍼랜드를 팔아넘기려는 겁니까?”

결사의 우두머리는 비올레토의 말에 침묵을 지켰다.

“나도 전 헤리슨 경을 알고 있다. 용감하고 명예로운 분으로, 개인적인 친분도 꽤 있었지. 헤리슨 경도 이번 일에는 반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릴리아스의 폭정 아래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퍼랜드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우두머리는 요새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 끝이다. 콘스텔라 군이 도착할 때까지 저들을 구속해라!"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수적으로도 열세였고 게다가 포위까지 당한 상황이었다.
그 누구도 희망을 가지지 못할 상황이

“누구 마음대로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요새의 병사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병사는 결사의 우두머리에게 다가가더니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병사의 말을 들은 우두머리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뭐? 콘스텔라 군이 방향을 돌려 돌아가고 있어?”

릴리아스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충고를 하나 해줄까? 하나.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일을 도모하지 말 것. 그들은 패색이 조금만 짙어져도 도망가 버리니 말이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우두머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상황이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요새의 병사들이 불안에 빠져 수군거리는 가운데 릴리아스는 여유롭게 질문에 답했다.

“간단하다. 이곳에 오기 이전에 비밀리에 군대를 움직여 놓았지. 위치헤이븐이 있는 쪽은 장기전으로 끌고 가게 했고. 콘스텔라 군은 비어있는 본진을 공격하게 했지. 과연 본진이 공격당하는데 돌아가지 않을 군대가 있을까?”

결사의 우두머리는 분노를 삭히려는 것인지 힘줄이 보일 정도로 주먹을 힘껏 쥐었다.

“너희까지 움직이게 하려고 고생을 좀 했지. 위치헤이븐과 콘스텔라의 움직임은 확실했지만 너희가 움직일 것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 하지만 마지막에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서 너희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는 쪽에 걸었더니 대어가 잡혔어.”

뒤에서 또 다른 병사가 달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바깥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사들입니다. 퍼랜드 군입니다!"

모두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릴리아스는 비올레토를 돌아보았다.

“부관을 좀 더 칭찬해 주렴. 콘스텔라 군을 돌려보낸 것도 모자라서 이토록 완벽한 순간에 도착했구나.”

아무도 막을 생각을 하지 않는 가운데 릴리아스는 벽에 난 창으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수천이 넘는 병사들이 요새 앞에 질서정연하게 나열해 있었다. 외곽을 수비하는 요새 따위는 단숨에 함락할 정도로 많은 수였다.
퍼랜드 군의 선두에 지휘관이 있을 자리에는 어른이라 보기에는 아직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 서 있었다.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드리겠습니다!"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요새 전체에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릴리아스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자신을 둘러싼 요새의 병사들을 둘러 보면서 말했다.

“자. 살아남고 싶다면 어디에 붙어야 할지는 명백하겠지? 짐이 자비를 거두기 전에 서둘러 결정을 내리거라."


E.

릴리아스는 의자에 반쯤 누운 자세로 서류를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서류 뭉치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전부 오늘 내로 결제를 마쳐야 하는 문서였다.
릴리아스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전에 요새에서 있었던 일의 결과를 적은 문서였다.

그날, 우두머리를 비롯한 결사의 대부분이 잡혔다.
더 이상 결사는 힘을 쓰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릴리아스는 나른한 목소리로 비올레토를 불렀다.

“비올레토.”

“네. 누님.”

비올레토는 릴리아스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비올레토는 접대용 책상 앞에 앉아 릴리아스오 마찬가지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비올레토 앞에 놓여있는 문서 더미도 릴리아스의 책상 위에 있는 서류의 양과 비슷할 정도로 많았다.

“둘. 진정한 군주는 싸우기 전에 이미 승리를 만들어 놓는 법이야. 적이 가장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어라. 그리고 적의 허점을 치면 적을 확실하게 끌어내릴 수 있단다.”

“요새에서 했던 말의 연장선상인 겁니까?”

“그래. 맞아.”

릴리아스는 그 말에 대충 대답한 다음 서류를 넘겼다.
세금에 관한 복잡한 서류가 나타나 눈을 아프게 했다. 릴리아스는 복잡한 도표와 숫자들과 눈싸움을 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릴리아스는 방금까지 들고 있던 서류를 더미 위에 던져 놓았다.
이런 종류의 패배는 인정할 수 있었다. 이럴 때는 대신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네 부관을 불러야겠구나. 이 귀찮은 서류 작업을 맡겨야겠어.”

릴리아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제 부관은 요새에 파견을 나갔지 않습니까.”

요새에서 반란이 일어난 이후로 비올레토의 부관은 퍼랜드 외곽의 요새를 총괄하는 임시 책임자를 겸하고 있었다.
이전의 책임자는 반역죄로 결사의 단원들과 함께 체포되어 지금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불러내서 서류 작업을 전부 마친 다음 돌려보내면 되잖니?”

“그러면 아마 사표를 던질 겁니다.”

“해볼테면 해보라고 해. 과연 퍼랜드의 여왕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둘은 서로를 보고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여왕과 소중한 신하.
릴리아스는 비올레토가 자신에게 어떠한 사람인지 이제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가장 소중한 신하였다.
그리고 또…글쎄다.
다른 마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다.

비올레토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 오늘 정오에 출정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요새의 일이 있던 날, 퍼랜드는 위치헤이븐과 콘스텔라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오늘 퍼랜드는 공화국의 낡은 이름을 벗어던지고 제국에 걸맞은 새로운 이름을 얻을 것이다.
위대한 옛 영광이 담겨있는 ‘퍼루티아’로.

방금까지만 해도 릴리아스의 목소리에 묻어있던 나른함이 전부 떨어져 나갔다.
릴리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올레토에게 다가갔다.
서류를 보던 비올레토의 눈앞에 손이 내밀어진다.
비올레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여왕이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용으로 앞에 서 있었다.

“손을 잡거라. 비올레토. 시도니아 전역에 퍼랜드의 깃발을 휘날리자꾸나.”

비올레토는 그 손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여왕님.”

그렇게 여왕과 기사는 함께 걸어나갔다.
그들의 앞에 펼쳐진 미래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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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봐도 미칠 정도로 스크롤이 길어요. 그 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일러스트를 보고 들어오신 수많은 분들과 글을 보러 오신 1%의 독자분 모두에게 감사인사 올립니다.

m(_ _)m 꾸벅


이전에 올린 퀸&잭의 나머지 부분입니다. 몇 달을 유기했다가 다행히 사슴님 덕분에 이렇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네요.

다음은 디리벳&스트라제스입니다. 제가 준비한 마지막 팬픽이고요.

빨리 올리고는 싶은데 표지가 오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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