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분석] 잘 만든 RPG, 몰입되는 RPG란 무엇일까 : 폴아웃 뉴 베가스(2010) [4]
소개
- 게임 이름 : 폴아웃 뉴 베가스(Fallout: New Vegas)
- 개발사 :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 장르 : ARPG, 오픈 월드,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 출시일 : 2010년 10월 19일
- 플랫폼 : PC, PS3, Xbox
- 줄거리 한 줄 요약 : 핵전쟁 이후의 미국, 소포를 노리던 인물에게 피격 당해 죽다 살아난 주인공, ‘배달부’가 복수를 위해 환락의 도시 뉴 베가스로 향하는 이야기
- 게임 특징 : 플레이어가 이야기에 '직접 참가'하고, 자신이 커스터마이징한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연기'하는 TRPG식 구성으로 몰입감을 크게 향상시켰음
선정 이유
1. 시나리오 완성도가 매우 높음
작중 등장하는 장소/캐릭터의 서사가 모두 ‘다시 시작하되 놓아줄 때를 알아라’라는 핵심 주제와 연결되도록 구성
=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여운을 남기며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
2. 현실감 넘치는 장소들
실제 모티브가 된 장소에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잘 버무려 냈음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의 본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황폐화된 이후의 세계/문명을 다룬다는 점에 있음.
= 뉴 베가스의 경우 한 번쯤 다큐나 영화로 봤을 법한 라스베가스 근처의 명소, 상점, 자동차 극장을 그대로 인게임 속에 담아내어 현실감을 높였음
3. 게임의 자유도가 엄청남
주인공의 서사 = 없을 무(無) = 플레이어에게 "너가 캐릭터 시트 짜 봐" 하는 식으로 넘김
누구의 아들이나 딸, 아내나 남편도 아니고 캐릭터를 플레이할 때, 이 캐릭터를 짓누르는 과거에 신경 쓸 필요도 없음
= 이러한 게임 메카닉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해방감을 느끼게 할 뿐더러, 플레이 방식에 더 많은 자유를 줌
핵심 재미
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설정이 사실상 백지상태 = 자유도 UP (컨셉/다회차 플레이 가능)
직업이 배달부라는 것을 제외하면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배달부의 서사를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
달러 3부작에 등장하는 리 반 클리프, 이스트우드와 같은 고독한 황야의 총잡이, "흑흑 나는 죄 많은 여자"를 입에 달고 사는 세기말 팜므파탈,
볼트34 출신 폭탄마(볼트34 = 총덕/폭탄물 애호가들만 모인 쉘터) 그것도 아니라면 뾰족 너클 하나 들고
"북두신권으로 악당을 쓰러트려서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심어주겠다"며 북두의 권을 찍을 수도 있다.
② 초반 캐릭터 생성 때 플레이어에게 커스터마이징 기회를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제공
TRPG 룰을 연상시키는 SPECIAL, PERK, 재주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의 입맛대로 캐릭터의 능력치와 컨셉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메카닉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배달부의 서사가 백지상태인 것에서 오는 장점을 대폭 증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디서 대충 주워 온 카우보이 모자와 권총 하나 들고
"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이제부터 난 석양의 건맨이다"라고 상상하는 것에서 그치는 몇몇 RPG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기본 스탯(SPECIAL) 캐릭터 생성 시 선택 가능한 컨셉(재주), 그리고 레벨업 할 때마다 추가할 수 있는 컨셉(PERK)까지
3단계에 걸쳐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세밀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코어 루프
▲ 요리든 캐릭터 창작이든 좋은 소재를 쓰고, 정성을 들인 만큼 머리를 탁 치는 감칠맛이 나온다
코어 루프 세 줄 요약
① 내 입맛대로 커스터마이징한 캐릭터를 생성한다 (ex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숨겨진 딸내미)
② 즐겁게 컨셉플 하고 엔딩을 본다 (ex : 그 아빠에 그 딸, 돌잔치 때부터 눈동냥으로 배운 사격 솜씨로 세계제패)
③ 다음은 어떤 컨셉 잡을까? (ex : 님들아 N회차 플레이할 건데 카우보이 컨셉 말고 다른 컨셉 추천 점)
오래 공들일수록 애착이 간다, 공들여 한땀한땀 빚은 음식은 맛도 좋다는 진리는 게임 캐릭터를 생성할 때에도 통하는 법.
몇 시간에 걸쳐 자신이 원하는 인물상이 무엇일지 상상하고, 자신의 캐릭터가 게임 속 세상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골똘히 궁리하며
신중하게 스탯과 컨셉을 정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게임 튜토리얼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일체화되고, 이로서 게임에 완전히 몰입하는 상태가 된다.
디자인 의도
이처럼 뉴 베가스를 제작한 옵시디언의 개발자들이 게임의 핵심 요소로 지목한
①플레이어블 캐릭터 설정 최소화 ②커스터마이징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 게임의 장르가 가진 특성 & 스토리텔링 방식에 담겨 있다.
폴아웃 뉴 베가스의 메인 스토리는 멸망 이후 등장한 문명 간 패권 다툼을 욕망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메인스 사이사이에 파르페를 만들듯 크고 작은 욕망을 가진,
그러나 각자의 사정으로 결핍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의 서사(사이드 퀘스트)를 차곡차곡 쌓아뒀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파르페를 처음 떠먹은 뒤(튜토리얼),
과일, 시럽, 과자, 아이스크림이라는 메인/사이드 퀘스트를 번갈아 먹는 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하지만 광활한 맵을 돌아다니는 오픈 월드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어는 1회차 플레이만으로 모든 맵을 구경할 수도,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NPC들의 이야기들... 아니, NPC 자체를 발견할 수가 없다.
(N인분 대용량 파르페를 1트 만에 -완- 칠 수 없는 것과 같다)
게다가 뉴 베가스의 엔딩 분기는 등장 팩션의 수에 맞춰 4개지만,
플레이어가 어떤 팩션/캐릭터를 살리고/돕고/방관하고/죽였느냐에 따라 엔딩의 세부 내용이 무척 다양해진다.
때문에 이 게임의 개발자들은 개발하는 내내 이러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떤 메카닉을 넣어야 N회차 플레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 고민 끝에 등장한 해결책이 현존하는 모든 RPG의 근간이자 시조 할아버지인 DnD (최초/가장 흥행한 TRPG)의 원초적인 재미를 차용하는 것.
즉, 플레이어로 하여금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서사를 A~Z까지 공들여 창작하게 함으로 자연스레 캐릭터와 자신을 일체화시킨 뒤
게임 속 세계에 초대해 RPG가 가진 '순수 재미'를 이끌어내는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 실제로 이 게임, 뉴 베가스의 각본가이자 게임 디자이너인 크리스 아벨론은 자타공인 TRPG 헤비유저로 유명하다.
결론
1. RPG의 본질은 '육성'이 아닌 '역할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진또배기 롤플레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임은 언제 어디서든 인기가 많다
(ex : 젤다, 파판, 위쳐, 발더게 등)
게임에 몰입한다는 것은 현실을 잠시 잊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RPG를 플레이하는 이유다.
2. 선택지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결국 똑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선택지가 아닌, 진짜로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엔딩이 달라질 정도로) 왜냐하면 여기에서 플레이어의 만족감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본능 중 가장 강력한 것.
즉, 현 상황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하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다.
자신의 선택이 게임 속 세계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엔딩에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면
플레이어는 현실 세계에서는 이룰 수도 경험할 수도 없었던 강력하고 달콤한 통제욕을 채울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 그 게임을 더 원하고 갈망하고 사랑하게 된다.
뉴 베가스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 또한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세상이 반응하고, 모든 캐릭터를 죽일 수 있고, 정말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3. 좋은 내러티브를 가진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세계와 스토리를 먼저 짜고,
그 설정에 맞춰 게임 메카닉을 설계하는 순서로 만들어야 한다.
게임 메카닉을 먼저 설계하고 내러티브를 생각하게 되면 그 게임의 스토리와 퀘스트는
플레이어에게 몰입감을 주는 것이 아닌, 플레이어와 게임 사이의 기계적인 상호작용을 위한 장치가 되기 쉽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RPG들은 대부분 메카닉을 설계하고 내러티브를 생각하는 순서로 만들어진다.
어쩌면 최근 좋은 내러티브를 가진 게임을 찾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른다)
4. NPC와 팩션의 캐릭터성은 '회색 지대'에 속해야 한다.
쉽게 얘기하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재미있고, 인간적이며, 사실적인 캐릭터가 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 같기도 한 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가족/친구/연인/타인에게 보이는 '페르소나(인격)'가 전부 다르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축소판인 '게임' 속 캐릭터들 또한 이처럼 다양한 페르소나를 보여줘야만 리얼리티가 느껴지는 것 같다.
+ 또한 라캉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을 염두하고 캐릭터를 창작한다면
더욱 인간적인, 어쩌면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까운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5. 늘 느끼지만 게임은 오타쿠적 마인드(a.k.a 장인정신)를 갖고 만들어야 한다.
게임 용어 설명 & 예시
* S.P.E.C.I.A.L : 캐릭터를 창작할 때 분배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스탯.
각 알파벳은 힘/인지력/지구력/매력/지능/민첩성/행운을 뜻한다.
뉴 베가스에선 각 스페셜 수치가 높고 낮음에 따라 다양한 대화 선택지가 등장한다.
https://youtu.be/3niwnVBsBdw?si=vZyNdVPqOitmtZs5
[NPC] 이봐, 촘스한테도 말했지만 NPC이 이런 '분실된' 물품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어.
위험 부담이 커지면 보수도 커져야지. 300캡 정도는 더 줘야 해.
[힘 7] 미안, 근육이 많아서 그런가 잘 안 들리네. 위험이 뭐 어쨌다고?
https://youtu.be/ae1rZbKJ_TY?si=vl1O3i6KLdfchI_O
[NPC] 지난 몇 년 간 저승사자가 날 따라다녔지...
드디어 녀석이 마중 나온 줄 알았는데. 지금쯤 날 비웃고 있겠구만.
[지능 1] 어........ 저승사자란 사람한테 돈을 엄청 빌렸나 봐?
* PERK : 폴아웃에서 RPG의 요소로써 가장 비중이 큰 요소.
다른 RPG 게임에서 레벨이 오를 때마다 얻는 "패시브 스킬" 내지 "특수능력"같은 느낌이다.
단순히 능력을 올려주는 것부터 기상천외한 효과가 발생하는 것까지 수십 가지 종류가 있다.
[바람둥이/요부] : 상대 성별에게 주는 피해량이 10% 상승하고,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대화문이 나타난다.
[전쟁 전 미식가] : 가공식품의 체력 회복 지속시간이 +50% 증가한다.
또한 술 중 스카치, 보드카, 와인을 마실 경우 생존 스킬에 따라 체력이 10초간 초당 2~7씩 회복된다.
[정신나간 폭탄마] : 수리, 폭발 각각 45 필요. 작업대에서 만들 수 있는 고성능 폭발물 제조법이 해금된다.
* 재주 : 폴아웃 시리즈의 캐릭터 특성치 요소.
PERK과 유사하나, 캐릭터 생성 시에만 선택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음
[파괴지왕] : 치명타 확률 +3%. 대신 무기 내구도가 15% 빨리 감소
[명품 주먹] : 근접 및 격투 공격 시 기본 공격력 20% 증가하지만 치명타 공격력은 60% 감소
마음 같아선 시나리오 분석한 글도 올리고 싶은데 (제 본질이 시나리오 기획인지라) 너무 뇌절 같아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포스트를 입력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잘 봤습니다
잘 봤습니다.
잘 봤습니다. 뉴 베가스는 사두고 건드리질 않아서 발효(?)중이었는데, 이 글 보고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시나리오 분석 글도 궁금해요! 괜찮으시면 나중에라도 꼭 올려주세요.
뉴베가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달에 한 번씩은 꼭 먹어줘야 하는 소울푸드같은 게임이죠! 그러고보니 발효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네요 출시한지 15년이나 지났으니.. 만약 하시게 된다면 폴아웃 커뮤니티에서 통팩 받아서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시나리오 분석은 이 게임이 다루는 주제가 심오하기도 하고 그 당시 텍스트 제일 많은 RPG 게임이었어서 어려운 단어가 많이 들어갈 것 같지만 읽으시다 지치지 않게 중간중간 삽화도 넣고 하면서 적어보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